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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이스댕 Aug 18. 2024

누구를 위한 특허인가?

디자인 에세이


마트에서 야채 슬라이서를 하나 샀다.


제품의 뒷면을 보니 '특허출원 중'이란 글자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뭐, 야채슬라이서는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도대체 이 제품은 뭐가 달라서 특허를 출원한 것일까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알고 보면 '특허출원 중'이란 특허를 받은 게 아니라 특허 신청을 했다는 뜻인데, 사실 특허 신청을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거기다, 제품이 아직 특허출원 중이라는 문구를 스티커도 아닌 제품에 양각으로 새겼다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특허 등록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닌가?


특허등록이 되어야  비로소 남들과 다른 오리지널 아이디어로 동일한 문제를 풀었다고 인정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다른 방식보다 더 났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생각'해냈다는 것도 아니다.


어느 법이나 마찬가지지만  법은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난다.  도대체 특허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특허는 남의 지적자산을 도용하는 이로부터 원작자로서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참 정의로운 장치이다. 얼핏 보면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덕분에 많은 순수한 창작자가 단지 며칠 늦게 아이디어를 등록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창작물을 포기해야 한다.

  

또는 순수하게 뭔가를 스스로 생각해 냈지만, 이미 누군가 특허 등록하진 않은 채로 유사한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었던 것을 나중에 발견하기도 한다.


특허등록을 하려면 - 원작자임을 인정받고 아이디어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하려면 - 처음부터 특허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특허 신청을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를 알아야 하고, 각 단계별로 들어가는 비용을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은 개념만으로도 특허가 인정되지만, 어떤 것은 구체설계나 실물이 있어야 된다.


창작이란 등록까지를 포함하게 된 데는 어떤 유에서 일까? 그것이 정말 작자의 노력과 지적자산을 보호하는 것일까?




디자인 특허의 예를 들어보자.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가지고 나왔을 때,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의 형태를 특허로 신청했고 실제 인정되었다. 아마 디자인특허의 유효기간이 있으니 아마 지금쯤은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 되었겠지만, 당시에는 논란이 많은 특허였다.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의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보면 안다.


실용신안이라고 불리는 개념특허를 보자.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에서는 mp3플레이어기기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사용하는  계층적 3단 메뉴 구조를 특허 냈고 이후  mp3를 삼킨 휴대폰 음악플레이어 디자인에도 영향을 끼쳤다. 3단 메뉴구조란 가수, 앨범, 곡 이렇게 곡을 찾아가는 과정이 3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 두 가지 모두 다 사실 어처구니가 없는 특허인 것이다. 둥근 모서리가 있는 직사각형은 이미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에 들어 있던 것이고 가수 앨범, 곡 이런 구조는 실제 음반 시장에서  한 아티스트의 여러 곡을 물리적으로 수록한 앨범이라는 실체가 이미 다.


그럼 독창적이라는 것이 둥근 모서리의 사각형이나 삼단구조의 정보검색 자체가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출원하는 특허는 대략 공격특허, 방어특허, 회피특허, 전략특허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게 업계 표준 용어인지는 모르겠으나 크게 특허의 의도를 보고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공격특허이다.


시장에 어떤 제품을 출시하면서  해당 제품 군에  처음으로 들어가게 되는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특허 등록이다. 특히 디자인에 관해서는 해석과 그 효과가 다르다면 그전에 유사한 제품이 있었더라도 그것과는 다른 아이디어로 인정받을 수 있다.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기업들이 복제해서 사용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구체화해서 등록을 하게 된다.  주로 경쟁업체와 상품을 염두에 두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진행하는 특허다.  

주로 경쟁기업과 차별화돼야 하는 주요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특허다.  또는 일부 특허가 이미 있더라도 더 포괄적인 특허를 통해 원 특허의 확장을 막고 원 특허의 잠재적 가치보다 훨씬 헐값에 사들이기도 한다.


두 번째는 방어특허이다.


아이디어를 만들 당시 다른 모든 개발 중, 출원 중인, 또는   등록된 특허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품까지 개발을 하게 되었는데, 유사한 기술과 디자인을 이미 등록한 기업이 소송을 걸어오는 경우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기술과 디자인을 부분 변경시키는 것이다.


특허란 결국 어떤 관점으로 어떤 부분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해석에 따라 권리의 범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공격을 받은 기술 부분에 대해서 다른 기술을 적용하되 사용자에게 보이는 디자인 부분은 유지할 수도 있다.

 

회피 특허는 원하는 기술과 디자인에 이미 특허가 있는 것을 인지하고 출시 후 공격받을 것을 대비해 미리 다른 방식으로 디자인하는 것이다.  물론 이미 존재하는 특허권자가  작은 기업이 거나 완전 다른 산업 분야라면 특허소송 비용이 없거나 자신의 사업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굳이 미리 회피할 필요는 없다.


대표적인 회피특허는 '천지인'으로 알려진 휴대폰 문자 입력 방식인데, 원작자와 삼성전자 간의 오랜 분쟁 후 삼성의 회피특허는 원작자의 천지인 방식과 다른 특허임을 인정받게 된다. 아마도 서로의 지적자산 영역을 합의하여 분쟁을 마무리한 게 아닐까 한다.  짐작건대, 원작자는 개인이므로 분쟁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합의로 끝냈을 것이고, 삼성의 입장에서도 실제 삼성의 입력방식과 비슷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먼저 만들어낸 개인을 상대로 한 분쟁에서 이기는 모습이 삼성 이미지에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합의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마지막, 전략특허는 아마도 자금이 충분한 대기업에서만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어떤 상품을 개발하면서 시장에 유사한 상품이 들어올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당장 출시할 것뿐 아니라, 출시할 것도 아니지만 그에 관련된 다른 가능한 특허를 모두 걸어 버리는 것이다.  


쓰일지 안 쓰일지 모르는 아이디어를 비싼 변리사와 특허 유지비를 들여가며 특허등록하려면 자금이 충분해야 한다. 사실 혹시나 경쟁기업이 그 변두리 아이디어를 상품화해 자기 회사 주력상품을 위협하거나 시장의 일부를 가져가서 생길 손해에 비하면 적은 비용일 수 있다.  일종의 보험이다.


그 효과를 보려면, 전반적인 기술과 소비자의 기대가 수준에 올라와 있어야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밴더블, 롤러블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다.  삼성과 엘지는 실제 제품이 나오기 전부터 각종 기술이 개발되면 쓰일 수도 있는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거기에 쓰이는 인터페이스 실용신안을 엄청나게 많이 등록해 두었다. 현시점에서는 웨어러블 스크린, 홀로그램, AR, 6G 통신과 AI, 로봇 관련한  실용신안 특허를 엄청나게 내고 있지 않을까 한다.  




특허라는  시스템은 원 창작자의  창작을 보호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어떤 것이 보호받을 수 있는지 모르거나, 그 보호시스템을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거나,  자신의 창작물을 보호할 경제력이 없으면 전혀 보호받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밀어서 잠금해제'라는 특허가 있다.  그 개념은 이미 현실 세계에 있는 잠금장치의 한 종류이기도 하지만, 그 버튼을 손으로 민다는 동작은 잠금장치가 아니더라도 너무나 많은 곳에 이미 쓰이고 있었다.


한국적인 사고방식에서는  많은 현상들을 묶어서 동일한 것으로 보는 특징이 있는데, 이미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어떤 물체의 부분조각을 밀어서 그 상태나 쓰임새를 바꾸는  것들과 같은 것으로 추상화시켜 생각하기 때문에 특별히 새로운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달랐다.




둥근 모서리 사각형도, 밀어서 잠금해제도 특허의 대상이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사물과 현상을 통합하고 추상화시키는 동양적 사고 대신, 분해하고 구체화하는 서양적 사고가 기반이 됨과 더불어, 강대국만이 정당화시킬 수 있는 보호무역 덕분이었다.


천지인 원작자와 삼성의 회피특허는 아마도 크게 보면 같은 종류의 같은 개념의 아이디어라고 볼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뜯어서 보면 많은 부분이 다르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서구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특허법에 따르면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특허는 국제 공인 특허란 게 없다. 어떤 아이디어를 나라마다 등록해야 한다. 중국에는 특허 개념이 없었다. 누구나 중국에 들어가서 벤츠모양의 차를 만들건, 에펠탑 모양의 건축물을 세우던 제재를 받지 않았었다. 지금은 중국 특허법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자국기업 보호가 우선일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은 굉장히 자국중심적인 국가이다. 아이폰이 나왔을 때, 그와 유사한 모양, 기능, 서비스를 다른 나라 제품이 탑재하고 미국 내에 팔리는 게 싫었다. 자국의 특정 디자인과 기술에 판매 독점권을 주기 위해 특허를 통해 외국 제품과 서비스를 방어하는 것이다.


기업들 간에는 특허기술 사용권을 거래하거나, 특허권 자체를 거래한다. 특허초기에는 경쟁기업의 진입을 특허로 막고, 자사 제품이 충분히 수익을 내고 나면 다른 기업에 넘겨서 수익을 추가로 낸다.




만일 특허가 창작자의 오리지널리티를 인정하는 것이 주목적이라면 특허권을 사고팔 수 있는 게 아니어야 한다. 하지만 특허는 지역에 등록이 되는 것이며 거래가 가능하고 유지비용이 든다. 따라서, 특허는 오리지널리티와는 상관없이 일종의 아이디어에 대한 지역 판매 독점권을 부여하는 - 오리지널과는 상관없이- 지극히 상업적인 것이고 국가 간에서는 보호 무역주의 적인 것이다.


많은 아이디어는 실제 구현하거나 변리사비용을 대서 특허로 등록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만들고 기업들은 원작자들에게 몇 만 원 쥐어주고는 그것을 상품화해서 떼돈을 벌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되면, 특허란 금융자본주의와 더불어 지식자본주의의 한 장치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초의 특허도 영국의 유리제조 기술을 상업의 중심지인 이태리에 들여와 등록하고 독점권을 부여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도 아마 스스로 유리제조를 하기보다 자본가의 지원을 받아 상품화하여 수식을 나누었을 것이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 지식도 포함되어 있으며 현재의 특허시스템은 지식을 상품화할 수 있는 독점권을 주기 위한 것이고 대부분 개인 창작자보다 자본조직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쓰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허의 90%  기업이 가지고 있으며, 개인의 경우 그것을 유지비용 등의 이유로 철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많은 원작자들은 그런 장치에서 떨어지는 콩곳물과 다른 자본조직에 자신을 포장해서 보여줄 때 다른 지원자들보다 조금 더 성능 좋은 인력으로 보이는 것에 동기를 부여받는 것에 만족하고 헐값에 아이디어를 소속 기업에게 넘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천지인 특허에서와 같이 개인은 자본에 이길 수 없는 세상이다. 미켈란젤로도 다빈치가문의 자본이 없었다면 그 훌륭한 작품들을 그렇게 많이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스티브잡스도 특허에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아마도 실제 디자이너인 조니아이브와 그의 팀이 디자인을 했을 것이며, 스티브잡스는 큰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이름을 올렸을 것이다. 실제 그의 첫 특허는 '퍼스널 컴퓨터'라는 개념특허이다. 그는 투자를 받아 애플이라는 회사의 이름으로 제품을 상업적으로 성공시켰다. 역시 그 특허는 애플이라는 기업의 소유가 된다.


기업 간에는 경쟁을 하게 되고,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는 그전 것 보다 소비자가 선호할 확률이 높고 그래서 기업은 특허로 그 아이디어를 독점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소비자는 아이디어의 우수성을 바로 파악할 수 없거나 아예 이전 아이디어보다 좋은지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반대로, 어떤 상품이 특허 등록되었다면 기업이 그만큼 비용을 들여 독점하고 싶어 할 만큼 뛰어난 아이디어일 것이라 무의식 중에 소비자는 짐작하고 그 제품을 선택하게 된다. 동일 기능의 제품이지만 더 비싼 쪽이 더 튼튼하거나 성능이 우수할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과 동일한 원리로 동작하고 있다.


 특허는 창작자를 위한 게 아니라 기업 간의 독점권 투쟁의 도구이며 독점권은 최고의 솔루션이라는 기대를 소비자에게 심어주며 동일 상품의 디자인에 세세한 다양성을 없앤다. 물론 창작동기부여라는 '부작용'을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서커스 단장의 주머니를 불리기 위해 곰에게 주는 칭찬 정도라는 게 한 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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