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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Dec 17. 2015

중남미의 트로피칼, 벨리즈-블루홀

시카고 MBA 랜덤워크 (4)

벨리즈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더 그레이트 블루홀(The Great Blue Hole)이다. 잠깐 위키피디아의 지식을 빌리자면, 블루홀은 지름 300미터, 깊이 124m의 말 그대로 바다에 있는 커다란 파란 구멍이다. 빙하기 동안 해수면이 낮아졌을 때 형성됐다. 153,000년 전과 66,000년 전, 그리고 60,000년 전과 15,000년 전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호리병처럼 생긴 모양 때문에 전 세계 다이버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위험해 다이버들의 무덤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사실 나는 왕초보 다이버에 겁이 많은 편이라 블루홀 다이빙은 가지 않았다. 아래 그림을 보아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들어갔다가 산소통은 떨어져 가는데 나오는 입구를 못 찾으면 어쩌지? 온갖 무서운 생각이 다 들었다.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하는 남편은 여기까지 와서 이 곳을 놓칠 수 없다 했다. 더군다나 드론보이(@droneboy_choi)로서 인스타의 팔로워들에게 이런 멋진 풍경을 꼭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떠났다. 이번에 내가 벨리즈 여행기 시리즈로 블루홀 포스팅을 한다니까 새벽부터 일어나서 본인이 찍은 사진 중에 가장 멋진 사진을 써달라며 내 눈에는 모두 똑같아 보이는 사진 수십 장을 보내왔다.  

나는 남편 때문에 3년 전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하게 됐다. 먹는 것부터 옷 입는 취향까지 뭐 하나 맞는 게 없던 연애 시절, 같이 할 수 있는 취미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될 것 같아 말이다. 그 이후로 열대 지방으로 여행 갈 일도 많고, 또 허니문도 피지로 가고 해서  그때 억지로라도 따놓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벨리즈의 바닷속은 그 어떤 곳보다 흥미롭다. 블루홀 같은 곳은 전문가들이 가는 곳이지만 나 같은 초보자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들이 많다. 하와이, 사이판, 피지 등 다이버들이 선호하는 다양한 곳에서 다이빙을 해봤지만, 벨리즈는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100살은 넘어 보이는 큰 거북이와 같이 수영을 할 수도 있고, 또 상어들로 득실거리는  바닷속을 구경할 수도 있다. 물론 식인 상어는 아니지만, 다시 사진으로 봐도 오싹하다. 자연 훼손이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물이 맑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스쿠버다이빙을 못한다고 해서 걱정할 것은 없다. 바다 속도 아름답지만, 벨리즈의 바다 위에서 즐길거리도 아주 많기 때문이다. 우리 그룹은 하루 요트를 빌렸다. 아침 일찍 벨리즈에서 출발해 그 근처의 작은 섬으로 갔다가 다시 저녁에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그곳에서는 선원들이  점심시간에 요리도 해주고, 흥겨운 노래도 틀어주고, 칵테일과 시원한 맥주도 준다. 배 위에서 책도 읽고, 춤도 추고, 술도 마시고, 스노클링도 한다.

이 요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면 저 멀리서 돌고래 가족들이 배를  쫓아온다. 같이 놀고 싶어서다. 돌고래 두세 마리가 배 가까이로 빠른 속도로 수영해오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뱃머리 앞에서 점프하면서 나타났다. 사람들이 박수 치면서 좋아하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뱃길에 앞장서서 수영 실력을 뽐냈다. 내 생전에 이런 영화 같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번 벨리즈 커플 트립을 다녀와서 느낀 건, 정말 외국 아이들은 커플들끼리 사랑을 표현한다는 거였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이들은 인생의 중심이 확실히 부부에 있다. 물론 나이 상으로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커플들이라 그럴 수는 있겠다. 하지만 분명 달랐다. 새로 만난 친구들과의 우정보다는 자기 짝꿍 챙기는 게 우선이다. 한국 사람들끼리 만약 하루 종일 요트를 탔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남자팀 따로 여자팀 따로 나뉘어, 수다를 떨거나 술 마시거나 하며 끈끈한 우정 다지기. 하지만 여기 벨리즈 커플 트립에서는, 다시 본 섬으로 돌아오는  저녁노을 지는 시간이 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기들이 마음에 드는 요트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둘이서만 소곤소곤 대화하거나 지는 노을을 구경했다. 나랑 남편도 어디 가면 사이 되게 좋아 보인다고 얘기 듣는 편인데, 우리에게도 이 상황은 상당히 어색했다. 문화 충격이었다.

저녁노을로 물든 벨리즈의 하늘은 블루홀의 블루에 대비되는 강렬한 레드다. 우리가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니 어둑어둑 밤이 찾아온다. 바다를 하늘처럼 날아다니던 100살 먹은 거북이도,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돌아다니던 상어들도, 한낮에 한참을 놀다가 평소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었을 돌고래들도, 잠드는, 그런 벨리즈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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