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 1부. 6. (5)

1부. 6. (5)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by 김희경 작가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용서는 의무가 아니다.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누군가를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다. 단지, 이제 그만 상처 입은 자신을 더 이상 탓하지 말고 사랑받지 못했던 그 지난 시간을 스스로에게 뒤집어씌우지 말자는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 앞에서 스스로를 희생해왔다. 가족이니까, 부모니까, 불쌍하니까. 그 모든 이유는 나를 붙들던 희망처럼 보였지만, 결국엔 나를 옭아매는 족쇄였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익숙한 역할과 행동을 반복하며 끝없이 스스로를 다치게 했다. 그 고통조차 ‘어쩔 수 없다.’며 합리화했다. 그 결과 나는 나를 잃었고, 심리도, 정신도, 몸도 무너졌다. “나만 참으면 돼.” 이 말은 착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내면 깊숙이 박힌 죄책감과 공포,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왜곡의 언어였다. ‘나를 희생하면서 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는 믿음 아래 나는 나를 지우고, 모든 관계 안에서 헌신했고, 그 헌신은 누구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내가 배운 사랑의 정의가 애초부터 틀려 있었던 것이다.


심리학자 멜로디 비티는 "우리는 타인을 구하려 애쓰는 동안, 정작 자신을 가장 깊이 외면한다. "고 했다. 코디펜던트(공의존)는 나를 지우는 방식으로 사랑을 증명하려는 왜곡된 패턴이다. 나는 오랫동안 공의존자로서 가정 내에서 기능했다. 그리고 그 안에 반복되는 죄책감은 결국 '나를 구하는 것'보다 '나를 비난하는 것'에 더 익숙하게 만들었다. 나는 늘 누군가를 도와야했고, 그걸 사랑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사실 사랑이 아니라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반복된 구조였다. 그렇게 나는 구원자 역할에 중독되어 있었다.




사랑으로도 덮이지 않는 상처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가족은 다 품어야 한다고, 부모니까, 형제니까 용서해야 한다고. 그러나 어떤 상처는 이해할 수 없고, 사랑으로도 덮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으로 덮으려 애쓰다 죄책감과 수치심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된다. 과거를 돌아볼 때면, 끝내 나를 지켜주지 못한 건 나였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탓할 대상은 결국 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오늘이 되어서야 사랑의 이름으로 나를 지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용서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로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배워가고 있다.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결국, 나 자신과 화해하겠다는 선언이다. 정신분석 이론에서 ‘용서’는 타인을 향한 태도가 아니라 ‘내가 내 상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태도라고 말한다. 무조건적인 용서는 오히려 죄책감을 강화하고, 자기 부정의 구조를 반복하게 만들어 스스로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다시 중재자가 되었다


삼각관계가 다시 시작됐을 때, 내 역할은 또다시 중재자였다. 마지막 변호사 시험에서 떨어진 뒤, 계획도 없었고, 할 수 있는 일도, 돌아갈 곳도 없었다. 이미 아주 오래전에 나는 돌아갈 가정을 잃었기 때문이다. 막막함은 매일같이 성큼성큼 다가왔고, 무엇보다 앞으로 백수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깨져나갔다. 마침 코로나가 온 나라를 덮고 있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할 곳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조금 쉬어볼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매달 내야 하는 월세와 한국장학재단에 빌린 학자금 대출 원금과 이자는 쉬겠다는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국가 직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갈 수 있는 곳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기 위해 서울을 여러 번 오가며 1년을 보냈다. 그 시절 나는 두려움이 반영된 비슷한 꿈을 매일같이 꿨고, 더 이상 마음이 버틸 수 없다는 걸 마침내 인정하게 되었다. 결국 아는 분께 연락을 드려 대학병원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첫 번째 숨구멍이었다.





그녀와의 첫 통화


마지막 면접을 마치고 용산역에서 내려오던 길.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의 여자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하나밖에 없는 누나라고 들어서 꼭 친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하나밖에 없는 누나라니...’ 그 말이 얼마나 감동적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전화 너머,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에게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열렸다. 처음이었지만 우리는 두 시간 가까이 통화했다. 나보다 9살이나 어린 그녀는 직업이 있었기 때문에 그 대견함이 부럽기도 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서른 중반이 넘도록 모은 돈 하나 없고, 직업도 없이 막막한 나 자신이 왠지 모르게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도 모르게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그렇게 오랜만에 느낀 따뜻함 때문인지 그 시간은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잘 받아줬다고 느꼈는지 20분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왔다. 처음엔 그저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때 나는 너무 지쳐 있었기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줄 여유가 없었다. 그녀의 전화는 외로움이 아니라 의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이미 과거 내내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해본 사람이기 때문에 이 관계가 어디로 흘러갈지 예감하고 있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그녀는 나와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었고, 봉사도 열심히 했다. 처음에는 따뜻하고 진심 어린 사람처럼 느껴졌지만, 그 진심이 너무 빠르게 다가오고, 멈추지 않는 선처럼 느껴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말, 시골 아버지의 반복된 전화에 나는 결국 그 집으로 향했고, 그렇게 그녀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하얗고 보들보들한 손과 발, 아기처럼 귀여웠던 그 첫인상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 따뜻했던 첫인상은 낯설고 벅찬 무언가로 바뀌었다. 그녀는 부모님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고, 결혼을 허락해달라며 울부짖었다.


“아껴주신다고, 사랑해주신다고 했잖아요.”


나는 옆방에 누워 눈을 감았다. 끼어든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녀와 동생, 그리고 결혼 전에 밝혀질 수밖에 없었던 그녀만의 사정들이 뒤엉켜 있었다. 감정의 벽은 이미 쌓여 있었고, 그날의 일은 대충 마무리된 것처럼 지나갔지만, 이후의 파장은 거셌다.





나는 조정자도, 방패막이도 아니다


그날의 일은 대충 마무리되는 듯 보였고, 집에 어찌 돌아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왜 도움을 주지 않았는지 내심 서운한 듯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그날 이후, 어머니는 매일같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아들을 어찌 키웠는데, 그런 애한테 보내.”


울음으로 시작된 통화는 밤을 넘기기 일쑤였다. 평소 술은 입에도 대지 않던 어머니는 늦은 밤, 술에 잔뜩 취해 전화를 걸었다. 시집오며 아버지께 선물 받았던 그릇을 모두 깨버렸다고 했고, “살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꺼내며 울었다. 혹시라도 정말 나쁜 마음을 먹진 않을까, 나는 노심초사하며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든 그녀든,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왔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던 내 핸드폰은 불이 난 듯 매 시간 울려댔다. 그때의 나는 살 길도, 마음의 길도 모두 막혀 있었다. 그녀들 사이에 끼는 일은 너무 벅차고, 버거웠고, 감당이 안 됐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 “더는 전화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가 조정자와 중재자의 역할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하자, 나는 곧 그들 사이의 새로운 희생자가 되었고, 먹잇감으로 변질되었다.


보웬의 가족이론에서는 이처럼 감정적으로 얽힌 삼자관계에서 한 사람이 물러나는 것을 ‘탈삼각화’라 부른다. 관계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건 외면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정서적 독립이다. 이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그물이 짜여 지기 시작했고, 그 그물망 안에서 나는 또, 고래 등에 새우등 터지는 새우가 되었다.


심리학자 보웬은 “무엇이든 참아내는 사람이 결국 피해자가 되는 이 구조는, 가족이라는 집단 속에서 반복되는 오래된 역학”이라고 말한다. 가족 체계 속에서 특정 역할에 고착된 사람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특히 ‘중재자’는 양쪽의 감정을 모두 떠안으며, 이타성의 가면을 쓰고 있다가 끝내 방패막이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누군가의 평화를 위해 침묵하고 희생한 사람은 결국 자기감정을 잃고 만다. 그리고 나 역시 점차 과거처럼 또다시 침묵하고 희생해야 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었다. 관계가 마지막으로 가까워 갈 때 그녀가 내게 말했다.


“사실 언니가 친 누나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어머니가 처음 만난 날 이야기 해 줬거든요. 언니 5살 때 자기가 데려와서 이때까지 키웠다고.”


그 말은 그날 이후,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하나 뿐인 누나’라는 말에 열렸던 마음은 그 말을 듣자 양쪽에서 모두 닫히게 만들었다. 어머니에게 나는 희생적인 인간의 상징인 트로피였고, 그녀에게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줄 착한 호구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묘하게 익숙한 감정을 느꼈다. 놀랍게도 그녀의 가정은 내가 자란 시골집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양 부모 사이에서 자랐지만, 모든 것을 첫째 언니에게 빼앗기고, 늘 희생자의 자리를 떠맡아야 했던 그녀. 그녀는 사랑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견디고, 희생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안타까움을 넘어서 이상한 이끌림을 느꼈다. 어쩌면 그녀가 들어오고 싶어 하는 이 가정에서 진짜로 벗어나야 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 언니를 매일 욕하면서도 끝내 그들을 떠나지는 못하는 그녀를 보면서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로 끝을 맺는 그녀의 이야기가 마치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무심코 말했다.


“나는 너희 어머니랑 언니가 정말 싫다.”


그 말이 도화선이 되어 그녀는 나를 가해자처럼 대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에게서 점점 더 내 과거를 또렷이 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억압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조언이 아니라 참견이었고, 내가 해야 할 말이 아니라, 그녀가 도달해야 할 자기 여정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과거의 나를 대신 구제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금의 타인을 도우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내 미해결 과거를 되살리는 일이 되기도 한다. 정신 분석학에서는 이를 ‘반복강박’이라 부른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새로운 관계를 통해 반복 재연되며,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구제하려는 시도다. 치유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가 지금의 관계를 통해 반복 재현되는 것으로 반복되는 상처의 그림자였을 지도 모른다.


상처는 대신할 수도 없고, 대신 구해줄 수도 없다. 누구든 스스로 빠져나와야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녀에게 상담을 해주기보다, 진짜 도움을 받기 위한 상담이 필요하다고 말해줬어야 하는 건 아니었는지 라는 생각이 든다.





반복되는 가족, 되살아난 장면들


그녀는 동생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깨진 가정에서 자란 그녀가 완전히 부서져 형태만 간신히 유지되는 집안에서 자란 남자에게 애정을 느끼는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를 아들에게 소개한 시골 아버지 역시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말에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를 감지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우연한 장소에서 만난 그녀가 싹싹하고 친절해서 자신의 아들에게 소개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 이후로 늘 말했다. 어머니는 그 이후로 늘 말했다.


“당신이 그 애를 데려와서 아들 인생 망쳤다.”


그녀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시골집은 초상이 난 듯 흉흉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나는 눈앞에서 보았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 사랑을 하고, 또 다시 비슷한 가정을 이루고, 그 안에서 세대 간 상처가 고스란히 되물림 되는 장면을. 그 장면 안에서, 나는 더 이상 조연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나는 더 이상 누구의 이야기 속 희생자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와 어머니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동생과 그녀가 기대하는 역할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분명하게 그들의 요청들을 거절했다. 그리고 그 거절은, 곧 ‘공공의 적’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되돌아왔다. 세대 간 상처의 반복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회피하거나 직면하지 않은 상처는 새로운 관계를 통해 반복되며 되살아난다. 그걸 끊어내기 위해선, 누군가가 ‘이제 여기서 멈추겠다.’고 말해야 한다. 나는 그 누군가가 되기로 했고, 그 순간부터 나는 나의 편에 서서 말하고 행동했다.




나는 이제 나를 용서한다


가족은 신이 내게 주신,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신의 은총으로 특별하게 보내진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면 좋겠지만, 나를 반복적으로 상처 주는 존재라면 그 관계는 끊어내도 괜찮다. 그리고 가족도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내게 희생을 강요하고, 아프게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을 품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죄책감과 수치심 속에 나를 가두었는지 모른다. “가족인데,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나는 오히려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보다 나를 더 많이 미워했다. 용서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말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었고, 용서한다고 해서 진짜 용서할 수 있는 일들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구 가족과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이후, 나는 굴비를 정말 싫어하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굴비를 먹으면 갑상선에 염증이 생기고 얼굴이 부었다. 그건 새로운 알레르기 반응이었다. 몸이 먼저 기억해버린 트라우마의 흔적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들과 만난 날, 나는 남편과 함께 시골집을 찾았다. 어머니께서 평소 필요하다고 하셨지만 막상 사지 못했던 것들과 선물들을 정성껏 준비해 내려갔다. 드리기 전부터 기분이 좋았다. 얼마나 좋아하실까 상상만으로도 설레고, 행복했다. 시골 아버지, 어머니, 고모, 남편과 함께하는 명절 저녁 식사 자리였다. 막 한 수저를 뜨려던 찰나,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다.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며, 단호하고 날카롭게 말씀하셨다.


“너, 니가 누나가 되가지고 니가 다 받아주고, 이해해줘야지. 내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인데, 니가 마음대로 니 말대로 하고. 내가 얼마나 알아서 하는데. 니까짓 게.”


그 말은 어머니와 그녀의 식사를 내가 거절했던 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차분하게 이유를 설명했고, 남편도 함께 그간 있었던 일들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는 나를 벌주시기라도 하듯 눈앞에 있던 명절 음식들을 하나씩 치우셨다. 가장 먼저 치워진 건 구워진 얼굴만 한 조기였다. 잘 구워진 조기를 내 눈앞에서 치워 솥에 넣으며 가져가셨다.


“니가 누나 역할도 못하면서, 니가 누나니까 이해해야지. 그리고 해 줘야지...”


그 말들을 들으니 목구멍까지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선물을 드리고 좋아하실 때는 아무 말씀도 없으시더니 라는 생각이 들면서 잔뜩 싸들고 간 선물들이 내 사랑의 실패처럼 느껴졌다. 나는 울음을 꾹 참고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억누른 채 “죄송하다.”고 말하며 조용히 마무리했다. 어머니는 나 같은 건 보기도 싫다는 듯, 먹지도 않은 음식들을 모두 치우고 옆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내가 집을 나설 때까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내내 TV 만 보셨다. 평소 같았으면 음식을 싸주시고, 가볍게 안아주시며 “언제 또 올 거냐.”고 물으시던 어머니가 어린 시절 내게 등을 보이던 그 모습으로 돌아와 계셨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하면 다음번엔 그녀가 원하는 대로 내가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는지 어머니는 내내 냉대함으로 나를 대했다.


나는 그럼에도 ‘마지막만은 따뜻하게 남기자.’ 는 마음으로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남편과 시골집을 나왔다. 그리고 그 이후 한 달 동안, 매일같이 울었다. 그 울음은 단지 그날을 향한 것만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향한 깊은 연민의 울음이었다. 이미 내면이 많이 황폐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날의 기억은 내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언젠가 한 심리학자가 말했던 것처럼, 너무 큰 충격은 대형 트럭에 치인 것과 같은 고통을 남긴다 했는데, 그때의 내가 딱 그랬다. 남편은 출근하면서 나를 걱정했다. 오늘은 꼭 맛있는 걸 먹으라며, 당부하고 또 당부하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디던 몇 달 동안 시골 부모님 누구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동생의 결혼식에도, 나는 초대받지 못했다.


그리고 몇 달이 흐른 후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내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기 시작하셨다. 전화를 받지 않자,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고, 내게는 “사랑한다. 딸. 보고 싶다.”는 문자를 계속 남기셨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지난 몇 달 동안 이 관계에서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명확히 확인한 상태였다. 그들은 내가 어찌되든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소진할 마음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까지도 그 ‘끊음’의 결단을 지켜내고 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용서해야 한다. 우리 모두 죄인이다. 원수가 뺨을 때리면 반대쪽 뺨도 내주어라.“는 말을 들어왔다. 용서를 말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오랫동안 내 죄책감을 자극했고 내 안의 초자아가 만들어낸 도덕적 가스라이팅이 되었다. 나는 용서하지 못해서, 하고 싶지 않아서 죄책감에 빠졌고, 그 수치심은 신과의 진정한 만남마저 방해했다. 가정 안에서 나에게 정해졌던 역할은 생각보다 단단했고, 생각보다 오래갔다. 그리고 마지막 날, 나는 비로소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 괜찮다.‘ 는 생각을 나에게 허락했다.


그래,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지금 내 속도대로 나 자신부터 용서해 가고 있는 중이다. 그 순간 나는 탈삼각화되었다. 보웬의 가족이론에서 이처럼 감정적으로 얽힌 삼자관계에서 한 사람이 물러나는 것을 ‘탈삼각화’라 부른다. 관계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건 외면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정서적 독립이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누구나 속도가 같은 건 아니니까. 나처럼 달팽이의 속도를 가졌다면, 달팽이처럼 천천히 기어가면서 용서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겨우 100년 남짓 사는 우리 인생에서, 용서하든 용서하지 못하든 천국 가기 전까지만 하면 신도 아마 그 정도는 너그럽게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그러니 이제는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들을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 사용하자.


그동안 타인을 위해 기꺼이 했던 말과 행동들을 이제 내게 먼저 돌리기로 했다. 가정 내 역할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희생자가 되었던 나.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타인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법은 배웠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믿는 신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 말은, 결국 “너 자신을 사랑하듯”이라는 전제를 담고 있다. 자기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건강한 출발점이다. 혹시 아직, 자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타인을 향해 건넸던 말과 행동들을 떠올려 보자. 그것을 이제 나 자신에게 먼저 해 주는 것이다. 나도 지금에서야 달팽이처럼 느리게 하루하루 배우고 있는 중이다. 달팽이처럼 기어가면서 나는 오늘도 용서와 사랑을 배우고 있다.


우리는 때때로 과거의 나를 대신 구제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금의 타인을 도우려한다. 하지만 그것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내 미해결 과제를 되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처는 대신할 수도 없고, 대신 구해줄 수도 없다. 누구든 자기 발로 스스로 빠져 나와야 한다. 그들이 내게 건넸던 사랑은 ‘조건부’였다. 내가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거두어지는 사랑이었다. 나는 이제 나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품는 일이야 말로 내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1부 6.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참고 자료


1. Bowen, Murray, 『Family Therapy in Clinical Practice』, Jason Aronson, 1978.

→ 사용된 개념: 가족체계이론, 역할 고착, 삼각관계, 탈삼각화

2. Beattie, Melody, 『Codependent No More』, Hazelden, 1987.

→ 사용된 개념: 공의존(코디펜던시), 자기 소외, 감정 억압

3. Freud, Sigmund, 『The Ego and the Id』, W. W. Norton, 1923.

→ 사용된 개념: 초자아, 죄책감 기반 자기 억압, 도덕적 가스라이팅

4. Kohut, Heinz, 『The Analysis of the Self』,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71.

→ 사용된 개념: 자기심리학, 자기 억압, 조건부 수용의 내면화

5.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옮긴이 강도형, 을유문화사, 2020.

→ 사용된 개념: 감정의 신체화, 트라우마의 신체 반응, 관계 외상의 반복 기억

6. Chapman, Gary, 『5가지 사랑의 언어』, 옮긴이 장동숙, 생명의말씀사, 2009.

→ 사용된 개념: 조건부 사랑 vs 무조건적 사랑, 언어적 사랑 표현의 결핍

7. Reik, Theodor, 『The Compulsion to Confess』, Farrar, Straus and Giroux, 1959.

→ 사용된 개념: 반복강박, 상처의 재연을 통한 자기 구제 욕구

8. Sullivan, Harry Stack, 『The Interpersonal Theory of Psychiatry』, W. W. Norton, 1953.

→ 사용된 개념: 대인관계이론, 가족 내 관계 반복, 자기감정 전이

9. Rogers, Carl, 『On Becoming a Person』, Houghton Mifflin, 1961.

→ 사용된 개념: 무조건적 존중, 자기 수용, 자기에 대한 진정성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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