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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연 Mar 11. 2016

자몽 -3-

사실은, 나도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늦어진 퇴근에 그녀는 덩달아 운동을 쉬었다. 테니스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내가 사과하자 그녀는 대답 대신 하품을 하며 텔레비전을 켰다.

간호사도 못해먹을 직업이구나.

그래도 중환자실이 제일 편해. 환자들은 다 누워있지, 귀찮게 구는 보호자도 없고. 

나 오늘 엄청 시달렸어. 이상한 손님이 샵에 와서 난리를 치고 갔어. 정신과 간호사들 안 힘들다니. 세상에 미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며 말했다.

정신병동에서 걔가 또 말썽부렸다더라. 

아, 저번에 말한 걔? 

언니언니하면서 후배를 쫒아다녔는데 바빠서 못 들은 척 했더니 병원이 떠나가라 울더래.

걔 스물 한 살짜리라고 했나. 그게 그 아이 세계인 걸 어쩌겠어. 

나는 아빠와 함께 보았던 M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파랗게 불어 알아볼 수 없던 얼굴. M은 스물 한 살이었다. 혹시 교통사고 때문이었을까. 사고의 기억이 M에게 지독한 우울증을 남겼는지도 몰랐다. 트라우마에서 출발한 질환들은 정신을 망가뜨리기 쉬웠다. 전제를 깔고 보니 정말 M이 우울증으로 자살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까워졌다.

우리 여행 갈래? 

그녀가 멈춘 채널에서 남자 둘이 전국 맛집 투어를 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녀가 휴대폰으로 달력을 켜 내 쪽으로 내밀었다.

휴일이 붙어있네. 이렇게 삼일 쭉. 어때?

어디로?

글쎄. 전주도 좋고, 통영도 가보고 싶었는데.

나는 전주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 통영으로 가자. 싱싱한 회도 먹고.

내가 손을 내밀자 그녀가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기차 티켓을 알아보겠다며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M이 서울로 올라오는 장면을 상상했다. 왜 말도 없이 서울에, 한강에 온 걸까. 혼자 여행을 하려던 것이었을까. 

자리가 아직 있나보네. 

그녀가 나를 툭툭 건드렸다.

입석이 아니라 다행이야. 예매한다.

있잖아, 엄마랑 M이랑 서울에서 같이 살았으면 어땠을까. 

다 같이라.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그럼 나를 못 만났겠지.

그거야 당연한 소리고.

나를 만나지 않았던 게 나았을 수도 있겠네. 

그녀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치 M과 내가 만나지 못한 것이 그녀의 책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그건 절대 아니라며 내게 기대어 있는 그녀를 밀어냈다.

야, 근데 너 발가락이 진짜 못생겼다.

그녀는 이참에 페디큐어를 해주겠다며 내 발을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기본적인 재료들을 꺼내들었다. 

시간 날 때 샵에 와. 그냥 해줄게.  

참, 그 때도 발톱을 깎고 있었네.

뭐, 언제? 

M에게 전화가 왔었을 때. 두 달 전쯤.

그날의 통화는 이전보다는 조금 긴 편이었지만 대화는 여전히 적었다. 저기, 저, 이혜원님 맞으세요? 조심스러운 말투에 나는 어깨와 뺨 사이에 끼우고 있던 휴대폰을 바로잡았다. 누구시죠? 언니, 저요. 이렇게 소심하게 나를 언니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누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직장 동료 중에도 같이 사는 친구들 중에도 딱히 없었다. 한참 기억을 더듬거린 후에야 나는 M을 찾아냈다. 내가 아는 체를 하자 M이 잘 지내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M은 아버지와 고모와 할머니의 안부를 차례로 물었고 나는 모두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M도 그러한 지를 물었고, 그 뒤로 잘 기억나지 않는 미적지근한 대화가 조금 더 이어졌다. ……서울은 어때요. 그만 전화를 끊으려는 나를 붙잡은 M이 물었다. 나는 말투에서 M이 제주도의 생활을 정리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꼈다. 정 그러면 거기 혼자 있지 말고 올라와. 엄지발톱이 따악, 소리를 내며 잘려나갔다. 소리가 너무 커서 나는 조금 당황했다. M은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날카로워진 엄지발톱의 단면을 만지작거렸다. 아니에요, 언니. 쉬세요. M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것이 나와 M의 마지막이었다. 




차트를 작성하고 있는데 동료가 나를 불렀다. 아빠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가족들은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아빠는 근래 들어 부쩍 가족들의 건강에 관심이 많아졌다.

내가 간다니까. 할머니는요?

일층에 고모랑. 금방이더라. 저번보다 더 일찍 끝난 것 같네.

할머니 모시고 식사하고 가요.  

내일 집에 오니? 휴일인데.

아뇨. 약속 있어요.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가보라며 손짓했다. 미소를 지어보이고 돌아서는데 아빠가 조심스레 내 팔을 붙잡았다. 아빠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아빠는 거짓말을 잘 하지 못했다. 나는 우물쭈물하는 아빠에게 질문을 독촉했다.

실은 얼마 전에 전화가 왔었는데 말이다.

아빠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M의 친구라는 아이 기억하지? 장례식장에 있던. 그 아이가 그러더라고. 예전에 술을 마시다가 M이 말했더란다. 어렸을 때의 사고는 자기만 보았고 자기만 기억하고 있다고. 그 날 계속 화를 내고 있었는데, 왜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집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었단다. 언니는 진실을 모르는데, 알아야 되는데, 알려줘야 되는데, 했었대.

말을 마친 아빠의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괜히 이야기 했나 보구나. 미안하다.

아빠가 돌아서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나는 조용히 아빠를 불렀다. 

잊어버리세요.

뭘 말이냐.

전부요. 담아두지 말라고요.

주변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저 환자 오더 누가 내렸어요? 의사의 신경질적인 물음에 동료 한 명이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연락할게요, 아빠.

아빠는 대답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퇴근시간의 지하철역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처럼의 긴 휴일을 앞둔 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혼잡했다. 나는 기둥에 기대어 아빠에게 다음주엔 꼭 집에 가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컴컴한 통로를 빠져나온 지하철은 야경 속으로 질주했다. 화려한 불빛이 한강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두 달 전 내게 걸려왔던 전화를 떠올렸다. 미적지근하게 이어지던 대화사이의 공백들. 나에겐 어색함이었지만 어쩌면 M에게는 수없이 고민하던 시간들이었는지도 몰랐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M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날의 사고에 대해, 내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진실들에 대해. 긴 한강을 바라보면서 M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사는 집을 찾아오려고 시도했을까. 사고가 난 건 자신의 탓이라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내게 고백하고 싶었을까. 

사실은, 나도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막상 말하려면 생각나지 않았던, 너에게 묻기는 싫었지만 궁금했던. 엄마는 왜 내가 아니라, 너였을까.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녀였다. 어디쯤이야? 나는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답장했다. 지하철은 이제 한강을 지나 건물들 사이로 들어서고 있었다. 휴일은 금방 지나갈 것이었다. 병원에 돌아왔을 때 빈 침대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Drawing by SEY CHRISTIN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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