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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un 01. 2018

페루의 태양을 담는 그릇

아이와 육아 여행, 페루 쿠스코

우리는 이번 쿠스코 여행을 하는 일주일 동안 팔라시오 델 잉카 호텔이라는 곳에서 묵었는데 이 곳은 인테리어나 건축 양식에 있어서 15세기 잉카와 스페인의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게 있었는데 바로 곳곳에 장식되어있던 크고 작은 아름다운 도자기로 만든 화병과 그릇들이었다. 처음엔 이 호텔 분위기랑 참 잘 어울린다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한 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호텔 곳곳에 있는 이 작가의 도자기 작품만 계속 눈에 들어왔다.



매일 저녁 우리는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호텔 로비 라운지에서 따뜻한 코카 티를 마셨다. 이건 고산병이 있는 쿠스코에서는 필수적인 음료라 호텔 한쪽에 누구나 언제든지 마실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아직 코카 티를 마시면 안 되기 때문에 아이는 엄마, 아빠가 로비 라운지에서 코카 티를 마시는 동안 아이는 테이블에 놓여있는 도자기 그릇을 가지고 소꿉장난을 하며 놀았다. 매일 밤 호텔에 도착하면 아이는 라운지로 뛰어가 자기 그릇이 잘 있나 확인하고 꼭 만지작거리다 돌아왔다. 묵직하면서도 따뜻한 흙 기운이 느껴지는 저 매력적인 페루 도자기가 우리 집 거실 커피 테이블 위에 없다면 아이도, 나도 무척 허전하고 계속 생각날 것 같았다.


우루밤바 산골 마을에서 온 도자기


이 여행이 끝나면 이 이쁜 그릇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던 내 모습을 본 남편은 고맙게도 호텔 직원에게 물어 물어 그 도자기를 만드는 작가를 알아냈다. 바로 유네스코 엑셀런스 어워드를 수상한 Tater Vera라는 작가의 작품이었다. 15세기에는 이런 스타일이 대표적인 페루의 도자기 스타일이었지만, 계속되는 지진으로 수많은 공방들이 문을 닫은 후에는 이런 전통 페루 스타일의 그릇을 유지하고 만들어오는 곳은 이 곳이 거의 유일하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는 쿠스코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우루밤바 마을의 공방에서 작업을 하지만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 작가의 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글맵을 켜보니 다행히 저녁 예약을 해놓은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꽤 늦게까지 문을 연다고 했다.



쿠스코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가 구글맵에 잘못 나온 주소로 헛걸음을 하고 매장을 찾기 위해 해방촌을 닮은 언덕을 넘나드는 동안 어느덧 시간은 저녁 식사 예약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의 포기를 할 때쯤 우연한 곳에서 간판을 찾았는데, 이 가게에 도착했을 땐 다행히 문 닫기 10분 전이었다. 2층으로 된 아담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매장 안에는 작은 비누 받침대에서부터 큰 성모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이 가득했다. 코발트색 접시 문양은 에르메스를 닮은 듯하기도 했지만, 이건 딱 떨어지는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난 따뜻한 페루의 흙 기운으로 만들어진, 세상에 유일무이한 이 울퉁불퉁한 그릇들에 더 마음이 끌렸다.



생일 선물로 나에게 온 그릇


‘호텔 조명받아서 그렇지 집에 가면 별로야, 계속 보면 촌스러워’라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계속 뒤돌아보며 가게문을 나서는 내게 남편은 다가오는 생일 선물로 하나 고르라고 했다. 딱히 필요한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어 (혹은 나중에 한 번에 더 큰 것을 사기 위해) 벌써 몇 년째 서로에게 생일 선물은 패스한 우리지만 왠지 이 그릇은 생일 선물로 받으면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왕 살 거 그냥 페루 스타일로 하자, 싶어 알록달록 꽃과 새가 그려진 오목한 그릇을 하나 골랐다. 남편이 계산할 때 슬쩍 보니 가격은 10만 원 정도.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생일 선물을 받았다.



앞으로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친구들은 거실에서 이 반가운 페루 도자기 그릇을 만날 수 있을 거다. 난 여기에 어느 날은 과일을 담고, 어느 날은 고구마와 옥수수를 담아 대접해야지. 이번 페루 여행의 추억이 담긴 이 그릇을 오래오래 사랑해 줄 거다.


에필로그


사실 이 그릇은 페루의 다음 목적지였던 멕시코 칸쿤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쨍그랑 반으로 깨져버렸다. 아껴준다고 해놓고 잘 못 챙겨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오히려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 다행히 집에 도착해서 도자기 전용 본드로 잘 붙여줬더니 마치 발굴한 15세기 유적 느낌도 나는 게 더 마음에 든다.


Tater Vera Ceremics

Address: 705 Calle Suyt'uqhatu, San Blas
Opening Hours: Monday - Saturday from 10am - 1.30pm and 4pm - 7.30pm.
Phone: (+51) 84 506 228
https://www.bestofperutravel.com/place/tater-vera-ceramics-cu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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