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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Apr 19. 2017

엄마의 산토리니 육아 여행 일기  

2017년 3월 그리스 산토리니 

산토리니를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은 유독 이불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마도 아기를 데리고 시카고에서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고 이 작은 섬까지 오는 동안에 쌓였던 여독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런 것을 알 리 없이 아침 일찍 제시간에 일어나는 아이는 제 아빠와 벌써 아침 일찍 산책을 다녀오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저는 그 산토리니 어두운 동굴의 방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 계속 잠들어 있었습니다. 신나게 산책을 하고 온둘은 아직도 제가 이불속에 있는 것을 보자 저보고 눈을 꼭 감으라고 하더니 보쌈을 해서 방 밖의 테라스로 둘러업고 나갔습니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내리쬐는 햇살이나 바람이 분명 어제와는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그리고 저를 어딘가 앉히더니 둘이 깔깔 대면 눈을 떠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 눈 앞에 펼쳐진 저 풍경! 살면서 가장 반짝이는 바다와 햇살을 보았습니다. 



도착해서 처음으로 진짜 그림 같은 산토리니의 모습을 만나고 나니 가족 모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다행히도 저희가 다음 목적지인 아테네로 가는 비행기는 밤늦게 출발을 하기 때문에 오늘 하루 아쉽지 않게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저는 날씨에 기분이 많이 좌지우지되는 성격이라 여행을 할 때는 날씨가 참 중요한데 이 날씨는 산토리니를 여행하기에 완벽한 날씨였죠. 아마 너무 더웠어도 아이와 걸어 다니기 힘들었을 거예요. 이 날의 날씨는 마치 산토리니라는 작품을 감상하기에 가장 완벽한 조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방으로 챙겨다 주신 토스트와 주스, 계란을 먹으면서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한 이 섬을 오늘 하루 다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산토리니의 이아 마을은 계단형으로 만들어진 작은 마을입니다. 우리가 포카리 스웨트 광고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마을이지요. 하지만 모든 산토리니가 다 이렇게 생긴 것은 아닙니다. 이 특이한 형태의 작은 마을을 제외하고는 다른 산토리니 지역은 그냥 개발이 아직 다 되지 않은 섬나라와 같은 평지 형태의 땅입니다. 그래서 이아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건 바로 '일하는 당나귀'입니다. 관광객들을 위한 타는 당나귀가 아니라 실제로 짐을 나르고 공사판에서 일하는 당나귀지요. 마침 저희가 간 시기는 다가올 성수기를 준비하며 섬 전체가 재정비를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여기저기 하얀 페인트칠을 하는 식당도 있고, 무너진 벽돌을 새로 쌓아 올리는 작업을 하는 곳도 많았습니다. 덕분에 동물을 사랑하는 윤서가 지나가는 골목마다 당나귀들을 만날 수 있었지요. 



산토리니 곳곳에서 찍은 몇 장의 사진들은 제가 아마 어디에서 찍은 거라고 얘기를 하지 않는다면 '제주도 참 아름답구나!'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제주 섬과 닮아 있습니다. 저도 그 풍경에 감탄하면서, 정말 제주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지요. 전 제주도를 정말 좋아해서 계절별로 한 번씩은 꼭 찾게 되는데 제가 본 봄 풍경과 가장 비슷했어요. 아마도 노란 유채꽃을 닮은 꽃들이 지천에 피어있어서 그랬나 봐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이젠 내가 한국을 떠나 살게 되면서 제주도나 산토리니나 똑같이 나에겐 먼 곳이 되었구나'라는 조금은 슬픈 생각이요. 



3월의 산토리니는 아이와 여행을 하기 참 좋은 계절이에요. 마을에 아직 본격적인 관광객이 들어오기 전이라 매우 한산하고, 또 기념품 가게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기 때문에 좀 더 순수한 섬의 모습을 만날 수 있지요. 관광객이 빠진 섬에는 이 섬에서 태어나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더 잘 보입니다. 아이들은 동네에 딱 하나 있는 학교에 다니는데, 쉬는 시간 종소리에 운동장에 뛰어나와서 노는 아이들을 만날 수도 있지요. 빨래를 널고 있는 아주머니도 오랜만에 지나가는 동양의 어린아이가 귀여운지 윤서에게 한참을 말을 걸어주시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 가족사진을 찍어도 익명의 관광객이 앵글 안에 들어올 일도 없지요. 저희밖에 없으니까요! 



두 살 윤서는 이 아름다운 산토리니 여행을 나중에 기억을 못 하겠지만, 그래도 이때 엄마, 아빠와 까르르 웃으면서 뛰어다녔던 그 봄의 뜨겁게 내리쬔 햇살, 그 에너지는 윤서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겠지요.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며, 전 이 아래 사진의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을 액자에 넣어 윤서 방에 걸어주었지요. 엄마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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