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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Feb 26. 2024

소아과 오픈런

“엄마, 나 머리 아파.”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을 파고드는 아이의 목소리는 작은 바람에도 힘 없이 굴러가는 가을날의 낙엽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아이의 이마를 짚어보는 순간 불안한 마음은 순식간에 확신으로 바뀌었다. 더듬더듬 스마트폰 불빛의 위로를 받으며 체온계를 찾아 아이의 귀에 꽂아 넣었다.


하필 월요일이라 병원들은 벌써부터 북적일 것 같았다. 어제 잠들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되짚어 봐도 이상 증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밤 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아이는 자꾸만 몸이 힘들다며 고꾸라진다. 작은 덩치라면 번쩍 들거나 업기라도 했을 텐데 내 코 밑에 정수리가 닿는 아이의 축 처진 몸을 들어 올리려니 형태 없는 슬라임을 끌어안은 듯 주르륵 흘러내려갔다. 나의 모성애는 아픈 아이 하나 들어 올리지 못하고 이렇게나 보잘것없었다.

다행히 똑닥으로 예약이 가능한 곳이라 프로게이머의 현란한 손가락 움직임처럼 빠르게 대기를 걸었다. 대기 순번 11번. 나쁘지 않다. 워낙 대기 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소아과였기에 11명이라고는 해도 1시간 이상 걸린다는 걸 알고 있기에 기다리는 시간 동안 사무실이며 아이 학원에 연락을 돌렸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잔뜩 물에 젖은 빨랫감처럼 무거워진 몸을 웅크리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젖은 수건으로 뜨거운 몸 이곳저곳의 열기를 식혀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렇게 무능한 엄마라니 스스로가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unsplash


부지런한 시곗바늘은 재깍재깍 쉬지도 않고 한 바퀴를 돌았는데 아직 대기 4번이다. 분명 7명일 때 집에서 출발했는데 좀처럼 대기 인원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우리는 금세 진료받고 나오는 것 같은데 다른 아이들은 항상 오래 걸리는 기분이다. 오래 걸리는 만큼 꼼꼼하게 진료를 봐주는 덕에 이곳을 찾는 엄마들이 많은가 보다. 하지만 지금은 꼼꼼한 것보다 빠르게 진료를 받고 싶은 마음이었던지라 애꿎은 손등만 손톱으로 꾹꾹 눌러댔다.

대충 보지도 않고 보호자의 설명에 따라 기침하면 감기약, 코 막히면 비염약, 배 아프다 하면 장염약, 잘 모르겠으면 소견서 슥슥 써주고 가라 하던 항상 술에 취한 듯 만사 귀찮아하던 근처 소아과 의사조차 오늘따라 아쉽다. 어떻게 의사가 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를 한심하게 봤던 그때의 나를 반성해 봤지만 소용없다. 소아과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화면에 보이는 대기 인원은 끊임없이 1명씩 늘어만 가는데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은 신기루처럼 점점 사라져 간다.

느릿느릿해도 분명 시간은 흐르고 대기 인원은 줄어들었다. 진료실 앞 대기를 호명받고 피폐해진 몸뚱이를 벽에 기대앉았다. 병든 물고기를 수족관에서 꺼내면 퍼덕거리지도 않고 이렇게 주르륵 미끄러지지 않을까. 아이의 몸은 기운 없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앞의 아이가 나왔다. 우리 아이처럼 대기실 의자에 반쯤 누워 있던 그 집 아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고 기운 없는 발걸음은 걷는지 미끄러져 가는 건지 소리조차 내지 않고 이동했다. 요란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닫힌 진료실 문이 열리며 의사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 다시 그들을 불렀다.

“집에 가신 후에도 아이가 4번 이상 구토하거나 6시간 이상 화장실에 가지 않으면 바로 전화 주세요. 아이 잘 때 엄마도 좀 쉬시고요.”

약간의 뜸을 들인 후 덧붙인 말에 아이의 얼굴만큼이나 창백했던 아이 엄마의 코 끝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고 보니 지인의 아이도 진료를 보고 간 날 저녁에 소아과에서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진료 볼 때 아이가 너무 안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어떻냐고 괜찮은지 묻는 전화였다고 했다. 대기 인원 10명 진료 보는데 1시간 반 걸리는 건 이렇게 엄마의 마음을 만져주는 말 때문이었구나.


@unsplash


큰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산부인과를 갔었다. 회음부 부위의 지속된 통증으로 똑바로 앉기는커녕 삐뚤게 앉기도 힘들었다. 모유수유를 하던 때였기도 하고 당시 남편은 2주에 1번 정도 집에 들어왔었기에 아기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담당 간호사가 잠든 아기를 조심스레 안고 돌봐주는 덕에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고름이 엄청 심해요. 많이 아팠겠어요. 출산한 지 몇 달 됐는데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나 봐요. 식사는 잘 챙겨 드시나요? 많이 힘들었겠어요.”

‘애기 어릴 때는 다 그런 거야. 너만 그런 거 아니야.’라는 말이 아니었다. ‘많이 힘들었겠어요.’ 이 한마디가 초점 없는 눈과 푸석푸석한 얼굴로 진료실을 찾은 나를 콱 쥐어박은 듯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임신기간과 출산을 함께 해준 담당의도 아니었던 그가 무심히 건넨 한마디는 잔뜩 가시를 세우고 있던 선인장 같던 나의 마음을 봄날에 수줍게 아 나는 새싹처럼 달래주었다. 낯선 이에게 받은 위로는 세상 어떤 말보다 크게 다가왔다.




나를 잘 아는 것 같았던 가족이나 친구들의 무덤덤한 공격에 바싹 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지는 가뭄의 논바닥 같았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었던 건 한마디의 공감이었다. 큰 병이 아니라면 감기나 장염 정도는 약 먹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한번 갈라지기 시작한 마음은 분무기로 애써 물을 뿌려도 쉬이 촉촉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선가 봤던 문구처럼 선인장도 너무 오래 내버려 두면 말라죽고 잡초도 애정이 없으면 시들 수 있다. 그럼에도 마른땅을 갈아엎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은 누군가의 작은 말 한마디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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