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밤 신청곡

열여덟의 라디오

by 은빛영글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살아온 너의 용기를 위해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봄 여름 가을 겨울 - Bravo My Life 中)


라디오를 켜 놓은 채 책상에 엎드려 한참 울다 잠들었다. 그래야 라디오 소리가 울음을 방 안에 가두어 둘 것 같았다. 잠에서 덜 깬 귓가에 젖어드는 노랫말과 DJ의 목소리가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아 채 마르지 않은 눈두덩이가 다시 빠르게 부어올랐다.




@ pixabay


IMF

1990년 대 뉴스와 신문을 도배하며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앉았고 목숨을 끊고 괴로워했다. 누가 더 힘든가 경쟁이라도 하듯 쓰러지는 와중에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을 잃고 차도 잃었다. 아빠는 집에 들어오지 못했고 지인에게 빌린 차에서 쪽잠을 자거나 가끔 사람들 눈을 피해 집에 들어와 급하게 씻고 도망치듯 나갔다. 누군가 문을 두들기면 안 그래도 어두운 집 안에 숨을 죽인 채 빈 집인 척해야만 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빨간딱지를 여기저기 붙여 다 가져갔으면서 뭘 더 달라고 문을 두들기는지 화도 났다.


"실직자 자녀 장학금이라는 제도가 있더라. 동네 통장님께 사인만 받아오면 된대."

수학여행을 못 간다 하니 담임 선생님이 호출을 하셨다. IMF로 망한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돈 앞에서는 발가벗겨지는 게 현실이었다 보다. 들은 이야기를 엄마에게 전달하자 엄마는 통장님 댁 앞에 나를 데려다주고 사라지셨다. '왜 내가..'라고 묻고 싶었지만 아마 엄마도 들키고 싶지 않았나 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참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긴장감을 가득 담아 벨을 눌렀지만 마음가짐이 머쓱하게도 너무나 간단했다. 누군가 이미 사인을 받아 갔던 건지 능숙하게 서류에 사인을 해주고 나를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두 눈앞에 꾸벅 인사를 하고 문을 닫았다. 이 집에서 나오는 걸 누구라도 볼까 싶어 싶어 후다닥 돌아와 어른들이 만들어 준 종이를 가방에 구겨 넣고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은 채 울기 시작했다. 아마 사춘기였을 거다. 창피하기도 했던 것 같고 억울하기도 했던 것 같다.

엄마는 가끔 '우리 큰 딸은 참 대견해'라고 그 시절의 나를 칭찬한다. 미안하다고 했다면 차라리 더 슬플 것 같다. 작은 방에서 열여덟 살의 아이는 누구를 향한 원망인 줄도 모른 채 한없이 원망하고 원망하며 그렇게 울다 잠이 들었다. 내가 가기 싫다고 엄마가 가라고 화내지 않고, 삭히며 울던 그 시절의 나를 당장 가서 토닥여 주고 싶다.




@ pixabay


울음소리와 섞여 나왔던 그 노래는 흔히 말하는 나의 '인생 노래'가 되었고 조금은 외로웠던 당시 서서히 라디오에 빠져 들었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교복 안으로 이어폰을 꽂아 몰래 라디오를 들었다. TV도 좋아했지만 라디오 속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하는 세계가 더 재미있었다. 숙제 대신 엽서에 그림을 그려 넣고 조잘조잘 사연도 빼곡히 적어 우체통에 넣었다. 혹시라도 DJ의 목소리로 읽히면 세상 어떤 첫사랑 보다 더 설레고 행복했다. 사연을 보낸 코너를 일주일 동안 두근대며 기다렸고 읽히지 않아 버려졌을 엽서를 생각하면 작가의 머리 끄뎅이라도 잡고 싶었다. 내가 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들어줬으면 싶었다. 태지 오빠 이후 내 삶에 오빠는 없을 줄 알았는데 줄줄이 나타난 오빠들 덕에 방송국 구경도 하며 더 빠져 들었다. 라디오 작가가 되어 오빠들도 만나 보고 싶었다. 스트리밍 사이트나 앱 따위가 없던 시절이라 테이프를 끼워 놓고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길 기다려 녹음 버튼을 눌러 댄 적도 많았다. 노래를 녹음하다 DJ가 말을 섞으면 어찌나 화가 나던지 나중에 라디오 작가가 된다면 절대 DJ가 노래 나갈 때 말을 못 하게 할 거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비효율적인 정성으로 가득 채운 테이프는 늘어날 때까지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오고 가는 버스나 택시에서 듣는 게 고작이다.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고 안테나를 세우는 수고스러움 대신 앱만 실행하면 들을 수 있는데 굳이 하지 않는다.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든 이후까지 나를 달래주던 라디오가 때로는 그립다. 열여덟의 웃음과 눈물, 설렘과 추억으로 가득 찬 그 시절 나의 전부였던 라디오.


누군가의 열여덟에게 그렇게 위로가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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