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 맞는 작법이 필요해
난 첫 번째 웹소설을 ‘습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앞으로는 <습작 1>이라고 부를 것이다).
첫 번째로 쓴 것을 완성된 작품이라고 여기는 순간 더는 발전하지 못한다.
일단 친구의 조언에 따라 과도한 설정을 빼기로 했다.
첫 번째로 뺀 설정은 《군주론》이었다.
난 <습작1>이 문명이 사라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이며, 주인공은 지하 던전으로 내려갔다가 《군주론》을 획득하는 설정을 잡았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으로 무장한 주인공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정복하는 게 이야기의 흐름이었다.
그래서 주인공에게 고대어(지금의 언어다)를 읽을 줄 안다는 특수 능력이 있다는 설정이 뒤따랐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설정에 《군주론》이 어떤 책이고, 그중에 어떤 사상을 주인공이 습득해서 사건을 해결할 것인지까지 설명해야 했다.
그래서 군주론이라는 설정을 빼고, 지하 던전에 들어갔다가 특수 능력을 얻는 설정으로 바꿨다.
그렇게 <습작2>를 완성했다.
그래도 아직 《듄》을 버리지 못했다.
그때 내가 쓴 <습작2>의 로그라인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헌터물, <몬스터 헌터>로 시작해서 <듄>으로 끝나다.”
내 시놉시스는 이랬다.
7차까지 이어진 핵전쟁으로 세상은 (거의) 멸망하고, 더스트라는 물질이 지상을 뒤덮는다.
더스트 위에서도 문명이 생겨나고, 큰 지진이 나면 멸망전 문명의 잔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문명의 잔해를 지키는 가디언이라는 몬스터에게서 마정석이 떨어지는 걸 확인한 인류는 가디언을 전문적으로 사냥하고 고대의 자원을 지상으로 가지고 올 전문인을 육성하는데, 이들이 바로 ‘헌터’다.
헌터 학교를 졸업한 A급 헌터 마영민은 S급 헌터가 되고 길드장까지 되어서 세상을 조금 더 살기 좋게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지만, 던전에서의 사고로 F급까지 강등당하고 만다.
마영민은 자신의 손에 남아 있던 마정석에서 ‘지혜의 눈’이라는 이능을 획득한다. 이로써 마영민은 마정석 안에 어떤 이능이 들어 있는지 아는 능력을 깨우치게 된다. 이는 대단한 이점으로 내용을 다 아는 상태에서 가챠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하는 능력을 원하는 확률로 얻을 수 있으니 S급 헌터로 올라서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다.
마영민은 F급 헌터들의 비애를 몸소 느낀 후 F급들로만 구성된 파티를 만든다. 이들은 비록 F급이었지만 마영민의 능력 덕분에 이능을 획득하게 돼서 최정애 멤버가 된다.
마영민의 지혜의 눈 능력은 레벨업을 할 때마다 하나씩 새로운 능력이 추가된다. 처음에는 그저 마정석에 어떤 이능이 잠재돼 있는지 보는 것이었지만, 다음에는 가디언의 레벨과 그 능력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다음에는 사람의 능력치와 개발 가능성을 볼 수 있게 된다.
마영민은 자신이 끌어모은 멤버들과 함께 최상의 던전을 공략하고 가디언을 헌팅한다.
(이때 지하철 노선 던전이 등장하거나 롯데월드 던전이 등장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런데 이들의 활동이 그동안 권력을 독점해 온 길드의 눈밖에 나게 되고, 마영민과 길드는 사사건건 부딪치는 관계가 된다.
마영민도 길드가 독점적으로 누리는 부와 권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부모님과 얽힌 일도 있다).
결국 마영민과 길드의 대결은 극으로 치닫는다. 마영민은 길드의 부대(마정석을 이용해 인간형 가디언을 만들었다)를 없애고, 길드의 비밀을 알게 된다. 길드는 위대한 헌터 P가 남겨둔 ‘월드-소멸’이라는 능력이 잠재된 마정석을 지키는 집단이었다.
월드-소멸은 지상을 덮고 있는 더스트를 걷어내 다시 고대와 연결시켜 주는 마정석이었다. 길드는 더스트가 있는 게 자신들의 독점적 권리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더스트를 없애지 않은 것이다.
길드의 비밀을 안 마영민은 과연 월드-소멸을 사용해 더스트를 없앨까?
지금 보니 아직도 설정이 과하다.
일단 이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습작2>를 완성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내용은 둘째치고 문체가 문제가 됐다.
시놉시스, 혹은 줄거리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웹소설계에서는 첫 장면을 사로잡지 못하면 그다음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웹소설은 주로 핸드폰으로 본다.
그래서 문장이 조금만 길면 화면을 답답하게 꽉 채우게 된다.
거기에 대사도 없이 묘사와 설명이 지속되면 독자는 몇 페이지를 읽기도 전에 탈락하고 만다는 이야기였다.
아래는 <습작2>의 앞부분이다.
문장의 길이와 대사의 수를 염두에 두고 한 번 읽어보자.
6차인가, 7차인가 핵전쟁으로 세상이 개같이 멸망하고,
더스트인가 뭔가가 지구를 싹 덮어버리고,
그 와중에도 새로운 문명이 태어났다고…
선인들이 전해줬다.
이후 가디언이라 불리는 몬스터가 마정석을 떨어뜨리기 시작하자 헌터는 최고 인기 직업이 되었고,
그 와중에 헌터 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A급 헌터까지 빠르게 승급한, 게다가 잘생긴 헌터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나다.
오늘도 나는 직업소개소에서 파티원을 모집한 다음 게이트를 타고 내려가 래트 같은 소형 가디언을 갈아버리며 편안히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놈이 나타났다.
“시커! 빨리 마정석 위치 찾아!”
“아아악!”
내가 외치는 동안에도 지라프의 뒷발질에 파티원들이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지라프가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키가 4미터가 넘고 목 길이만 2미터인 전설적인 가디언이다.
A급 헌터가 될 때까지 수십 개의 던전을 공략했는데, 지라프는 위대한 헌터 P가 지은 ‘가디언 도감’에서만 봤을 뿐이다.
왜 이게 여기 나타나면 안 되느냐 하면, 보통 가이언은 같은 계열끼리 몰려다니기 때문이다.
래트가 나왔으면 대형 가디언으로는 카피바라류나 조금 봐주더라도 캥거루류가 나와야 하는데, 희귀하고도 희귀한 지라프가 나타났으니 모두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게다가 코에서 내뿜는 연기를 보면 이 지라프는 불속성이다.
즉, 4미터 높이에서 아래쪽으로 불을 뿜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건 헌터들에게는 악몽이다.
위대한 헌터 P는 “불을 뿜는 지라프는 고대 전설에 나오는 드래곤이 아닐까 한다”라고 적어 놓기도 했다.
“시커! 아직이야?”
난 잘 벼려진 양손검을 잡고서는 다시 외쳤다.
시커(seeker)란 가디언의 몸 어디에 마정석이 있는지 찾을 수 있는 이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대형 가디언을 잡을 때 시커의 진가가 드러난다.
마정석은 보통 머리에 있지만 때로는 다리에, 때로는 심장에 위치해 있다.
시커가 없으면 여기저기를 도려내면서 마정성 위치를 찾아야 하는데, 이번에도 그러다가는 지라프의 불벼락을 맞게 될 것이다.
D급에 불과한 우리 파티의 시커가 헤매고 있는 동안 지라프는 이빨을 갈기 시작했다.
‘위험한데… 위험해.’
난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불속성 가디언은 몸속에 기름주머니가 있다. 이걸 토하듯이 끌어올려 내뿜는데 이때 이를 갈아서 불꽃을 만든다.
이를 간다는 건 곧 불을 내뿜겠다는 신호나 다름없다. 이쯤 되면 불을 뿜기 전에 목을 베는 수밖에 없다.
시커를 기다리다가 숯덩이가 되느니 일단 시도해봐야 한다.
한 번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문장 길이도 길지만 대사도 없이 상황을 설명하고 묘사하는 글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핸드폰으로 보기에 맞는 속도감과 대사라는 숙제가 던져졌다.
《군주론》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패자가 된다.”
미래를 예측하더라도 내가 무장하지 않으면 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웹소설계에서는, 아무리 스토리가 좋더라도 스킬(작법)을 갖추지 않으면 데뷔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