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에도 대본이 필요해요?

문창과를 나왔지만 글을 못써요

by 은빛영글

미술을 전공했다고 하면 “그림 잘 그리겠네. 나 좀 그려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지? 상대방 전공이 동양화인지 회화인지 조소인지 알게 뭐람. 그냥 미술 전공했으면 초상화부터 한 장 갈기고 가는 거다.

그러니 문예창작과 전공했던 내가 많이 들었던 건 “글 잘 쓰겠네. 나 자기소개서 좀 써줘.”였다. 건축과 출신에게 내가 살 그림 같은 집 지어달라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솔직히는 실기 없이 입학했었기에 잘 쓸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타인의 노력이나 재능에 대해 너무나 쉽게 숟가락을 얹어 가려는 심보가 얄밉기도 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 졸업 해 친구들 자소서나 써주며 술이나 얻어먹던 것이 글로 인한 경제 순환의 첫걸음이었다. (죄송합니다 엄마 아빠)




대학만 졸업하면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줄 알았다. 모든 사람은 대학 전공과 관련 있는 직장을 구할 수 있는 줄 알았다. 전공과 상관없이 살 거라면 대학은 왜 있겠냐 싶었다. 점심시간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커피를 마시며 또각또각 여의도 공원을 산책하는 직장인 무리 속에 당연히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왜 의심조차 하지 않았을까.

변변한 수상작 하나 없고 그 흔한 운전 면허증도 없었다. 대학 졸업장 하나 덜렁 들고 사회로 내쫓겨 노력은 없이 꿈을 좇는 소리나 하고 있었으니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그때는 몰랐다. 내가 제일 힘들다고 되려 큰 소리를 쳤다. 명문대 출신도 아니었고 취업 잘되는 학과를 졸업한 게 아니기에 취업의 벽이 더 높았다고 변명해 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 사이트마다 이력서를 등록하고 회사에 메일을 보내느라 바빴다. 인맥으로 사람을 구하는 게 더 빨랐을 그 바닥의 생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패기 혹은 객기 그 중간 어디 즈음인 것 같다. (뭐, 인맥도 없었지만) 총알도 없으면서 글쓰기로 먹고살겠다고 전쟁터로 뛰어 들 채비를 하던 맹랑한 20대가 바로 나였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했던가 계속된 이력서 투고 끝에 드디어 글로 제대로 된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작은 협회 월간지 취재기자가 되었다. 말이 좋아 취재기자였지 현실은 자리 채우는 용도 정도였다. 협회 회원들에게 회비를 받아 사용하고 남는 돈으로 만들던 잡지는 이전 파일을 복사해서 붙여 넣는 정도 수준의 짜깁기로 발송되었고 아무래도 읽는 사람도 없었을 것 같았다. 크게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사무실에 앉아 빈둥대며 그나마 몇 명 되지 않는 사람들끼리 수다를 떨며 시간 때우는 게 고작이었다.

어쩌다 ‘취재’라는 이름으로 협회 회원들을 만나러 가면 누가 봐도 스물 갓 넘었을 법한 꼬맹이한테는 할 말 없다고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무슨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 약속을 잡고 왔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이 많은 게 벼슬이라도 되나 싶어 화도 났다. 나이가 어린 게 잘못도 아니고, 어려서 어려 보이는 걸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외근을 나가는 날엔 최대한 나이가 들어 보이게 머리를 만지고 화장을 했다. 차려입은 느낌의 옷을 입고 구두를 신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어린 학생들이 아무리 진하게 화장을 하고 힘을 줘도 어느덧 인생 중반을 달리고 있는 내 나이가 되어 바라보니 그저 분유냄새 풍기는 아기 같은 걸 보면 그때 나의 발악을 보던 누군가도 이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무실 컴퓨터 주소록에 있는 100프로에게 발송하면 그중 20프로 정도는 수취불가 등의 이유로 반송되어 돌아왔고 나머지 80프로도 아마 어딘가 박혀 먼지만 쌓여가지 않았을까 싶었다. 제작하는 이들도 받아보는 이들도 애정이나 성의가 없는 무의미한 작업이다 보니 입사한 지 갓 반년도 되지 않았을 때 월간지 폐간이라는 통보가 어쩌면 당연했던 것 같다. 물론 부푼 꿈을 안고 입사했던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지만 말이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실업자가 됐지만 내 잘못인 것 마냥 엄마의 눈총을 견뎌야만 했다. 틈틈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몇 달 전처럼 이력서를 전송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명동 한복판에서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무소속이 주는 불안감은 나를 두렵게 했다. 칼을 뽑았지만 무도 썰어보기 전에 백수가 되고 나니 초조하고 조급했다.


지인의 소개로 방송국 작가로부터 아르바이트 제안 연락이 왔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인터뷰 영상을 보고 내용을 자판으로 입력하는 일이었는데 생각도 필요 없었고 손은 빠른 편이었기에 자신 있었다.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방송국 입성할 수 있는 건가 하는 현실 인지 못하는 야무진 꿈은 독서실 책상만 한 독방에 온종일 갇혀 모니터를 바라보다 가끔 넣어주는 간식이나 받아먹는 동안 깔끔하게 깨졌다. 지금이야 크로버노트처럼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음성 녹음을 텍스트로 변환시켜 주는 게 쉽다지만 20년 전인 그때는 일일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들겨야 했으니 비생산적인 일의 대표주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모니터 앞의 나는 사무실 소모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봄을 코앞에 둔 쌀쌀한 겨울날 파란 하늘로 학사모를 던지며 가졌던 꿈은 빛도 산소도 부족한 작은 공간에서 마주한 현실에 까맣게 시들어 버렸다. 자신감은 지구 반대편까지 바닥을 치고 내려갔고 하나씩 둘씩 들려오는 취직 소식에 땅굴을 파고 스스로를 숨겼다. 지난 삶 모든 것을 부정했고 내 존재 자체를 탓했다. 방향을 못 찾는 나침반이 되어 같은 자리만 맴돌았다.




“ㅇㅇㅇ씨 맞으신가요? 올려주신 이력서 보고 전화 드렸어요.”

뭘 보고 연락이 온 건지 조심스러운 상대방의 목소리에 나침반이 방향을 잡으려나 반가운 마음에 설레었다. ‘그래,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부터 ‘그게 뭐든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까지, 사람이 죽겠다고 뛰어내리면 그 몇 초 동안 살아온 삶이 스쳐 지나간다더니 전화기를 붙잡고 인사를 나누는 짧은 순간 이것저것 가릴 것 없는 처지임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저희가 제작하는 영상물 대본을 써주실 작가님을 찾고 있어요.”
“네, 네. 어떤 거죠?”

짐짓 태연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 그게 저희는 성인물 콘텐츠를 작업하는 업체예요.”

헐벗고 뒹구는 배우들을 지켜볼 자신이 없어 헛웃음을 뱉어내느라 상대방의 뒷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야동에도 대본이 필요해요?”


받아들여만 했다.
나는 문창과를 나왔지만 글을 쓸 수 없었다.



(이미지 출처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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