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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Mar 06. 2020

웰컴 투 취업 사관 학교, MBA  

MBA 학생들을 리크루팅 하기 위한 기업들의 전쟁

2019년 가을, 둘째가 태어날 날이 가까워오면서 난 일을 조금씩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영 컨설팅 일이라는 것이 워낙 출장도 많고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데드라인에 맞춰 업무를 강행해야 되기 때문에 내 마음처럼 일을 줄여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회사의 '리크루팅 앰버서더'에 지원해보기로 했다. 회사에 입사하고 싶어 하는 MBA 학생들을 찾아가 회사 소개를 하고, 입사 지원 전 과정을 도와주는 리크루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업무를 하는 동안은 기존의 컨설팅 업무는 하지 않고 풀타임 리크루터로서만 일하게 된다.


사실은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위해 업무량을 조금 줄여보고자 시작한 일이었지만,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컨설팅 일 만만치 않게 할 일이 많았다. 그만큼 회사에서도 MBA 학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미국 동서남북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MBA들을 직접 찾아가 리크루팅 행사를 진행하고, 또 회사의 Fit에 맞는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투자하고 있었다.


리크루팅 팀장은 회사 대표로서, 대도시의 시카고 Booth 등은 물론, 직항기가 적어 방문하기 상대적으로 어려운 중소도시의 듀크 Fuqua, 다트머스 Tuck도 방문하게된다


입학 축하합니다. 자, 이제 취업 전선으로!

MBA를 현실 도피를 위한 2년 간의 달콤한 휴가라고 생각한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졸업하면 자동으로 돌아갈 안정적인 회사나 패밀리 비즈니스가 있는 게 아니라면 모를까. MBA 학생들에게는 크게 2번의 취업 기회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1학년 여름 방학에 일할 섬머 인턴 자리, 그리고 졸업을 앞두고 진행하는 정규직 자리다. 이 중, MBA 학생들에겐 여름 인턴십 리크루팅이 메인이 된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섬머 인턴 선발을 통해 미리 예비 신입 사원들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 인턴십 리크루팅 타임라인을 보면, 회사들은 1학년 첫 학기인 가을/겨울부터 학생들을 선별하기 시작한다. 입학한 지 2-3달 된 MBA 학생들은 새로운 경영 지식을 습득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운데, 그럼에도 기업들은 학생들을 뽑기 위해 학교 캠퍼스로 기꺼이 날아간다. 왜일까?



전통적으로 MBA 학생들은 졸업 후 가는 곳은 두 갈레였다. 경영 컨설팅 아니면 투자은행. 다시 말하면 MBA 졸업 후에 학생들이 기대하고 있는 수준의 연봉을 제시해주는 기업은 보통 컨설팅이나 뱅킹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은 학생들의 옵션이 하나 더 늘었는데 바로 Tech 기업들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벗어나 유니콘으로 성장하고, IPO를 하는 Tech 대기업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 또한 MBA 학생들을 공격적으로 리크루팅 하기 시작했다.


Tech 기업들의 핵심 인력은 기술과 상품/서비스 지식을 보유한 엔지니어들이겠지만, 이들 또한 성장과 함께 대형화되고 조직화되는 순간 대규모 조직을 이끌고 관리할 수 있는 MBA와 같은 경영자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Amazon의 캠퍼스 리크루팅 담당 이사 Miriam Park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MBA 학생들은 Amazon의 고객 집착 경영 원칙을 이해함은 물론, 대게는 '리스크 지향형'이며, 공격적이고 동시에 분석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회사의 미래 경영진 랭크인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로 입사하게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내가 MBA를 졸업한 2017년을 기점으로 MBA 리크루팅 전쟁에서 Tech 기업들이 강력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나의 모교인 시카고 Booth에서는 투자은행 리크루팅을 돕는 IBG (Investment Banking Group) 회원 수가 급감한 반면, Google, Microsoft, Amazon 등 전통적 Tech 강자들은 리크루팅 규모를 공격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뿐 아니라, 과거 캠퍼스 리크루팅을 하지 않던 Uber, Tesla 등 신흥 Tech 대기업들도 학교 캠퍼스에 방문하기 시작했다. 매년 학교들에서는 학생들의 취업 결과를 통계로 내어 발표하는데 여러 2017년 MBA 학교들의 최대 고용주는 Tech 대기업 Amazon으로 변경되었다.


2017년을 기점으로 매년 1,000 여명의 MBA 학생들을 리크루팅하기 시작한 Amazon


그래서, MBA 학위는 절대 반지가 되어줄까요?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오히려 예전보다 더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MBA 졸업생들의 취업을 기다리고 있지만, MBA의 가치에 대한 의구심 또한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면 예전에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하나였다면, 지금 이 사회는 수많은 사다리, 혹은 그 외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커리어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지원했던 몇 군데 학교에서 온 MBA 합격 원서를 앞에 놓고, 이제 막 첫째 딸을 출산한 아내와 한밤중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며 이 학비와 시간, 기회비용을 감당하면서까지 가는 게 맞을지 아닐지 고민했던 추억이 있다.


이번에 리크루팅 팀장으로 여러 학교들을 다니며 느낀 점은, 학생들은 대게 자신의 경쟁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리크루팅 팀장으로 학교에 방문했을 시, 학생들로부터 자신의 경력을 셀링하는 '엘리베이터 피치 (elevator pitch: 엘리베이터에 함께하는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을 홍보하는 멘트)'를 자주 듣게 되었고, 여러 외국인 학생들로부터는 "졸업 후 현지 취업이 어렵지 않나요?"와 같은 불안감에 섞인 질문들을 자주 받았다. MBA를 오기까지도 고민이 많았지만,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중에도 이러한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MBA 학생들이 명심해야 하는 것은, 성공적인 리크루팅을 위해선 자신의 경력만이 아닌 팀을 이끌 수 있는 리더로서의 자질을 어필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력서의 한 줄, MBA 전 경력만이 아니라, 회사들과 네트워킹하는 과정 회사를 대표하여 학생들과 만나는 리크루터들 한 명 한 명에게 자신감 있는 잠재적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리크루팅 과정에 '기업은 고용주(갑), 학생은 취준생(을)'이라는 관점으로 접근을 하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리크루터와의 대화에서 불안감을 내비치고 위축된 모습을 보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분명 MBA 학위가 커리어에 날개를 달아주던 황금 시대는 지나갔다. 하지만 위에 아마존 등 Tech 기업들의 공격적인 리크루팅 예제에서도 봤듯이, MBA 학생들에겐 여전히 생각보다 무수히 많은 기회가 있다. 그리고 기업들은 각 학교에서 기업에 가장 적합한 인재들을 선별하고 유치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산업 내 직접적 경쟁사만이 아니라, 타 산업의 대표적인 기업들과도 MBA 학생들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니 MBA 학생들은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리크루팅 시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리크루터들과 대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노벨 경제학자가 주장한 MBA의 역할: Job Market Signaling

리크루팅 일을 경험해보니 기억 속에서 잊힌 줄 알았던 학부생 시절의 한 경제학 수업 내용이 떠올랐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Michael Spence 교수의 Job Market Signaling 이란 논문이었다. 요약하면 대학의 주요 역할은 학생에게 지식과 경험을 쌓아주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에 뛰어난 인재를 구별할 수 있는 신호(signal)를 보내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전에 고속도로 타고 가면서 보았던 한 대학교의 '취업 사관학교'란 광고가 딱 그걸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 당시에는 교육에 대한 참 비관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MBA 리크루터로 일하다 보니 어쩌면 그 교수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노벨 경제학자의 말씀인데!


난 다시 예전에 하던 컨설턴트의 업무로 돌아왔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회사의 MBA 리크루팅을 도울 예정이다. 그리고 앞으로 캠퍼스에서 만나게 될 MBA 학생들이,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앞에 있는 수많은 기회 중에 진정 자신의 길을 찾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하버드 HBS의 Aldrich Hall 각층의 앨코우브(alcove)에선 리크루터와의 소규모 커피챗이 수십/수백회 진행되는데, 기업들이 학생을 만나기 위해 투자하는 비용은 막대하다



이 글을 쓴 사람 'Droneboy'는,

한국에서 스타트업과 경영 컨설팅을 경험한 후 미국 Chicago Booth MBA를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미국 시카고에서 아내 'Silvermouse'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경영 컨설팅 일을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한 때 작가가 꿈이었는데, 브런치를 통해 나의 일하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MBA 경영 지식 소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명 '드론보이'는 드론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저를 위해 아내가 만들어준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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