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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Sep 04. 2018

마리나 베이 동네 산책

유목 육아 in 싱가포르 - 1

싱가포르에서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비록 마음으로는 가까운 동남아일지라도 우리에겐 지구 반대편에 온 것이니 오늘 하루는 큰 욕심 없이 딱 절반만 사용하자고 생각했다. 작은 도시의 시간이 넉넉한 여행이니 억지로 몸을 괴롭혀가며 시차 적응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와 천천히 아침을 먹으며 오늘은 어디부터 시작을 해볼까 고민했다.



우선 동네 산책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있는 호텔은 마리나 베이 지역에 있는 곳이라 산책로를 따라 싱가포르 사자상 멀라이언 파크까지 다녀오기 딱 좋은 거리였다. 요즘 지도 읽기에 재미를 붙인 아이에게 지도 한 장을 쥐어주고 사자를 찾아달라고 하니 마치 탐험가가 된 듯이 앞장서서 나를 인도했다. 물론 난 10년 전 이 곳을 와본 기억이 있어서 대충 가는 길을 알고 있었지만, 요리조리 뛰며 애쓰는 아이를 위해 찍소리 하지 않고 틀린 길도 뒤따라갔다. 시카고에서는 아침 일찍 유치원 늦을까 봐 서두르느라 느끼지 못한 여유였다. 사실 유치원을 9월 한 달 쉬기로 한 데에는 뜨거운 여름 내 방학이라고는 없이 실내에서 보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던 탓도 있었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아이가 자연 속에서 좋은 날씨를 만끽하며 놀 수 있기를 바랬는데 장소는 바뀌었지만 다행히 아이와 그런 가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호텔 컨시어지가 지도를 주며 걸어서 5~6분 정도면 도착할 거라고 했던 멀라이언 파크에 도착하니 한 시간 즈음 지나있었다. '아, 이게 이번 싱가포르 여행의 속도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멀라이언은 내가 이직 기념 여행을 왔던 10년 전과 똑같이 물을 내뿜고 있었다. 난 그 사이 이직한 회사를 퇴사도 했고, 결혼도 했고, 엄마도 되었고, 사는 곳도 바뀌었는데 멀라이언의 시간은 한결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사진을 찍는데 머리 위가 뜨근뜨근해지기 시작했다. 아침 10시가 갓 지난 시간이었는데 푹푹 찌는 열기가 느껴지고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아이도 같은 반응을 느끼기 전에 서둘러 호텔로 일시 후퇴하기로 했다.



사실 이게 첫날 우리가 한 기록 전부이다. 라운지에 가서 간단하게 간식과 음료수를 먹고 다시 나가려고 마음먹었지만, 아이와의 여행은 언제가 그렇듯이 머릿속 계산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 밖에 나가는 대신 호텔 이 곳 저곳을 탐방했다. 그리고는 방에 들어가서 아이와 긴 밤잠 같은 낮잠을 잤다. 남편의 퇴근 소리에 눈을 억지로 뜨고도 한동안 잠에 취해있다가 저녁으로 칠리크랩을 먹으러 가자 비로소 눈이 떠졌다. 저녁을 먹고 아침에 갔던 머라이언 파크까지 다시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는 사이 우리의 몸도 서서히 싱가포르 시간에 맞춰지고 있었다. 오늘은 하루의 딱 절반만큼을 사용했으니 내일은 조금 더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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