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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이스댕 Aug 04. 2024

한국인들이 안경을 많이 쓰는 또 다른 이유

그냥 사는 이야기



외국에 나가 본 사람이라면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유독 동아시아인들만 안경을 쓰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특히 한국 학생들은 거의 안경을 쓴다. 요즘은 렌즈를 많이 착용하니 눈에 잘 안 띄는 수 도 있지만.


학생이다 보니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럴 수도 있고, 외부 활동보다 실내 활동이 많아서 멀리 볼 일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유로 컴퓨터 게임을 많이 하다 보니 스마트폰과 게임화면의 블루라이트를 많이 받아서 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스마트폰도 없고 PC방 게임이 대중화되기 전부터  반 학생의 3분의 1은 안경을 쓰고 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한국인이 안경을 많이 쓰는 그 본적인 이유로 스마트폰과 게임은 제외하고 싶다. 그런 건 서양에서도 이제 마찬가지이니.




근시가 생기는 원인을 두고 보면, 가까이 있는 사물에 초점을 맞추는 데 있어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하는 근육을 힘들여 사용하는 대신 안구가 조금씩 길어지는 쪽으로 적응을 하게 되는 것이데 수정체 근육과 같이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 없으니, 그 상태로 머물게 되고 안경을 써서 조절해 줘야 원래 상처럼 깨끗하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노안의 경우 원시가 되는데, 이것 수정체가 유연성이 떨어져 원하는 대로 조절이 되지 않는 상태인데, 매우 다양한 수정체 두께 조절이 필요한 가까운 곳을 바라보는 기능은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적은 수정체 두께 조절로도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먼 곳을 바라보는 기능 쪽으로 적응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은 학문적으로 내가 배운 게 아니라, 여기저기서 들은 것과 근시와 노안을 모두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인이 안경은 유독 많이 쓰는 이유에 대해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을 인식하고 그에 반응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이나 상대하는 사람 자체를 바라보면서 뭔가를 판단하는 경우 보다, 그들 사이의 관계, 배경, 정황, 상황 등, 시각적이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 할 말과, 행동을 결정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모양이나 색깔, 움직임 보다 머릿속에 이미 저장되어 있는 다른 정보를 더욱 많이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나 사물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뜯어 관찰할 필요가 적은 것이다. 그러니 어떤 문제를 판단할 때 그 장소, 그 사람, 사물의 모습과 행동, 동작에서 얻는 정보의 양이 이미 머릿속에 추상적 형태로 저장된 것에서 끄집어내는 정보의 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사람은 굉장히 에너지 효율적인 존재로 같은 결과를 이루기 위해 에너지를 적게 쓰는 방식에 적응하게 되는데,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정보를 입수하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일단 상황 대처가 되면 그쪽을 택한다. 이는 굉장히 효율적인 방식이기도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 신체의 감각, 지각을 적게 사용하는 쪽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 감각적 행동이 도파민을 더 생산시켜 주지 않는 이상, 이미 추상화된 ( 마치 이미지정보가 압축파일인 jpeg로 저장되는 것처럼 ) 정보를 재사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사람은 서양인들에 비해 사물, 사람의 현재 상태, 상황에 집중하여 문제를 처리하기보다 보다 폭넓은 관점을 가지고 다양한 배경정보를 더 활용한다. 그 때문에 시지각 능력을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하게 되고 정확한 초점거리를 맞추기 위해 수정체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대화를 할 때, 상대의 눈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주변정황을 희미하게 대신 넓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주변상황을 눈여겨본다거나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주변에 어떤 것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상황을 인지하는 것이지 사물과, 사람의 구체적인 부분을 인지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그런 상황적, 배경적 정보를 상대적으로 더 활용하는 것은 옛날에도 동일했을 텐데, 왜 현대의 한국인들이 더 안경을 쓰는 것일까?  한국인이 근시가 잘 되는 것이 유전적 요인이라거나 문화적 요인이라고만 하기엔 좀 부족한 면이 있다. 여기에는 현대의 생활환경이 유전적인 것과 문화적인 요인을 도와 한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살고 있는 집, 입고 있는 옷, 즐기는 게임과 드라마는 굉장히 표준화되어 있다. 한번 무엇인가를 접하게 되면, 다음번에 재사용할 수 있는 정보가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번에 어느 아파트를 방문하건, 어떤 게임을 하건, 길을 찾거나 아이템을 찾는 방법은 새롭게 얻는 시각정보에 완전히 의존한다기보다 이미 이전에 방문했던 다른 아파트들, 다른 게임들에서 얻어 추상화되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들에 반은 의존할 수 있고 그게 더 효율적이니 여전히 시각정보를 적게 사용하게 된다. (시각정보는 공간, 절차정보의 시작점이다.)


현대는 많은 것들이 표준화되어 있고 표준화라는 ( 이것은 매우 멋진 포장이다 ) 미명아래 우리의 각종 감각, 지각능력을 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 시각은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또한 미각도 마찬가지이다. 표준화된 인스턴트 음식들은 새로운 맛을 감지하는 능력 (미각 수용체의 능력)을 떨어트리고 있다.


이렇게 표준화를 통해 쉽게 추상화되는 정보들은 인간의 뇌 중 장기기억에 쉽게 저장되는데, 이들은 매우 빠르게 정보처리를 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고,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한 해상도로 압축되어 있다.  인간의 감각기관과 두뇌의 적응 능력은 매우 뛰어나서 표준화를 통해 일부 불편함이나 귀찮음을 없애주면 그 하나의 플랫폼 (상품이던, 주거공간이던)에 자연스럽게 낚이게 되어  다른 경쟁 상품, 플랫폼으로 이동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아파트에 한번 살면 다른 주택에 살고 싶지가 않다.




반대로 비표준화된 환경에서 살고 표준화되지 않은 물건을 더 사용하게 된다면 우리의 감각은 살아 날것이며, 에너지 효율의 최대 수혜자였고 정보력의 최대 피해자였던 시지각이 살아 날것이다. 에너지 보전의 법칙에 따라 우리는 다른 곳에 사용하는 에너지를 줄여야 하겠지만, 여전히 안경과 렌즈, 교정 수술의 후유증에서 오는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환경은 너무 많이 표준화되어 있다. 심지어 도시 상가의 간판마저 표준화시키면서 우리는 감각기관의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음이 안타깝다. 그래서 아이들만이라도 불편하지만 도시를 벗어나서 구불구불하고 평탄하지 않은 길을 걷게 하고 불규칙한 바람을 받으며 자연을 접하게 해줘야 한다. 그들이 자연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것을 감지하는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며 그래서 심심하고 재미없는 곳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도시의 표준화된 시스템은 금방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자연의 미묘하고 복잡하며 표준화되지 않은 시스템을 배우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것을 배워야 하이클래스의 삶을 살 수가 있다.




어쨌건, 한국인은 한국인 고유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더불의 현대의 표준화된 생활환경이 공조하여 시지각능력을 떨어뜨리게 한 것이 안경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국학생들이 수학에 뛰어난 것이 설명되기도 한다. 수학은 사물을 다루는 게 아니라 머릿속의 정보를 프로세싱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머릿속에서 정보를 프로세싱하여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 물론 현실의 물질과 환경을 직접 다루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는 능력을 낮추어 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특히 창의성면에서 )


그런데 균형이 필요하다. 표준화를 통해 전체적인 효율성을 올릴지 모르지만, 그것이 개개인의 생존력에 영향을 끼치는 제한된 물질자원, 물리, 환경 정보를 잘 다룰 수 있는 능력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누구나 먹고살기 위해 사냥을 해야 했지만 이제는 표준화된 크기로 썰어 포장된 고기를 먹고 있다. 사냥은 이제는 시간과 돈이 있는 귀족들만이 하는 것이다. 앞으로 배양된 고기대신 진짜 소고기는 돈이 있는 사람만이 먹을 수 있고, 실제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특수면허를 가지거나 특별한 구역에서 돈을 내고 해 볼 수 있게 되리라.


시각이던, 촉각이던 실제 물리적 감각을 사용하는 일은 이제 고급활동이 된다. 자신의 사회클래스가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면, 이제는 안경이나 렌즈도 쓰지 않고 세상을 깨끗하게 지각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마치 인공 썬텐으로 피부를 태우는 시대가 있었던 것처럼 (아직도 사람들이 그런  텐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멀리 있는 나무열매의 색상을 구분하고, 길옆에 핀 풀과  꽃들을 감촉으로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이제는 자신이 고급클래스임을 보여주는 길이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 아이들이 안경을 쓰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단지 안경 쓴 모습이 보기 싫거나 불편해서라기보다 사람이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인 시지각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세상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까 봐서이다.  그리고, 감각을 제대로 사용 못하게 막는 디지털이미지와 MP3와 같은 디지털오디오를 즐기는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는 것. 심지어 종이책을 읽지 않고, 종이 위에 잉크로 글을 쓰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는 게 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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