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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Mar 07. 2020

신입 사원, 드론이란 복병을 만나다

입사 후 나의 첫 실패담

나의 인스타 계정명은 @Droneboy_Choi. 2014년 당시 드론 비행 규제가 존재하지 않아, 전 세계 주요 관광지에서도 경찰관의 허락만 받으면 제제 없이 드론을 뛰울 수 있었던 시기에 만든 인스타 계정이다. 최근에는 어린 두 딸과 함께 여행을 다니다 보니 드론을 뛰울 정신이 없어, 가족사진, 음식 사진만이 인스타를 장식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 인스타 계정의 시초는 드론 촬영이었다.


그렇게 드론을 좋아하던 나에게, MBA 졸업 후 1년 차 경영 컨설턴트 시절, 드론 관련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생겼다. 이번 글에선 드론 덕분에 겪었던 나의 잊지 못할 실패담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유럽, 아시아, 북미, 남미 어디를 가더라도 드론과 함께하던시절. 규제 강화 후 왠만한 여행지에선 드론을 꺼낼 염두도 못 낸다.


신입사원, 드론이라는 복병을 만나다.

MBA 졸업 후 경영 컨설팅사에 입사한 나는, 처음 반여년 동안 특수화학, 의료기기, 은행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팀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리뷰를 받게 되는데 회사 내에서 꽤 좋은 평판을 쌓고 있었다. 초보 컨설턴트에겐 이 평판이 중요하다. 왜냐면 프로젝트별로 진행되는 컨설팅사의 특성상 다음 일이 가만히 있으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다음 프로젝트를 뭘 할지, 어떻게 그 팀에 들어갈지 끊임없이 파트너, 팀장들에게 어필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자기 분야의 전문성이 없는 신입 컨설턴트의 경우 기존 프로젝트를 진행한 직원들에게 레퍼런스 체크를 통해 팀에 넣어줄지, 안 넣어줄지를 정하게 된다. 마치 이직을 할 때 전 직장 동료에게 레퍼런스 체크를 받듯이 말이다. 어쨌든 난 처음 시작한 몇 번의 프로젝트에서 꽤 좋은 평가를 받은 덕분에 몇몇 팀장들에게 프로젝트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러브콜을 받고 한껏 우쭐해있었다.


그리던 어느 날 우연히 드론 관련 프로젝트 담당 팀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드론? 이 단어를 듣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앞뒤 가리고 고민할 것 없이 나는 프로젝트 합류를 결정했다. 다시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을 해준 파트너들의 러브콜마저 뿌리치고, 지적 호기심만을 쫓아 드론 프로젝트에 합류했는데, 그때부터 불행이 시작된 것이다.


취미생활이지만 아주 가끔 Tripadvisor, Viator에서 여행지 홍보자료 제작을 위해 나의 드론 촬영물을 사용하기도 했다. Great Blue Hole 다이빙 사이트 영상.


클라이언트를 열받게 만들다,  3 만에 

클라이언트는 드론과 같은 혁신 기술을 빠른 속도로 개발하고 테스팅하여 산업 내 선도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조직역량을 키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프로젝트 시작과 동시에 여러 사업부에 분산되어 있던 관련 부서들과의 미팅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미팅들을 통해 빠른 속도로 현황 진단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팀장으로부터 "역시 네가 좋은 평가를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군" 맥락의 긍정적인 피드백들을 받았었다. 그리고 신뢰가 쌓였는지, 팀장은 프로젝트의 핵심 임원과의 첫 미팅에 동행하지 않고, 나에게 단독 진행을 할 기회를 주었다. 그 때부터 이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했다.


담당 임원과의 첫 미팅이 시작한 지 5분도 채 안 되어, 임원은 내 말을 끊었다. "나 지금 신경질 나는데. (I feel frustrated right now.)" 이게 무슨 상황이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영역으로 나는 끌려들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너를 만난 지 3분 정도 됐는데, 너는 단 한 번도 내 생각을 묻지 않았어. (It's been 3 minutes and you haven't asked me a single question.)" 2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피드백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내게 좋은 첫인상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나, 그 인내심은 단 3분이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관심 있던 주제여서 그랬던 것일까? 나는 의욕이 넘쳤다. 그것도 지나치게. 난 프로젝트가 시작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제한된 정보만을 바탕으로 여러 사업부를 총괄하는 클라이언트 임원에게 내 생각이 정답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첫 미팅이 끝난 후 얼마 안 지나, 나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다'는 표현이 왜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제발 안그래주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지만, 결국 총괄 임원이 담당 파트너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나에 대한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EU에 드론 관련 규제가 없던 시절, 산마르코 광장에 있던 경찰과 함께 드론을 조종하며 촬영했던 영상. EASA 규제 통과후에는 정부의 공식 허가 없이는 불가능한 촬영일 것이다.


리셋 버튼을 누를수만 있다면!

Reset 버튼을 누르고,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것일까? 단 3분의 실수로, 나는 클라이언트의 신뢰를 잃었고, 그것은 곧 경영 컨설턴트인 나에겐 프로젝트의 생명줄이 끊기는 것과 같은 효과였다. 신뢰가 없으면 내가 아무리 뛰어난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개발하더라도, 결정권자인 총괄 임원을 설득시키는 것이 그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나 좀 도와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1년 차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이 역경을 뚫기 위해선 도움이 필요했다. 클라이언트가 조언을 필요로 하는 콘텐츠에 대한 도움이 아니었다. 여러 사업부에 분산되어 있던 드론 등 혁신 기술개발 인력을 통합시키고, 각 사업부별 다른 상용화 목적을 가지고 단행하던 투자를 일원화시키며, 미 연방항공청(FAA: 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과 같은 관할 정부기관과의 협력을 시작하는 등, 클라이언트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선해야 할 사항들은 명확했다. 정말 내가 도움을 필요로 했던 부분은, 신뢰를 잃은 한 개인의 마음을 어떻게 다시 사로잡을 것인지에 대한 조언과 도움이었다.


"클라이언트 임원이 신뢰하는 팀원이 덴버에 산다고 했지? 지금 당장 덴버로 가자. 그 사람이 너를 치겨세워줘야 담당 임원도 너를 믿기 시작할 거야." 팀장은 나를 위해 예정에도 없던 출장을 계획하고, 내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게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었다.


"네가 방금 내린 그 결론, 클라이언트가 직접 찾아내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야. 너를 아직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네가 결론을 내주면 반감을 살 수 있지만, 클라이언트 자신이 그 인사이트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그의 아이디어인 거지." 담당 파트너는 나와 1:1로 시간을 보내며, 핵심 시사점들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고, 연습시켜 주었다.


나를 팀에서 배제시키고 새로운 팀원을 뽑을 수도 있는 명분이 있었을 텐데... 너무 감사하게도 팀장과 파트너들은 내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결정을 했었나 보다.


MBA 친구들과 떠난 Belize 여행에서 드론을 뛰어 스피드보트와 경주하고 스노클링 사이트 장면을 촬영했었다.


드론은 날았다. 비록 그의 마음은  얻었지만.

열심히 노력한 끝에 총괄 임원의 신뢰를 얻었다는 훈훈한 결론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프로젝트 기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팀장과 파트너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갈망했던 총괄 임원의 신뢰는 얻지 못했다. 끝까지 그와의 관계는 서먹서먹했고, 나는 그와의 대화를 철저히 준비하여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하는 어색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감사하다. 신입사원 시절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문제 해결 능력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한 값비싼 과외 말이다. 비록 담당 임원의 신뢰를 얻지는 못 했지만, 나는 여러 사람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클라이언트에게 필요했던 신규 조직의 신설을 이끌어냈고, 인력과 자원을 통합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결과, 클라이언트는 FAA의 승인을 받아 드론을 사업에 도입시키고 있다. 꿈을 실현시킨 것이다. 비록 그 과정을 다시  처음부터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리고 그 사건 이후 나의 달라진 점이 하나 더 있다. 아끼는 취미는 취미로만 하기로 했다. 여전히 매주 업데이트 되는 프로젝트 리스트를 보면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토픽들이 손짓하고 있지만, 난 그냥 궁금한 건 궁금한 채로 두기로 했다. 난 이제 뉴스에서 새로운 드론 출시 뉴스를 봐도, 내가 드론을 날리며 볼 수 있던 그 수 많은 아름다운 풍경보다, 프로젝트 기간 내내 날 벌벌 떨게 만들었던 클라이언트 얼굴이 먼저 생각이 날 수 밖에 없다는 건 퍽 슬픈 일이다.



이 글을 쓴 사람 'Droneboy'는,

한국에서 스타트업과 경영 컨설팅을 경험한 후 미국 Chicago Booth MBA를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미국 시카고에서 아내 'Silvermouse'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경영 컨설팅 일을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한 때 작가가 꿈이었는데, 브런치를 통해 나의 일하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MBA 경영 지식 소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명 '드론보이'는 드론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저를 위해 아내가 만들어준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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