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mouse Dec 16. 2015

중남미의 트로피칼, 벨리즈-동굴 탐험대

시카고 MBA 랜덤워크 (3)

벨리즈에 도착해서 며칠 동안 지내면서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고, 말과 귀도 잘 트이는 것 같고, 음식도 걱정했던 것보다는 괜찮아서 좋았다. 그래도 과연 우리가 여길 5천 불이나 내고 올 가치가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개가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동굴 탐험을 다녀오고 온 뒤, 우리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벨리즈에는 정말 많은 천연 자연 동굴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우리가 간 곳은 '악툰투니칠무크날(Actun Tunichil Muknal)', 우리말로 '크리스털 무덤이 있는 동굴'이란 이름을 가진 석회동굴이었다. 주차장부터 40분 정도 하이킹하면 동굴 입구가 나타난다. 정글도 지나고, 무릎까지 오는 강도 몇 번을 건너게 된다. 동굴로 가는 길은 마치 선사시대의 나무들처럼 하늘까지 쭉 뻗은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어두운 동굴 입구에 들어가면 바로 물이 나오는데 이 곳을 50미터 정도 수영해서 들어가야 한다. 거기서부터 탐험이 시작된다. 여기서는 관광객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고 '탐험대'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이거 선진국 아니라고 너무  안전장치 안 돼있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스릴 넘친다. 머리 하나 겨우 들어갈 작은 굴 사이로 온 몸을 비집고 들어가기도 하고, 거의 90도의 미끌 거리는 높은 바위를 타고 올라가기도 한다. 탐험대 모자에 달려있는 불을 켜서 그 한 줄기 빛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또 모두 불을 끄면 완전한 어둠을 경험할 수 있다. 당연히 천장에는 박쥐들이 살고 있다. 인솔자가 불을 비춰보라고 해서 본 벽에는  바깥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곤충들도 서식하고 있었다.


14세기까지 마야인들이 이 곳 벨리즈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그들은 동굴 안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특히 이 동굴은 제사를 지내는 종교적 목적을 가진 동굴이었다. 일 년에 한 번, 홍수가 지나가고 나면 이 곳에 모여 모든 부족이 다 함께 제사를 지내는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곳에는 그 당시 마야인들이 사용한 그릇, 도자기 등이 그 자리에 그대로 보존되어있었다. 아마도 그 당시에 가지고 있던 최고로 귀중한 물건들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딱 봐도 엄청난 고고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 동굴은 최근까지도 특별한 보존 장치가 없었다. 바닥에 얇은 리본 끈 하나만 묶어놓고 이 선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표시만 되어 있었다. 간혹 실수로 카메라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실수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이 동굴 안에는  카메라는커녕 탐험대 모자에 다는 고프로도 못 가지고 들어온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관광자원을 두고도 왜 이 벨리즈란 나라가 여전히 화제가 되지 못하는지 이유를 알았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에게 잘 알려주는 것을 업으로 하는 나로서는 인스타에 이 엄청난 감동을 올리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비밀이 너무 쉽게 알려지지 않고, 직접 이 곳을 찾은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라 더욱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이유로 이번 동굴 포스팅에 나오는 사진들은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니라 구글에서 찾아서 내가 경험한 이미지와 가장 근접한 것을 찾아 올리는 것임을 밝혀둔다)

이 동굴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곳 크리스털 무덤이다.  무덤이라기보다는 해골이 그대로 바닥에 놓여있다. 다양한 설이 있는데, 14세기 종교 행사에 제물로 바치어져 희생을 당했다고 하기도 하고, 또 마야 어느 시대의 공주였다는 설도 있다. 이 해골은 동굴 속에서 오랜 시간 자연 과정을 통해 수정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표면을 갖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름이 '크리스털 처녀(Crystal Maiden)'이다. 이 무덤 근처에도 몇 개 다른 유골들이 함께 있어서 이 크리스털 처녀와 아마 함께 순장된 이들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보다도 겁이 많아 삼계탕도 통째로 먹는 걸 싫어하는 내가 감히 이런 유골이 있는 동굴을 탐험하는 용감한 탐험대가 되다니. 아마 누군가의 블로그 검색으로 쉽게 알 수 있는 장소였다면 난 미리 겁을 먹고 아마 동굴 입구에서 발도 못 붙였을 것이다.


벨리즈를 다시 또 가고 싶나? 내 대답은 No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주쳤을 때의 흥분과 감동은 아마 처음 한 번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벨리즈를 5만 불 내고라도 갈 가치가 있나?라고 물었을 때, 내 대답은 Yes, Yes, Yes! 이다. 이 지구에 태어나 이런 곳을 한  번쯤 탐험한다는 것은 내가 사는 이 세상의 크기를 더 넓혀주기 때문이다.


동굴 탐험을 마치고 다시 그 처음의 50미터를 헤엄쳐 입구에 도달했을 때, 우리, 용감한 탐험대는 뜨거운 박수를 쳤다.


벨리즈 동굴 탐험: 600년 동안 마야의 비밀을 간직한 채 어둠 속에 고요했던 악툰투니칠무크날 동굴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소개된 뒤 유명해져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고고학적 중요성이 높은 동굴 보호를 위해 벨리즈 정부는 최근에 정부의 허가를 받은 두 개의 관광 업체에서만 동굴탐험을 주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관광업체의 인솔자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일반 탐험대들이 가지 않는 비밀의 통로들을 많이 알고 있다. 이들이 탐험을 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어떤 책으로 보는 마야 문명 이야기보다 생생하고 재밌다.

http://belize-travel-blog.chaacreek.com/2009/03/actun-tunichil-muknal/

이전 10화 중남미의 트로피칼, 벨리즈-동물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