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국립과학박물관 부속 자연 교육원
정말 좋아하는 작가 중에 일본의 만화가 마스다 미리가 있어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아무래도 싫은 사람' 등의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작가지요. 제가 20대일 때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책 제목부터 어쩜 제 속 마음을 잘 알아채는지, 전 저와 닮은 마스다 미리 책의 주인공 '수짱'의 새로운 고민과 해결 방법을 들어보기 위해 신간이 나오면 제일 먼저 책방에 달려가 만나곤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바로 '주말엔 숲으로'예요.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는 듯한 바쁜 도쿄 직장 생활을 하던 주인공 '수짱'이 친구들과 함께 ‘주말에 숲으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소소하지만 진정한 즐거움을 찾는다는 이야기지요.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나이를 지나며 남들처럼 이런저런 답 안 나오는 고민거리들을 갖게 되었던 전 언젠가 이런 숲에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작년 가을 어느 날 아침, 혼자 도쿄의 시로카네다이 동네를 산책하다 우연히 처음 보는 간판을 발견했어요. 그냥 스쳐 지나가도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다 평범한 모습의 건물만큼이나 이름도 평범한 '도쿄 국립과학박물관 부속 자연 교육원'이었습니다. 정부 관련 기관이겠거니 하고 별생각 없이 지나가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금실 좋아 보이는 백발의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손을 꼭 잡고 입장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딱히 그 날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궁금하기도 해서 저도 그 노부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지요. 바로 그곳은 숲 속! 담장 하나 사이로 번접한 도쿄의 일상과는 분리된 도심 속 숲이었습니다. 어쩌면 마스다 미리가 이 숲을 산책하다가 '주말엔 숲으로'란 책을 쓰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숲이었지요.
입장권을 끊고 이 작은 문을 통과하면 마치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울창하고 깊은 숲 속으로 입장하게 되지요. 그 안에는 몇 백 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온갖 종류의 아름드리나무들과 꽃, 풀, 연못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안에서 만큼은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나무가, 새가, 꽃과 풀이 주인공인 공간이었지요. 새순이 돋아난 곳이나 보기 드문 꽃이 자라난 곳에는 특별히 핑크색 리본을 달아주기도 했습니다. 마치 동물원에서 새끼 동물의 탄생을 축하해주듯이 말이에요. 물론 그런 곳 앞에는 어김없이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일본식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지요.
아, 작년에 이 곳에 우연히 들어오게 된 이유, 바로 그 노부부는 두 분이 서로 의지하며 이 숲을 한 바퀴 산책하면서 정자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사이좋게 나눠마셨습니다. 전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도 하고, 이쁘기도 해서 한참 동안을 바라보았죠. 그건 제가 정말로 바라는 호호 할머니, 호호 할아버지가 된 우리의 모습이었거든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남편과 저도 보온병에 따뜻한 차를 담아 여기를 다시 오고 싶다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이 곳을 다시 찾을 수 있었어요. 바로 엄마와 아이와 함께한 이번 도쿄 여행에서 말이지요. 마침 숙소가 있던 에비스에서도 슬슬 산책하면 금방 도착하는 거리라 더욱 좋았지요.
도쿄는 여러 번 와도 항상 새롭게 할 것도 많고, 갈 곳도 많은 도시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런 촌스러운(?) 여행이 좋아요. 이 곳은 여행자들보다는 이 동네에 사는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 때문에 실제 그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볼 수 있지요. 보온병 들고 산책 온 그 노부부처럼요. 여행을 하는 이유가 단지 더 멋지고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거라면 이 곳을 To do list에서 과감히 빼도 좋습니다. 하지만, 여행 중 마주친 어떤 장면에서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칠 한 줄의 문장을 찾는다면, 이 숲은 도쿄의 그 어떤 멋진 곳보다도 더 의미 있는 공간이 되어줄 거예요. 저와 '수짱'에게 숲이 그래 주었던 것처럼요.
도쿄 국립과학박물관 부속 자연 교육원 (Institute for Nature Study)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자연 교육원은 에비스, 메구로 지역에 숙소를 잡았다면 한 번쯤 와봐도 좋을 곳입니다. 지하철 역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있지만 바로 옆에 도쿄도 정원 미술관이 있기 때문에 반나절 정도 시간을 내서 이 두 곳을 한꺼번에 둘러보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도쿄엔 이 곳보다도 훨씬 더 세련되고, 멋진 곳이 많기 때문에 도쿄 여행이 처음인 분 보다는, 이미 여러 번 충분히 해본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공간입니다. 교육원 입구 건물에는 매달 달라지는 '그 달의 새 도장'이 있는데 하나하나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가지고 간 여행 책자에 꾸욱 찍으면 볼 때마다 이 곳을 생각나게 해줄 기념이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