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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되나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맛이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속 'Whistle Stop Cafe'

by Silvermouse

누구에게나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잖아요. 제겐 90년대 초반이 그렇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요일 밤이 되면, 가요톱텐에서 얼굴도 잘생기고, 노래도 잘 부르던 '언제나' 김원준도 나오고, 지금 들어도 세련된 음악을 만들어내던 '핑계' 김건모도 나오고, 형광색 의상도 촌스럽지 않았던 '일과 이분의 일' 투투도 있던 그 시절. 그러고 보니 시간이 지나, 이제 초등학교 5~6학년~중학생이던 그 시절을 제 첫째 딸이 지나가고 있네요.


참 신기한 건, 저 요즘 일은 잘 기억을 못 하는데, 30년 전 그 시간, 장소, 냄새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참 아이러니하죠. 그때는 핸드폰도 없고, 모든 게 다 천천히 지나가서 그런걸까요? 그리고 그때는 참 동네 비디오 가게에 가서 비디오테이프도 많이 빌려봤어요. 심지어 한 달에 얼마를 내면 몇 개를 볼 수 있는 시스템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90년대 스타일 넷플릭스였네요.


미국 영화를 정말 많이 봤었는데, 그때가 미국 영화 전성기였던 것 같아요. 나 홀로 집에, 미시즈 다웃파이어, 쿨러닝, 쥬라기 공원. 정말 그 시절 한국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스케일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나오던 시절이었죠. 지금 여름 특강을 듣느라 바쁜 요즘 초등, 중학생들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저 때만 해도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목표가 이번 여름엔 영화를 많이 봐야겠다,였었죠.


그 시절 그렇게 재밌게 본 영화 중의 하나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요. 이 영화를 아시는 분이 계시려나요? 사실 저도 너무 오래 전 본 영화라 여자 주인공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라는 사실만 기억이 나고, 전반적인 스토리는 이 글을 쓰기 전에 다시 찾아봤어요. 미국 남부에 사는 여자들의 우정, 인종차별 이런 스토리예요. 그 당시에 이 영화를 참 재밌게 봤던 그 느낌이 생생하게 나요. 그리고 또 이 영화에서 나오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란 어떤 음식일지 너무 궁금했어요. 정말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음식 이름 아닌가요?



이번 추수감사절 연휴에 서배나 여행을 마치고 다시 아틀랜타 쪽으로 올라가는 길, Juliette이라는 아주아주 작은 마을에 '지역 추천 식당'으로 이 영화를 찍은 Whistle Stop Cafe가 나왔어요. 아니, 이런 우연이! 실제 영화에 나온 그 식당이 아직도 운영 중이었어요.


열심히 달려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마치 그 시절 영화 세트장 같은 그 모습 그대로였어요. 영화 속에 나왔던 기찻길도 그대로 있구요. 식당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려는데, 아뿔싸, 한 직원 아주머니가 문 밖으로 나오시더니 Open 싸인을 휙 돌려서 Closed로 바꾸시더라고요.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영업이 끝나는 시간이래요. 아직 안에 손님들은 많이 있어서 혹시 우리가 아주 멀리서 왔는데 받아줄 수 없냐고 물어봤어요. 딱 봐도 이 동네 사람이 아니고 멀리서 온 사람들처럼 보이는 한국인 가족에게 이 무뚝뚝해보였던 아주머니는 친절을 베풀어주셨죠! 역시 Southern hospitality!



그리고 마침내, 저는 진짜 30년 동안 너무나도 궁금했던 오리지널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초록색 단단하고 새콤한 토마토에 부드러운 튀김옷을 입혀 아주 바삭하면서도 새콤달콤한 아주 미묘한 조화가 환상적인 맛이었죠. 남부라 튀김 요리에 자신이 있는지 유독 튀김 메뉴가 많았는데, 아이들을 위해 주문한 프라이드치킨, 양파링, 고구마튀김 모두 대성공이었어요.


90년 대 초, 이 영화를 보고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맛이 무척 궁금했던 제 어린 시절로 돌아갔던 시간 여행. 이제는 TV나 유튜브, 영화에 나오는 그 어떤 전 세계 음식이든, 하루면 우리 집 앞에 배달해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서 이제 이런 기다림은 필요 없겠지만요, 30년을 기다려 맛볼 수 있었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맛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식당 문을 나서는 순간, 마치 영화 세트에서 빠져나온 듯한 마을 풍경이 그대로 펼쳐졌어요. 길 건너에는 숨은 보물들이 가득한 작은 빈티지 샵이 있어서 한참을 구경했죠. 추억 속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비디오도 보이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미국 작가 Norman Rockwell의 그림이 그려진 그릇, 컵들도 있구요. 그 중에서 94년, 그러니까 제가 산타클로스를 마지막으로 믿던 12살 크리스마스의 모습이 담긴 접시를 하나 데려왔어요. 이번 여행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 저만의 기념품으로 말이죠.


저처럼 90년대 이 영화를 본 추억이 있는 분이라면, 언젠가 이름없는 이 동네를 지나갈 기회가 있다면 꼭 들러보세요. 미국 로드트립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을 발견하실 수 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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