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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Dec 16. 2015

중남미의 트로피칼, 벨리즈-출발

시카고 MBA 랜덤워크 (1)

가을에 시작하는 대부분의 미국 MBA들은 입학 전 7, 8월 여름에 랜덤워크(Random Walk)라는 여행을 떠난다. 보통 직장 생활과 GMAT 학원을 다니면서 주경야독해온 직장인들이기 때문에 MBA 합격 발표가 나면 쾌재를 외치며 조금 일찍 회사를 정리하고 몇 달간의 달콤한 자유 시간을 보낸다. 마치 대학 합격을 하고 3월 입학식을 기다리는 고3 학생들의 마지막 겨울방학처럼 말이다.


랜덤워크는 필수로 모두 다 가야 되는 여행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가진 않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친구도 사귀고 분위기도 파악할 겸 다녀온다. 한 군데를 다 같이 가는 게 아니라 보통 20개 정도 목적지 리스트가 있어서 본인이 가고 싶은 곳으로 약 20명 정도씩 그룹을 이루어 떠난다. 북미 지역부터 아시아, 유럽, 남미까지 다양한 나라들로.


남편이 입학을 앞둔 시카고 부스 MBA에서도 전 세계 다양한 지역으로 랜덤워크를 떠나는데 특별히 와이프나 파트너와 같이 떠날 수 있는 커플 트립이 두 군데 있었다. 바로 에콰도르와 중남미의  작디작은 나라, 벨리즈. 아니, 이 세상에 그 좋고 좋은 나라 다 놔두고 왜 하필 듣도보도 못한 나라들인가. 심지어 시카고에서 출발하는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비용이 5천 불을 넘는다니. 술값, 밥값은 모두 별도에다가 말이다. 학비도 생활비도 비싸더니 무슨 학교가 MBA 학생들은 모두 물주로 보는 것인가. 가야 될 것인가 말 것인가 잠깐 고민을 했는데, 왠지  이때 아니면 내 생전에 중남미로 여행을 갈 일은 없을 것 같아 떠나기로 했다. 그 두 나라 중에서도 더 갈 일 없어 보이는 벨리즈로 말이다.

벨리즈는 멕시코 동쪽 캐리비안 해안에 자그마하게 붙어있는 나라인데 보통 중남미 배낭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도 잘 가지 않는 곳이다. 그만큼 정보가 많이 없고, 다이버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블루홀 정도가 네이버에 '벨리즈'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정보다. 구글링을 하면 그나마 좀 더 소개가 나오는데 마야 문명의 발상지, 수 많은 자연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된 천연 동굴, 열대기후로 덥고 습함 정도. 백과사전에 나올법한  이야기뿐이다.


시카고에서 벨리즈를 가는 직항은 없고 마이애미를 거쳐서 가야 한다. 마이애미에서 작은 비행기로 바꿔 타고  5시간쯤 가면 벨리즈에 도착하는데, 공항도 세관도 조금 축축하고, 허름하고 남미스러웠다. 거기서 다시 Maya Islands라는 이국적인 외관의 경비행기로 바꿔 타고 30분쯤 들어가면 우리가 머무를 첫 번째 호텔인 Blue Tang Inn에 도착한다. Blue Tang Inn, 말 그대로 '블루탕(벨리즈에 사는 물고기) 여관'이다. 미국의 대학생들이 봄방학에 단체로 놀러 오는 숙소 같은 느낌이었다.

랜덤워크의 원래 목적은 '서로 친해지길 바래'이다. 10 커플, 총 20명은 한국, 대만, 미국, 영국, 인도, 멕시코,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등 모두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라, 처음에는 다들 서먹서먹했다. 미혼의 선남선녀들의 여행이라면 또 분위기가 확 달라지겠지만, 여긴 이미 다 짝이 있는 사람들이 손잡고 온 여행 아닌가.


먼저 나서는 사람도 없고, 마음에 드는 누군가를 선점하거나 잘 보이기 위한 치열한 눈치 싸움도 없다. 또 영어의 수준이 비슷하면 그나마 쉽게 대화도 되고 친해지겠지만, 절반에게는 모국어고, 나머지에게는 외국어다. 설상가상으로 랜덤워크는 학교에서 누가 나와서 인솔을 하는 것이 아니라 2학년 선배 커플들이 같이 동행을 하는 형식이라, 특별하게 정해진 스케줄도, 규칙도 없었다. 통상적으로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그런 으쌰 으쌰  프로그램은커녕, 벨리즈 여행 처음부터 끝까지 학교 로고 하나 볼 수 없었다. 그게 이 여행의 매력이다.


벨리즈에 도착하자마자 뭘 해야 될지 감을 못 잡고 빈둥거리는 상황에서 우리 집 드론 보이가 활동을 개시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는 드론이 바다를 향해 나아가자 모두 긴 줄을 만들며 바닷가로 나갔다. 그리고 다들 단체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자며  바닷속으로 퐁당퐁당 뛰어 들어갔다.  그때부터 우리의 진짜 벨리즈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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