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유즈 미술관 (Yuz Museum)
15년 전, 그러니까 대학교 4학년 마지막 여름 방학 두 달을 중국 상하이로 보낸 적이 있어요. 졸업을 앞두고 뭘 하고 싶은지 저 스스로도 모르겠는 답답한 마음에 일단 현실에서 탈출해버리기로 한 것이죠. 두 달 동안 중국어 어학연수 좀 하고 오겠다는 핑계로 말이에요. 심지어 전 중국어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전공이고, 그전에 배워본 적도 없어서 이얼싼부터 배워야 하는 수준이었는데 말이죠. 어찌 되었든 철없고 무모했던 그 시간 덕분에 전 거기서 사귄 친구들과 상하이의 구석구석을 즐길 수 있었어요. 상하이에서의 두 달은 참 낭만적인 시간이었지요!
이번에 15년 만에 다시 처음으로 간 상하이는 그때와는 또 완전 다른, 상전벽해가 되어있었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도심 곳곳에 아트 지구가 형성이 되고 있단 거였죠. 상하이는 매년 11월이면 상하이 아트 페어가 열리는데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아트 페어예요. 이 시기가 되면 상하이는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지요. 그래서 이번 일주일 동안 아이와 함께 떠났던 상하이 여행에서는 제가 그 15년 전의 두 달 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위주로 여행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새로운 아트 디스트릭트와 미술관 등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지요.
지금 상해에서 가장 뜨거운 미술관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유즈 미술관일 겁니다. 명품 브랜드 구찌(Gucci)가 주최한 ‘아티스트 이즈 프레즌트(The Artist is Present·10월 11일~12월 16일)’가 바로 이 곳에서 열리고 있거든요. 역시나 이 전시에 대한 소식은 일반 미술 전문 잡지뿐만 아니라 전 세계 패션, 라이프 스타일 잡지에서 앞다투어 소개되었습니다. 운 좋게도 제가 상해를 갔던 때가 마침 이 전시가 이제 막 시작된 시기였습니다. 저도 우연히 하퍼스 바자 매거진에 난 기사를 보고 찾아갈 수 있었지요.
유즈 미술관은 예전에 비행기 격납고로 사용되었던 공간이 2014년 새롭게 미술관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곳이에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인 Budi Tek이 '세계 미술의 관심을 상하이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가지고 설립한 곳이지요. 자카르타에 있는 텍 유즈 미술관의 자매 미술관이기도 합니다. 비행기 격납고가 있던 곳이니 사실 위치는 좀 도심에서 떨어진 생뚱맞은 곳에 있어요. 제일 가까운 지하철 역에 내려서 한참을 걸어갔는데 마치 개발 중인 신도시 분위기랄까요. 이 곳이 바로 15년 전이라면 지금은 그 지역 전체가 웨스트 번드라는 아트 지구로 떠오르고 있지만 말이죠.
구찌의 Artist is present 전시는 세상의 모든 '가짜(Copy)'에 대한 전시였어요. 전시 제목, 포스터부터가 모두 가짜였지요. 이건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가 벌인 유명한 퍼포먼스 전시의 제목과 포스터거든요. 전 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전시를 언젠가 꼭 보고 싶었는데 이 전시에 가면 진짜 볼 수 있는 줄 알고 엄청 설레었어요. 물론 이 가짜 포스터를 보고 찾아가 왜 이 사람이 나오지 않느냐고, 분명히 포스터에 얼굴이 나와있지 않느냐, 강력한 환불 요청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시의 모든 것이 가짜였어요.
이 전시는 예술에 있어서 가장 신성시되는 '독창성, 의도, 표현'에 대해 다시 한번 시각을 바꿔서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어떤 예술이 스스로 태어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또한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았고 또 영감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유가 미덕이자 성공의 지름길'인 이 시대에 '복제'만큼 이 새로운 가치를 위한 훌륭한 도구인 것이 또 있을까?' 등의 질문에 대해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각자 '가짜' 작품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복제의 천국, 상하이에서 이런 용감한 전시라니! 과연 이 전시의 연출자인 '마우리치오 카텔란'답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찌 전시 이외에도 유즈 미술관에서는 거대한 Rain Room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미국, 영국 등에서 이미 크게 흥행을 한 전시인데, 워낙 인기가 많아 LACMA(LA 카운티 미술관)에서는 상설전으로 하고 있기도 하죠. 전 직접 가본 적은 없었는데 운 좋게도 바로 이 곳에서 레인룸을 만날 수 있었어요. 비행기 격납고 안에 설치가 된 작품인데 큰 룸 안에 마치 폭우가 오는 것처럼 비가 쏟아지고 관객들은 그 비 사이로 지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거짓말처럼 어깨에 비가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아요. 사람이 움직이는 방향 따라 비가 멈추고 길을 내어주기 때문이죠.
이 체험형 전시는 신기하고 재밌기도 하지만, 또 다양한 느낌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빗 속으로 첫 발을 떼기 전 '과연 핸드폰을 손에 들고 가도 괜찮을까', 그런 걱정도 들고, 정말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비가 멈추면 나한테 갑자기 대단한 능력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들에서 나 자신을 이렇게 보호하면 되겠다, 이런 생각도 들고 말이지요. 낮잠에서 막 깨어난 아이를 데리고 이 곳을 들어갔는데 아이도 빗 속에서 물에 젖지 않는 것이 마법처럼 신기한지 혼자서 왔다 갔다 전시를 즐겼어요. 안타깝게도 마지막에 바닥에 꽈당 미끄러져 비 맞은 생쥐가 되어버렸지만요. (저희 아이 같은 관람객을 위해 입구에는 티슈와 헤어 드라이기가 준비되어 있답니다.)
아이의 낮잠 덕분에 그 안에서 거의 반나절을 통으로 보낼 수 있었던 유즈 미술관. 상하이 최대 규모의 현대 미술관이기도 하지만, 그 규모를 떠나서 이런 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전시들을 유치하고 공간을 알차게 활용하는 것이 참 대단하다 싶었어요. 다음번에 언제 또 상하이를 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이 웨스트 번드 동네가 한 번 더 상전벽해되어있을 것 같은 부러운 예감이 벌써부터 듭니다.
매년 11월이 되면 상하이의 웨스트 번드 지역을 포함한 M50 Art District 등 아트 지구가 들썩입니다. 바로 상하이 아트 페어 ART021이 열리기 때문이죠. 다른 아트 페어에 비해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이미 그 입지를 강화하여 수많은 갤러리들과 미술 애호가들이 매년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퍼블릭 데이:
November 8(Thu) —10(Sat) 10:00 – 18:00
November 11(Sun) 10:00 – 17:00
장소:
SHANGHAI WORLD EXPO EXHIBITION & CONVENTION CENTER
No.1099 Guozhan 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