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주 서배너 (Savannah, Georgia)
11월 마지막 주는 미국의 추수감사절 주간으로 일주일간 아이들의 학교가 쉬는 기간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회사를 다니는 엄마에겐 '1년에 15일' 휴가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올해는 주말 근무를 한 덕분에 며칠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어디로 여행을 갈까 고민을 하다가 우린 조지아 주 서배너를 가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제게 20대의 추억이 있는 곳이거든요.
시카고에서 차로 남동쪽으로 15시간을 달려야 만날 수 있는 서배너는 1773년, 식민지 시절 만들어진 조지아주 최초의 도시입니다. 오래전 그때의 도시 형태를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작은 광장과 블록들이 반복되는 리듬감이 있는 곳이죠. 도시 전체가 ‘국가 역사 랜드마크 지구’로 지정되어 있어, 수백 년의 시간을 견딘 집들이 지금도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함께 하죠.
하지만 이 아름다운 도시에는 미국의 아픈 역사도 함께 담겨 있어요. 18~19세기 동안 면화 무역과 노예제의 중심지였던 곳이라, 화려한 집들을 바라보다 보면 동시에 그 집을 뒤에서 지탱하던 노예들의 땀과 눈물도 함께 떠올라 복합적인 마음이 들죠. 아름다움과 눈물이 겹겹이 쌓인 곳입니다.
서배너는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일 거예요. 미국 여행 잡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Top 10’을 뽑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도심 길가에 길게 흩날리며 드리워진 스패니시 모스가 걸린 참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아, 내가 다시 서배너에 왔구나’ 하고 단번에 알게 됩니다. 이 도시를 상징하는 풍경이거든요.
저희가 찾은 11월 말에도 북부 도시들은 눈폭풍으로 뒤덮였지만, 이곳은 여전히 늦가을의 온화함이 남아 있었어요. 20년 만에 다시 만난 빅토리아풍의 집들, 그리고 식민지 시절 건축 양식의 하얀 포치들은 예전 그 모습 그대로였어요. 서배너 사람들은 타고난 미적 감각이 있는 것처럼 보여요. 집집마다 정성스러운 골목을 걷다 보면 카페만큼이나 감각적인 인테리어 숍들과 독특한 소품 가게들이 툭툭 나타나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데, 미국 사람들에게 서배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오, 아름다운 남부의 작은 도시!'인 동시에, 무시무시한 ‘죽은 자들의 도시’란 사실이에요. 그래서 이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투어는 바로 ‘고스트 투어’지요. 식민지 시절부터 남북 전쟁을 거치며 많은 사람들이 죽은 곳이라 미국에서 가장 자주 유령이 출몰한다고 소문이 난 동네입니다. 낮에는 그렇게나 예뻐 보였던 모스가 흩날리는 나무가 밤이 되면 무시무시한 긴 머리카락 마녀 같습니다. 으스스해서 혼자서는 못 돌아다닐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여기 서배나에 제 20대 추억이 있는 이유, 바로 이곳에는 디자인 스쿨로 유명한 SCAD가 있어요. 제가 이곳을 다녔을까요? 설마요! 전 손으로 뭐 만들고, 그리는데 재주가 없답니다. 저 말고, 제 동생이 이 학교를 다녔어요. 그래서 전 대학생 그리고 사회 초년생 시절, 동생을 만나러 서배나에 종종 찾곤 했지요. 동생이 학교 간 사이에 유유자적 작은 마을을 산책하기도 하고, 앞으로 뭐 하고 살아야 되지 고민도 하고요. (여전히 그 고민은 진행 중...) 동생이 졸업을 한 이후에는 더 이상 이 먼 곳을 올 일이 없었는데, 그리웠던 이곳을 이렇게 다시 오게 되었네요.
- 서배너는 미국의 4대 항구 중 하나예요. 그래서인지 유독 해산물 레스토랑이 많죠. Open Table이나 Yelp, Resy 앱을 켜서 마음에 드는 해산물 식당을 예약해 보세요. 저희는 Thanksgiving 당일에 여행을 가느라 대부분 식당이 문을 닫거나, 좋은 곳들은 예약이 이미 다 찬 상황이었는데요, City Market 광장 앞에 있는 Sorry Charlie 캐주얼한 펍 스타일의 해산물 식당에서 다행히 맛있는 남부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었어요. 구운 굴요리, 새우 포보이가 특히 맛있었어요.
아트 컬리지 SCAD 학생과 졸업생들의 작품을 파는 가게예요. 동생이 기념품으로 티셔츠를 하나 부탁해서 그거 사려고 들어왔다가 이 사랑스럽고 친절한 가게 분위기에 빠져서 한참을 둘러보다가 나오기 힘든 곳이었어요. 서배너 스타일의 인테리어 소품부터 페인팅, 주얼리, 도자기 등 공장에서 찍어낸 게 아닌, 사람의 온기가 담긴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면 꼭 한 번 들러보세요.
사실 이건 추천은 아니고, 그냥 서배너에서 가장 유명한 투어예요. 워낙 이곳은 고스트 타운으로 유명한 곳이고 오래된 집 곳곳에서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난 곳이라 한 밤 중에 무덤가를 가는 워킹 투어나, 마을 한 바퀴를 트롤리를 타고 돌며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고스트 투어가 인기 필수 코스죠. 근데 이건 투어 가이드의 실력에 따라 투어 만족도가 크게 좌우될 것 같아요. 저희는…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