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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May 29. 2018

안데스 산맥의 옷 짓는 여인들

아이와 육아 여행, 페루 쿠스코

엄마도, 아이도 즐거운 쿠스코 근교 일정 짜기


쿠스코 근교 프라이빗 투어를 하기로 한 날 아침, 예약한 가이드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호텔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쿠스코에서 나고 자란 가이드는 오늘 하루 어디를 가고 싶은지 물었다. 우리는 많은 곳을 가기보다는 아이와 같이 움직이기 편하고, 기왕이면 아이도 관심을 가질만한 곳이면 더 좋겠다고 했다. 가이드가 제안한 몇 군데 중에서 내가 꼭 가고 싶었던 곳은 요즘 무지개색에 푹 빠져있는 아이를 위한 직물 공방이 있는 마을, 친체로. 쿠스코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친체로에는 페루를 대표하는 동물인 알파카를 직접 키우고, 털을 얻어, 전통 방식으로 직접 천연 소재로 염색을 하고 실을 뽑아 옷을 짓는 여인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페루 전통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는 주민들


무지개색 마을로 입장, 친체로


친체로 직물 마을에 들어가기 전 가이드는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마을을 떠나기 전에 어느 정도 물건을 구입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왜냐면 이 직물 공방은 입장할 때 따로 돈을 받지 않는데, 이 전통 방식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은 자신들이 직접 직물 만드는 것을 20분 정도 시연하고, 물건을 판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한참을 달리다 차가 멈춘 곳에 내리니 쿠스코를 상징하는 알록달록 이쁜 무지개 색깔의 털실로 장식된 가게 입구가 나타났다.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들이 나와서 우리 식구들을 맞이해주고 환영의 노래도 불러주었다.



환영 인사가 끝나고 나면 공방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한가운데 작업실이 있고 양 쪽으로 각자 주인이 다른 몇 개의 가게들이 늘어서있다. 물건을 구입하기 전에 먼저 작업실에 가서 알파카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배운 다음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그러하듯이) 그래도 이 곳에 와보고 싶었던 이유는 이 곳이 적어도 민속촌 같은 곳이 아니라 실제로 21세기를 살아가는 페루 안데스 지방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란 사실 때문이었다. 이들이 입은 전통 의상은 영업시간이 끝나면 평상복으로 다시 갈아입는 옷이 아니다. 각 마을마다 고유의 디자인과 문양을 가지고 있는 이 전통 의상은 실제로 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평생 입는 옷이자 생활 방식이었고, 난 그런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안데스에서 구할 수 있는 천연 염료로 만든 아름다운 색색실


지붕이 반쯤 뚫린 페루스러운 작업실 한쪽 벽에는 이 안에서 직접 만들고 염색한 아름다운 실들이 전시되어있었다. 한복 물들이듯이 색 하나하나가 너무 곱고 자연스러워 저 실을 통째로 사서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또 한쪽에는 색색가지 실을 만들기 위한 천연 재료들이 놓여 있었는데 모두 안데스 산맥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었다. 요즘 부쩍 색깔에 관심이 많아진 아이는 이 아름다운 팔레트 같은 작업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는 아이에게 직접 색을 만드는 것을 하나하나 보여주고, 만져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파리로 초록색, 옥수수로 보라색, 볏집으로 파란색. 접시마다 다양한 색의 털실과 그 색을 만드는 재료가 담겨있다.


옷 짓기의 첫 시작, 알파카 털을 깨끗하게 빨기.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인장에 사는 코치닐이란 기생충으로 만드는 자주색


원하는 색이 만들어지면 한쪽에선 아궁이 불을 때고 물을 끓여서 알파카 실에 색을 입힌다. 실이 만들어지면 일주일에 몇 시간씩은 모여서 직물 만들기 작업을 하는데 스웨터 같은 경우는 몇 주, 복잡한 문양을 넣는 러그의 경우에는 몇 달씩도 걸린다고 했다. 그 과정을 보고 나니 기념이 될만한 무언가를 집에 가져오고 싶어서 둘러봤는데 사실 러그 장식품 같은 경우에는 그 정성이 가득한 물건을 가져와도 왠지 우리 집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할 것 같있다. 우리는 대신 시카고의 추운 겨울에 쓸 실용적인 알파카 모자와 장갑 등을 골랐다.


항아리 안에서 보글보글 염료를 넣고 실을 끓이면 아름다운 색실로 변신
안데스 산맥에는 수 많은 부락이 있는데 마을마다 넣는 문양, 색상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미안하고 고마워요


더 많은 물건을 고르지 못해 좀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 공방을 나오려고 하는데 한 아주머니가 아이를 부르더니 전통 의상을 입혀주셨다. 그러더니 우리에게도 손짓을 하며 전통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고 가라고 남편과 나에게도 이것저것 둘러주셨다. 덕분에 페루 여행 통틀어 거의 유일한 가족사진을 이 곳에서 얻을 수 있었다.


사진을 다 찍고 나오려고 하니 공방의 여인들이 아까 입구에서 우리를 맞아주었을 때처럼 모두 따라 나와주었다. 다른 관광지 같았으면 높은 매상을 올려주지 않은 관광객들에게 이렇게 작별 인사를 해주지 않았을 텐데. 아까 아주머니가 본인이 만들었다고 했던 스웨터를 하나 더 사줄걸 후회되는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 그리고 저들은 수 세기 동안 저런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 자리를 지켜왔겠구나, 라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무지갯빛 오색실로 기억될 아름다운 마을 친체로, 혹시라도 다음번에 이 곳을 다시 찾을 일이 있다면 이들이 고운 마음을 담아 한 땀 한 땀 뜬 따뜻한 스웨터를 꼭 사 와야겠다.





아이와 함께 남미 여행기


1. 우린 정말 마추픽추에 갈 수 있을까

2. 잃어버린 공중도시를 만나러

3. 드디어 아이와 마추픽추에 오르다

4. 안데스 산꼭대기 수상한 소금밭

5. 안데스 산맥의 옷짓는 여인들

6. 페루 알파카 스웨터에 대한 추억 

7. 쿠스코? 쿠스코!

8. 페루의 태양을 담는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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