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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Feb 29. 2020

나의 초보 팀장 고군분투기

생애 첫 '팀장'이 되었다

MBA를 졸업하고 또다시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들어온 지 이제 만 2년이 지났다. 이제 하나둘씩 나의 입사 동기들, 그러니까 Class of 2017 MBA 입사생들에게 새로운 타이틀이 붙게 된다. 바로 신입 팀장.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 '팀장님'은 만년 신입사원이었던 나에게 경력 많은 높은 분이었는데, 컨설팅 사는 직급 체계가 조금 다르다. 통상적으로 MBA 졸업 후 2-3년 내에 팀장 승진을 하게 된다. 나이에 상관없이 말이다. 그렇기에 학사 이후 경력 없이 바로 입사한 친구들부터, 석,박사까지 연이어 한 후에 30대 중후반이 되어 입사를 한 사람들까지 나이, 경력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그래서 회사에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직급별로 제공한다.


최근에 난 영국 런던으로 트레이닝을 다녀왔다. 보험사의 콜센터 조직, 통신사의 필드 조직 등 대규모 서비스 조직의 혁신에 대한 트레이닝이었는데, 그중에서 수백-수천 명의 조직원들을 변화에 동참시키기 위한 '당근과 채찍 (인센티브)'이 하나의 토픽이었다. 여기서 난 요즘 나의 가장 큰 화두인 '좋은 팀장이 되는 법'에 대한 지혜를 조금 얻을 수 있었다. (핵심을 요약하자면, 인센티브를 제공 시 장기적 동기부여가 떨어지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센티브는 종류, 제공 방법, 등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런던의 멋진 크리스마스 구경은 커녕, 트레이닝 하는 오피스 창 밖으로만 도시 구경을 했던 나날들


경영 컨설팅사의 팀장이란?

앞서 말했듯이 사실 경영 컨설팅사의 팀장은 대게의 경우 경력이 짧은 편이다. MBA 졸업 후 2-3년 정도 후에 팀장 승진을 하니 말이다. 당연히 특정 산업 또는 주제에 깊은 전문성을 개발하기엔 부족한 시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이 되는 순간 한 프로젝트를 총괄하게 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경영 컨설팅사의 팀장은 실무를 하는 팀원들, 전문성을 보유한 파트너, 그리고 클라이언트 임직원 각각의 의견과 요구사항들을 중간 관리자로서 밸런싱하고 맞춰나가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팀장의 주요 관리대상: 팀원, 파트너/리더십, 그리고 클라이언트. 각기 다른 의견과 요구사항들을 제시하곤 한다.


작년 초 첫 팀장 역할을 맡았을 때, 나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산업의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그렇지만 프로젝트를 지원해주는 파트너 중에는 클라이언트를 수년간 자문한 분들과 해당 산업에 20년 이상 종사했던 전문가가 있었다. 팀장으로서 나의 역할 중 하나는 이들의 경험과 전문성을 끌어들여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도출해내고, 팀의 분석 결과를 프레셔 테스팅하는 것이었다. 이렇듯이 경영 컨설팅의 팀장은 팀원, 파트너/리더십, 클라이언트의 중간 관리자 역할을 맡는다. 그러다 보니, '좋은 팀장'의 정의 또한 각각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이번 글에선 팀원들에게 좋은 팀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좋은 초보 팀장이 되기 위한 고군분투기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팀원들은 물론 클라이언트 실무진을 한계까지 푸시하여 성과를 내야 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중요한 보고가 있으니, 그때까지만 힘내자." "힘들겠지만 내일 오전까지 결과물을 만들자." 야근을 싫어하고 최소화시키려고 노력하지만, 가끔씩은 새벽 늦게까지 야근을 해야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한다. 모두가 힘들 때, 팀원들을 이끌어주고 모두가 성공할 수 있도록 결과를 내야 하는 좋은 팀장은 어떤 사람일까?


나에겐 좋은 팀장이 되기 위한 정해진 레시피는 아직 없다. 다만 1-2년 차 컨설턴트로서 경험했던 여러 훌륭한 팀장들의 특징들을 바탕으로 나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2019년 4월, 나는 신입 팀장으로 첫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는데, 나는 내가 손수 뽑은 팀원들에게 더 좋은 팀장이 될 수 있도록 실시간 피드백을 부탁하고 첫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과 함께 난관에 부딪쳤다.


수렁에 빠진 인턴 사원과 초보 팀장, 힘을 합치다

4명의 팀원 중 대학생 인턴사원이 있었는데, 그녀는 이전 프로젝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많이 위축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나 또한 1-2년 차 컨설턴트 당시 프로젝트에서 안 좋은 평가를 받아봤기 때문에, 나는 한 번의 부정적인 프로젝트 평가결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정직원 채용 결과가 내 평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랬나? 그녀는 너무나도 위축된 나머지, 자신의 분석 결과를 자신이 신뢰하지 못하고 팀장인 나에게 재확인을 제차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수가 발견되면 더욱 더 위축되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지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녀가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먼저 그녀의 학부 선배였던 2년 차 컨설턴트에게 1:1 코칭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피드백을 제공 시 그녀의 약점보다는 강점에 초점을 맞춰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기 시작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 이런 방법을 한 번 써봤다. 클라이언트와 파트너들을 배제하고 프로젝트 팀원들만으로 구성된 내부 프로블럼 솔빙 (problem solving) 세션을 만들어 그녀가 안전한 환경 속에서 발표를 하고 리딩 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봤다. 역시 우리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 단계씩 그 인턴 사원의 성장이 눈에 보이자, 난 지속적으로 그녀의 책임을 확대해줬다. 내부 발표 경험을 바탕으로, 클라이언트 미팅들을 일부 맡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그녀는, 나와 함께 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윗선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아 안전하게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난 그 누구보다 그녀의 입사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작년 여름, 그 '예비' 사원으로부터 카드 한 장을 받았다. 지난 여름 동안, 좋은 팀장이 되어주어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나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사실 초보 팀장 딱지를 떼 준 그 인턴이 나도 많이 고맙다


다시, 런던에서 내가 배웠던 것들을 얘기해보겠다. 나는 초보 팀장이 된 후에 처음으로 마음먹은 것이 절대로 '당근과 채찍' 전략을 쓰지 않기로 했다. 예를 들어, 팀원에게 많이 힘든 요구를 해야 할 때도 "평가 내가 하는 거 알지?", "이번만 고생하면 내가 거하게 쏠게.", "이번 미팅 잘 끝나면 금요일은 좀 쉬게 해 줄게." 등 '당근과 채찍' 인센티브를 내걸지 않았다. 대신 난 이렇게 해봤다. 팀원 개개인이 성공할 수 있게 발전해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할 줄 모르는 것은 방법을 가르쳐주며, 팀원들의 마음 속에 있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독려해줬다. 자발적으로 더 열심히, 더 많은 것을 배우고 할 수 있게 말이다. 만약 '당근과 채찍' 같은 외적 인센티브에 의존하여 팀원들을 움직였다면, 단기적 성과는 낼 수 있겠지만, 팀원 개개인의 내적 '잘하고 싶다'는 욕구는 오히려 줄어들어 장기적으로는 그들을 독려하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사실, 앞으로도 내가 계속 팀원들에게 '좋은 팀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든 조직이 그렇듯이 '좋은 팀장'이 되기 위한 조건은, 위에서 보기 다르고, 아래에서 보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발등에 불 떨어진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나에게 '유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 인턴 사원에게 받은 편지를 소중하게 잘 간직하기로 했다. 좋은 초보 팀장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난 뜨거운 여름날을 잊지 않기 위해 말이다.



이 글을 쓴 사람 'Droneboy'는,

한국에서 스타트업과 경영 컨설팅을 경험한 후 미국 Chicago Booth MBA를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미국 시카고에서 아내 'Silvermouse'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경영 컨설팅 일을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한 때 작가가 꿈이었는데, 브런치를 통해 나의 일하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MBA 경영 지식 소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명 '드론보이'는 드론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저를 위해 아내가 만들어준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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