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 2부. 2.

2부 2.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다. 는 신념

by 김희경 작가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부. 나의 진짜 신념을 세우기 위해 – 경계 짓기와 믿음 바로 잡기


생존을 위해 만든 내면의 신념체계를 들여다보고, 새롭게 정의하다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2.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다. 감정보다 의무가 우선이다. 는 신념 부수기 - 감정 억압, 초자아의 억제


(1) 벌써 마흔


엊그제 6월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7월이다. “이번 달엔 꼭 열심히 공부할 거야.”라고 호기롭게 시작한 6월이었다. 달력을 보고 나서야 한 달이 훌쩍 지났다는 걸 알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30대 중반과 후반을 대부분 집 안에서 보냈다. 마지막 변호사 시험을 보고 나서 1년은 나름 취업문을 두드렸지만, 이후 3년은 거의 온전히 집에서 나와 시간을 보냈다. 몸이 아프기도 했고, 새로운 시험을 준비하면서 합법적으로 ‘집순이’가 되었다. 그리고 진짜 나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를 받아들이는 일은 고단하고, 어떤 날은 괴롭기까지 했다. 죄책감과 수치심에 익숙했기 때문에 불투명한 미래를 가진 스스로를 견디지 못했다. 예전엔 ‘사람을 직업으로 판단하는 건 나쁜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누구보다 스스로를 직업으로 재단하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는 진심으로 변호사가 되지 못한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지난한 3년은 매일 나 자신과 싸우고 화해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알게 되었다. 오늘 이 글이 쓰일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전적으로 남편 덕분이다. 집순이로 살아가는 나를 남편은 자유롭게 놓아주었고, 건강만을 생각하라며 시댁과의 만남조차 막아주었다. 그러니 나를 괴롭히는 유일한 존재는 결국 나 자신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회피가 필요할 땐 무언가를 가득 먹고 잠에 들었다. 가득 찬 위장이 심장을 눌러주는 듯 그 묵직한 감각이 좋았다. 덕분에 식도염과 위염을 달고 살면서도 어릴 때부터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아니면 반대로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공부에 몰두하며 며칠씩 잠을 자지 않았다.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나는 불면의 밤을 자주 보냈고, 그러다 결국 건강이 무너졌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런 반복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었다. 먹고 자고를 통해 감정을 억누르고 현실을 마비시키려는 자기 자신을 향한 무의식적 공격이었다. 심리학에서 이를 ‘자기 파괴적 행동(self-destructive behavior), 또는 '자기 처벌(self-punishment)' 의 한 형태로 본다. 특히 감정을 억압한 채 성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성향은 실패를 하거나 멈췄을 때 자책과 자기학대로 이어지기 쉽다. 나에게 먹는 행위는 위로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자신을 짓누르고 조용히 무력화시키는 방식이었다. 결국 감정이 허락되지 않으면 생명력을 해치는 방식으로라도 자기 존재를 억제하게 되는 것이다.


삼십대 중반, 내 몸은 과 충전 끝에 더 이상 충전되지 않는 건전지처럼 되어 있었다. 마지막 시험 성적표를 받던 날을 떠올리면, 모든 기억이 짙은 연필로 덧칠된 듯 어둡다. 그 시기, 친부는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니가 멍청해서 떨어진 거야.”


그리고 시어머니는(당시 남자친구의 어머니였음) “니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지.” 라고 말씀하셨다.


그 외에도 지워버리고 싶은 말들이 차고 넘친다. 게다가 마침 그 시기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때와 겹쳤고, 시부모님과의 갈등도 극에 달해 관계가 끊긴 직후였다.





(2) 충전되지 않는 삶, 회피에서 글쓰기로


나는 또 다시 잠으로 회피하려 했다. 하지만 수면조차 더 이상 도피처가 되지 못할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넷플릭스를 몰아보거나, 심리학 서적을 뒤적이며 공부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다시 일어났다. 내 감정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 이어졌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그때부터 나는 내 마음의 외침을 하나씩 글로 옮겨 적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감정보다 의무가 우선이다.’라는 신념을 직면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오랜 시간 무의식적으로 나를 지배해온 초자아의 억압이었다. 초자아는 도덕과 이상을 내면화한 자아의 일부분으로 내가 옳다고 믿는 기준에 벗어난 감정이나 욕구를 억압한다. 나의 초자아는 늘 ‘이 정도는 참아야지.’, ‘다른 사람도 다 이러고 살아.’ 같은 말을 속삭이며 내 감정을 무시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나는 타인의 감정을 우선시하며 나의 감정을 후순위로 밀어내는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이 ‘착한 사람’으로 사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감정을 억압하고 살아가는 삶은 결국 내 생명력을 소진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뭔가를 해보겠다고 생각한 그 날부터 내 마음이 외쳐대는 소리를 하나씩 글로 적어가기 시작했다. 오늘 이 글도 글이 자꾸만 나를 쫒아 와서 적는 글이다. 그리고 내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3)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살인사건 피해자가 되어 병원에 누워있던 어느 날, 친부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늘 통화의 첫 마디를 “아빠다.”로 시작하곤 했다. 자신이 실제로 아버지 역할을 한 적도 없으면서 ‘아빠’라는 말에 과하게 집착하던 그의 태도는 여전히 의아하다. 마치 그 단어 하나로 정당성을 얻으려는 것처럼 그는 전화든 만남이든 ‘아빠’임을 강조했다.


“아빠다. 내가 너 그렇게 만든 놈 찾고 있다. 힘 꽤나 있는 사람들한테 부탁했으니까 며칠만 기다려봐라. 잡기만 해 봐라. 바닥까지 털어서 돈을 뜯어낼 거니까.”


그 말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결국 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돈’이구나. 하는 실망이었다. 걱정보다는 계산이 먼저였던 그의 말은 내 안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의 대사는 늘 돈과 보상, 투자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었고 그 속에 감정은 부재했다.


친부는 예전에도 자신이 나를 동생에게 맡기며 700만원을 줬다는 이야기를 반복하곤 했다. 그 시절 공무원 월급이 30만 원 남짓하던 때라며 그 돈을 갚느라 2년을 고생했다고 했다. 마치 나를 돈으로 거래한 것처럼 그는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희생했다.’는 서사를 끊임없이 말했고, 그 안에서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고등학생일 때 수학 문제집 한 권만 사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한 달 동안 전화를 꺼 놨다. 만 원짜리 문제집 한권도 거절했던 사람이 이제 와서 ‘널 위해 돈을 썼다.’ 며 군림하려는 태도는 내 안에 오래된 혼란을 다시 불러왔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 때 쓰던 일기장에 보면 ‘돈이 있으면 수학 문제집 한권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문구가 적혀있을 정도다.


사실 친부는 돈을 주거나 빌려주는 방식으로 어린 시절 결핍된 애정과 인정을 보상받고자 했다. 심리학에서 이를 보상심리(compensatory behavior)라고 부른다. 이는 자신이 과거에 충분히 충족 받지 못했던 애정이나 권위, 자존감을 다른 방식으로 채우려는 시도다. 친부는 돈을 쥐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 가족 안에서 자신이 군림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 위계의 꼭대기에 올라선 것처럼 행동했다. 이는 과잉보상(overcompensation)의 전형이기도 하다. 과잉 보상이란 열등감이나 수치심을 덮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으로 아들러는 이를 개인심리학에서 중요한 방어기제로 설명했다. ‘무력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어른의 나’로 대체하며, 자신이 더 이상 무력하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명절이나 제사, 가족 모임에서 친부는 늘 50만원이나 100여 만 원이 든 돈 봉투를 내밀며 ‘어머니들 고생하신다.’며 과시했고, 돌아선 후에는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 장면 뒤에서 나는 시골 가족들에게 짐짝 취급을 받으며 “꼴에 이것도 돈이라고.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이것 밖에 안 준 다냐.” 라는 말을 듣게 만들었다. 그가 만든 권력의 장은 결국 내가 떠안아야 할 수치와 불편함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만든 파급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과 위세에 취해 돈을 줬으니 이 만큼 행동해도 된다는 태도로 군림했고 그 행위와 말의 결과는 늘 내가 치러야 했다.

사실 친부가 동생들에게 돈을 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기꺼이 빌려준 것은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어릴 적 가족으로부터 받지 못했던 애정과 인정을 이제는 ‘주는 사람’ 의 위치에서 얻고자 하는 무의식적 시도였다. 보상심리에 따라 그는 결핍된 사랑, 애정, 존중을 성취나 재산으로 대체하려는 이 메커니즘은 종종 ‘받기 위한 주기’로 작동한다.


그는 돈을 쥐고 있는 위치에서 구 가족들에게 일방적인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것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내가 너희보다 위에 있다’는 역전된 위계의 선언이다. 역전된 위계 구조는 어린시절의 무력감과 수치심을 ‘지금은 내가 가진 자다.’라는 태도로 되갚는 심리적 보상의 방식이다. 특히 아버지는 주는 액수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군림하려 했고 명절이나 가족 모임에서 시골 가족들 앞에서 무지막지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곤 했다. 그는 그런 행동을 통해 권력의 맛을 만끽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권력의 그림자는 늘 나에게 드리워졌다. 시골에 홀려 남겨진 나는 아버지의 말과 행동이 남긴 감정적 짐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아버지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었다. 그는 자신이 감정에 취해 휘두른 권력의 대가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았다. 700 만 원을 주었든 이후 더 많은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했든 그것은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저 거래의 대상이자 군림의 도구였을 뿐이다.


게다가 아이러니 하게도 오히려 나는 기생충 취급을 받았다. 어머니는 내게 친부를 투사했고, 돈 한 푼주지 않고 공짜로 나를 맡겼다고 믿은 어머니는 감당할 수 없는 분노와 수치를 나를 향해 쏟아 부었다. 구조 속에서 가장 약한 대상에게 감정이 전이되는 전형적 방식이었다. 어머니는 친부가 돈을 보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알고 있었다 해도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종종 명절에 50만원, 100만원이 든 흰봉투를 친부가 내려두고 가면 봉투를 가져와 마당 수돗가에 나를 세워두고 말씀하셨다. '아깟 돈으로 누구 코에 붙이라고.' 그러니 돈을 줬든 아니었든 어머니께 돈은 내게 투사하기 위한 하나의 이유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나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 전가와 분노의 수신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내내 돈 문제에 휘말려 살아왔다. ‘누가 얼마를 줬다.’, ‘그걸로 뭘 했는지 모르겠다.’, ‘그깟 돈으로 뭘 어쩌라는 거냐.’는 말들이 나를 에워쌌다. 그런 기억들 탓에 오늘 나는 여전히 돈 문제에 민감하다. 그래서 지금도 가계부를 쓸 때 1원 단위까지 빠짐없이 기록한다. 그것은 통제이고, 생존이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경계였다고 생각한다.


며칠 뒤 친부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다. 아빠 아는 사람들이 권력이 좀 있거든. 그래서 부탁했더니 탐정 사서 조사했다네. 근데 너.. 어릴 때부터 난잡해서 동네 할아버지 꼬셔서 더러운 짓 하고 그랬대매. 내가 그 말 듣고 얼마나 열 받았는지 아냐.”


그 순간 가슴에서 덜컥 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살인사건 피해자가 된 내게 연민이나 보호의 말을 건네는 대신 마치 내게 원인이 있는 듯이 취조를 해 왔다. 나를 걱정해기 보다 ‘혹시 니가 문제를 일으킨 건 아니냐.’ 며 나를 심문하는 그 말투는 내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 같았다.


“그거.. 동네 할아버지 아니고.. 아빠 아버지예요.”


“뭐라고?”


“그거.. 할아버지라고요.”


5초쯤 정적이 흘렀다.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다음에 전화를 하겠다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그날 밤부터 구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내가 어릴 때부터 숨겨왔던 ‘나만의 비밀’을 공중분해하듯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 사건은 단지 누군가가 알게 된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확정’된 순간이었다. 무덤까지 가져가려던 나의 비밀은 가장 보호해 주었어야 할 사람에 의해 세상에 공개되었다. 나는 다시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에 마음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4) 네 감정은 아무 것도 아니야

1차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살인사건 피해자가 된 후 약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살인 사건 피해자가 되어 집에 틀어박혔을 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 사이 구 가족들에게 흩어졌던 나의 비밀은 마치 먼지처럼 가라 앉은 듯 조용해졌고, 나 역시 그 일에 대해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가끔 친부가 전화를 걸어오거나 나를 만나면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원래 옛날에는 왕족들이 가족끼리 결혼하고 그랬어.”


그는 그 말로 나를 위로하려 했는지도 모르지만, 내게 그것은 명백한 2차 가해였다. 그런 그가 다시금 연락을 해오던 날, 시골 아버지를 비롯해 동생, 친척 동생들까지 모두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할아버지가 너를 보고 싶어해. 그래도 네가 마지막은 지켜줘야 하지 않겠니.”


나는 그 많은 가족 중 왜 ‘나’여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의 요구는 명분을 가장한 강요였고, 과거를 전혀 직면하지 않은 채 다시 희생을 요청하는 목소리였다. 중간고사를 일주일 앞둔 시점이라 학업을 이유로 거절했지만 전화는 멈추지 않았다. 동생은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언니는 하나님 사람이잖아. 할아버지 그냥 가시면 언니가 후회할 거야. 우리 교회에도 언니 같은 일 많아. 그러니까 엄살 부리지마.”


친척 동생도 전화를 걸어와 내게 말했다.


“성경에 일흔일곱 번도 용서하라고 했어. 우리 모두 죄인이잖아. 할아버지가 곧 돌아가신대.” 나는 그런 말들을 들었을 때 가슴에 멍이 들었다. 성경 구절 앞에 명확히 ‘죄인이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거든.’ 이라고 써있는데 성경을 읽기는 한 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




누가복음 17장 3~4절 (개역개정)


3절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절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나는 다시 내 감정을 배반하고 스톡홀름 증후군(자신을 억압하거나 해친 대상에게 정서적 유대를 느끼는 상태)에 걸린 사람처럼 감정의 감옥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그 당시 누군가 ‘가지마. 넌 안 가도 돼.’ 라고 말해줬다면 그날 내 감정은 구원받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또 하나의 비난이었다. 마지막으로 친부가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못 가니까 너라도 대신 가줘. 니가 내 딸이잖아.”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부여잡고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마음 한켠에선 계속 속삭이고 있었다. 너 괜찮아? 라고. 나는 또 다시 내 감정을 버리고 타인의 감정을 대신 짊어지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처참하게 무너졌는데 정작 그는 아무렇지 않게 10년을 더 건강하게 살다 가셨다.





(5) 내 감정은 그 누구의 감정보다 중요하다

과거를 떠올리면 검정 물감으로 덮어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너무 많다. 아프고, 더럽고, 역겹다고 느껴질 때 나는 나 자신까지 미워했다. 무기력과 공포가 마음을 가득 채웠다. 어릴 적부터 나는 당연히 감내해야만 하는 존재로 여겨졌고,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내 감정은 무가치한 것이라고 학습되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불합리한 일을 겪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서’라는 자동화된 사고는 결국 ‘나는 무가치하다’는 핵심 신념과 맞닿아 있었다. 이런 사고는 나를 무의식적으로 사랑과 학대를 반복하는 사람들, 가해자적 대상에게 끌리는 선택으로 이어졌고 그 관계들 속에서 나는 늘 충성하고, 헌신하고, 견디며 언젠가는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나는 힘이 들면 힘이 날 때까지 잠을 잤다. 성취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애썼고, 나 자신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과하게 몰입하고 분주하게 살아갔다. 그렇게 사는 동안 나는 내 감정이 타인의 필요에 의해 소모되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들은 때로 날카로운 말로 내 감정을 찢어 놓았고 이후에는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거나 따뜻한 말을 건네며 다시 나를 길들였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우정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 같은 건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던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해 했다. 나는 그 관계들을 유지하기 위해 고마운 기억을 앞세워 내 아픔을 무시했다. 불편한 감정과 기억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인지부조화 속에서 나는 늘 고마움을 선택했다. 그렇게 내 감정을 지우고 고마운 기억으로 덧칠하며 내 아픔을 외면했다.


그 결과는 불과 몇 해 전 모든 관계의 공중분해로 나타났다. 더는 밀려날 곳이 없던 내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나를 이렇게까지 잃어버리며 지켜온 관계들이 사실은 나를 침묵하게 만든 구조였다는 것을 말이다. 실패가 내게 온 것은 어쩌면 행운이 아닐까 지금은 생각한다. 변호사가 되지 못한 일이 나를 이 자리까지 이끌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원하는 대로 성공했다면 나 역시 친부처럼 구 가족과 이루지 못한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다시 그 관계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처럼 내 안의 핵심 신념을 직면하고 그것을 해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보다 의무가 우선이라는 신념은 결국 내 안의 초자아가 만들어낸 감정의 억압 구조였다. 나는 그 구조를 해체하고 이제는 감정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친부는 끝내 자신의 고통을 마주하지 못하고 알코올에 기대어 살아갔고 그 결과 알코올성 치매에 걸려 얼마 전 요양원에 들어갔다. 나는 그와는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다.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자기 삶을 회복할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너무 가까이에서 봤다. 그러니, 이제 나는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아니, 어떤 순간에서든 나의 감정이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할 가치가 있고 그래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감정을 가장 먼저 안아주기로 한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버리지 않는다. 이 글은 그 결심의 기록이며 내가 나에게 건네는 첫 번째 안부이자 위로다. 나는 오늘도 따뜻한 코코아 한잔을 내 감정에게 먼저 건넨다. 그리고 오늘의 나를 위로하며 내 감정은 어떤 자격 심사 없이도 그저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을 이제 믿기로 했다.





2부. 2.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다> 참고 자료

1. Freud, Sigmund, 『The Ego and the Id』, W. W. Norton, 1923

→ 사용된 개념: 초자아의 억제, 자기 처벌, 감정 억압 / 자아심리학

2. Bowlby, John, 『A Secure Base: Parent-Child Attachment and Healthy Human Development』, Basic Books, 1988

→ 사용된 개념: 감정 안전기지 상실, 애착 관계의 왜곡 / 애착이론

3. Adler, Alfred, 『Understanding Human Nature』, Hazelden, 1992

→ 사용된 개념: 보상심리, 과잉보상(overcompensation), 개인심리학의 열등감 보완 메커니즘 / 개인심리학

4. Festinger, Leon, 『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 Stanford University Press, 1957

→ 사용된 개념: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 사회심리학

5. Beck, Aaron T., 『Cognitive Therapy and the Emotional Disorders』,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76

→ 사용된 개념: 자동화된 사고, 핵심 신념, 인지 왜곡 / 인지치료이론

6. Herman, Judith L., 『Trauma and Recovery』, Basic Books, 1992

→ 사용된 개념: 2차 가해, 외상 후 감정 억압, 구조 속의 침묵 강요 / 트라우마 심리학

7.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Brain, Mind, and Body in the Healing of Trauma』, Viking, 2014

→ 사용된 개념: 감정 억제와 신체 증상, 정서적 트라우마의 신체화 / 트라우마 심리학

8. Walker, Lenore E., 『The Battered Woman』, Harper & Row, 1979

→ 사용된 개념: 스톡홀름 증후군, 관계의 역학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동조 / 관계 트라우마 이론

9. Kalsched, Donald, 『The Inner World of Trauma』, Routledge, 1996

→ 사용된 개념: 자기 내면에 대한 공격, 자기파괴 행동 / 분석심리학

10. Freud, Anna, 『The Ego and the Mechanisms of Defence』,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36

→ 사용된 개념: 감정의 억제와 방어기제 / 자아 방어이론






당신의 오늘이 조금은 더 자유롭고 평안하길 기도합니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12화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 2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