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유조 너는? 한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했지. 그곳은 어떤 곳이야?”
“글쎄.”
가장 처음 생각난 단어는 “미친 듯이 “라는 단어였다.
“미친 듯이 바쁘고, 경쟁적이고… 정신이 없는 곳이지.”
“런던보다 더?”
“런던보다 훨씬 더.”
“상상이 안 가. 난 처음 런던 와서 여기가 세계에서 가장 바쁜 도시일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살던 곳과는 속도도 모든 게 달랐거든. 여기서는 사람들이 인사도 안 하고 스쳐 지나가잖아. “
“맞아, 그렇긴 하지.”
“그곳이 그리워?”
“응. 그래도 친숙하니까. 익숙한 언어, 좋아하는 사람들, 내가 할 일이 있으니까. “
“티베트가 그리워?”
“그러기엔 너무 오래됐어.”
나는 처음으로 노바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고요하고 느린 택시 속의 적막함 때문이었는지, 3일간 부쩍 친해진 탓이었는지 모르겠다. 3일 전만 해도 나는 그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자주 그를 피하곤 했었다. 하지만 촬영을 같이 한 3일 동안 비교적 여유로운 조명업무를 맡은 그가 내가 맡은 일을 도와주는 사이 가까이서 그를 지켜보며 정이 들었던 것 같다. 대기 시간 틈틈이 인도 과자를 모두에게 나눠주면서 먹는 모습이나,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을 읽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그의 모습으로 보였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노바는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술에 취해서 계속 자학적인 말을 늘어놓거나, 눈치 없이 계속해서 생뚱맞은 철학적인 말을 늘어뜨리거나, 상대가 불편할 수 있는 사적인 질문을 불쑥하거나, 아무 데서나 혀를 내밀며 조커의 표정을 흉내 내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친절하고 외로운 한 인간이었다. 바다처럼 깊고 넓고, 많은 파도를 겪었지만 속은 고요한 사람.
“여자친구나 애인은 없어? “
”잠깐 만나고 사귄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혼자인지 오래됐어. “
”네가 혼자라고 하는 게 의외다. 엄청 외향적으로 보이는데 “
”그런가? 아니야. 나랑 잠양 둘 뿐이야. “
“잠양.”
잠양은 노바가 키우는 고양이었다. 학교 과제 촬영을 위해 노바의 집에 갔을 때 본 적이 있었다. 노바의 집은 런던의 남동쪽에 위치한 울리치에 있었다. 오래된 건물에 있는 케밥 가게와 중동음식점 사이에 작은 파란 문을 열자, 좁고 눅눅한 카펫 냄새가 나는 계단을 올라야 했다. 각 층의 집 현관 앞에 신발들과 자전거들, 빈 콜라병과 피자상자등이 무질서하게 쌓여있었고, 여러 나라의 음식과 마리화나의 냄새가 섞였다. 노바의 플랫은 건물의 꼭대기층인 4층이었다. 노바의 문은 열려있었고, 촬영을 도와주기로 한 다른 친구 둘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커버를 벗긴, 얼룩이 많은 누런 매트리스가 보였다. 벽 쪽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방 한가운데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듯이 비스듬히 놓여있었고, 전등갓이 비뚤어져있었다. 작은 네모칸 두 개가 붙어있는 창문의 커튼은 조금 뜯겨있었다. 얼핏 보면 도둑맞은 집처럼 보였다. 한 칸의 화장실 바로 앞에는 작은 소파가 있었고, 소파 바로 뒤에는 부엌이, 부엌 옆에는 커다란 조명기구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벽지는 얼룩과 곰팡이가 퍼져있고, 바닥은 먼지로 가득하고 천장에는 거미줄이 있었다. 나는 어떻게 이런 정신없는 곳에 살 수 있나 생각하면서도 입 밖으로는 집이 매우 “쿨“하고 ”아티스틱“하다고 칭찬했다. 쿨하다는 것은 가식이었지만 아티스틱하다는 말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날의 촬영은 방의 상태만큼이나 엉망이었다.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밖에는 강한 비바람이 치기 시작했다. 노바는 정신없이 계속 매트리스 위를 펄쩍 뛰며 왔다 갔다 하면서, 문 앞에는 카메라를 세팅하고, 창문 밖에 보이는 지붕 위에 조명을 아슬아슬하게 설치했다. 어딘가 정신이 없었고 고양되어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비스듬한 지붕 위에 설치된 커다란 조명기구를 걱정했지만 계속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반복했다. 어쩐 이유에서인지 카메라 배터리는 계속 방전이 되었고, 노바는 촬영버튼을 누르는 것을 계속 까먹었다. 네 명의 사람들이 물건으로 가득 찬 좁은 방을 왔다 갔다 하며 습기가 찼다. 누군가 모래가 덮인 트레이를 잘못 밟아서 엎어뜨렸다. 모래들이 흩어지면서 안 그래도 더운 방에 고양이 대변냄새까지 퍼졌다. 노바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작은 쓰레받기로 고양이 대변과 모래를 치웠다. 그러다가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고,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Shit. 방에 있는 거의 모두가 동시에 말했다. 지붕 위에 올려둔 커다란 조명이 넘어지며 부서진 것이었다. 노바는 탁상을 밟고 겨우 머리만 들어갈 것 같은 작은 창문을 통해 지붕으로 기어나갔다. 조명갓이 바람에 날려 지붕 아래 1층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노바는 패닉을 하면서 지붕 위에 머리를 감싸고 섰다. 나는 노바를 도와주기 위해 직접 1층으로 내려가보겠다고 했고, 노바는 창문을 통해 조명대를 다시 친구들에게 넘겨주기 시작했다. 정말 가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검은 고양이가 작은 울음소리를 내며 창문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잠양이었다. 나는 그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고 무너져갈 것 같은 집을 속으로 적나라하게 싫어하며 판단하고 있는 내 모습에 조금 놀랐다. 어쩌면 내가 느낀 것은 일종의 우월함이었는 지도 모른다.
수린의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나는 늘 내가 조금 지저분하고 정돈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 아빠, 외동딸. 세 사람이 사는 아파트는 굉장히 깔끔했는데, 하얀 대리석의 벽과 따뜻한 카펫, 베이지색의 편안한 소파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거실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고,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고, 백합 향기가 났다. 화장실에는 늘 비치용 타월과 실제 쓰는 타월이 따로 개어져 있었다. 수린의 집에 가면, 나도 모르게 세면대를 쓴 후 휴지로 물기를 닦고, 밥을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게 되었다. 수린의 부모는 나와 혜선에게 늘 친절했지만, 보이지 않는 벽과 선이 느껴졌다. 그 집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어떤 종류의 기준에 부합한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반대로 우리 집은 비교적 평범한 아파트였다. 아주 깔끔하지도, 그렇다고 지저분하지도 않은. 수린이 집에 놀러 올 때마다 나는 조금 긴장했다. 그녀가 강아지 목욕 좀 시키라고 말하거나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울 때면 괜히 움츠려드는 기분이 들었다. 수린의 집에 놀러 가던 그 나이 때부터 깔끔함과 질서와 기준과 선은 우월함의 척도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혜선의 아파트는 가장 작았다. 물건들이 가득 차 있고, 항상 반찬통들이 나와있고, 신발들이 정리가 돼있지 않았다. 하지만 혜선의 엄마는 매우 친절했고, 우리를 편안하게 대해주며 친구처럼 수다를 떨었다. 혜선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할 때마다 수린은 핑계를 대면서 안 갈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그 집은 너무 멀다거나, 방이 작아서 불편하다거나, 동네가 위험해서 가기 싫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에게 몰래 하곤 했다. 뿐만 아니라 수린은 나에게 자주 혜선에 대해 험담을 하며, 혜선의 학교 성적이나, 가정환경, 불안정한 성격에 대해 걱정하는 듯이 말하며 고개를 젓곤 했다. 그리고 혜선과 다르게 자신과 비슷한 나를 은근히 치켜세우며, 역시 우리 둘은 더 잘 맞는다는 류의 말을 하곤 했다. “우리 부모님은 너를 좋아해.”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때는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수린에게 어울리는 친구로 인정을 받는 것 같아 기뻤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그 깔끔하고 안락하며 백합향기가 나는 세계의 일원이 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언제부터 키운 거야?”
“런던에 처음 온 지 얼마 안돼서, 저렴하게 가구를 사기 위해 웹사이트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누가 이 고양이 사진을 올린 거야. 물건을 거래하는 웹사이트에 고양이를 40파운드에 올렸는데. 왠지 모르게 그걸 보자마자 이 고양이를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
고양이를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사게 되었다니, 또 한 번 예상을 빗나가는 대답에 나는 웃었다. 하지만 노바는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잠양과 나의 관계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깊어. 울위치에 화장실과 부엌을 따로 쓸 수 있는 방을 얻은 것도 잠양과 조명기구들을 위해서였어. 한 달에 백 파운드를 내는데, 그전에는 더 적은 돈을 나고 지냈었거든. 가끔은 그냥 마리화나에 취해 누워서 며칠씩 지내다가도 잠양이 울면 정신이 차려져. 매일 열심히 조명일을 찾아서 하는 것에는 잠양의 역할이 커. 나는 잠양에게, 내 자신에게 느끼는 것 이상의 책임감을 느끼거든. 우리 사이에는 영혼적인 유대감이 있어.”
“노바. 너는 종교가 있어?”
“음. 종교라기보다는, 나는 불교의 철학을 수련하고 있어.”
“불교. 그렇구나.”
“불교에서는 중도라는 게 있는데. 그것을 따라 나는 나 자신을 비어있는 상태로 만들려고 해. 세상은 너무 빠르고 어지럽지만. 계속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으려고 하는 거지.”
“비어있는 상태. 그건 나한테 너무 어려운 말이다. 난 늘 뭔가로 항상 넘칠 만큼 차 있는 기분이야.”
나는 아무렇지 않게,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건물들과 가게들과 사람들을 보면서 툭 내뱉었다. 누군가에게는, 어느 시점에는 너무 무겁고 진지한 말이어서 잘 꺼내게 되지 않는 마음들이 노바 앞에서는 가볍고 자연스럽게 나와버렸다.
“그렇지. 나한테도 늘 어려워. 사실 나는 너무 오래 고통스러웠거든. 고통을 잊고 싶었어. 하지만 깨끗한 상태가 되고 싶어서 담배와 술, 마리화나를 끊었어. 그리고 이제 조금 더 맑은 정신으로 살아보려고 하고 있어. 고통은 그대로 인정하고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자유로움을 느껴.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연습.”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 노바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모든 것을 믿는 사람 같았다. 그런 사람 특유의 야생적인 순수함이 있었다. 나는 정반대로 아무것도 믿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서열과 권력다툼,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은근한 기싸움에 지쳐있었다. 한국을 떠나게 된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보이지 않는 은근한 견제들. 누가 더 강한 사람인지 우열을 가리는 데 쓰는 에너지들. 누가 더 매력적으로 사람들을 잘 이끄는 가에 대한 권력싸움. 나는 그런 것들에 뛰어나지도 못했지만 따라가기에는 자존심이 강했다. 그 모든 것을 초월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학교나 직장이나 집단에 속하게 될 때마다 다시 그 서열 싸움에 휘말리곤 했다. 뒤쳐지고 싶지 않고, 무시당하기 싫고, 만만하게 보이기 싫었다. 가끔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있고 싶기도 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고 싶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원했고, 그 중간에서 이도저도 못한 채로 계속 방황하고 있었다. 나의 중도는 노바의 중도와 너무나도 다른 성질의 길이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가끔 수린은 나에게 잘 지내냐고 연락을 한다. 그녀는 내가 30대가 되어서 런던으로 이주를 한 것이 “무모한 계획”이라고 혀를 차면서도, 내가 어느 동네에 어떤 형편으로 사는지, 어떤 일을 하고 어느 정도의 돈을 벌고 있는지 알아내고 싶어 한다. 나는 며칠이 지나서야 대답을 하며 대답하기 싫은 질문은 애매하게 피하거나 대답하기 싫어하는 티를 애써 감추지 않는다. 지금 나는 수린의 집보다 더 깔끔하고 안락하며 우아한 꽃향이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그 말을 굳이 하거나, 은근히 사진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혜선과 나는 가끔 긴 통화를 나눈다.
“난 아직도 가끔 수린의 부모님에 대한 꿈을 꿔.”
“너도 그래? 나도. 내 꿈속에서 항상 우리는 수린의 집에 있어. “
“그리고 뭔가 비극적인, 기분 나쁜 일이 펼쳐져.”
“나도. 그래서 일어나면,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어.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내가 그때에 머물러있는 것 같은 질척이는 기분. “
“똑같아. 왜일까? 왜 자꾸 우리는 그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걸까?”
“그러게. 우리에게 그곳이 큰 영향을 끼쳤나 봐. “
“유조야. 사실 있잖아. 난 수린의 집에서 잘 때마다 숨이 막혔어.”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안락한 백합향이 나와 혜선을 얼마나 긴장하게 했었는지. 우리와 다른 세계. 아이들은 절대로 흐트러지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며, 사고 치지 않고,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전문직을 가져야 하는 그 세계에 속하고 싶은 생각도 없으면서 그 안에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습에 맞추게 되었다. 어떤 공간이나 사람이 가지고 있는 확실성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시간이 지나면 가브리엘라와 나와 셀린도 아마 연락이 끊길 것이다. 서열로 이루어진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곧 서로의 필요성이 바닥날 것이고, 그럼 함께 웃고 농담을 하고 험담를 하던 시간은 영양가 없는 희미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창문 밖으로 한 빨간 런던 버스가 서 있었다. 주위로 노란 테이프가 둘러싸여 있고, 경찰차와 구급차의 사이렌이 가까운 곳에서 울렸다. 며칠 전에도, 몇 주 전에도, 이 주변에서는 혐오범죄가 일어났었다.
“정말 그러고 싶다.”
나는 또 다른 범죄가 일어난 것 같은 도시의 짙은 밤을 바라보며 노바에게 대답했다. 진심이었다. 나는 노바가 되고 싶다고, 어쩌면 노바가 되기 위해서 이 도시에 와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노바. 내가 지금 유일하게 아는 고독하고 고유하고 자유로운 사람. 택시에서 내리기 전, 나는 노바에게 물었다.
”노바라는 이름은 너 스스로 지은 거야? “
”응. 나는 조명을 다루는 사람이니까. 그 이름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었어. “
”그렇지. 너는 수퍼노바잖아. “
”맞아. 수퍼노바. “
”안녕, 수퍼노바. 오늘 고마웠어. “
”잘 자. “
나는 택시에서 내린 후, 고개를 뒤로 젖혀 위를 올려다보았다. 높은 아파트 빌딩 위에는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의 발 밑에 있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은근한 멸시를 당하고 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도 차 안에서 노바와 나눈 대화는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 줄 것 같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