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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Apr 17. 2020

35년 만에 처음 요리를 배우다

딸아이의 '엄지 척' 합격점을 위하여

요리가 이렇게 재밌는 일이었나?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부터 15년 '자취' 경력, 그리고 6년 차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보니 살면서 내가 직접 요리를 해야 될 상황이 거의 없었다. 35년 동안 내게 있어서 요리란 가공식품을 간단히 조리하는 정도로 우동, 라면, 볶음밥 정도가 한계였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요리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미국 내 식당들이 모두 문을 닫고, 재택근무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한 달 정도 매일 요리하는 일상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요리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번 글에선 내가 바쁜 재택근무 일상 속에서도 요리를 시작하면서 느낀 점들을 써보도록 하겠다.


왕초보 요리사에게 적합한 레시피와 식재료

요리를 시작해보겠다는 다짐을 한 다음, 내가 겪은 첫 번째 관문은 왕초보 요리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레시피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음... 포블라노(poblana) 고추, 샬롯(shallot) 등 식재료는 무엇이며, 쿠민(cumin) 가루 등 생소한 스파이스들은 무슨 맛이지? 집에 있는 와이프의 레시피 책자, 구글에서 검색한 레시피들은 너무나도 맛있어 보였지만, 왕초보 요리사였던 내가 접근하기엔 해석조차 어려운 난이도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와이프에게 한 단계 한 단계 도움을 받아가며 요리를 하자니, 끊임없이 엄마를 찾는 5살 딸아이와의 와이프 사랑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온종일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는 우리 집 첫째 딸은 잠시도 쉬지 않고 "엄마 놀아줘", "엄마 우리 미술 할까?", "엄마 imagination이 뭐야?" 등 엄마를 찾곤 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요리를 시작하게 도움을 준 것은 바로 Hello Fresh 광고였다. 레시피는 물론, 필요한 모든 식재료를 필요한 양만큼 집까지 배송해준다는데, 레시피를 보고도 식재료가 어떻게 생겼는지, 양 조절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내게 딱 필요했던 해결책처럼 다가왔다.


"자기야, 멕시칸 음식 먹고 싶지 않아?" 주문도 하기 전에, 자신감부터 붙은 나는, 당당하게 와이프에게 다음 주엔 내가 멕시칸 음식, 메디테리안 요리 등 외식이 어려워진 지금 집에서 먹기 어려워진 음식들을 직접 요리하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깨끗하게 손질되고, 정확하게 계량된 재료들이 이런 레시피와 함께 매주 배달된다


우리 집에 브로일러가 있나?

Hello Fresh로 레시피와 재료는 확보가 되었지만, 가장 기본적인 요리 기구들의 이름과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도움이 필요했다. 브로일러에 30분간 요리하라고? 라임을 제스트(zest) 하라고? 구글 검색과 와이프의 도움을 받아가며, 레시피를 해석하고 재료를 준비하는 내내 나는 '요리가 이렇게 어려웠다니' 생각을 하며 와이프의 요리를 한층 더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식재료를 손질하고, 오븐/브로일러와 스토브를 오가며 요리를 하다 보니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던 것 같다. 그리고 첫 요리가 완성되어 플레이팅을 하고 첫 시식을 하는 순간... 딸아이는 음식을 한입 시식하더니 눈을 약간 감고 두 손을 치켜 세워줬다. "엄마, 엄청 맛있어!" 군것질을 사랑하고, 식사시간에 늘 장난을 치느라 늘 전쟁을 치르던 딸아이에게 합격점을 받는 순간, 요리를 하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윤서야, 정말 그렇게 맛있어?" 고생한 아빠 기분을 맞춰주려는 첫째 딸의 사려 깊은 행동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딸아이는 한입을 더 먹더니 다시 한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줬다.



초보 요리사 탈출!

요리에 한참 재미를 붙인 나는 빠른 속도로 Hello Fresh는 물론, Home Chef, Blue Apron 등 다양한 밀키트 서비스들을 활용하여 레시피들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리 시작 한 달째. 마스크를 착용하고 조심스럽게 슈퍼마켓에 들어가면, 가공식품 코너가 아닌 오개닉 채소, 과일, 육류 및 해산물 코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레시피들을 응용하여 새로운 맛을 시도해볼 때마다, 딸아이의 평가 결과를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곤 한다.


벌써 내 요리책이 꽤 두꺼워졌다. 이제는 밀키트가 오지 않아도 혼자서 장을 보고 손질해서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진정되고 다시 출장 생활이 시작되면, 지금처럼 집에서 요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 줄어들 것이다. 그렇지만 한번 맛본 '요리의 재미', 딸아이로부터 엄지 척 합격점을 받았을 때의 기쁨들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시간 될 때마다 새로운 레시피들을 공부하고 요리 생활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가끔씩 등장해 수셰프를 도와주는 보조 요리사




이 글을 쓴 사람 'Droneboy'는,

한국에서 스타트업과 경영 컨설팅을 경험한 후 미국 Chicago Booth MBA를 졸업했습니다. 현재는 미국 시카고에서 아내 'Silvermouse'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경영 컨설팅 일을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한 때 작가가 꿈이었는데, 브런치를 통해 나의 일하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MBA 경영 지식 소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명 '드론 보이'는 드론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저를 위해 아내가 만들어준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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