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 육아 in 싱가포르 - 7
지난주부터 싱가포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하루하루 거리에 철조망이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택시나 버스가 다니지 못하는 구간이 점점 늘어났다. 호텔비도 두 배, 많게는 세 배까지 치솟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F1 싱가포르 그랑프리가 시작된 것이었다. 싱가포르 F1은 따로 서킷이 있는 게 아니라 도심 전체를 주행 서킷으로 만들어버린다. 다른 도시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워낙 익숙한 풍경이라 그런지 싱가포르 사람들은 불평 하나 없이 경기 시작 몇 주 동안 F1을 위한 새로운 싱가포르 지도 위에서 살아간다.
올해 F1은 9월 14,15,16일 이렇게 3일간 진행된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연습 경기이고 셋째 날이 본 경기이다. 사실 싱가포르까지 왔으니 한 번 가보고 싶기는 해도 아이랑 같이 제대로 구경할 수 있을까 싶어 티켓 구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결국 우리가 티켓을 사기로 결정했을 때는 (우리의 예산이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본 경기 날인 3일째 일반 티켓은 모두 매진이 되었다. 대신 우리는 첫째 날 연습 경기 티켓을 구해서 경기장 분위기가 어떤지 구경해보기로 했다.
F1 경기에는 아이도 나이 제한 없이 들어갈 수 있는데 대신 입구에서 서약서 같은 것을 써야 된다. 큰 배기음 소리에 아이들이 놀랄 수도 있고 또 너무 어린아이들에게는 청력 손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안내였는데 (사실 내가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아서 추측이다), 실제로 걱정했던 것보다 첫째 날 소음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우리 말고도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도 꽤 있었는데, 특히 자동차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이겠다 싶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아이와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하던 길이 F1 트랙으로 변한 것을 보니 신기할 뿐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행사 준비에 일 년 내내 투입이 되었을지, 이 불 밝힌 트랙 안에서 얼마나 아드레날린을 느낄지, 예전 모터쇼 프레스 데이를 준비하던 시절이 생각나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 쇼타임을 기다리는 긴장감이 그리워졌다. 모터쇼로 치면 난 지금 완전히 가족 단위 관람객이 제일 많은 토요일 오후 정도의 시끌벅적 퍼블릭 데이에 온 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첫 번째 F1 경험은 사실 금방 끝났다. 처음엔 재밌어하던 아이가 곧 지루해졌는지 땅바닥 돌멩이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심이 서킷으로 변한 것을 구경하는 것은 재밌었지만 다음번에 또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고민하지 않고 본 경기 날 Grandstand로 가야겠구나 싶었다. 물론 모터스포츠에 대해서도 더 공부를 해서 말이다. 역시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경기장을 나오려는데 새로운 이메일이 도착했다. 2019년 9월에 있을 F1 싱가포르 그랑프리 티켓 발매를 시작했다는 이메일이었다. 내년 이 맘 때쯤, 우린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