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mouse Jan 12. 2018

미슐랭 별 따라 여행기

미슐랭 가이드북과 브랜드의 문화 마케팅에 대한 단상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에서의 7년 간의 경험을 뒤로하고 퇴사의 길을 선택했을 때 그만두기 가장 아쉬웠던 업무는 바로 문화 마케팅이었습니다. 처음 이 분야를 직접 제 손으로 해보게 된 건 2011년 BMW 제프 쿤스 아트카 월드 투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였지요. 한국 담당으로 이 프로젝트를 리드하면서, KIAF 전시, VIP 강연, 미디어 초청 등 전체적 일정도 구성하고 진행했었습니다. 물론 처음이라 좌충우돌하기도 했지만요. 그리고 기업과 브랜드가 제품을 앞세워 고객에게 직설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이 매력적인 대화법에 푹 빠졌습니다.


17대 Jeff Koons 아트카
18대 Cao Fei 아트카
19대 John Baldessari 아트카


미술은 자동차 VIP 마케팅의 단골 아이템?


사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다양한 아트, 문화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데, 이는 자동차가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보여줄 수 있고 고객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제품 광고나 가격에 휘둘려 자신의 차를 고르기보다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더 부합하는 자동차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물론 무조건 'VIP들은 고상한 아트와 대접받는 것을 좋아해!'란 발상으로 진행하는 줏대 없는 1회성 행사가 아닌, 기업의 가치와 판단 기준에 따라 일관성 있고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문화 마케팅일 때에 한해서이지만 말입니다. 기업이 문화 마케팅을 잘 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발적으로 그 해 예산이 남아, 남들이 한다니까 나도 한다는 생각으로 진행을 하고 있는 건지를 살펴볼 때는 그 프로젝트의 지속성과 역사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 마케팅, 미슐랭 가이드


그런 관점에서 제가 생각하는 자동차 산업에서 가장 잘하고 있는 것은 단연코 미슐랭 가이드입니다. 타이어 브랜드 미쉐린에서 전 세계의 맛집 가이드를 발간하는 것인데, 이제는 그 타이어 브랜드 자체보다 이 미식 가이드가 더 많은 대중적 인지도를 얻게 되었죠. 잠깐 이 미슐랭 가이드의 역사에 대해서 얘기해볼까요.


이제는 전 세계 미식의 기준인 미슐랭 가이드는 사실 아주 소박하게 탄생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작은 가이드북을 만든 것이 시작이었지요.



1889년 프랑스 중부의 Clermont-Ferrand지역에 살던 Andre and Edouard Michelin 형제는 타이어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전역에 자동차는 약 3천 여대 정도에 불과했었어요. 회사를 더 키우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산업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겁먹지 않고 자동차를 쉽게 타고 다닐 수 있을까 그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떠오른 아이디어는 바로 한 손에 쉽게 들어오는 작은 가이드북이었지요. 그 안에는 지도나 타이어 교체 장소, 주유소 등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었고, 또 호텔과 식당 리스트가 들어있었지요. 단순히, 긴 여행 후에 지친 운전자들이 먹을 곳과 쉴 곳을 찾아 헤매는 번거로움을 피해주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렇게 20년 동안 이 타이어 회사는 더 많은 자동차 인구를 늘리기 위해 꾸준히 무료 책자를 발간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자동차 정비소에 들른 Andre Michelin는 한 정비공이 자신이 애지중지 만들어온 이 가이드북을 작업대 받침대로 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오랫동안 정성 들여 만든 책이 라면 냄비받침으로 쓰이고 있는 걸 발견한 심정이겠지요! 충격을 받은 AndreMichelin은 1920년, 완전히 새로워진 미슐랭 가이드를 론칭하고 한 권당 7 프랑에 판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직접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책은 더 신뢰를 할 것이란 판단에 의해서죠. 그리고 실제로 그 기대는 적중했습니다.



처음에 이 책은 파리 전역에 있는 호텔과 식당을 소개했습니다. 광고는 일절 넣지 않았지요. 점점 영향력이 생기자 이 미슐랭 형제는 현재 평가 방식의 모태인 ‘미스터리 다이너 팀’을 꾸렸습니다. 보통 손님처럼 익명으로 식사를 하고 식당을 평가하는 것이지요. 1926년에는 훌륭한 평가를 받은 식당을 선정해 별 하나를 주기 시작했고, 5년 후에는 별의 개수가 0개부터 3개까지 다양화해서 드디어 1936년, 지금의 평가 기준이 생겨났습니다.


미슐랭 가이드는 현재 약 30개 이상 국가, 3만 개 이상의 식당을 소개하며 명실공히 최고의 미식 가이드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 미슐랭 형제가 이 책을 처음 만들었던 1900년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고, 탐험을 하고, 잊지 못할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지요.


미슐랭 따라 홍콩과 방콕 여행하기


전 지금 남편과 둘이 이 미슐랭 가이드를 따라 홍콩과 방콕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항상 해왔던 방식인)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아주 고전적인 방법으로 말이지요. 이번 여행을 하면서 미슐랭 가이드엔 무조건 비싸고 예약이 힘든 곳만 있을 거란 오해가 사라졌습니다. 이 책 안에는 방콕의 길거리 국수집도, 홍콩의 소박한 3천 원짜리 만두집도 반짝이는 별을 달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기준에 부합한다면 말이지요.


이번 미슐랭 미식 여행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식당 두 곳을 소개합니다. 가격도, 분위기도, 서빙 방식도 모두 ‘비교체험 극과 극’이지만, 100여년 전 미슐랭 형제들이 바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더 많은 미식 여행을 떠나고 싶게끔 만들어주는 맛이었습니다.




스라 부아 바이 킨킨 (Sra Bua by Kiin Kiin), 방콕, 태국

https://www.kempinski.com/en/bangkok/siam-hotel/dining/sra-bua-by-kiin-kiin/ 


보기 드물게 태국 음식으로 미슐랭 별을 받은 이 곳은 원래 코펜하겐에서 시작했습니다. Henrik Yde Andersen라는 유명한 셰프가 만든 이곳은 태국 음식과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메뉴들로 구성되어 있지요. 저희는 저녁 시간에 가서 The Journey라는 8코스 메뉴를 경험했는데요, 지금까지 가보았던 미슐랭 식당들이 약간은 뻔하고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미슐랭식 프레젠테이션을 한다면 이 곳은 조금 달랐습니다.


테이블에서 직접 만들어주는 커리 아이스크림을 곁들여 먹는 랍스터, 코코넛 속에 만든 작은 모래사장에 빨대를 꽂아 먹는 똠양꿍, 연꽃 봉오리 안에 숨어있는 참치 타르타르, 덴마크 출신답게 진짜 레고 장난감에 숨겨 나온 레고 디저트 등 하나같이 예상을 뛰어넘는 것들이었죠. 물론 맛도 있었습니다. 별이 하나밖에 안된다는 것이 약간 고개 갸우뚱해질 정도로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방콕이니만큼 물론 다른 파인 다이닝 식당에 비하면 정말 합리적인 가격에 말이지요) 1,2주 전에만 미리 예약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자리를 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팀호완(Tim Ho Wan), 홍콩

http://www.timhowan.com/ 


어렸을 적 홍콩에 살았던 남편은 그때의 향수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항상 홍콩에 갈 때마다 제일 먼저 얌차, 얌차 노래를 부릅니다. 사실 전 줄을 오래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 유명한 딤섬 집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도 아이 없이 남편과 둘이 왔을 때 줄 서보지 언제 또 와보겠나 싶어서 드디어 팀호완에 가보았습니다. 이제는 한국에도 동네마다 딤섬 집이 많이 생겨서 비행기 타고 날아와야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도대체 어떻길래 3천원 짜리 만두가 미슐랭 별을 받았는지 궁금하다면 이 곳을 빼놓지 말아야 되겠지요. 예약을 받지 않아 긴 줄을 서야 되지만, 테이블 회전 속도 빠른 메뉴 특성상 허기가 지기 시작할 때쯤, 차례가 돌아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와 파리를 여행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