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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Jun 26. 2024

아이가 나의 흰머리를 뽑아주었다


"다녀왔습니다."

"손 씻고 와, 저녁 먹자."


도어록 소리와 함께 빼꼼 들어온 아이는 훌쩍 키가 자라 있다. 어쩌면 아침보다 자랐을 지도. 큰 아이가 학원 끝나고 오는 시간에 맞춰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퇴근 후에도 이런저런 집안일로 바빴던 손과 발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 모처럼 쉼표를 찍을 수 있었다.

남편이 있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은 우리 셋이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시간. 이 시간이 참 좋다. 그나마 하루 중 유일하게 식구들이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얼굴을 보고, 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학교에서 누가 웃긴 말을 했는지, 하굣길에 지나가던 아저씨의 모양새가 어땠는지, 러브 버그는 몇 마리 봤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속도는 밥이 입안으로 들어가는 속도보다 빠르다. 채 다물어지지 않은 입에서 튀어나온 밥풀이 소복소복 식탁 위에 쌓여가지만, 그래도 괜찮다. 지금 너희들이 웃고 있으니까.


내가 아이들만큼 어렸을 때, 우리 집 식탁은 다섯 명이 이렇게 있었겠지.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나 평범한 하루하루였기에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기억력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어제 일도 기억 못 하는 나였기에 30년 전 당연했던 하루를 기억해 내려 애쓰기엔 지금의 삶이 너무나 고단하다.

지금의 이 온도와 공기, 기억도 아이들의 30년 후엔 바쁜 하루하루 속에 지워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오래된 앨범에서 색 바랜 사진 한 장 꺼내드는 것처럼 나의 지금을, 너희와 함께는 순간을 그저 기록해 본다. 기억마저 기록해야 흔적을 남기니까.



이제 제법 자란 아이들은 더 이상 어린이용 반찬을 따로 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이유식이나 유아용 반찬을 따로 만들던 시절에 비하면 발로 키우는 기분이다. 칼칼한 김치찌개에서 보글보글 몸을 흔들어 대는 두부도 쏙쏙 잘 골라 먹고, 감자탕에서 가장 큰 덩어리를 꺼내 발골해 내는 능력 또한 수준급이다. 새삼 감격스럽다. 내 팔뚝만 했던 아이들이, 속싸개에 쌓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하나씩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고, 매워라."

매운 음식의 가지 수가 많을수록 큰 아이가 정수기에 왔다 갔다 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가져다 둔 물 한 통은 이미 비웠고 더운 날씨에 찬물이 마시고 싶다며 왔다 갔다 하는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뜨겁고 매운 걸 먹을 때마다 사우나에 온 것처럼 온몸이 땀으로 젖은 남편의 모습과 닮았다. 아이들은 점점 우리를 닮아간다.


"어? 엄마, 흰머리 있네?"


마흔이 훌쩍 넘은 요즘. 눈도 침침하고, 체력도 급격히 떨어졌다. 손가락 마디도 굵어지고 이마에 옅게 있던 주름이 깊어진 지 오래다. 더 이상 앞머리로 주름이 가려지지 않는 것도 같다. 흰머리 있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이의 입에서 툭 떨어진 한 마디는 확인 사살을 당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야, 엄마가 너희 키우느라 고생해서 그래."

편드는 거 맞아? 거드는 남편의 한마디가 더 얄밉다. 30대 때부터 흰머리가 잔뜩 있었던 그의 머리는 나의 것보다 한술 더 뜬 지 오래다. 밥숟가락에 담뿍 담긴 흰쌀밥처럼 언뜻 보면 중년 미가 느껴질 정도다. 그러고 보니 그의 머리를 염색해 줄 때가 지난 것 같다.



"엄마, 내가 흰머리 뽑아줄게!"

"아냐, 흰머리 뽑는 거 아니랬어."

"그래도 해보고 싶어."


못 이기는 척 머리를 내어준다. 밥 먹다 말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털 속에 엉킨 벌레를 잡아주는 원숭이처럼 엄마의 머리카락 속을 헤집는 아이의 손가락은 신바람 났다.


어렸을 때 아빠의 흰 머리카락을 뽑아준 적이 있었다. 아빠가 거실에 신문을 들고 앉으면 올망졸망한 도토리처럼 소파 위에 앉아 아빠의 짧은 머리카락 숲을 뒤졌다. 풍성한 숲에 하나씩 치고 올라오는 곧고 흰 그것을 하나씩 뽑아 아빠의 손등이나 팔에 붙여 주었다. 아빠는 신문을 읽으시다 정수리가 따끔할 때마다 팔을 올렸다. 팔 등에 붙은 흰 머리카락이 늘어날수록 움직이는 손가락이 빨라졌다. 뿌리째 뽑혀 아빠의 팔에 붙은 흰 머리카락은 한 개에 10원. 5개만 뽑아도 슈퍼에서 사탕 한 개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었으니 뿌리가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중요한 수술을 집도 중인 의사처럼 신중해야 했다.

우리의 의식은 어느 날 멈추었다. 더 이상 아빠의 머리에 손대기 싫을 만큼 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한 가닥씩 뽑아내는 게 의미가 없어졌을 수도 있다. 우리가 뒤적대며 용돈 경쟁하던 아빠의 머리카락은 언젠가부터 엄마의 손끝에서 까맣게 물들었다.


그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난다. 엄마도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 흰머리 뽑아 드리며 개당 한 개씩 용돈 받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자기도 뽑아줄 테니 한 개에 천 원씩 달란다. 에라, 이 사기꾼 녀석아. 어디 엄마를 등쳐먹으려고! 물가 상승을 계산해 달란다.

사기꾼의 말에 식구들이 모두 웃는다. 밥 먹다 말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그들의 웃음에 스며들었다. 내 머리카락 위에 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밥풀이 떨어지지 않길 바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의 나처럼 아이도 내 머릿속을 뒤적였다. 아이도 언젠가 자라 부모가 되었을 때, 아이의 아이가 나의 아이 머릿속을 뒤적거릴 때 나를 떠올려주길 바라봤다.

따끔한 정수리의 통증은 나의 젊음이 뜯겨나간 자리에 아린 통증만 남겨 놓았지만, 괜찮다. 그만큼 네가 자라고 있으니까. 그만큼 나는 영글어 가고 있으니까.




"앗?"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가 불길하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내민 손바닥에 먹물처럼 검은 머리카락이 힘없이 누워있다.


"야! 흐즈마라 했즈느"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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