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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May 30. 2018

페루 알파카 스웨터에 대한 추억

아이와 페루 여행

언젠가부터 여행지를 가서 기념품 쇼핑을 잘 하게 되지 않는데 이유는 그런 소품을 깔끔하게 정리정돈하는 능력이 없을 뿐더러 당시에는 이뻐서 사도 집에 가져와보면 마땅히 놓을 자리 없는 처치곤란 신세가 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 아니고서는 여행 출발할 때보다 집에 돌아올 때 가방 무게가 늘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이례적으로 쇼핑을 했는데, 바로 알파카 스웨터다. 알파카 스웨터와의 만남과 이별 이야기.



남미니까 당연히 덥겠거니 하고 날씨 확인도 안한채 한여름 옷들만 챙겨온 우리들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달달 떨었다. 가방 한가득 들어있던 한여름 옷들은 아무리 껴입어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날씨였다.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5월이 다 되었는데도 서늘한 초가을 날씨였다. 일교차도 심해서 낮에는 햇빛이 쨍쨍하고 저녁은 코트를 입고 다닐 정도로 추웠다. 우린 멋을 위해서가 아니라 긴 여행의 시작에 감기 걸리지 않기 위해 당장 긴 팔 옷이 필요했다. 다행히 알파카의 고향 쿠스코는 예상 외로 옷 사는 것 하나는 아무 걱정 없는 도시였다. 바로 알파카의 고향인 이곳은 특산품이 알파카 스웨터이기 때문이다. 거의 도시 전체가 하나 건너 하나 알파카 옷가게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우린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가까운 가게에 들어가 스웨터를 하나씩 장만하기로 했다.  



페루 사람들은 아마 남들이랑 경쟁을 하거나, 돈을 더 버는데는 크게 관심이 없는지 모든 가게들의 구색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파는 물건도, 디스플레이도 비슷해서 어제 갔던 가게를 다시 찾아가는 일은 꽤 어려워 보일 정도였다. 우린 그 중에서 한 페루 아이가 아빠의 계산대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는 가게에 들어갔다. 우리가 스웨터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알자 주인 아저씨는 ‘알파카가 80%나 들어있는 이 제품은 모두 페루 현지에서 직접 제작했다’며 스웨터를 하나하나씩 다 꺼내보이기 시작했다. 하나씩 고른 스웨터 가격은 7천원~1만원 사이. 덕분에 우리 세식구의 첫 커플티, 아니 팀복이 생겼다. 추울 때 입을 옷도 이거 딱 하나일 뿐더러, 왠만한 쿠스코 배경에 이 옷만큼 잘 어울리는 옷은 없었기 때문에 이 옷만 아침 저녁으로 이 옷만 주구장창 입었다. 덕분에 쿠스코에서 찍은 우리 식구 사진은 모두 다 하루만에 다 찍은 사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행 내내 같은 옷을 입어서인지 여기저기 올이 풀리기 시작했다. 꽤 실용적이고 괜찮은 페루 기념품이라 생각했지만, 집에 돌아가서 이걸 고칠 자신이 없고 작은 옷장에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릴게 뻔했다. 그래서 우린 정든 알파카 스웨터들과 작별을 고하기로 하고 혹시나 손재주 좋은 다음 주인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호텔방에 곱게 접어 두고 나왔다.


아, 물론 페루에 이런 저렴이 알파카 스웨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로로피아나는 페루에서 최상급 알파카를 독점으로 공급받는 지정 업체가 있을만큼 이 곳은 세계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알파카 원산지다. 그리고 안데스 산맥에서 2년에 한 번 채집이 가능한 ‘신의 섬유’ 비쿠냐의 산지도 바로 이 곳. 고급 알파카 상점에 들어가서 비쿠냐로 만든 케이프를 만져보니 캐시미어와는 비교가 안되게 차르르 떨어진다. 언젠가 나이들어 여기 다시 오는 날엔 비쿠냐 코트 꼭 한 번 입어보리란 희망을 가져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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