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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Sep 13. 2024

결혼하면 좋아요?

처음처럼

남자들의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 단골 안주는 군대 얘기, 축구 얘기, 그리고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라 한다.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군대 얘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 같다. 그렇게 싫다 하면서 한 번씩 오르내리는 걸 보면 사실은 그리워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날도 그랬다. 글쎄, 무슨 말을 하던 중에 대화의 흐름이 거기까지 간 걸까.


"군대? 안 갈 수 있으면 안 가는 게 좋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느새 군대 얘기다. 예비군에 민방위까지 끝난 아저씨들은 나조차 외워버린 그들의 군대 이야기를 다시 늘어놓았다. A는 그 당시 만나던 여자 친구가 지금의 아내가 되었다. 예쁜 두 딸까지 세 여자 속에 파묻혀 복작대며 살고 있다. 면회 온 당시 여자 친구의 정성 어린 도시락과 헤어질 뻔해 울고불고 난리였다는 그의 이야기는 아마 앞으로 20년은 더 들을 것 같다.     

배부르게 마신 남자들의 다음 안주는 회사 이야기다. 취업 걱정을 하던 20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어느새 이른 명퇴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새 40대 중반에 들어선 남자들은 치킨집을 해야 하나, 새벽 배송을 해야 하나 하고 걱정이다. 쭉쭉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들어갈 학원비는 지금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문제인데 벌써 위태롭다. 20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서글픈 자리였다.

직장 상사 뒷담화를 하는가 싶더니 신입사원 이야기로 넘어갔다. 이번에 입사한 신입사원은 군대를 안 가서 그런지 눈치도 없고 사회생활에 영 젬병이라고 한다. 그러니 군대에 보내 정신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결국 또 군대 얘기다.

혼란스럽다. 그래서 군대를 가야 한다는 거야, 가지 말라는 거야?    


  

"형님들, 결혼하면 좋아요?“


함께 있던 동생의 질문에 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는 남자 여섯, 여자 하나 있던 집들이에 참석한 유일한 미혼 인간이다. 여태 시끄럽게 떠들던 그들은 어디 갔는지 눈치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곁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작게 음식을 잘라주던 손끝도 귀를 쫑긋 세워 대답을 기다렸다.

‘과연 뭐라고 대답하려나?‘

썩 친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을 몇 번 본 적 있다. 아내들도 아이들도 비슷한 또래였기에 다 함께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법 가정적인 아빠들이었다. 피곤한 휴일에도 일찍 눈을 떠 운동을 하고 돌아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곤 했다. 연휴나 주말에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차에 시동을 걸고 교외로 나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내의 생일은 당연하고 결혼기념일이나 처가댁 식구들 기념일까지 챙기는 살뜰함도 가졌다.

하지만 아무도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쉬는 시간처럼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는 순간 학생주임 선생님이 나타난 것처럼 차갑게 얼려버렸다. 서로 눈치만 보던 남자들은 갑자기 웃기 시작했고, 물어본 동생도 함께 웃었다. 웃겨?

    



나야 남편이라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어 그를 매개체로 이들을 만난 거지만, 그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그때도 친했는지 자라면서 친해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친구와 대부분 연락이 끊긴 나는 그들의 관계가 부럽기도 하다.

여자들의 수다보다 무서운 게 남자들의 수다인 것 같다. 도대체 무슨 할 말이 그렇게나 많은 걸까. 포장마차에 앉자마자 내어주는 홍합탕 국물처럼 이미 여러 차례 우려냈던 지난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그러다 결국 또 군대 얘기다. 동반입대 한 것도 아닌데 곰탕처럼 우려먹는 알 수 없는 남자들의 세계다.     

동생의 질문 따위 애초에 들은 적 없다는 듯 그들의 대화는 현실로 돌아왔다.

B는 아내의 치맛바람이 고민이란다. 하필이면 학군지에 집을 얻어 친구들 다 하는 공부 본인의 아들만 안 시킬 수 없는 노릇이라며 한숨을 쉰다. 학원비만으로도 빠듯한 그의 월급 사정에 친구들도 함께 한숨을 쉬었다. 그 사정 모를 수 없지.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 같은 아이들의 학원비를 떠올리며 그들의 한숨에 나의 것도 거들었다.


C의 막내아들이 친구들 자녀 중 가장 어리다. 대부분이 어린이집을 다니거나 초등학생이었는데 그의 아이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다고 했다. 아이를 처음 키우는 것도 아닌데 아들은 또 느낌이 다르다며 호들갑 떠는 그를 보며 A는 또 한숨이다. 딸이 최고라 말은 하지만 얼굴은 종갓집 장손의 부담이 가득 담겨있었다.     

어제 보니 아이가 영어로 일기를 썼는데, 너무 잘 써서 깜짝 놀랐다며 은근히 자식 자랑으로 맞받아치는 A였다. 분명 지난 모임에서는 영어 전집을 잔뜩 들인 아내를 비난하던 그였는데. 자식의 영특함이 곧 본인의 명함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어쨌든 아빠는 아빠다.

한참 바빠 자신도 까먹은 어머니 생신날, 잊지 않고 챙겨준 아내를 자랑한다. 효도는 셀프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남편과의 원활한 우정을 유지하기 위한 그 아내의 노력이었다. 노력은 아내가 했고 축하는 어머니가 받으셨는데 왜 본인이 으쓱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이니까. 부부니까 그러려니 한다.

그냥 한 번 넣어 본 청약에 당첨이 됐다고 축하를 받은 C는 아이들의 적응이 걱정된다고 말했지만 입꼬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 있었다. 부럽다, 당신이 제일 부러워. 애들 걱정은 하지 말고 잔금 치를 걱정이나 하라는 친구들의 질투 어린 축하에 작디작던 그의 반달눈은 초승달이 되었다. 하, 진짜 부럽다.



그들의 은근한 자랑은 쉼이 없었다. 한잔, 한잔 늘어가는 술잔 따라 목소리가 커졌다. 서로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분명 자랑인데 걱정이었고, 고난인데 행복인 그들의 삶이었다.     

횟집에서 주문하면 회가 나오기 전에 밑반찬을 한 상 가득 차려준다. 이걸 다 먹고 나면 회를 못 먹을 텐데 싶으면서 이미 주문한 소주 맥주와 속도를 맞춰 젓가락은 벌써 움직이고 있다. 허기가 달래져 갈 때쯤 메인 요리가 나온다. 밀 반찬 덕분에 공복이 심하지 않아 허겁지겁 먹을 필요 없이 맛을 음미할 수 있다. 한 병 더 주문한다. 배도 부르고 술에 적당히 취하면 매운탕으로 마무리. 그마저 다 먹고 나면 2차는 어디로 갈지 고민이다. 끝도 없이 안주를 고르는 것처럼 그들의 대화 역시 끝이 없었다. 새로 바뀌는 안주처럼, 여느 평범한 직장인들의 대화처럼. 주식, 복권, 부동산 이야기가 줄줄이 붙었다.


아이들이 더 크면 남자들끼리만 여행을 가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통장을 만들까? 얼마씩 모을까? 아내가 분명 잔소리할 텐데. 걱정하는 목소리와 달리 표정은 설렘이었다. 소풍 도시락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드는 어린아이들 같다. 어쩌면 그들의 마음은 처음 만났던 초등학생 꼬마들과 다를 바 없었다.     

결혼하게 됐을 때 얼마나 행복해했었는지 남자들의 얼굴이 생생하다. 그때는 아마 몰랐었겠지. 꼬맹이였던 남자들을 어른으로 만들어준 결혼에 대해 더 이상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전부 결혼이었다.

누구보다 어깨가 무겁고 치열하게 살고 있는, 비워지지 않는 애정이 가득한 자신들의 삶을 생각하며 각자 소주잔을 채워본다.


지금 당신이 행복해지길 바라며, 그대들의 굴곡 없는 결혼 생활을 위하여. 건배!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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