평소 매주 출장을 다니는 남편은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출장을 떠나 목요일 밤늦게야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는 남편과는 거의 주말 부부지요. 저야 그렇다고 쳐도 한창 엄마, 아빠 사랑을 듬뿍 받아야 될 3살 아이에게 아빠의 빈자리는 꽤 크게 느껴져 아쉬웠습니다. 그렇게 지낸 지 반년이 흐르고, 신입 사원이던 남편에게도 첫 휴가가 생겼습니다. 원래는 1월 1일부터 한국에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예상보다 1주일 일찍 휴가를 덤으로 받게 된 것이지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세 식구가 온전히 함께 할 수 있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에 들어가면 대식구 안에서 우리 세 식구가 오붓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오히려 없어질 테니 말이에요. 어디로 여행을 떠날까 마치 지구본을 돌리듯이 구글맵을 돌리다가 파리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마침 저희가 여행하는 기간이 12월 31일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는 기간이었고, 대표적인 곳이 파리 개선문이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과연 한겨울 파리를 3살 아이와 여행을 하는 게 옳은 선택일지에 대해서는 비행기를 타러 가는 순간까지도 망설여졌습니다. 예전에 혼자 한겨울 파리를 여행해본 적은 있지만 언제라도 비가 떨어질 것 같은 스산하고 우울한 날씨는 가족 여행을 떠나기에 그다지 좋은 시기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아이와 함께하는 겨울 파리 여행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 우린 이런 방법들을 써보았습니다. 그리고 꽤 성공적이었지요!
첫째로, 아이를 꼬마 사진작가로 만들어줬습니다.
이건 아주 쉬었어요. 마침 여행을 떠나기 전 산타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어린이용 카메라를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죠. Vtech사에서 나온 어린이용 카메라인데 어른용 카메라보다 훨씬 가볍고 조작이 간단하기 때문에 아이도 사용법을 직관적으로 배울 수 있었죠. 물론 처음에는 각도도 안 맞고 다 흔들리지만 스스로 연습하게 놔두니 나중에는 원하는 앵글을 잡고 찰칵. 특히 아이에겐 지루할 수 있는 루브르 박물관 같은 곳에서도 카메라를 쥐어주면 엄마, 아빠가 구경하는 동안에도 혼자 조용히 찰칵, 찰칵 사진을 찍으니 일석이조지요. 나중에 커서 아이가 자기 카메라에 담긴 사진이 세계 최초의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놀라겠지요!
두 번째로 일정을 짤 때 적어도 하루는 온전히 아이가 좋아할 곳으로 넣었습니다.
일주일 여행 기간 중에 하루는 온전히 아이를 위한 스케줄은 파리 디즈니 랜드를 넣었지요. 몇 달 전에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 월드는 다녀온 이후에 TV에서 디즈니 리조트 광고만 나오면 저기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를 위한 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밤낮이 바뀌지 않은 아이는 디즈니랜드에 도착하자마자부터 계속 짜증을 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대낮에 밤잠을 자기 시작했거든요. 하루 종일 유모차에 들어가서 잠을 자고 집으로 돌아올 저녁 시간에야 잠이 깬 아이는 결국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하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아이가 시차 적응을 다 한 마지막 일정으로 이 곳을 갔었으면 더 좋았을 거란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만약 멀리 안 가더라도 파리 안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백화점 내부, 쇼윈도 등은 아이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될 수 있어요. 라파예트 백화점 안에 있던 커다란 디저트 트리도 이번 여행의 백미 중 하나였죠.
셋째로, 아이가 놀이터가 있는 공원을 발견한다면 그곳으로 충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아이에게는 여기가 미국인지, 유럽인지, 한국인지 알지 못하고, 어디에 간들 아직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장소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이에게 우린 지금 파리에 와있으니 개선문이나 에펠탑을 충분히 구경해야 되고, 긴 줄을 서서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를 봐야 해,라고 얘기를 하는 건 무용지물이라 생각했지요. 아이가 초등학교라도 나와서 교과서에서 모나리자를 봤든지, 아니면 중고등학교를 다녀서 세계사에 관심이 생긴 것이 아닌 이상이요. 그보단 새로운 탈 것이 있는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것이 아이에겐 더 즐거운 새로운 장소로의 탐험하는 방법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이 스스로 충분히 놀고 다시 유모차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면 아이는 이제 엄마, 아빠가 이 도시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잠깐' 줍니다. 충분히 고마운 일이지요.
넷째로, 주머니 가득 2유로 동전을 필수입니다.
파리를 여행하면 작은 동전들은 정말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특히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할 때면 이 동전들은 정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지요! 예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몽마르트르 앞 기차를 타거나, 노트르담 성당 안에서 발견하는 초마다 2유로 동전을 내고 불을 켜야 될 때, 골목마다 마주치는 회전목마를 탈 때 이 동전들은 아이에게 큰 즐거움을 선물해줍니다. 물론, 일정에 없던 이런 것들을 하느라 다음 일정이 미뤄지거나 취소되기도 하지요. 그래도 아이와 함께 에펠탑 앞에서 회전목마를 빙글빙글 타면서 안보이던 것도 보이게 되고, 옛 추억도 떠올려보고 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에게도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맛을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여행의 맛이라는 게 별다른 뜻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맛있는 음식' 말이지요. 집에서는 밥 먹을 때 영양소 생각해서 아이에게 이것저것 한 술이라도 더 먹이려고 하지만, 여행을 하는 중에는 되도록 스스로 원하는 것을 먹게 합니다. 특히 이번 파리 여행에서 아이는 '핫쵸코'의 맛을 알게 되었지요. 우유에 초코 가루 타서 먹는 핫쵸코가 아니라 말 그대로 100% 초콜릿을 한가득 녹여 우유를 살짝 부어 먹는 프랑스식 '쇼콜라 쇼'말입니다. 집에서였다면 '저 단 걸 다 먹어서 이 썩을 텐데 어쩌나' 했겠지만, 카페에 들어가 자기도 엄마, 아빠처럼 핫쵸코 한 잔을 주문해놓고 그 뜨거운 걸 후후 불며 홀짝홀짝 마실 때는 세상 행복해 보입니다. 그렇게 아이는 이번 파리 여행을 달콤한 쇼콜라 쇼의 맛으로 기억하겠지요.
어쩌면 집에서 세 식구가 편안하게 이불 덮고 군밤 까먹으며 TV로 파리의 카운트다운을 감상하는 것도 좋았을 테지요. 그래도 매년 다시 이 시기가 돌아와 TV에 우리가 2017년을 마지막으로 보냈던 파리의 개선문 카운트다운 화면이 나올 때마다 이번 여행이 생각이 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