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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Sep 06. 2024

비둘기의 비명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사상'에서는 인간이 태어나 인생을 살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삶을 살다 죽고, 태어나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다음 생에는 결혼 안 할 거야'라고 말하는 기혼자들도 종종 보인다. 그런 그들이 가장 먼저 결혼할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입 밖으로 뱉지는 않는다. 그 정도의 눈치는 챙기고 살고 있다.

다만 나는 굳이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지금도 고단한 인생인데 죽은 후에도 왜 다시 살아나겠다고 하는 건지 가끔은 의아하다.




인간이 이렇듯 인생을 반복한다면 물건들은 어떨까? 요즘의 우리는 넘쳐나는 쓰레기 중 깨끗한 것들을 열심히 분리수거한다. 환경 문제든 경제적인 문제든 재활용을 통해 많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이나 유리병 그리고 종이 같은 물건들이 재활용되는 것을 보면 윤회사상은 비단 인간들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분명 처음에는 작은 씨앗 정도였을 그것들은 땅에 심어지고 인고의 시간을 견딘 후에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때로 모양이 영 초라하고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은 그대로 바닥에 버려져 다른 것들을 위한 거름이나 동물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모양새가 인간의 기준에 적합한 것들은 모아져 시장이나 마트 등으로 팔려 간다. 그것들은 음식이 되어 우리의 밥상 위에 오르고 온몸에 영양분으로 퍼진 후에 남는 것들은 밖으로 배출된다. 물론 배출된 것들은 정화 과정을 통해 물과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모든 것은 돌고 돈다.



푸드덕푸드덕, 굳게 닫힌 문 속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퍼덕거렸다. 굳게 닫힌 문을 열어 자신을 다시 밖으로 내보내달라고, 당장 꺼내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간절하고 처절한 소리다. 그 모습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아도 소리만으로 충분하다. 푸드덕 소리는 힘없고 애달픈 비명이었다.


처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아니 어쩌면 그 소리가 나기 전부터 이미 맺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온몸에 감각이 오직 '푸드덕' 소리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이미 샘솟은 땀방울이 언제부터였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다. 그저 이 고통이, 괴로움이 빨리 정돈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너는 무엇이었느냐."

푸드덕 소리를 향해 나지막이 읊조려 본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심지어 물건까지. 결국 모든 것이 돌고 도는 삶에 너는 이전에 무엇이었고 이후에는 무엇이 될 거냐고 뻔뻔하게 묻는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기억 따위 잊혔다는 듯이. 가녀린 비명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진정 뻔뻔한 질문이다. 지금 이 상황이 무엇 때문에 만들어진 건지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 점점 공기가 희박해짐을 느낀다. 산소보다 가스가 더 많아지는 건지 숨 쉬는 게 답답하게 느껴진다. 미세하게 헉헉대는 숨을 바르게 고르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견뎌야 해, 이겨내야 해. 자연으로 돌아가버려!"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향해 화이팅을 외친다. 잔인하다.

푸드덕. 또 한 번 더 소리가 들린다. 분명 처음보다 약해졌지만, 아직 숨통이 붙어있다. 비록 지금은 생명의 끈이 끊어지고 있지만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이. 하지만 인간은 그런 소리 따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의 현재 상황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인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절정을 향해 달리는 남녀처럼 희열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고통에서 벗어날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주르륵 물컹한 것이 흘러내린다. 푸드덕대는 그것은 끝까지 몸부림을 쳤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아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테니. 그 누구도 그것을 향해 손을 내밀지 않았을 테니.



한바탕 땀을 뱉어낸 인간 역시 물컹해졌다. 인간의 몸에 흐르는 땀은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한 자신에 대한 칭찬과 격려이기도 하다. 동시에 반성이었다. 순간의 쾌락에 빠졌던 그가 지금 겪은 고통, 그것의 대가였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머리가 몽롱해졌다. 유일하게 숨통을 트여주는 작은 환풍기를 바라보는 인간의 눈은 회색빛이다. 온통 무채색 같은 공간에서 조금씩 호흡이 돌아오고 있다.


부르르. 아까와는 다른 감촉이다. 인간의 손에 들린 작은 세상이 울리고 있었다. 그를 다시 현실로 끌어오려 했다. 손바닥에 잔뜩 힘을 줘 세상을 짓눌렀지만, 금새 방금까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세상으로 빠져든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 그 눈빛에 다시 생기가 돌 것이다. 호흡이 안정되는 것처럼 풀려버린 다리에도 힘이 들어가 두 발로 다시 일어서는 데 무리가 없을 테지.

부르르. 손바닥 안 작은 세상이 열렸다. 반짝이는 화면은 인간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오늘 콜?' 단 세 개의 음절. 그것은 유혹이고 현실이며 그의 자아였다. 인간은 또 이 행위를 반복할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오늘은 불금이니까.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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