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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Apr 12. 2020

퇴근이 없어진 '007' 재택근무

24시간 쉴틈 없는 마라톤 재택근무...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법

재택근무 한 달째. 참 많은 것이 변했다. 매주 월-목 끊임없이 시간대를 옮겨가며 출장을 다니던 생활에서,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 집콕 생활을 하고 있다. 출장 중엔 페이스톡으로만 잠시 얼굴을 볼 수 있던 딸아이와도 재택근무 중간중간 껴안고 놀아줄 수 있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행복 그 자체이다. 늘 팀원, 클라이언트와 식사를 함께하던 회식 문화에서 직접 요리도 하고 와이프가 해주는 맛있는 집밥을 먹을 수 있다는 점도 너무 좋다. 그렇지만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재택근무는 공과 사의 경계를 허물어트리고, 명확한 '출근'과 '퇴근' 시간을 없애버렸다. 재택근무를 가장 먼저 시행한 중국의 경우 업무강도가 '996' (오전 9시에서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에서 '007' (상시 근무)로 강화되었다고도 한다. 나 또한 비슷한 어려움들을 겪기 시작했었는데, 이번 글에선 한 달째 재택근무를 하면서 체감한 어려움들과 내가 시도해본 해결책들을 소개해본다.


출장 금지: 함께하지 못해 발생한 24시간 근무제도

코로나바이러스 전 출장이 가능했을 당시엔, 팀원 전원이 클라이언트사에 모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는 곳과 무관하게 월-목요일은 대게 한 공간, 같은 시간대에서 업무를 진행했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팀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미 항공업의 Top 10 고객 중 6개 사는 경영/IT 컨설팅 등 프로페셔널 서비스 기업들이다. 그만큼 재택근무는 일상의 180도 전환을 의미하고 있다.  (단위: $M)


그렇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며, 출장이 금지된 지금, 뭐니 뭐니 해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는 요소는 시간대이다. 팀원들이 미국 동부와 서부는 물론 해외(인도)까지 분산되어 근무하고 있다 보니, 팀장인 나는 각 팀원들과의 1:1 체크인 및 프라블럼 솔빙을 위해 4가지 시간대를 소화해내야 되는 상황이 되었다.


기상과 함께 이메일을 열어보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후 근무시간이 앞당겨진 병원 클라이언트들로부터 5-6시부터 쌓이기 시작한 이메일들을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것들부터 답변을 하다 보면, 금방 아침 7:30이 된다. 나는 아침식사와 함께, 인도 팀원은 저녁을 준비하며 1:1 Zoom 프라블럼 솔빙을 시작한다. 그 전날 함께 세웠던 가설들의 검증 결과를 검토하고, 팀원의 분석자료를 프레셔 테스팅한 후, 여러 피드백을 제공하고 팀원이 '퇴근' 전 마무리할 업무들에 합의를 하다 보면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한숨 돌리나 싶으면, 동부 보스턴과 중부 시카고에 사는 팀원과 파트너들로부터 문자와 이메일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전 9:15에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마지막 팀원이 하루를 시작한다. 그녀의 시간은 아직 오전 7:15. 그녀와 짧게 체크인을 하고 나면, 그제야 그날의 주요 우선순위들에 대한 팀 전반의 합의를 마치게 된다. 하루를 시작하는데만 2-3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하루를 마무리할 때도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각각의 시간대에 따라 순차적으로 체크아웃을 시작하는데, 인도 팀원의 경우 시카고 시간으로 밤 10시에 근무를 시작하기 때문에 그녀와의 Zoom 미팅이 끝나고 나면 항상 밤 10:30이 넘어있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여 가이던스를 주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되는 경우면 새벽까지 야근이 진행된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6시, 기상과 함께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퇴근'이 없는 재택근무: 생존하기 위한 Best Practice (베스트 프랙티스)

글로벌 경영 컨설팅사에 근무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최대 장점 중 하나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를 당면하더라도 조언을 구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재택근무 생존기법 또한 예외가 아니다. 미국보다 재택근무를 1-2달 먼저 시행한 아시아 오피스들은 재택근무로 인해 경험한 고충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된 Best Practice (베스트 프랙티스) 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이러한 자료들을 속독하고, 필요시 아시아에 위치한 '선배 팀장'들과 화상회의를 하는 등, 재택근무로 인한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특히 효과적이었던 방법들을 소개해본다.


PACE: 재택근무 마라톤의 시작점에서, 스퍼트는 금지!

재택근무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이다. 지난번 글에서 짧게 소개했지만, 나는 코로나바이러스와 사투 중인 미국의 대형 병원 그룹을 돕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바이러스에 적합한 운영절차로 전환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스프린트를 해야만 했다. 심지어 팀원들을 뽑을 때도 야근을 사전에 예고하고, 그럼에도 프로젝트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들만을 선별했었는데... 첫 주 스프린트 후,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선 장기전에 적합한 생활 리듬이 필요하다는 것에 팀원 모두가 공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장기전에 적합한 속도(Pace)를 찾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1. 캘린더에 OOO (Out of Office) 설정: 경영 컨설팅 펌에서는 평상시에도 임원회의, 전문가 인터뷰, 프라블럼 솔빙 등을 위해 비서들을 통한 일정 조율이 많이 이뤄지는데, 재택근무 시작 후에는 캘린더 업데이트의 필요성이 더욱더 중요해졌다. 팀원들이 함께 업무 할 경우,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협업도 캘린더를 통한 일정 조율 후 Zoom 회의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팀원들이 나의 비서를 통해 캘린더 상 비어있는 시간에 자유롭게 일정을 잡고는 하는데, 휴식시간을 보장하기 위해선 캘린더에 OOO (Out of Office: 자리비움) 설정을 해둘 필요가 생긴 것이다.


2. 뽀모도로(Pomodore) 기법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집중 또 집중: 장시간 야근을 예방하기 위해선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업무를 마무리하는 것이 필수이다. 그런데 집에는 TV, 인터넷 브라우싱 등 업무로부터 방해되는 요소들이 너무 많이 있다. 이러한 방해 요소들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뽀모도로 기법 (25분 집중하여 업무 후 5분간 휴식을 반복), 인터넷 브라우징 시간을 제한해주는 StayFocused 크롬 플러그인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볼 수 있다.


PRIORITIZE: 모든 불을 끌 수는 없다!

MBA 학생, 1-2년 차 컨설턴트 당시 자주 들었던 조언이 생각난다. 80/20 기법인데, 큰 문제의 원인을 찾는 데 있어 1-2주 걸려서 수십 번의 검토 후 100% 정답을 찾는 방법과, 1-2시간 분석 후 80% 확신할 수 있는 분석 방법이 있다면, 후자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재택근무 시작 후 업무의 중요도를 정하고, 팀원들이 정해진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설정하는 것이 더욱더 중요해졌다. 문제 해결 중 팀원들 간의 실시간 토의와 협업이 어려워졌고, 산출물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어려워진 만큼, 보다 명확한 업무분담과 우선순위 설정으로 혼선을 줄이는 것이 그만큼 더 중요해진 것이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업무량. No라고 말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재택근무 시에도 '퇴근'을 하기 위한 필수사항이다.


3. 당당하게 "No"를 얘기하라: 이미 80% 이상 확신으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파악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임원들 또한 문제 현황과 해결책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 지역의 병원장으로부터 "그렇지만 우리 지역은 달라요" 맥락의 반대의견이 제시되었다. 바이러스 확산과 함께 하루하루 상황이 변하고 있는 지금, 의사결정의 속도는 그 정확성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런데 해당 지역만의 '예외사항'을 분석하기 위해선 분명 여러 담당자들과의 인터뷰와, 보다 더 세부적인 데이터 수집 및 분석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담당자와 제안사항의 실효성을 다시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렇지만 ABC의 데이터를 별도로 분석할 때까지 기다려도 괜찮을까요?" 직접적으로 No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나의 답변은 명확했다. 그리고 총괄 임원은 그 자리에서 의사결정을 내렸다. 바로 진행하자고. 문제의 원인은 명확했으며, 추가 분석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5% 내외의 규모의 차이였을 것이다. 5% 오차범위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해가 되었을 것이다.


PROVISION: 체력과 정신건강을 관리하라!

PT, 헬스장, 요가, 수영장 등등등... 건강관리를 위한 설비들의 이용이 제한된 지금도 체력과 정신건강 관리의 필요성은 여전하다. 특히 집콕 생활로 인해 사회적으로 격리되는 느낌 등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아질 수 있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체력과 정신건강을 관리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이다.


4.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명상: 고등학교 재학 당시 나는 매일 아침 기상과 함께 '기/명상' 수업을 들었었다. 기숙사 학교를 다녔는데, 아침잠이 많았던 나는 태권도, 검도 등의 보다 활동적인 운동 대신 조금이라도 더 졸면서 잠을 청할 수 있는 비활동적인 활동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재택근무 상황 속에선 당시 반쯤 졸면서 들었던 수업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회사에서도 정신건강을 챙기기 위해 임직원 전원에서 명상 앱 Headspace 유료버전을 제공해주고 있는데, 바쁠수록 더 의도적으로 시간을 만들어 명상을 하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Headspace 앱은 3분 명상, 10분 집에서 걷기, 30분 명상수업 등 정신건강 및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수업 및 활동들을 제공한다.


5. 컴퓨터가 필요 없다면 조깅/산책과 함께: 마지막으로 파트너와의 1:1 피드백 시간, 팀원과의 일일 체크인 등 컴퓨터가 꼭 필요가 없는 컨퍼런스 콜은 짧은 산책, 조깅과 함께 하는 것을 제안한다. 출장을 다녔을 때도 러닝머신 위에서 헉헉 거리며 컨퍼런스 콜을 진행했던 적이 종종 있었는데, '출근'과 '퇴근'의 명확한 경계가 사라진 지금, 건강을 챙기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 같다.




이 글을 쓴 사람 'Droneboy'는,

한국에서 스타트업과 경영 컨설팅을 경험한 후 미국 Chicago Booth MBA를 졸업했습니다. 현재는 미국 시카고에서 아내 'Silvermouse'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경영 컨설팅 일을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한 때 작가가 꿈이었는데, 브런치를 통해 나의 일하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MBA 경영 지식 소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명 '드론 보이'는 드론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저를 위해 아내가 만들어준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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