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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Apr 21. 2017

육아 여행엔 지혜의 여신이 필요해

2017년 3월 그리스 아테네 

산토리니에서 아테네로 가는 비행기는 밤 비행기였습니다. 다행히 산토리니에서 마지막 날 날씨가 너무 좋아서 하루를 충분히 즐기다 떠날 수 있었죠. 산토리니에서 아테네까지는 작은 비행기를 타고 1시간 정도면 갑니다. 이젠 제법 비행기 타는 게 익숙해진 윤서는 엄마, 아빠가 짐을 챙기면 어느샌가 달려가 자기 트렁크(빨간 M&M 가방)를 끌고 와 간식과 책을 챙깁니다. 차의 트렁크에 자기 짐이 실리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심을 하고 베이비 카시트에 올라타지요. 



산토리니는 완연한 봄이었는데 아테네는 아직 초봄이었습니다. 쌀쌀한 밤바람에 다시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지요. 다행히 저희가 묵기로 한 King George 호텔은 시내 중심인 시청 앞 광장에 자리 잡고 있어서 호텔에 짐을 풀고 주변 산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유럽 도시에 비해 아테네는 밤에 치안이 안전한 편입니다. 


비수기라 그런지 운 좋게 방도 빨간 장미꽃이 있는 방으로 업그레이드받았습니다. 꼬마 손님이 왔다고 호텔 매니저분이 선물로 색연필과 크레파스를 주셨습니다. 그림 그리는 걸 정말 좋아하는 윤서는 연달아 몇 장을 그리더니 기분 좋게 스르르 잠들었습니다. 아마도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피곤했나 봅니다. 



다음 날 아침, 산토리니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쨍한 해가 아테네 시내를 비쳐줬습니다. 3월의 그리스 낮은 해가 떠있는 곳은 덥지만, 곧 그늘로 들어가면 카디건을 입어야 될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었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 딱 좋은 시기였지요. 호텔 바로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그 끝에는 시청이 있었는데, 이 곳에서는 하루에 몇 번 수문장 교대식이 있습니다. 아주 큰 신발을 신은 경비병들이 슬로 모션으로 걸어가는 모습은 아이도 무척 좋아했습니다. 나중에 그 신발을 닮은 은 목걸이를 사 오기도 했지요. 지금도 윤서는 그 목걸이를 하는 날마다 '아저씨, 아저씨'거리면서 그 아저씨들의 행진 모습을 아주 재밌게 따라 하기도 한답니다. 



이제 저희 부부는 윤서와 여행을 하는 것에도 지혜가 생겼습니다. 예전에 싱글로 여행 다닐 때는 하고 싶은 걸 100프로, 아니 120프로로 충족했다면, 부부로 둘이 다닐 때는 내가 원하는 것 50프로만 하는 것에 만족을 하고, 또 세 가족이 된 이후에는 기대했던 것의 10프로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가끔씩은 잠든 아이를 업고 무거운 짐을 끌어야 될 때 저 스스로 '하낫, 둘' 기합을 넣어야 될 정도로 힘이 부칠 때가 있지만, 그런 것들도 다 육아 여행의 추억입니다. 풍선 파는 아저씨를 발견하면 놓치지 않고 뛰어가서 윤서의 마음에 드는 풍선을 하나 골라 유모차에 달아주는 것도 육아 여행의 필수 지침 중 하나이지요. 



앞서 얘기했듯이 육아 여행을 할 때는 많은 걸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괜히 애써 여행책을 사보거나 여행 블로그를 보거나 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괜히 뭐가 있는지 많이 알아봤자 다 가보지도 못할 것이고, 또 남들이 이미 다 가본 곳보다는 아이의 시선으로 그 도시를 여행하는 것도 재밌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테네에 도착한 첫날은 그렇게 호텔 주변을 천천히 산책하고 근처 공원도 한 바퀴 돌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더운 오후에는 길가다 트립어드바이저 깃발이 펄럭이는 젤라토 가게에 가서 색색가지 아이스크림을 앞에 종류별로 늘어놓고 세 식구가 사이좋게 나눠먹기도 하고요. (아이에게도 어른들처럼 여행 중에는 맛있는 음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잖아요?) 



아이의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은 어느 날은 킹 조지 호텔 옆에 있는 SPG 자매 호텔인 그란데 브르타뉴 호텔(Grande Bretagne) 옥상에 있는 식당을 예약했습니다. 이 곳을 간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식당 밖으로 저 멀리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을 뒷 배경으로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서울의 남산 타워처럼 파르테논 신전도 밤이면 아름다운 조명을 켜놓기 때문에 멀리서도 잘 볼 수 있습니다. 여행을 가기 전에 한창 그리스 신화를 읽고 푹 빠져 있을 때라 파르테논 신전을 앞에 두고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그 순간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아이와 좋은 레스토랑을 가야 될 때는 이젠 스케치북과 색연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반 고흐가 아닌 이상 아이가 밥 먹는 내내 조용히 그림만 그려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와인 한 잔(혹은 한 모금) 할 정도의 여유는 주니까요. '내일은 저 파르테논 신전을 올라가 볼 수 있을까?'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그렇게 또 아테네의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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