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준비하는 시카고 이야기

by Silvermouse

벌써 12월, 한 해의 끝자락에 도착을 했네요. 저 스스로를 돌아보면, '도대체 올 한 해 뭐 한 거지?' 허무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또 사진첩을 뒤져보며 또 훌쩍 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래, 나 아이들 키우며, 일하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구나'하며 제 스스로 마음을 토닥입니다.


연말이면 한국 본사에서 직원들에게 달력과 다이어리를 보내줍니다. 박스가 도착하면, '아 올해도 다 끝나가는구나' 생각이 들죠. 새로운 다이어리를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공휴일 표시하기. 아이들이 다니는 미국 학교는 쉬는 날이 정말 많거든요. 모든 연방 공휴일도 쉬고, 봄방학,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은 아예 일주일을 통째로 쉬어버리고 또 매달 하루 이틀은 선생님들을 위한 Professional Improvement Day라든가, Parent- Teacher Conference Day 등으로 학교 문을 닫아요.


하지만 전 회사는 계속 가야 되고 쓸 수 있는 휴가는 정해져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 돌봄 구멍을 내지 않기 위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립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 남편이 일 년 내내 출장다니는 일을 했을 때는 학교 안가는 날을 대비해 온갖 캠프들을 일 년 전부터 서칭을 해야했어요. 어디 맡길 곳 없는 어린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회사를 갈 수는 없으니까요. 저 개인적으로는 '무계획이 계획'인 파워 P지만, 절박함이 저를 '후천척 파워 J'로 바꿔놓아 버렸지요.


자, 수많은 한 해의 스토리를 뒤로하고, 우린 12월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보통 미국은 추수감사절이 끝나는 동시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시작되는데요, 크리스마스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트리 농장입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미국은 직접 생 트리를 잘라 장식을 하거든요. 집 앞에 홀푸즈나 홈디포 같은 마켓에서도 미리 잘라진 나무를 팔지만, 트리를 자르러 가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겐 추억이라 좀 귀찮고 추워도 직접 농장에 가려고 하는 편이에요.


올해는 좀 재밌는 곳을 발견했어요. 시카고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미시간에 있는 농장인데, 마차를 타고 트리 농장에 들어갈 수 있어요. 보통은 덜덜 거리는 트랙터를 타고 가거든요. 이 날은 유독 눈이 펑펑 오는 날이었는데 엄청나게 크고 멋진 두 필의 말이 끌어주는 마차를 타고 들어갔죠. 마치 '빨간 머리 앤'이 살던 19세기의 Green Gables로 들어간 듯한 느낌이었죠.

https://www.pinecrestchristmastreefarm.com/



신기하게 이곳에는 '한국 소나무'가 있었어요. 미국에 와서 한국의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니요! 저희는 당연히 올해 그걸로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아쉽게도 우리가 원하는 크고 풍성한 소나무를 찾는건 어려웠어요. 사실 이렇게 직접 농장에 와서 트리를 고르면 집 앞 마켓에서 고르는 것보다는 좀 못생기고 키도 작은 것들이 많아요. 좋은 것들은 먼저 베어서 판매를 하거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찰리브라운의 크리스마스트리보다는 낫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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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시카고에서 크리스마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건, Macy's 백화점 꼭대기에 있는 Walnut Room 식당이에요. 매년 엄청 큰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장식하고 식사 중간중간에 엘프들이 와서 아이들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쇼를 하기 때문에 Christmas Spirit이 충만한 곳이죠. 여기 식당은 오픈을 하는 순간 두 달치 예약이 순식간에 마감돼요. 저는 어느 목요일 퇴근길에 예약 앱을 열어보니 누가 막 취소를 했는지 자리가 있어서 운 좋게 다녀올 수 있었죠. 사실 음식 맛은 큰 기대하면 안되지만, 그래도 산타랑 사진 찍을 수도 있고, 크리스마스 쇼핑 층과 이어져 있어서 예쁜 트리를 맘껏 구경할 수 있으니, 시카고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싶어요.



엊그제는 윤서의 걸스카웃의 한 해 마무리 행사로 뮤지컬 Elf를 보러 갔다 왔어요. 한 달에 한 번씩 걸스카웃 모임이 있는데 이번 달은 다같이 걸스카웃 유니폼을 입고 뮤지컬을 보는게 액티비티였죠. 예전에 나왔던 영화를 뮤지컬로 각색한 것인데 무대 연출도 화려하고 또 내용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재밌어서 연말에 가족 뮤지컬로 재밌게 보고 왔어요. 뮤지컬 자체도 재밌지만, 시카고는 건축의 도시답게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고전적이고 화려한 공연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이에요.



이제 다음 주면 저희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제 바쁜 생활을 도와주셨던 친정 엄마도 한국으로 가시고 또 그 며칠 후엔 오롯이 우리 네 식구가 함께 보내는 연말 여행이 시작이 됩니다. 예전에는 이런저런 연말 모임들로 꽉 찬 12월 달력을 보며 마치 매일을 파도타기 하듯 바쁘게 지낸 적도 있었는데, 저는 이제는 텅 빈 달력이 너무 좋아요. 한 해 각자 너무 바쁜 생활을 해온 우리 네 식구가 편안하게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는 이 한 해의 마무리가 저희에겐 가장 잘 맞더라구요. 지쳐있는 한 해의 끝자락, 편안한 휴식을 하고 재충전을 해야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수 있는 힘이 생기니까요. 이렇게 우리는 2025년의 끝을 향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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