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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연 Mar 30. 2016

자연스러운 인생 -2-

미소가 아름답다는 말은 아무래도 인생의 진리였다



샤워를 하고 거울 앞에 섰다. 머리카락이 제법 자라 있었다. 나는 긴 머리가 어쩐지 불편하고 어색했다. 귀를 덮는 헤어스타일은 내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Y의 타박에 못 이겨 목덜미까지 머리를 길러본 적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자르고 말았다. Y는 짧은 게 훨씬 낫네, 하는 말로 여름철에 더위를 참아가며 길렀던 나의 인내심을 폭발하게 했다. 머리카락을 뒤적이자 새치 몇 가닥이 드러났다. 새치가 더 많아진다면 뽑는 것보다 염색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면서 탈모가 왔다. 스트레스성 탈모였다. 나는 어머니를 닮아 머리숱이 많은 편이었지만,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탈모 유전자는 거의 남성에게만 전달된다는 말을 들은 후로 조금 불안해졌다. 거울 가까이 얼굴을 대고 눈을 살펴보았다. 쌍꺼풀이 없고 옆으로 찢어진 눈이었지만 다크서클과 주름만 제외한다면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신체 부위였다. 진한 쌍꺼풀을 가진 남자는 어딘지 조금 느끼해 보였는데, Y는 이 의견에 적극 동의했다. 빈약한 쇄골과 가슴 아래로 튀어나온 갈비뼈를 만져보았다. 요즘 들어 살이 더 빠진 것 같았다. 가슴과 배에 힘을 주자 근육이 옅게 드러났다. 운동을 하는 것이 좋을까. 나는 다시 미소를 지어보았다. 웃지 않는 것보다는 웃는 게 차라리 나아보였다. 미소가 아름답다는 말은 아무래도 인생의 진리였다.     




Y는 밝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서 있었다. 레이스가 달린 끝자락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Y는 하늘거리는 원피스나 치마를 자주 입었고, 순댓국을 좋아했다. Y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내가 가게를 전적으로 맡게 된 이년 전부터 단골 손님이었다. 한 달에 몇 번씩 늦은 저녁에 와선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갔다. 도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골목에 위치한 가게에는 직장인들의 회식이 잦았다. 일에 찌들어 보이는 직장인들 틈에서 취업준비생인 Y와 친구들은 아직 돋보였다.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지 발랄함이 가득한 Y의 목소리는 가게를 정리한 뒤에도 여운처럼 남았다. 어느 금요일 저녁, Y는 문을 닫을 즈음까지 술을 마시고 계산대 앞에 서서 말했다. 여기 순댓국은 진짜 맛있어요, 아저, 아니 오빠. Y는 오빠를 말하며 내 팔을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Y가 정말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날 Y는 가슴팍이 파인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나는 Y의 얼굴에서 가슴으로 시선을 내렸다. 얼마에요? Y가 빌지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나는 얼른 포스기로 시선을 돌렸다. 오만팔천원이요. 아,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보다. Y가 카드를 건네며 말했다. 나는 오만오천원만 계산했다. 

Y는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나를 타박했다. Y의 말투엔 장난이 가득했다. 나는 가게에서 육수로 쓸 사골을 우리다가 늦었다고 대답했다. 사골을 우리는 일은 매일 해야 했지만 손이 가장 많이 갔고 냄새도 지독했다.  

“알지, 오빠 바쁜 거. 오빠네 순댓국은 정말 맛있어.”

Y가 팔짱을 꼈다.  

“오빠, 아무리 바빠도 사람이 교양도 좀 쌓고 그래야지. 그런 김에 우리 오늘 영화 보자.” 

Y가 선택한 영화는 재미없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가 끈질기게 유괴범을 추적해 마침내 복수하는 내용이었다. 뚜렷하게 생각나지는 않았지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 익숙한 스토리였다. Y는 슬픈 장면이 나올 때마다 손가락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Y는 감수성이 지나쳤다. 나는 하품을 하며 결말을 유추하다가 정확히 들어맞아 오히려 놀랐다. 유일하게 볼만했던 건 주인공 여자의 얼굴이었다. 여배우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예뻤다. 나는 Y의 얼굴을 흘깃거리며 영화 속 배우와 비교했다. 나는 평생 배우처럼 예쁜 여자는 만나지 못할 것이었다. 여배우는 특히 웃을 때 예뻤다. 퍼스트스마일 아카데미의 원장처럼 입꼬리의 높낮이가 대칭으로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여배우도 아카데미를 다녔을까.     




퍼스트스마일 아카데미는 미소만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스피치 아카데미였다. 면접을 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적당히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미소 외에도 또렷하고 명확한 발성과 발음, 긍정적인 방식으로 말하는 방법, 나아가 바른 인상을 주는 자세교정법도 가르쳤다. 아카데미의 모든 방마다 ‘자연스럽게’가 적혀있었다. 

아카데미를 등록한 건 충동적인 이유에서였다. 강사들의 예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자신감이 생길 것 같고, 두 달에 사십 만원으로 자신감이 생길 수만 있다면 한 번 정도는 다녀보는 게 괜찮을 것도 같았다. 나는 지나치게 예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본능이 한심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카데미의 강사들은 모두 Y보다 예뻤다. 하는 수 없었다. 

아카데미에는 여자가 많았다. 대부분이 대학을 막 졸업하고 취직을 준비하는 이십대 중후반의 여자들이었다. 학원의 타겟은 주로 스튜어디스를 지망하는 여자들인 것 같았다. 여자들은 실제 면접을 보기라도 하듯 단정한 차림으로 학원에 들어와 스마일룸과 스피치룸과 트레이닝룸을 들락거렸다. 스피치룸으로 가기 위해 복도로 나섰을 때,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들은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나보다 훨씬 훤칠해보였다. 청바지와 후드티셔츠 차림으로 학원을 드나드는 것은 나뿐이었다. 나는 넥타이를 마지막으로 맨 적이 언제였는지 떠올려보았다. 전문대를 졸업했을 때. 그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스피치룸 안에는 다섯 명의 수강생들이 와있었다. 그들은 연습을 통해 만들어낸 미소를 유지한 채 바른 자세로 앉아있었다. 나는 면접관들 앞에서 인위적으로 웃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면접관들은 인위적인 자연스러움을 좋아할까. 인위적이라는 말을 생각하다가 문득 내가 Y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위적이라는 말은 어쩐지 문학적인 느낌이었다. 나는 문학적인 게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인위적이든 자연스러움이든 문학적이든 그런 것은 사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사는 데 미소는 도움이 될까, 고민하자마자 강사가 들어왔다. 

“자, 시작해볼까요?”

머리를 올려 묶은 강사는 걸음걸이가 당당하고 활기찼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목소리가 있어요. 각각의 보이스 컬러를 찾아 코칭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사는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시켰다. 수강생들은 준비라도 해온 듯 간결하고 깔끔하게 자신에 대해 소개했다. 저는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닌 사람입니다. 저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저는 성실하고 끈기있는 사람입니다. 차례가 되자 나는 안녕하세요와 이름만을 이야기했다. 나이도 말하려고 했지만 누구도 나이를 소개하지 않기에 그만두었다. 강사는 별 볼일 없는 소개에도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격려를 유도했다. 

강사는 기초적인 발성법부터 가르쳤다. 배우들이 특히 많이 연습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나는 영화 속에서 보았던 여배우를 생각했다.

“따라해 보세요. 아! 입을 크게 벌리고, 아!”

수강생들이 강사의 선창을 따라 외쳤다. 

“배에 힘을 주세요. 단전 쪽에요. 한 번에 단단하게 내지른다는 느낌으로요.”

“아!”

“아!”

“아! 아!”

“아! 아!”

발성은 어려웠다. 내 목소리는 얇은 편이었다. 강사가 알려주는 데로 배에 숨을 채우고 주고 목을 열어 소리를 내보았지만 우렁차지 않았다. 오히려 배에 힘을 줄수록 원하는 중저음은 잘 나오지 않았다. 복식호흡은 물론이고 크래시아 발성법은 더욱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단순할 줄 알았던 발성법은 다양하고 복잡했다. 그만둘까 생각했지만 돈이 조금 아까워서 두 달을 채워보기로 했다. 수업을 수료하면 자신감을 얻어 미래를 바꿀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강사는 연신 희망적인 단어만을 구사했다.

한 달 동안의 발성 연습은 큰 효과가 없었다. 이전보다 목소리가 조금 커지긴 했지만 매력적인 톤에는 미치지 못했다. 가게를 정리한 뒤 방에서 혼자 아, 아,를 연습하고 있으면 이상스럽게도 Y의 벗은 몸만 떠올랐다. 강사는 내 힘없는 발성을 듣고도 친절하게 발음 수업을 들어볼 것을 권했다. 아카데미의 강사들은 인상을 쓰거나 불편함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다는 말만 기계처럼 되풀이했다. 나는 거울을 보다가 발음보다도 이를 교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과 섞여있으니 튀어나온 앞니가 더욱 신경 쓰였다. 이를 교정하는 비용은 얼마가 들까. 미래에는 이를 교정해주는 인공지능로봇도 나올까.

강사는 입을 크고 자세하게 움직이며 가나다라마바사를 말했다.   

“가는 혀 모양이 이렇게 됩니다.”

강사는 가-, 길게 말하고는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나는 강사의 입과 혀의 모양을 따라하려 애썼다.

“가, 갸. 차이가 있죠?”

“가, 갸.” 

강사는 화이트보드에 치조음, 양순음, 연구개음 등의 생소한 단어들을 적으며 전달력을 높이는 발음법을 설명했다. 나는 삼십년 만에 내 시옷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울을 보면서 연습하니 말을 할 때 아래턱을 빼는 습관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가게에서 술주정을 부리고 나가는 손님들 뒤로 욕을 뱉을 때 발음이 새는 느낌이 들던 이유였다. 강사의 발음은 기계처럼 정확하고 또박또박했다. 나는 연습을 하다말고 강사의 입술에 집중했다. 저렇게 예쁜 여자는 남자친구가 있을까. 있겠지. 나는 Y를 떠올렸다. Y의 입술에서는 자주 짠 맛이 났다. 강사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황급히 화이트보드로 시선을 돌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길님, 입을 크게 벌리세요. 사, 샤.” 

Drawing by SEY CHRISTIN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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