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가을 교토 여행
남편의 아시아 프로젝트 출장으로 올 가을 한국에 와있을 수 있어서 참 좋다. 다른 곳 보다 더 일찍 추워지고 마음도 괜히 스산해지는 시카고 가을을 잠시라도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어디보다도 난 가을의 남산을 참 좋아한다. 남산은 내 초등학교 6년 간의 추억이 오롯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고, 또 하얏트 호텔에서 1호 터널로 이어지는 소월로의 노란 단풍은 내가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미국에 지내기 시작하면서 항상 그 소월로의 가을을 놓치는 것이 아쉬웠는데, 예상치 못한 이번 서울로의 가을 여행 덕분에 올해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두 다 져버릴 때까지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아이를 엄마 손에 맡겨두고 이 곳 저곳을 나 혼자 여행하거나, 밤에 영화를 보러 가거나, 목욕탕을 가거나, 문화 센터 수업을 다닐 수 있는 것도 한국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남편은 항상 출장을 다니는 사람이니 미국에서 아이의 생활 전반을 책임지는 건 모두 내 몫이다. 내가 아프면 날 돌봐줄 사람도,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갈 수도, 데려올 수도 없으니 난 놀러 다니기를 꿈꾸는 건 언감생심이다. 아프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에 항상 내가 가진 체력을 비축해두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물론 한국에 나와있는 게 모두 다 좋은 건 아니다. 미국 집을 너무 오래 비워놓는 것도 그렇고, 꽤 어렵게 구한 시카고 미술관 봉사 활동 자리도 마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좀 그렇다. 서로 살아가는 속도, 생활이 달라지다 보니 예전 가까웠던 사람들과도 조금씩 멀어질 수밖에 없는 사실이, 지금은 그래도 많이 익숙해졌지만, 처음엔 받아들이기 참 힘들었다. 외국에서 살기로 결심을 한, 이 쪽에서도, 저 쪽에서도 이방인의 생활을 해야 됨을 받아들여야 되는데 아직 여전히 난 초보 이방인이다.
그중에서도 아이가 미국에 두고 온 유치원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얘기할 때는 마음이 안쓰러웠다. 이제 막 서로 말이 통하기 시작했는지 항상 얘기하는 Medha라는 친구가 있는데, 하루에도 한 번씩 그 친구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제 막 엄마랑 놀기보다 친구랑 같이 있는 게 더 즐거운 아이가 미국 학교 생활에 더 적응해야 될 시기에 괜히 한국에 나왔나 싶기도 했다. 한국에 나올 때마다 잠깐씩 다니는 놀이 학교가 있지만, 아이에게도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는 건 어른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지난주 교토 여행을 하면서 그래도 아이가 어른보다 낫구나, 싶은 순간이 있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아주 오래된 전통 과자 가게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알록달록 교토 전통 별사탕을 발견한 아이는 한국에서 다니는 놀이학교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별사탕을 선물해주고 싶다고 했다. 계속 두고 온 미국 학교와 친구들을 그리워하느라 여기 생활을 잘 적응 못하는 줄 알았더니, 그 새 한국의 놀이학교 반 친구들과도 정이 들었나 보다. 손녀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는 기쁜 마음에 유치원 친구들에게 나눠주라며 그 가게에 파는 모든 별사탕을 바구니에 담았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친구들에게 나눠줄 별사탕 봉투에 하나하나 그림을 그려 꾸몄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아이가 한국에 없을 테니 미리 겨울 인사를 전할 수 있는 눈사람 씰도 하나씩 붙였다. 아이는 "친구들이 이 선물을 받으면 무척 기뻐할 거야!"라고 했다. 어느새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컸는지. 한국에서의 짧은 시간이지만, 이쁜 사탕을 발견했을 때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다는 아이가 참 대견했다.
아이가 선택한 삶은 아니지만, 아이는 엄마, 아빠를 따라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좋은 점도 물론 많지만, 또 짧은 만남과 이별의 반복도 피할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그래도 난 아이가 이번 교토 장바구니처럼, 마음속에 항상 좋은 걸 나누어주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발견해나가는 삶을 살아주면 참 좋겠다 싶었다. 오늘 아침, 아이는 얼른 친구들을 만나서 별사탕을 나눠주고 싶다며 어제 현관에 미리 준비해둔 무거운 봉투를 낑낑 들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유치원 버스를 타러 갔다.
요즘 교토 여행을 하는 이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한 로컬 디자인 스토어 D&Department 가는 길목에 있는 쌀과자 & 사탕 가게이다.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아주 소박한 가게라, 관광객보다는 동네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 더 정감이 간다. 감각적인 제품 포장도, 감탄을 자아내는 서비스는 없는 곳이지만, 진짜 교토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볼 수 있다. 물론 가격도 관광지에 비해 무척 합리적이다.
〒600-8016 Kyōto-fu, Kyōto-shi, Shimogyō-ku, Zaimokuchō (Kiyamachidō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