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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un 10. 2018

콜롬비아 커피 탐험대

아이와 남미 여행 - 콜롬비아 보고타

시카고를 출발해 보스턴에서 갈아탄 비행기가 드디어 남미 상공을 지나고 있다. 예전에 출장이나 여행으로 남미를 몇 번 와본 적은 있지만, 여전히 이 곳은 나에게 낯설고 이국적인 곳이다. 특히 이번 여행에서 들르는 도시들은 모두 태어나서 처음 가는 곳들이다. 우리는 우선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비행기를 다시 갈아타고 마지막 목적지인 페루 쿠스코로 들어가기로 예정되어있었다. 드디어 비행기가 보고타 공항에 착륙을 하고 우린 얼른 다음 비행기 게이트를 향해 뛰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선 환승 시간이 무척 짧아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비행기에서 딱 내리자마자 보이던 포토존. 이 때만 해도 우린 인증샷 한 장 남기고 다음 비행기로 뛰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공항에 내려 게이트를 빠져나간 순간, 우리는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항공사 카운터 앞에 줄을 쭉 서있는 것이었다. 아뿔싸, 한 시간 뒤에 떠나기로 한 쿠스코행 비행기가 갑자기 취소되었단다. 특별한 이유는 알려주지도 않고. 다음 쿠스코행 비행기는 내일 오후에나 다시 있지만 그것도 비행기가 만석이라 갈 수 있을지는 확실하게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 우린 아이와 동행했기 때문에 보다 확실한 일정이 필요했다. 시카고에서 부친 짐은 마지막 목적지에서 찾기로 했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이 곳에서 하루를 자야 한다면 지금 당장 아이에게 필요한 물품부터 챙겨놔야 한다. 결국 우리는 그 날 저녁 예정에 없던 페루의 수도 리마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그곳에서 하루를 머문 후 다음 날 아침 쿠스코로 들어가기로 했다.



쿠스코에서 우리가 예약해놓은 호텔 하루는 그대로 버리게 되었지만, 덕분에 우린 여정에 없던 도시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반나절을 얻었다. 난 배고프다고 찡얼거리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먹을거리를 찾아 공항을 뒤지고, 남편은 뭐할까 열심히 계획을 짰다. 다음 리마행 비행기까지 6시간 시간이 있었다. 뭘 하기도, 뭘 안 하기도 참 애매한 시간이다. 그래도 고마운 게 보고타 공항은 참으로 볼 것도, 할 것도 없는 곳이었다. 우린 어렵지 않게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콜롬비아에 왔으니 우리 제일 유명한 콜롬비아 커피 딱 한 잔만 마시고 오자!” 그렇게 우리의 커피 한 잔 보고타 탐험이 시작되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보고타의 광화문, 볼리바르 광장에 도착한 이른 아침은 하늘이 끄물끄물거렸다. 비가 쏟아지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구름이 싸악 걷히더니 금세 파란 하늘을 보여주었다. 과거 스페인 식민지라서 건축 양식이나 길거리 문화에서 흡사 유럽에 온 것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안데스 산맥이 ‘여기 남미 맞구나’ 일깨워줬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상점이나 뮤지엄들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보고타는 치안이 안 좋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우린 잔뜩 긴장을 하고 여권 든 가방을 앞으로 멨다. 핸드폰을 들고 커피를 마실 곳을 찾는데 지나가던 동네 할아버지가 나보고 얼른 핸드폰을 가방에 넣으란다. 아마도 소매치기가 많은 곳이라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구글맵이나 인스타그램의 도움 없이도 보고타에서 제일 유명한 카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볼리바르 광장까지 나오는 택시 안에서 재빨리 찾은 정보에 의하면 보고타에는 바리스타를 양성하는 유명한 커피 학교가 있고, 그곳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이 볼리바르 광장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문 닫힌 카페 앞에서 잠시 대기하다 드디어 10시 땡, 우린 기다리고 기다리던 콜롬비아 커피를 맛보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콜롬비아 바리스타 청년 네댓 명이서 열심히 손님맞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커피학교 부설이라 그런지 원두의 원산지와 내리는 방법, 라테 아트 종류까지 커피 메뉴 만으로도 책 한 권이 될 정도로 다양한 커피를 선보이고 있었다. 우린 그중에서 이 집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커피를 주문했다. 평소인 콜롬비아 커피 특유의 신 맛이 싫어서 잘 안 마셨는데 본고장에서 마시는 커피는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마치 와인 메뉴판처럼 원두의 향과 특징이 산지별로 소개되어있다.


드디어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바리스타는 직접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나와 드립 커피를 만들어주었다. 원두는 몽글몽글 커피빵을 만들어내며 곧 우리 앞에서 커피 두 잔으로 변신했다. 우리가 감탄을 하고 있는 사이 바리스타는 곧이어 아이가 주문한 핫쵸코에 라테 아트로 곰돌이 그림을 그려주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옆으로 손님이 하나 둘 들어왔는데 이곳에 사는 동네 주민인지 직원들과 익숙하게 인사를 하고 커피를 주문했다.



사실 커피맛은 ‘우와! 여기 있는 커피콩 다 사가야지!’ 할 정도로 놀라운 맛은 아니었다. 커피가 담긴 커피잔처럼 소박하고, 수수한, 그런 맛이었다. 하지만 콜롬비아에 와서 콜롬비아 바리스타가 만들어주는 진짜 콜롬비아 커피를 마시다니, 이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오늘 비행기가 취소되지 않았더라면 아마 평생 커피 한 잔 마시러 콜롬비아에 오는 사치는 경험할 수 없었겠지?" 남편과 난 웃었다. 어쩌면 원래 커피란 건 이런 것 아니었을까. 주방용품 코너에 갈 때마다 수 백 만원 하는 커피 기계를 만지작 거리며 ‘저게 있으면 집에서 커피를 제대로 만들 수 있을 거야!’했던 나에게 이번 콜롬비아 커피 탐험은 소박한 커피 한 잔의 진짜 멋을 알려주었다.





Arte Y Pasión Café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커피 산지답게 콜롬비아의 커피 바리스타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에서 운영하는 카페이다. 콜롬비아 각 지역에서 생산된 다양한 원두로 만든 커피를 맛볼 수 있다. 볼리바르 광장에서 3분 거리에 있어 찾기 쉽다. 아이와 함께 가면 핫쵸코를 시켜보자. 엄마, 아빠가 커피를 즐기는 동안 아이도 바리스타 아저씨가 우유로 그려주는 곰돌이 그림을 보면서 신기해한다.


Arte y pasión Café: Escuela de baristas
Cl. 16 #7 - 76, Bogotá, Colombia
+57 317 5097835
https://goo.gl/maps/SqKgJkHEg8N2 




아이와 함께 남미 여행기


1. 우린 정말 마추픽추에 갈 수 있을까

2. 잃어버린 공중도시를 만나러

3. 드디어 아이와 마추픽추에 오르다

4. 안데스 산꼭대기 수상한 소금밭

5. 안데스 산맥의 옷 짓는 여인들

6. 페루 알파카 스웨터에 대한 추억 

7. 유모차 타고 페루에 갑니다

8. 페루의 태양을 담는 그릇

9. 콜롬비아 커피 탐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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