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퇴사와 돈벌이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후회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사직서를 내고 나서야 이전 직장이 그렇게 좋은 직장인 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천만 원 정도 나온 퇴직금을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후회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역시 길지 않았습니다. 퇴직금을 받은 후 아내는 입을 닫았습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학원을 같이 하자던 이종사촌 형은 서울 학원을 정리하고 울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저에겐 아무것도 없었고 그래서 저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습니다.
급한 대로 여관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대실’이란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대실 손님이 그렇게 많은 줄도 처음 알았습니다. 주인은 청소를 빨리빨리 하라고 난리였습니다. 그는 CCTV로 제가 복도에서 걷는지 뛰는지 지켜보았습니다. 답답했는지 시범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침대 시트가 많이 더럽지 않으면 공중으로 한 번 탁 펼친 후 살포시 잘 내려놓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일은 요령이 있어야 해.”
쉬는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 시간에는 구두를 닦아야 했습니다. 역시 주인이 시범을 보였습니다. CCTV로 손님이 오는지 살피면서 요령 있게 ‘쉬엄쉬엄’ 닦으라고 했습니다. 카운터에는 커다란 식혜 단지가 있었습니다. 큰 얼음이 둥둥 떠있어 시원하고 달콤했습니다. 주인은 제게 티 안 나게 먹으라고 했습니다.
여관에서 숙식을 하면서 이틀이 지났습니다. 저는 소식을 하는 편이었는데, 일이 힘들어서인지 확실히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양이 많아 보이는 카레 덮밥을 금세 비웠습니다. 밥 먹는데 걱정이 몰려왔습니다.
‘이대로 두문불출하고 일을 하면 돈을 모을 수 있을까?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 나중에 우리 아이들 학교 졸업식 때 양복 입고 가기는 다 틀렸구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걱정 끝에 저는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주인은 저보고 창고에 가면 야구 방망이가 있으니 거기에 물을 묻혀 오라고 했습니다. 사흘도 안 되어 일을 그만두는 것이니 지금까지의 일당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바로 나왔습니다.
무작정 거리를 걷는데 은행 다닐 때 계약직 직원들 생각이 나더군요. 수시로 나오는 수당이 계약직에게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총무 담당자는 수당 명세표를 작게 접어서 남에 눈에 뜨지 않게 정규직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 계약직 직원들의 월급은 사회 초년생인 저의 작은 월급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같은 일을 했지만 월급은 절반 정도였습니다.
단골처럼 오는 간호조무사의 급여도 그랬습니다. 무심코 본 그 간호조무사의 통장에는 정말 적은 숫자가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백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월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저는 그 작은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제 앞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 연하게나마 그제야 마음에 돋아났습니다.
숙식을 제공하는 여관을 나오니 갈 때가 없었습니다. 막막한 저를 자취하던 직장인 친구가 받아주었습니다. 대학 때 룸메이트였던 혁이였습니다. 혁이는 무릎 수술로 몇 주간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것저것 챙겨준 제가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전태일 평전>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자기가 어려웠을 때 힘이 되었던 책이라고 했습니다.
고민 끝에 보습학원 강사 자리를 구한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편입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두 군데 지원을 했는데, 한 곳은 단 한 명을 뽑는 사범대학이었습니다. 시험장에서 이전 학교 졸업증명서를 제출하는데, 서울대와 카이스트 졸업증명서도 눈에 띄더군요. 지원자는 또 얼마나 많은지…. 사람이 가득 찬 강의실이 몇 개였는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떨어졌습니다.
다행히도 남은 한 곳에는 붙었습니다. 아내가 얘기한 그 대학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