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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May 31. 2018

유모차 타고 페루에 갑니다

3살 아이와 육아 여행, 페루 쿠스코

쿠스코 공기와의 첫 만남


비행기에서 쿠스코 상공에 진입했다는 안내가 나왔을 때 창문을 열어 내다보니 비행기는 마치 산 위를 저공비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어릴 적 비행기가 홍콩 카이탁 공항의 빌딩과 빌딩 사이를 지나서 아슬아슬하게 착륙하는 느낌처럼 해발 3,600미터에 있는 쿠스코는 하늘과 맞닿아있는 느낌이었다. 점점 고도가 내려가고 드디어 비행기 타이어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을 때 우리는 조용히 우리의 숨소리를 확인했다. '엇, 생각보다 괜찮다!'



고산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이번 쿠스코 여행은 의외로 산뜻하게 출발했다. 나와 남편은 아주 약간, '이 곳이 고산지대구나'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공기 차이를 느꼈지만, 머리가 어질어질한 정도는 아니었고, 아이는 원래 이 곳이 제 집인양 언제나와 똑같은 컨디션으로 활기차 보였다. 가방을 찾아 출구로 나와보니 가게들마다 앞에 고산병을 완화시켜준다는 코카잎 바구니가 놓여있었다. 미리 여행책에서 본 대로 씹어보았더니 녹차 잎의 씁쓸한 맛이 났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소박해서 더 사랑스러운 도시, 쿠스코


공항에 도착해서 예약해놓은 호텔로 가는 길에 본 쿠스코는 아주 밝고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깨끗했다. 가게 간판을 보더라도 잘 정리가 되어있었고, 주변과 잘 어우러졌다. 이들은 부유한 나라는 아니지만, 타고난 미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것을 소중하게 관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전날 비행기 연착으로 머물었던 페루 리마에서 조금 실망을 해서 그런지 큰 기대가 없었는데 쿠스코는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새로운 기대를 품게 해주었다.



우리가 이번에 지내기로 한 호텔은 팔라시오 델 잉카란 곳이었는데 호텔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작은 분수대 사진에 마음이 끌려 이 곳으로 오게 되었다. 쿠스코의 역사 지구 안에 있는 이 호텔은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예전부터 사용돼 오던 건물을 레노베이션해서 만든 아담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가득한 곳이었다. 사진에서 봤던 중정에는 전통 복장을 입은 페루 여인들이 알파카 인형, 스웨터 등의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우리가 진열되어있는 물건에 관심을 보이자 여인들은 조용히 하나씩 꺼내며 얼마나 빛깔이 이쁜지 보라며 펼쳐 보여주었다. 쿠스코의 파란 하늘색과 내가 상상한 그대로던 아름다운 중정, 그리고 고운 색의 알파카 스웨터들은 하나의 그림처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쿠스코 첫인상으로 남았다. 이 작은 도시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사람들은 착하고 맑고 밝았다. '아, 쿠스코에 오길 잘했어!'



사실 우리가 호텔방에 도착할 때까지의 여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시카고를 출발해 쿠스코 호텔에 도착하기까지 거의 40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으니 말이다. 원래 직항도 없어 보스턴, 보고타에서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야 되는 일정이기도 했지만, (남미에서는 무척 흔한 일인) 비행 편마저 갑자기 취소가 되었다. 예정에 없던 리마로 날아가 하룻밤을 보내고 그다음 날 새벽 우리는 최종 목적지인 쿠스코에 도착했다. 새벽부터 공항을 나가느라 피곤했던 우리는 호텔에 도착해 늦은 아침을 배불리 먹은 후 '쿠스코에 드디어 왔다'라는 안도감에 깊은 낮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쿠스코 하늘은 어둑어둑해지고 있는 저녁 시간. 일주일 동안 이 도시에 머물거라 서두를 필요는 없었지만 이 도시엔 뭐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우린 슬슬 산책을 나와 동네 한 바퀴를 돌기로 했다.



왔노라. 보았느라. 드디어 라마를!


호텔 바로 앞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곳에서 페루 라마와의 첫 만남. 사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꼭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전통 복장을 입은 여인들과 라마였는데 이렇게 운 좋게 여행 첫날 볼 수 있다니! (사실 이 날은 첫날이라 우리는 너무 신기해서 감격했는데 쿠스코 시내에서 이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약간의 돈을 내면 이들과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이 여인들은 라마를 만져볼 수 있게 해 주고 먹이도 직접 줄 수 있게 해줬다.



쿠스코의 첫날은 그렇게 짧지만 기분 좋게 시작되었다. 염려했던 고산병 증세도 없었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라마 덕분인지 아이도 금세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출발하기 전에 아이와 쿠스코를 여행하는 것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서 뭘 해야 되나 걱정이 되었는데 그 고민은 이 날밤 모두 사라져 버렸다.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도시에 온 것만으로도 우린 너무 좋았으니까.


아이와 쿠스코를 여행하기 전 내가 알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 고산병 증세는 아이보다 어른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그랬다. 미국 소아과에서는 급할 때 먹을 수 있는 약을 처방해주기는 하지만 권장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대신 물을 충분히 마셔서 수분 섭취를 해야 된다고 해서 비행기에서 내릴 때 물 한 병을 얻어 계속 마시게 했다. 어른들은 코카 티나 코카잎을 씹어서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 급한 경우에는 호텔 룸서비스로 산소통을 주문할 수 있다.


* 아이와 함께 여행할 때 숙소는 되도록 광장 근처 평지에 있는 곳을 고르는 곳이 좋다. 쿠스코는 돌계단이 많고, 골목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도록 비좁아 유모차로 오르내리기 힘든 곳들이 많다. 도시 전체적으로 호텔 가격이 대부분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지낼 거라면 평소보다 한 단계 높은 등급의 호텔을 골라 지내는 것을 추천한다. 역사 지구의 경우에 기존에 있던 건물을 실내만 레노베이션했기 때문에 호텔방은 다른 도시에 비해 작은 편이다.


* 라마와 함께 다니는 페루 전통 여인들은 저녁에 광장 근처를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정해진 금액은 없지만 한국돈으로 1천~3천 원 정도 내면 서로 기분 좋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에필로그

꽤 오래전에 나온 디즈니 영화 중에 '쿠스코? 쿠스코!'란 작품이 있었다. 사실 난 그 당시에 그 영화를 안 봤는데 제목만 보고 페루 쿠스코 이야기인가 해서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찾아봤다. 내가 생각했던 그 쿠스코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제목 자체는 이번 여행에 딱 맞아떨어진다. 별 관심 없었던 남미의 작은 마을로 (심지어 아이를 데리고) 여행 가는 것에 심드렁했던 난, 일주일을 거기서 보내고 난 후 쿠스코에 푹 빠져버렸다. 쿠스코? 쿠스코!




아이와 함께 남미 여행기


1. 우린 정말 마추픽추에 갈 수 있을까

2. 잃어버린 공중도시를 만나러

3. 드디어 아이와 마추픽추에 오르다

4. 안데스 산꼭대기 수상한 소금밭

5. 안데스 산맥의 옷 짓는 여인들

6. 페루 알파카 스웨터에 대한 추억 

7. 유모차 타고 페루에 갑니다

8. 페루의 태양을 담는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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