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3. 나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다라는 핵심신념 부수기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생존을 위해 만든 내면의 신념체계를 들여다보고, 새롭게 정의하다
어쩌면 누구나 마음속에 유리조각 하나쯤은 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지만 날카롭고 작지만 깊게 찌르는 고통을 주는 조각을 말이다. 그 조각은 각자의 방식으로 품고 있는 기억의 파편이자, 말하지 못한 수치심이며, 드러낼 수 없는 아픔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이유 없이 울컥하기도 한다. 그 사람의 눈빛, 말 한마디, 스쳐 지나간 문장이 꺼내지 못한 내 유리조각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손에 닿은 것도 아닌데 가슴이 아프고, 피가 흐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오래 함께한 유리조각은 어느 순간부터 나와 하나가 되어 내 마음과 누군가의 마음을 찔렀다. 나는 나만의 유리조각을 들키지 않기 위해 꽁꽁 싸매어 마음 깊숙이 묻어두었지만, 그 조각은 불쑥 튀어나와 나를 찌르고, 때로는 타인과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유리조각은 내 마음의 방안을 뒹굴며 속삭였다. ‘너는 어딘가 부족해. 어딘가 잘못됐어.’
그랬던 유리조각들이 서로 부딪히고 깎이며, 보석처럼 다듬어지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 많은 유리조각을 마음에 쌓아가며 밀물과 썰물처럼 반복되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 나도 모르게 같은 이야기와 비슷한 사람과의 만남을 반복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고 부른다. 해결되지 못한 감정이나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하며 이번에는 다르게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같은 서사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 반복은 억압된 기억의 재연이며 동시에 무의식적 치유 욕구의 표현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는 잊히지 않고 형태를 바꾼 감정으로 우리 삶 곳곳에서 다시 나타난다. 나의 경우 그 감정은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문장으로 굳어져 있었다. 어쩌면 오늘도 나는 내가 아직 마주하지 못한 유리조각을 다듬기 위해 비슷한 조각을 다시 수집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조각들을 피하고 억누르기보다 마주하고 이해하고 꺼내어놓을 때 비로소 회복이 시작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곳에 조심스럽게 내 조각 하나를 꺼내어 내려놓는다. 이것은 상처의 고백이자 회복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조각이 나와 비슷한 조각을 품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어릴 적부터 나는 늘 무언가 하나쯤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시작은, 나를 키운 어머니들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넌 왜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니. 완벽하게 해야지. 너 눈에는 이런 게 안 보여?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
비슷한 말들을 반복해서 들을 때마다 더 잘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잘하려고 할수록 더 많은 실수를 하게 됐다. 무언가를 시도할 때마다 마음속에 불안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실수는 나의 고착된 자기 개념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 부른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라는 신념이 현실을 구성하고, 나의 행동을 통제하며, 결국 그 결핍을 스스로 증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신념은 완벽주의라는 방어기제를 불러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끔은 떠오른다. 분명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왜 마지막에 가서 실수했을까. 아니 왜 스스로 실수를 만들어냈을까 하고 말이다. 그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내 안에 각인된 자기 개념이 작동한 결과였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라는 신념을 재확인하려는 방향으로 행동했고, 결국 그 결핍감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항상 더 나아져야 한다는 압박, 실수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은 나를 끊임없이 위축시켰다. 수치심을 기반으로 한 자기 파괴적 완벽주의는 겉으로 보기에는 노력으로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자신을 향한 끊임없는 비난과 공포로 작용했다. 이것은 초자아(Superego)의 과잉 활성화가 만들어낸 자기 징벌의 형태이자,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내면화된 비난의 목소리였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서 존재의 결함을 지워야만 한다고 믿었고, 더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점 점 더 몰아세웠다. 실패는 곧 나의 가치의 증명을 실패한 것처럼 느꼈기 때문에 그 벌은 오롯이 스스로에게 내리는 오래된 유죄판결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려 나 자신을 부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오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굉장히 수다스럽고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언제부터 부끄럼쟁이라고 부를만한 내향형 성격의 사람이 되었는지 모른다. 분명 어릴 때는 누구도 말릴 수 없을 만큼 말이 많고 유쾌하며 제 할 말 다 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고, 나의 모든 것을 감춰야만 안전하다고 느끼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극적인 성격 변화는 단순한 기질의 변화라기보다 외상 이후 성격 변화의 전형적 양상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은 반복된 수치심, 위협, 배신이 아동의 자아상을 왜곡시키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위축’과 ‘감정 차단’을 학습하게 만든다고 본다. 이러한 복합 트라우마(complex trauma)는 감정의 정체감을 손상 키시고, 자기표현의 통로를 닫게 만든다. 나 또한 말이 없어졌고, 내면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 누구와도 진심을 나누기 어렵고, 내 감정을 설명하는 언어가 부족해졌으며, 관계보다는 침묵이 더 안전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나는 보이지 않는 방어막을 치고 살기 시작했다.
내 기억에 어머니는 유독 속옷에 대해 엄격하셨다. 열 살 무렵부터 여자아이라면 속옷을 스스로 세탁하고 챙겨 입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으셨다. 알아서 자기가 하는 걸 보고 따라 하겠거니 싶으셨던 것 같다. 나는 종종 속옷을 갈아입지 않았고 세탁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종종 매를 맞았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야단쳤지만 내가 왜 그러는지 무엇이 문제이고 어려운지 물어보신 적은 없었다.
아주 어린 시절의 한 기억이 내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할아버지는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꼴로 나를 목욕실로 불렀고, 나의 내밀한 부분을 씻겨주며 ‘청결 교육’을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때마다 알 수 없는 수치심에 휩싸였고, 그 감정은 이후 내 삶에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수치심은 내 신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고, 속옷을 갈아입지 않는 행동은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과 자기 벌의 은유적 표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내가 일주일 넘게 같은 속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알고도 모른 척하셨다. 그 모습은 마치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 건 네가 원래 그런 아이이기 때문”이라는 무언의 판단처럼 느껴졌다. 한 번은 속옷이 찢어진 상태로 놀고 있다가 친척에게 들켰고, 그 친척이 어머니에게 전달했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다른 어른들과 나누며 한참 웃으셨다. 나는 그 웃음 속에서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고, 누군가의 보호를 받을 자격조차 없는 아이로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이중 구속(double bind) 상황에 갇혔다. 돌봄을 받기 원하지만 돌봄을 요청하는 순간 모멸을 경험하는 구조 속에 갇혔다. 그래서 나는 내 감정을 숨기고 어머니에게 어떤 감정도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 감정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나를 가두고 있었으며 내 감정 표현의 결핍은 인간관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나는 내면에서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있었기에 바깥의 인간관계를 유지할 여유조차 없었다.
가끔 심리학 강의를 듣다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남는 건 가족밖에 없다.”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면에서 뭔가 쪼개지는 느낌이 났다. 가족 밖에 없는 건 맞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족을 제일 먼저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전제를 함께 알려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지금도 가족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에서 무언가 떨어져 나가는 기분을 느낀다.
성인이 되어 어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가장 좋은 속옷을 여러 벌(10장 넘게) 사서 선물했다. 그리고 어머니를 찾아갈 때마다 예쁜 속옷을 준비해 또 챙겨갔다. 어릴 적 어머니와의 기억들이 속옷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그 시절 해결되지 않았던 갈등과 수치심을 무의식적으로 보상하려 했던 것 같다. 이는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반복된 복귀(reparative repetition)의 전형이다. 과거의 상처를 현재의 돌봄 행위를 통해 치유하려는 심리적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어머니는 속옷에 대해 유독 엄격하셨다. 중학생이 되자 속옷을 살 때마다 아버지에게 돈을 받아오라고 하셨고, 직접 챙겨주는 일은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속옷을 단순한 의복이 아닌, 수치심과 통제를 위한 상징으로 여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 어린이 된 뒤, 어머니에게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속옷을 사드림으로써 그녀의 감정을 채워주고, 동시에 내 안의 결핍을 메우려 했던 것 같다. 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의미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안도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스스로에게는 인색했다. 내 속옷 하나 사는 것도 아까워하면서 남자친구 어머니와 어머니께는 아낌없이 선물과 속옷을 사드렸다. 겉으로는 경제적 이유 같았지만, 내면에는 ‘나는 여전히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는 신념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부족하다는 믿음은 내 몫을 포기하게 만들고 타인의 결핍을 채워야만 쓸모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했다.
이러한 태도는 공의존적 관계의 핵심 구조다. 나의 욕구는 억압되고, 타인의 필요가 곧 나의 존재 이유가 된다. 타인을 기쁘게 하며 내 안의 공허함을 잠시 덮는다. 그 순간의 충만감은 일종의 정서적 중독처럼 반복됐고, 나는 점 점 더 인정 욕구에 집착하게 되었다. 문제는 타인의 기쁨과 사랑은 일시적이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어머니든, 시어머니든 두 분 모두 각자의 내면에 깊은 결핍과 불안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은 예측 불가능하게 요동쳤다. 그 불안을 대신 짊어지려 했던 나는 결국 자발적인 시녀가 되었고, 그들의 삶과 감정에 과도하게 개입하게 되었다. 그럴수록 나에게 요구되는 일이 더 많아졌고, 내가 감당해야 하는 정서적 부재도 점점 커졌다. 요구를 충족시킬수록 더 큰 요구가 이어졌고, 그 사이에서 나의 불안과 무력감은 나날이 커져갔다. 이 관계의 역동은 구원자 콤플렉스(savior complex)와 공의존이 결합된 상태였다. 나는 타인을 통해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점점 더 나 자신을 소진시켰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 모든 돌봄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 내면의 결핍과 불안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나는 타인의 결핍에 몰두했고 타인의 아픔을 해결하는 일에 내 존재 가치를 걸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쓸모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지만 그 행복은 언제나 너무 짧았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분명 따뜻하고 가치 있는 태도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행동이 자기 상처를 감추기 위한 자기 파괴적 선택이라면, 결국 나도 상대도 행복할 수 없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살피고, 상대가 필요로 하기 전에 미리 준비하고, 도와주는 좋은 사람이 되는 행위는 종종 자기 존재를 지우는 대가를 동반한다.
공의존 관계는 겉보기에 사랑과 헌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결핍을 타인을 통해 메우려는 역동이다. 타인의 필요와 감정에 내 정체성을 의탁하고, 그 안에서만 존재의 가치를 느끼는 구조 안에서 결국 상대의 자립을 막고 나의 삶을 소진시킨다. 그렇게 한 헌신은 의무가 되고, 희생은 기대가 되기 때문에 결국 나는 아무도 구하지 못해 무너져 내렸다. 이제는 그렇게 하는 무조건 적인 사랑이 반드시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 사랑의 동기가 죄책감과 두려움, 수치심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감정적 생존 전략일 뿐이다. 진짜 사랑은 두려움에서 비롯되지 않으며 서로를 지배하거나 자신을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관계에서 피어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가 믿어왔던 신념이 누구의 목소리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신념이 나를 얼마나 왜곡시켜 왔는지를 마주해야 한다.
내가 가진 핵심 신념 중 하나는 ‘나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기에, 끊임없이 노력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신념이 내 삶을 얼마나 불안과 고통으로 몰아넣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그 믿음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말한다. 나는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나의 존재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고 말이다. 나는 이제 부족함을 완벽함으로 증명하느라 내 삶을 소진하지 않기로 했다. 사랑은 성과로 얻는 것이 아니며 존재는 성적표로 판단되지 않는다. 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리조각처럼 날카롭던 그 신념은 오랜 시간 내 안을 베어왔다. 하지만 그 조각을 들여다보고, 만지고, 울고, 다듬어온 시간 덕분에 오늘의 내가 성장하고 회복되었다는 것을 안다. 이제 그 믿음을 바꾸려 한다. 나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자신의 빛을 숨기고 온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유리조각을 햇빛 아래 꺼내어 놓는다. 유리조각 중심으로 들어온 햇빛은 내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듯 프리즘 빛깔을 띠는 아름다운 빛을 내어 놓는다.
유리조각이 보석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아팠지만 그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내 안의 진짜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 조각이 있었기에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내 상처를 돌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다. 과거의 고통이 만들어준 오늘의 나를 반짝이는 보석이 된 유리조각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당당하게 이곳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진심으로 당신도 이제는 행복해져도 된다고,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유리조각도 언젠가 빛을 만나 당신만의 아름다운 색으로 반짝이기를.
1. Freud, Sigmund,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W. W. Norton, 1920
→ 사용된 개념: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 무의식적 상처 재연 – 정신분석학
2. Fairbairn, W. R. D., Psychoanalytic Studies of the Personality, Routledge, 1952
→ 사용된 개념: 자기 비난의 내재화, 수치심 방어기제 – 대상관계이론
3. Kohut, Heinz, The Analysis of the Self,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71
→ 사용된 개념: 자기애 결핍, 자기 파괴적 완벽주의 – 자기 심리학
4. Bowlby, John, Attachment and Loss, Vol. 1: Attachment, Basic Books, 1969
→ 사용된 개념: 애착 결핍, 안전기지의 상실, 회피적 애착 – 애착이론
5.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Viking, 2014
→ 사용된 개념: 복합 트라우마(Complex Trauma), 감정 차단, 외상 후 성격 변화 – 트라우마 심리학
6. Bowen, Murray, Family Therapy in Clinical Practice, Jason Aronson, 1978
→ 사용된 개념: 이중구속(Double Bind), 가족 내 정서적 억압 – 가족체계이론
7. Rosenberg, Marshall B., Nonviolent Communication, PuddleDancer Press, 2003
→ 사용된 개념: 자기감정 언어화의 어려움, 감정적 단절의 회복 – 비폭력 대화/정서 표현
8. Beattie, Melody, Codependent No More, Hazelden, 1986
→ 사용된 개념: 공의존(Codependency), 자기 소외와 인정욕구 – 관계중독 회복 심리학
9. Norwood, Robin, Women Who Love Too Much, Pocket Books, 1985
→ 사용된 개념: 구원자 콤플렉스(Savior Complex), 감정적 중독 – 관계심리학
10. Young, Jeffrey E. et al., Schema Therapy, Guilford Press, 2003
→ 사용된 개념: 핵심 신념(Core Belief), 자기실현적 예언 – 인지치료 및 도식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