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직업에 대해 배워왔나 보다. 유튜버도 되고 싶고 스케이트 선수도 되고 싶어. 태권도 사범님도 되고 싶은데 요리사도 되고 싶고 나중에 꼭 강아지도 키우고 싶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자전거 바퀴처럼 쉬지 않고 재잘대는 작은 입이 마냥 귀엽다. 부처님 같은 표정으로 네가 뭘 하든 널 응원한다고 교과서 같은 말이나 뱉어댔더니 영혼이 없다며 질타한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분명 내게도 꿈을 늘어놓았던 시절이 있었으리라. 피아니스트도 되고 싶었고 화가도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수녀님, 선생님, 시인, 만화가, 가수, 라디오 작가. 생각해 보니 내 위시 리스트도 두서없이 풍성했구나. 쓴웃음이 난다.
K장녀로 살아와서였을까.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좋은 엄마’, ‘좋은 아내’라는 단어가 따라다니며 숨통을 조였다. 준비 없이 엄마가 됐더니 믿을 수 있는 선생님은 인터넷 세상뿐이었다. 그놈의 엄마표는 뭐가 그리도 다양한지, 수포자였던 내가 문제집을 던져가며 아이와 싸우고 있는 것도 그 때문 일 것이다. 소풍이라도 가는 날은 새벽부터 주방이 바쁘다. 갓 지은 따뜻한 밥과 남편용 아이들용 반찬으로 나뉘어 가득 찬 저녁 밥상을 보고 있으면 뿌듯하기까지 했다. 틈사이로 맥주 한잔 끼워 넣으면 완벽했다. 주말도 알차게 보내게 해주고 싶은 누굴 위한 것인지 모를 욕심에 잠든 아이들 발에 차여가면서도 검색창은 밤늦게까지 바빴다. 숙취에 시달리는 남편에게 꿀물을 타주고 사무실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의 찰나만이 숨 쉴 수 있게 허락된 자유였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스토리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온종일 새로고침을 하며 기다렸던 메일이었는데 생각보다 덤덤했다. 작가님이라니 낯 뜨겁기도 하지. 뉴스를 보고 있는 남편 옆으로 슬며시 빨래를 들고 가 입을 열어본다. ‘내가 오늘 기분 좋은 일이 있었어.’ 화장실에 앉아 힘을 주던 아이가 ‘뭔데? 뭔데?’라며 되묻는다.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덤덤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입 밖으로 뱉고 나니 그제야 밀려오는 안도감과 대견함. 새벽잠 쪼개가며 모처럼 오롯이 내게 집중하고 고민했던 시간이 벅차오른다.
수익이 발생한 것도 아니고 이름 석자 적힌 책이 인쇄된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묻는다.
너희는 모른다. 온통 너희들로 가득했던 하루 속에서 나를 찾게 된 것을. 스쳐 잊힐 많은 것들을 꼭꼭 씹어 기억하게 된 것을. 좋아하는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너희를 보면 여전히 죄책감은 느끼지만 함께 행복함을 느끼는 여유가 생긴 것을. 좀 지저분 해도 괜찮고 영양소가 꽉 채워지지 않아도 괜찮다. 만화책만 보고 있으면 좀 어떠한가. 어쩌면 너희는 모를 수도 있겠다. 욕심을 내려놓는 용기가 생겼고, 더 이상 너희에게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