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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Sep 14. 2018

싱가포르 티옹바루 산책

유목 육아 in 싱가포르 - 6

드디어 어제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뜨고 있다는 동네 티옹 바루에 다녀왔다. 이 곳은 서울로 치면 연남동 정도 되는 곳인데 기존에 오래된 로컬 거주지였던 조용한 동네에 하나둘씩 감각적인 가게, 빵집, 책방 등이 하나 둘 들어오면서 가장 핫한 지역이 되고 있다. 내가 여기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Woods in the book이라는 어린이 책방을 구경해보고 싶었고, 또 싱가포르에서 가장 맛있다는 티옹 바루 베이커리에서 크루아상을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워낙 싱가포르는 작은 곳이라 혼자라면 진작에 다녀왔겠지만, 아이랑 다니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다 드디어 어제 유모차를 끌고 다녀왔다.


티옹 바루는 모두 이렇게 하얀 3층짜리 건물이 모여 있는 조용한 주거 지역이다.


요즘 워낙 인기 있는 곳이라고 해서 사실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북적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동네는 많이 한산했다. 이 곳이 맞나,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니,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 티옹 바루 베이커리가 눈에 들어왔다. 코너에 있는 작은 초록색 인테리어의 빵집인데, 이 곳이 바로 오늘의 티옹바루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이다. 소문대로 가게 안에는 2시간마다 갓 구워지는 크루아상의 버터향이 가득했다. 밀가루와 버터 모두 프랑스에서 공수를 한다고 쓰여있었다.  이 곳에서 나는 크루아상과 진한 블랙커피, 아이는 설탕이 묻은 패스츄리와 오렌지 주스 하나씩을 주문했다. 사실 오전에 아이와 시내에서 한 시간 떨어진 외곽 지역에 있는 과학박물관까지 어렵게 갔다가 너무 재미없어서 금방 돌아와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상황이었는데 입에 넣을 때는 바스락, 입 안에서는 사르르 녹아내리는 크루아상을 먹고 나니 에너지가 다시 백 프로 충전이 되었다.


아주 작은 빵집인데 최근에 Tiffany & Co에서 이 곳과 콜라보를 했다고 하니, 핫플은 핫플이다.
다음에 가면 아몬드 크로아상을 먹어봐야지


다시 힘을 낸 우리는 빵집을 나가 조금 동네를 탐험해보기로 했다. 마침 핸드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상황이라 과감하게 구글맵을 끄고 걸어보기로 했다. 중간중간 눈길을 끄는 식당, 바버샵, 카페 등이 있긴 했지만, 아직은 기존에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생활공간이 훨씬 더 많았다. 우리 어린 시절에 동네에 한 두 개쯤 있었던 만물상 구멍가게, 80년대에서 온 것 같은 아이들 장난감과 과자 등을 함께 놓고 파는 슈퍼,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을 위한 백반집 같은 식당들. 번쩍번쩍한 시내에서는 보기 힘든 진짜 이 싱가포르 현지인들의 세상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다행히 아직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에 이 곳에 왔을 때도 지금 이 모습이 지켜졌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우리가 찾던 두 번째 목적지, Woods in the Books에 도착했다. 이 곳은 어린이 전문 책방이다. 우리가 묵고 있는 St.Regis 호텔 근처에도 이 책방의 분점이 있어서 한 번 가봤는데 조금 실망을 해서 가지 말까도 싶었지만, 그래도 오리지널은 다르겠지라는 생각으로 찾아가 봤다. 안 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아주 작은 책방이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구경해 본 어린이 책방 중에 최고로 손꼽고 싶은 곳이었다.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에서 출판된 아이들 책을 골고루 다루고 있었는데 책을 고르고 배치한 책방 주인의 감각도 믿음직스러울뿐더러, 책으로 만든 깊은 숲에 들어온 듯한 따뜻한 책방 분위기가 이 곳에 계속 머무르고 싶게 만들었다. 아쉽게도 책방 안에서는 사진 촬영을 못 하게 해서 그 분위기를 남길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이런 주인장의 모습이 SNS 홍수 속에서 이 아름다운 어린이 책방을 지켜내는 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10년이 되었다는 어린이 책방. 나중에 나도 이런 걸 해보면 어떨까?


어린이 책방 옆으로 몇 군데 새로 생긴 책방 가게들이 모여 있었는데 독립 서점으로 유명한 Book Actually, 우리나라 가방 브랜드 Kwani, 아이와 엄마가 같이 입는 옷 브랜드 Nana and Bird 같은 천천히 둘러보고 싶은 거리였다. 물론, 난 아이의 낮잠 시간이 훌쩍 지났기 때문에 칭얼거림을 듣기 전에 아이 입에 어린이 책방에서 산 딸기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려 서둘러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우리집 책장에 꽂아 놓고 싶은 책이 가득했던 독립 서점, Book Actually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이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랑 구경을 다 다니나 싶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안 보내면 큰일 날 줄 알았는데, 용기 내서 이렇게 함께 여행하러 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학교 땡땡이 치면 안 되는 제도권 교육이 시작되기 전에, 아이랑 더 자주 손잡고 세상 구경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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