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후 May 26. 2018

27. 선생님, 짜파게티 해드릴게요.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다른 과외 학생이었던 성이의 첫 수업은 중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시험이 내일이니 오늘 저녁에 시험 대비를 해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성이의 수학 성적은 40점 정도였는데, 다음 날 중간고사도 역시 40점이었습니다. 그 정도면 앞에 기본적인 5문제 정도는 풀고 나머지 두세 문제가 운 좋게 잘 찍힌 거였습니다. 뒤쪽의 어려운 문제와 주관식 문제는 말 그대로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것이었죠. 시험이 40점이 나왔지만 저는 성이를 계속 가르쳤습니다.    


성이네 집은 강 남쪽에 있었는데, 확실히 집에 여유가 있어서인지 아이는 정말 그늘진 구석이 없었습니다. 성이의 아빠는 사업으로 바쁘셨고, 엄마는 각종 모임으로 바쁘셨습니다. 과외 수업을 하는 방은 성이 아빠의 서재였는데, 책장에 책도 많았지만 특히 앨범이 많았습니다. 성이가 틈틈이 보여 준 가족사진에는 유럽의 모습들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장소도 다르고 계절도 다른 유럽의 모습들, 제가 어릴 적 TV 광고를 통해서나 봤었던 그림 같은 풍경들이 서점의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빼곡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 사진들을 설명해주는 목소리가 신나면서도 차분해서 거실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흰 털과 가장 검은 눈동자를 가진 강아지 두 마리가 서로를 베개 삼고 잠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성이가 과외를 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늘 저에게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짜파게티 해 드릴게요.”  

처음엔 싫다고 했는데, 차차 잘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개 해서 같이 먹자고 해도 성이는 항상 제 것만 끊여왔습니다. 성이는 짜파게티를 끓여주는 게 정말로 너무나 좋다고 했습니다. 그걸 요리라고 하기엔 뭐 하지만, 그렇다고 성이의 꿈이 요리사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성이는 그냥 좋다고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 기말고사를 쳤는데, 성적은 또 40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름 방학이 되었습니다. 저는 수준별로 몇 권의 문제집을 사서 복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성이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풀게 했습니다. 목표가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기본적인 사칙연산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문제 유형을 충분히 익히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과목도 그렇겠지만 특히나 수학은 문제를 풀 때 자기 확신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성이 스스로가 맞고 틀렸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도록 충분히 반복시켰는데, 고맙게도 아이는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그렇게 여름 방학을 보낸 후 2학기 중간고사에서 성이의 수학 성적은 88점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사실 88점이 나올 실력은 아직 아니었는데, 마지막에 나온 주관식 문제 2개가 예상에 적중한 결과였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거절할 만큼 과외가 들어왔고, 저는 그 돈으로 대학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매일같이 오후 6시에 학교 도서관을 나와서 과외를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면 밤 11시가 되었습니다. 학교에는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24시간 도서관이 있었는데, 과외를 마친 후 도서관 붙박이 친구들과 종종 컵라면을 먹는 일이 하나의 낙이었습니다. 시험 기간에는 같이 밤을 새기도 했는데, 피곤해도 기분은 묘하게 좋았습니다. 대학 본관은 은은한 조명 빛을 머금었고, 불어오는 바람에 뒷머리를 올리면 귀밑과 손가락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6. 과외에 절은 과외 학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