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목차 수정 및 2부 4. 내가 무너지면
목차
프롤로그
‘상처’에서 ‘자유’로, ‘의무’에서 ‘선택’으로 나아간 김희경 작가의 신작.
가족이라는 감정적 언어 속에서 길을 잃었던 한 개인이 자아와 회복을 향해 걸어온 심리적 여정.
1.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
혈연이라는 이름이 만든 구조적 폭력
2. 가족이라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한다는 믿음의 해체
3. 가족 내에 형성된 내 역할을 점검하라
역할고착(Role entrapment)과 삼각관계(Triangulation)
4. 불쌍하지 않은 걸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
감정의 무효화(Emotional invalidation)와 2차 피해
5.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에 주의하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통제의 언어
6.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민은 선택이지만, 용서는 강요가 아니다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2.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다. 감정보다 의무가 우선이다.
3. 나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다.
4.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 나는 중재자이자 책임자여야 한다.
5.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림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추가. HSP, 엠패스, 초예민자에 대한 심리학적·정신분석학적 통합 보고서
6.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 내가 못하면 사랑은 끊긴다.
7.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8. 내가 선택받지 못한 건 내 탓이다.
9. 나는 언제든 내 것을 빼앗길 수 있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볼 자격이 없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은 이기적이다.
10.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내 고통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1. 가족은 모두에게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가족의 이상화와 현실 사이의 괴리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태어난 가족과 선택한 가족 사이에서의 경계 설정
나와 남편의 원 가족들과 건강한 경계 세우기
3. 자녀는 부모가 선택해서 태어난 가족이다.
미성년자를 돌보지 못하는 건 죄지만, 효를 다하지 못하는 건 죄가 아니다
돌봄의 책임을 왜곡한 문화적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4. 타인의 시선에 갇힌 나를 구하라
사회적 자아와 진정한 자아 사이에서
5. 돕고 싶다면 나를 먼저 도와라
심리적 경계 설정과 자기 돌봄의 윤리
1. 가장 먼저 용서해야 할 건 바로 나 자신이다.
스스로를 연민하지 말 것
2. 내가 타인의 지옥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옥에 가두면 타인도 지옥으로 끌어 들인다.
3. 스스로에게 행복과 자유를 허락하라.
자기 연민이 아닌 자기 인정을 선택하는 순간
4.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속도대로 걷기
1. 삶이 어려울수록 글을 써라.
기록은 치유의 시작이며, 내면의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방법이다
2.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찾기
감정적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 실천 가이드
문화, 예술, 취미, 레저의 유익
3. 작은 성취라도 내 노력으로 획득할 것
작은 성취를 통해 내면에 영양제 먹이기
가족을 다시 정의하는 것에서 치유는 시작된다.
사랑의 이름 아래 스스로를 잃어갔던 시간을 넘어, 이제 나를 회복하는 길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언젠가 봤던 심리학 강의에서 심리학자가 말했다. 어린 시절의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 30% 정도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 말은 어떤 사람의 마음을 구원하면서도 또 어떤 사람은 죄책감에 빠지게 만든다. 어린 시절의 영향이 30%도 채 안 되는데도, 어린 시절의 영향을 주야장천 받고 있는 내 경우가 그렇다. 그래서 30%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누구일까를 오랫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영향을 받아서 지금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과 상태를 바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30%가 아니라 무의식이 100% 조종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내 안의 감정기억(emotional memory)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 속에 살고 있었다. 사실 나처럼 어린 시절의 문제가 현재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잘못된 선택을 하고, 왜곡된 애착에서 애정과 사랑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단지 ‘지금 잘 살면 된다.’는 말로는 회복이 어렵다. 그래서 나는 30%가 100%가 되어버린 사람이라면 반드시 어린 시절의 문제를 직면하고 치료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무의식적 반응을 의식으로 끌어올려 지금 이 순간에 맞는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자기 조절력(emotional regulation)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은 어찌 됐건 지나온 과거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아주 깡그리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어린 시절을 무작정 묻어놨던 내 선택이 오늘의 내 삶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니 오늘 내 삶의 결과는 전적으로 모두 내 선택에 따른 내 잘못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무의식의 힘에 조종된 선택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그동안 나는 잘못된 만남을 선택하고 건강하지 못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도망치 듯 회피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수치심과 죄책감의 구렁에 빠뜨렸다. 구할 수도 없고, 구해줄 사람도 없는 깊은 구덩이 안에서 눈물 흘리다 다시 덮고 나오길 반복하면서 나는 회피성 방어기제(avoidant defense)를 삶의 전략처럼 사용하며 살아냈다. 그리고 오늘을 맞이해서야 어린 시절의 영향이 지금도 삶의 의사결정과 감정 반응을 이끌고 있고, 그 과거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과거와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내가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과거를 단순한 추억이나 이야기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감정의 조각들이고, 내가 왜 지금도 반복된 관계에 고통받고 쉽게 무너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내면의 지도였다. 이 글을 쓰기까지도 수많은 갈등을 겪었다. 혹시 누군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이 글로 인해 내가 소중한 무언가를 잃게 되지는 않을까. 그런 고민을 하며 일주일을 넘게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쓰기로 결심한 건, 더 이상 타인의 감정에 내 감정을 종속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 안의 ‘감정 중재자’로서 이제는 내가 나의 감정을 먼저 돌보고 지지해 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다른 이들의 감정에 과하게 몰입해 늘 나를 잃어버렸던 삶에서 이제는 내가 나를 구원해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나를 위한 이기심이 아니라 자기 회복의 본질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감정의 주인이 되어 사는 것이 진짜 내 삶이고 성숙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관계에서는 정말 안타깝지만, 반드시 내가 존중을 받아내야 한다. 이 글은 그 단호한 선언에서 시작하는 글이다.
타인의 감정을 내 감정보다 우선하게 되었던 건, 결국 어린 시절 이야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한다. 대가족 구성 안에서 내 역할은 언제나 중재자이자, 희생자였기 때문이다. 1장에서 구구절절 이야기했던 내용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나는 생존을 위해 아주 쉬운 방법으로 타인의 감정을 우선해 눈치를 보며 살아남는 방식을 익혔다. 이것은 단지 성격이거나 예민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애착과 생존을 연결시켜 버린 방어기제의 결과였다. 그 경험 덕분에 내 안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을 우선해야 한다. 중재자 역할을 잘해야 오늘의 삶을 지킬 수 있다. 는 핵심신념(core belief)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신념은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 깨달아 나올 때까지 수없이 반복됐다. 이는 여러 번 설명했듯 반복강박에 대한 이야기다. 무의식이 의식에게 말한다.
“아직 해결되지 않았어. 다시 해봐.”
그래서 비슷한 사람, 비슷한 관계, 비슷한 상처를 반복해서 선택했다.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들은 평생 동안 이 반복강박을 반복하다 미해결과제를 영원히 미해결로 남긴 채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이제는 반드시 자신의 미해결 과제를 들여다보겠다는 마음으로 따라와 주길 바란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대가족 구성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 사이사이에 끼어 중재자면서 희생자 역할을 맡았다. 그 역할은 안타깝지만 내가 성인이 되어 선택한 새로운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다시 반복됐다. 그때는 내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시부모님과의 갈등이라는 형태로 다시 찾아왔다는 걸 몰랐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고 나서야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내가 타인으로부터 존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부모님과의 갈등을 통해 나는 내 안의 반복강박을 완전히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비슷한 사람과 관계 속에 들어가려 하면 몸과 마음에서 경고가 먼저 온다. 갑작스러운 두드러기, 알 수 없는 음식 알레르기, 지나친 무기력감에 몇 날 며칠을 잠만 자는 회피성 행동들로 나타난다. 이제는 내 무의식이 더는 나를 그런 상황에 놓이도록 하지 않는다. 관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고, 끊어낼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 강제로 몸의 증상으로 멈추게 만든다.
가장 최근의 이야기를 하자면 시어머니와의 10년을 빼놓을 수 없다. 그 관계는 내가 완벽히 반복강박 문제를 깨닫고 미해결 과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게 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일정 부분 어머니께 매우 감사하고 있다. 어머니와 나는 처음에 남자친구의 어머니와 여자친구라는 관계로 시작했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남자친구 가족 구성원이 되고 싶었던 나는 이 관계에 아주 깊게 심취했고, 내 인생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며 관계를 지속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이 관계가 나를 지옥으로 데려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어머니는 50대 초반 나이셨다. 그때의 나는 ‘50대면 정말 많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부터 10년 후면 내가 바로 그 나이가 된다. 그래서 지금은 오십이라는 나이가 얼마나 한창이고 모든 걸 할 수 있는 나이인지 알게 됐다. 사실 그 시기 나는 이미 여러 번의 반복 강박을 겪으며 과거의 연애를 모두 실패한 상태였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까지는 남자친구 부모님과의 만남을 가능한 한 늦추고 싶었다. 그런데 대학원 1학년이 되었을 때 남자친구로부터 부모님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는 말을 들었고, 이내 만남 약속이 잡혔다.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면서도 나를 보고 싶어 하신다는 말에 인정받은 느낌이 들어서 감사했다. 과거의 연애에서는 항상 내가 먼저 남자친구 부모님을 뵙고 내 마음대로 준비한 선물과 만남을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 쪽에서 먼저 나를 원했다는 사실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인정 욕구를 채워주는 아주 작은 경험이 내가 이 관계에 몰입하는 단초가 되었던 것 같다. 간절했던 소속감과 누군가의 가족이 되고 싶었던 욕구, 그 모든 것이 이 만남 하나에 집중되고 있었다.
지금은 남편이 됐지만, 과거에는 남자친구였던 남편의 부모님을 부모님의 초청하에 처음 만나게 됐다. 처음 만난 곳은 한정식을 정갈하게 차려내는 고급 식당이었다. 두 분을 만났을 때 드디어 내가 인생에서 원하던 부모님을 만났다는 생각에 떨리고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만났을 때 어머니는 막 50을 넘긴 나이셨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곱고 아름다우셨다. 듣던 것보다 더 아름다우셔서 놀랐고, 말씨와 매무새가 어찌나 곱던지 나도 나이가 들면 어머니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내게 정말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그리고 자주 만나자며 다음 약속도 잡아주시면서 나를 얼마나 귀하게 대하고 싶어 하시는지 대화를 통해 보여주셨다. 그날 정말 하나님께서 내 소원을 드디어 들어주셨다고 생각했다. 파랑새를 찾던 소녀가 드디어 파랑새를 만난 것처럼 나는 그날이 지금도 선연히 기억난다. 지금 돌아보면 그 만남은 단순한 호의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잃어버린 가족의 공백을 메우고자 한 내 무의식이 새로운 안전기지를 찾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애착이 손상된 사람은 종종 타인의 따뜻한 태도에 과잉반응하게 된다. 나를 지켜줄 가족을 찾아야 했던 내 마음은 어머니의 미소를 무조건적인 수용으로 해석하고 말았다.
내가 어머니와 깊게 인연을 맺은 이유는 1장에서 밝혔듯이 친부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나는 과거에 불안정 애착과 회피성 애착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 누군가와 갈등이 일어나면 마음에 불안이 치솟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몸이 아프거나, 갈등이 해결될 때까지 잠으로 회피했다. 내가 갈등이라고 말하는 건 사실 갈등이라기 보다 일방적인 폭력이 가까웠지만 편의상 갈등이라고 하겠다. 친부가 술을 먹고 거나하게 취해 나에게 의존하려고 찾아다닐 때면 나는 친구 집, 학교, 남자친구 부모님 집을 전전하면서 친부와의 만남을 피해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버이날이나 명절이 되면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친부에게 인사를 갔다. 친부는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는 고운 새색시처럼 말이 없고, 별다른 행동이 없었기 때문에 낮에는 내가 생각하는 효도가 가능했다. 그렇게 밤에만 나타나는 반쪽짜리 친부를 피해 다른 반쪽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낮에 친부의 집에 찾아가곤 했다. 어느 날 새어머니가 나를 보고 말했다.
“너 전번에 나랑 같이 밤에 아빠랑 찾아갔는데. 너 못 찾았어. 네가 살았던 집 대문 두들겨도 아무도 안 나오고. 그새 이사 간 겨?”
그 말을 듣고 어찌나 놀랍고 충격적이던지, 새삼 옆집에 살면서도 나의 상황을 묵인해 주고 나를 존중해 주셨던 집주인 어르신들께 감사했다. 심지어 어르신 분들은 결혼을 약속하고 유학을 갔다가 유학에 취해 나를 버린 남자친구가 찾아왔을 때도 내게 도움을 주셨다는 걸 이사할 때 알려주셨다(연락이 갑자기 끊겼다.). 어르신 분들은 나중에 물건 찾듯 나를 찾아왔다던 구 남자친구를 대면하셨을 때도 그런 사람 모른다고 이야기해 주셨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한 분들이다. 세상이 전부 나를 해칠 것만 같던 시절, 그분들은 말없이 내 편이 되어주셨다고 생각한다. 그 분들의 존재만으로도 나는 과거의 날들을 빛나게 기억할 수 있게 됐다. 감사하다.
친부는 음주운전 문제로 2년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집에서 쉬는 일을 반복했다. 2년을 여러 번 반복하다보니 10년이 금세 흘러갔다. 친부는 쉴 수 있게 되자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혹자는 ‘친부를 피해 이사를 가면 되지 않겠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대학원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이미 과외 등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 생활에 충당해야 하는 돈이 늘 부족했고, 책을 구입해야 할 때가 되면 기본 5만 원이 넘는 책 값에 손이 떨렸다. 그러니 이사를 간다는 건 언감생심 꿈같은 일이었다. 이사를 고려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정말 여러 곳을 찾아봤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던 집은 학교 근처에서 가장 저렴한 원룸이었다. 집주인 어르신께서 내 사정을 고려해 1~2만 원을 더 할인해 주셨기 때문에 그만큼 안전하고 깨끗한 공간을 다시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리고 내 안에 자리 잡은 ‘그래도 아버진데...’의 말을 내 안의 초자아가 계속 뱉어내는 바람에 친부가 술 취하지 않은 상태일 때는 효도를 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과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말이 나를 지켜주는 진리이자 동시에 나를 무너뜨리는 명령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그 명령은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기능을 모두 마비시켰다. 그러니 이 잘못된 관계를 아버지 입장에서도 아주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죄책감과 수치심, 잘못 자리 잡은 핵심 신념 때문에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구 가족들에게 계속 끌려 다니는 동안 나는 완벽해 보이는 남자친구 부모님의 가정에 의존했다. 이 가정이라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역기능적 가족에서 자란 아이는 종종 성인이 되어 ‘소속하고 싶은 가족’을 외부에서 다시 만들고자 하는 무의식적 충동을 경험한다.
그 믿음은 아주 오래된 내면 아이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믿음은 곧 나를 또 다른 고통으로 데려갔다. 여우를 피해 갔더니, 호랑이를 만났다는 말처럼 나는 정말 내 반복강박과 핵심 신념을 완벽히 박살 내줄 은인을 만나게 되어버렸다. 아주 은밀하게 말이다. 과거의 나를 생각할 때면 상대가 아무리 내게 나쁘게 대했더라도 내가 알아서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하나님이 알려주신 사랑이 완성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에 따른 행동은 그대로 남자친구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반복됐다. 나는 종교적 신념과 자기부정이 뒤섞인 혼합 신념 속에서 스스로를 희생했고, 그게 올바른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러니 친부 입장에서도, 시부모님 입장에서도 나는 존중하고 사랑해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언제든지 학대하고 함부로 대해도 알아서 설설 기는 존재로 자리매김해 갔다.
아주 가까운 가족관계에서도 쉽게 용서하고, 죄책감과 수치심이 많고, 타인의 감정을 우선하는 사람은 정서적 포식자(emotional predator)에게 자연스럽게 먹잇감이 되는 구조로 흘러간다. 안타까운 건 내게 이렇게 대했던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아주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그렇게 대한 건 내가 그럴 만하고 그래도 되는 사람이 되어줬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결국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 스스로도 존중하지 않은 내가 타인에게 존중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친부를 피해 시부모님 집 거실을 내 방 삼아 생활할 때 어머니는 정말 좋아하셨다. 옷장 정리, 냉장고 정리, 기본 반찬 만들기, 집 안 청소 등 시키면 안 하는 일이 없는 데다, 아주 편안하고 값싸게 혹은 무료로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들만 잠깐 내어주면 어머니는 아주 편하게 나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폭풍처럼 호통을 치다가도, 아주 부드럽게 나를 달래며 관계를 이어나가셨다. 그건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였고, 감정 조종(emotional manipulation)이었다. 폭력과 보상, 무시와 애정 사이를 오가며 나를 길들이는 관계 속에서 나는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그 성인아이는‘중간 감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모호하고 착취적인 구조 안에서 또 한 번 스스로를 희생자 자리에 밀어 넣었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반복하면서 나는 인정 욕구에 지나치리만큼 중독됐다. 무엇인가 원하시는 걸 들어드렸을 때 어머니의 반응이 시큰둥하거나, 좋지 않으면 변호사시험에라도 떨어진 것처럼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계셨던 어머니는 나를 함부로 대했다가도, 아주 살가운 신혼초기 상태로 돌아간 신혼부부인 것처럼 나를 애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셨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와 트라우마 본딩(Trauma Bonding)이라고 말한다. 간헐적 강화는 좋은 대우와 나쁜 대우를 예측 불가능하게 반복함으로써 상대가 더 집착하고, 벗어나기 힘들게 만드는 조종 전략이다. 그리고 트라우마 본딩은 사랑과 학대가 교차되는 관계에서 생기는 강력한 정서적 유대감으로 피해자는 가해자가 주는 ‘보상’을 기다리며 관계에 붙잡히게 된다.
나는 어머니와의 관계 안에서 이 두 가지가 얼마나 뚜렷하게 작동하는지 몸으로, 삶으로 겪으며 내 안에 각인시켜 갔다. 결국 나도 모르는 사이 서로에게 강력하게 의존하는 감정적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어느 날부터 나를 완전히 잠식했다. 어머니와 함께한 10년 동안 어머니는 하고 계시는 일들이 정말 많은 데다 친구도 얼마나 많은지 매일 같이 오전, 오후로 나눠 외출을 반복하셨다. 그 사이 내가 독서실에 가려고 하거나, 집에 돌아가려고 하면 “금방 돌아올게.”. “가지 마.”라며 반복해서 붙잡으셨다. 심지어 대문 앞까지 나를 데리고 나와 손을 강하게 붙들고 자신이 돌아왔을 때 반드시 집에 있어야 한다며 부탁에 부탁을 거듭하셨다. 집에 돌아가면 다시 올 때까지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시거나 함께 밥을 먹자며 학교로 찾아오셨다. 그러니 피해 갈 곳이 없었다. 어머니의 말과 행동에 나는 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나를 아주 오랫동안 돌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머니 덕분에 친부를 아주 자연스럽게 피할 수 있었다. 더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해, 덜 아픈 고통에 중독되는 방식으로 그때를 살아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친구들을 만나기 전 머리를 미용실에서 말던지, 내게 말아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아주 곱게 화장을 하고 옷을 고른 후 외출을 나갔다 오셨다. 돌아오셔서는 다음 외출까지 시간을 10분마다 보시면서 전전긍긍하셨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스타일리스트가 되어갔다. 손목과 손가락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다닐 때마저도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내 머리 해주기 싫어서 손 아프다고 하는 거지? 며느리들이 명절에 일부러 일하기 싫어서 깁스한다며. 너는 그러지 마라.”
아픔마저 죄책감으로 덧씌워지는 관계, 그것이 내가 겪은 ‘사랑의 방식’이었다. 외출할 때 시간이 비면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드렸고, 발톱에도 발라달라고 하셨다. 허리가 아파 고개를 숙이기 어렵다며 양말까지 신겨주도록 하는 관계에서 나는 어머니께 아주 이용하기 쉬운 시녀였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의 일상적인 외출 준비를 도우며 점차 시녀처럼 기능하는 관계에 적응해 갔다. 어머니는 집에 있는 날이면 하루 종일 어디가 아프다. 뭐가 필요하다. 힘들다.라는 말을 늘어놓으셨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가 편하시도록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동 반사적으로 다 해주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가끔 어머니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벽에 화장실에 가다가 자고 있는 나를 일부러 발로 툭 차고 지나가셨다.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던 사실에 대해서도 둘만 있을 때 뺨을 때리기도 하셨으니 사실 발로 찬 것은 별 거 아닐 정도다.
가끔 어머니의 정서적 폭력에 화가 나서 내 감정을 이야기하려 하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가로막으셨다.
“어디서 30년은 더 어린 게 말을 하려고 해.”
그 말이 입을 막고, 감정을 막고, 자아를 무너뜨렸다. 그런 반복적인 관계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와 모습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의 모습이 투사되었고,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시면 어릴 때 아침마다 소리를 지르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내 정신은 점점 망가져가고 있었고, 내가 울거나 속상해해도 시아버지는 원래 내가 그래도 되는 사람인 양 자연스럽게 행동하셨다. 학대받는 사람은 자신이 학대받아 마땅한 존재처럼 여겨지는 시스템에 내던져지고, 그 시스템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하게 오래 지속된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입이 깔깔하다.”며 화를 내며 하루를 시작하셨다. 그 풍경이 모든 가족들에게 아주 익숙한 광경이었다. 기분이 특히 좋지 않고 몸 상태가 나쁜 날에는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소환해 “당신은 뭐가 부족해.”. “당신 같은 사람이 뭘 하겠어.”, “왜 내가 하라는 거 왜 안 했어. 이러니 내가 화를 안내?” 라며 다른 가족들 앞에서 아버지를 정서적으로 깔아뭉개고, 학대하셨다. 그리고 가장 윗자리를 차지한 어머니는 모든 권력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걸 과시하셨다. 그 모습을 매일 마주했던 남편은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에 무기력과 자기애 결여, 낮은 자존감을 가진 채 어른으로 성장했다. 학대가 반복되는 가정에서는 정서적 지위가‘힘’이 되고 침묵이 기본 값이 된다. 남편은 어머니의 기분을 알아채고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생존 전략이었고, 나 역시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이 이어지다 어머니께서 내면의 에너지가 채워지면 갑자기 살갑게 행동하시며 잠시 전에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을 마음대로 무마하셨다. “나는 뒷 끝이 없어. 모든 가정이 다 이래.”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다른 가족들의 마음을 마비시켰다. 그 모습들을 보며 나 역시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가정의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 이것은 정서적 가스라이팅의 한 형태였다. 반복되는 폭력과 무마사이에서 감정이 무뎌지고, 판단이 흐려졌다. 사랑도, 폭력도 아닌 그 모호함 속에 길들여진 나는 빠져나올 수 없는 무기력에 갇혔다.
한 인간이 무기력한 상태를 오랫동안 경험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그 사람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는 믿음을 내면화하게 되고, 뭔가를 잘해도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게 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기 못하는 성인아이로 자라게 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두려움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획득된 무기력은 삶을 놓아버리는 선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아주 위험하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어떻게 이렇게 좋은 남편을 만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남편의 가정이 내 원가족과 매우 닮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 신호를 포착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것이 바로 반복 강박이다. 익숙함은 곧 안전함으로 느껴지고 상처의 구조를 그대로 반복하는 대상에게 무의식은 매혹된다. 그럼에도 내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고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선택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밝혀둔다.
시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주 잠깐 일본계 회사에서 몇 달 일한 것 외에는 직업 활동 경험이 전무하셨다. 부잣집 막내딸로 자란 덕분에 어머니의 아버지는 언제든 어머니께서 쓸 수 있도록 서랍에 돈을 가득 넣어두셨단다. 필요할 때마다 서랍에서 돈을 꺼내 쓰면 됐기 때문에 돈에 대한 공부를 전혀 하지 못하셨다. 그리고 결혼을 선택할 때 부잣집 아들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오늘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셨다. 시아버지는 외부적으로 보기에는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어린 시절 큰 아버지 댁에 양자로 들어갔기 때문에 실질적인 부를 획득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이 없으셨다. 그 사실을 결혼 후에 알게 되신 어머니는 자신의 선택을 결혼 후 내내 후회하셨단다. 그러니 어머니의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든 시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실수를 만회 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결혼 후 돈을 벌어오면서도 집에서도 모든 가사 일을 도맡아하셨다. 퇴근 후에도 집에 다시 출근하는 삶을 살아내셨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내 남편은 가사에 대한 트라우마가 어쩔 수 없이 있다. 가사일을 아무리 잘해도 ‘칭찬하면 자아가 높아진다.’ 며 어머니는 아버지를 가족 들 앞에서 마음껏 깔아뭉개셨다. 겉보기엔 사랑이 많아 집안일을 하시는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아버지는 가정 내에서 콩쥐 팥쥐 전의 콩쥐였다.
권력이 불균형한 부부 관계에서 약자는 더 큰 사랑을 주는 쪽으로 위장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닌 보상적 노동이었을 뿐이었다. 결혼만 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결혼 후 빈털터리에 가까운 아버지를 만났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매우 상하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부잣집 딸이 부잣집 도련님이랑 결혼했으니 말은 안 해서 그렇지 돈 진짜 많지. 부럽다.”라고 하는 친구들 말에 한 번도 반박하지 않으셨다. 집에서 종종 그 말을 하시며 상처 가득 받은 표정을 지어 보이실 때마다 나는 어떻게 위로해 드려야 할지 고민하곤 했다. 현실은 친구들과 같지 않았지만 그 판타지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기본 모임이 10개가 넘어가고, 국내 여행을 달에 친구들처럼 4-5번은 가야 하고, 갈 때마다 새로운 장신구와 옷, 신발을 착용해야 하는데다 친구들이 해외여행에 갈 때 꼭 같이 가야 하는 삶 속에서 어머니는 정말 힘들어하셨다.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아버지가 퇴직하고 나서는
“어디 가서 돈이라도 빌려와.” 라며 힘들게 했고 자신의 친구들처럼 살도록 용돈을 주지 못하는 나와 남편에게도 화를 내셨다.
문제는 내가 시부모님 집에 오는날에는 자신의 권력을 더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더 심하게 학대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머니와 싸우시다가도 갑자기 가만히 있는 나를 끌어들여 “너 여기 오지 마라. 네가 오면 집에 분란만 일어난다. 너는 왜 분란만 일으키냐.” 등의 다양한 망언을 쏟아내셨다. 그때는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서 이해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그런 말씀을 하신 데 내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어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싸움에 나를 일부러 끼워 학대를 나눠지게 하신 점은 지금도 용서할 수 없다. 그리고 시아버지는 마지막 갈등 속에서
“네가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미안하다고 할 필요 없다. 아들이 만나니까 어쩔 수 없이 너를 보는 거다.”
등의 말씀을 하셨다. 마지막이라고 한 건 그 이후로 나는 남편의 본가에 가지 않기 때문에 그다음에 없어서다. 그리고 나는 10년 동안 그들 관계 안에서 중재자면서 희생자 역할을 맡으면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하고 피폐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과거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에 공부를 해야 할 때 나는 시어머니의 시녀 역할을 했고, 남편은 천 원이라도 벌어오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니 대학원 모의고사든, 변호사 시험이든 정상적으로 잘 본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후에 어머니께서는 변호사는 학교만 들어가면 무조건 되는 거라고 생각하셨단다. 어머니께서 나를 붙잡고 있는 시간 동안 집 안에는 시부모님과 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더 자연스럽게 나를 대할 수 있었다. 폐쇄된 환경에서 타인의 기대에 응답해야 할 책임을 혼자 지는 구조에 갇힌 피해자는 자연스럽게 가해자로부터 자아의 경계를 침해당하게 된다.
대학원 모의고사는 그대로 변호사시험 점수와 연결되는 결정적인 시험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백의 노력을 한다고 해도 부족하다. 그래서 학교에 있는 학생들은 가족관계든 일이든 모두 내려놓고 오직 공부에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그렇게 해도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며 경쟁하기 때문에 밀려나는 건 당연한데다 밀려나면 견딜 수 없어 정신과에 다니거나 약을 복용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시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게 효도라고 믿으며(강요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안일을 거들며 시간과 노력을 착취당했다. 그리고 시부모님은 그것이 사랑이고, 효도고, 가족의 도리라는 말로 모든 것을 무마했다. 그 대가로 시부모님은 20만 원의 월세를 매달 내게 지급해 주셨다. 공부에 더 투자하라며 아르바이트를 하지 말라고 주셨던 월세 20만원이 어느 순간부터 내 목을 조이고 통제의 수단이 되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월세를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게 됐고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점차적으로 완전히 믿게 됐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모든 걸 박차고 나가서 일해야 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내 자존감과 자긍심, 삶을 지켜낼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이미 너무 깊은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었고, 우울증이 극단적으로 높아져 아주 위험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그러니 당시 끌려가는 일 밖에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내가 아주 위험한 상태였다는 것도 최근에야 심리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탈진된 자아 상태(ego depletion)다. 선택의 주도권을 상실한 채, 타인의 감정에 반응하며 살아가는 자기 소진 덕분에 나는 내면과 외면이 완벽히 무너져 갔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늘 누군가를 구해야 내 존재가 정당화된다고 느껴왔다. 그래서 계속해서 타인의 감정을 짊어지고 나를 지웠다. 시부모님이 자신들의 돈을 어디에 쓰든 그건 내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어머니가 자신이 돈이 부족해서 친구들과 비슷하게 살지 못하는 책임을 나와 남편에게 전가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나와 남편과 시누이가 아직 공부 중이라고 자기 삶이 이렇게 어렵다고 통제와 조종의 언어로 접근하셨다. 이것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죄책감을 유발해 상태를 통제하는 조종적 언어였다.
“너네 때문에 돈도 못 쓰고, 남들은 자식들이 해외여행도 보내주고, 집 리모델링도 해준다더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 구석에서 검은 마음이 불쑥 올라오곤 했다. ‘남의 집 부모님들은 집도 사주고, 유학도 보내주더라.'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그런 말이라도 한 번 해볼까 싶을 때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또다시 누군가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내 감정을 눌러 삼키고 내 자리를 포기하려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어머니께 친구 분들의 자녀들처럼 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죄책감까지 느꼈다. 도대체 내 감정을 누가 조종하고 있었는가. 지금 와서 돌아보면 어머니의 언어는 단순한 푸념을 넘어 내가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교묘하고 은밀한 심리조종의 메시지였다. 너희들 때문에라는 말은 책임의 화살을 우리에게 돌리는 동시에, 그분의 불만과 고통을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바꾸는 말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어머니께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해달라는 걸 다 해드리겠다.' 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얼굴을 굳히며 말씀하셨다.
“그러면 당장 아들이랑 헤어져.”
그리고 결혼 후에 또 똑같이 나를 정서적으로 학대하실 때 어머니가 너무 싫고 밉다고 하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내 아들이랑 왜 결혼했어?”
나는 어머니께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냥 내버려 뒀다. 어차피 듣지 않으신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어머니를 참아낸 건 어머니와 남편을 동일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과 어머니가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분리해서 사랑하는 남편의 어머니라는 생각으로 대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여전히 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헌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러니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남편에게 전이시키지 않고, 남편에게 복수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시어머니의 횡포에 화가 나서 자고 있는 남편의 이불을 뺏거나, 집 밖에 쫓아내기도 한다고 들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기억할 건 내가 결혼한 건 남편이지 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지만, 남편도 죄가 없다. 이것은 효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 시부모님이 어떤 분들이든, 내게 어떤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셨든 그분들이 그러신 건 남편과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분들을 바라보기로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더 알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남편의 새로운 부모가 되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어린 시절 건강한 부모를 갖지 못했던 것처럼 남편 역시 오랫동안 의지처가 되어줄 심리적 부모가 부재한 상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심리학자들은 결혼 후 남편과 부인이 서로의 부모가 되어줄 수 있다고 했다. 서로가 새롭게 서로를 낳아주고, 정서적 부모가 되어줌으로써 과거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 나에게 아주 긍정적으로 들렸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새로운 부모가 되어주기로 했다. 물론 남편 역시 내게 가족보다 더 가족이 되어 주어 오늘의 나는 완전히 남편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어린 시절은 성인기에 30%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 일견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과거를 제대로 조망하고 나를 직면하면 어린 시절에 무슨 일을 겪었든 오늘의 삶을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다. 불쑥 나쁜 마음을 먹게 되더라도 그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주는 선택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예를 들면 아침에 피곤해서 일어나지 못하는 남편을 볼 때 ‘그러니까 어젯밤에 일찍 자라고 했잖아.’라는 말이 확 올라온다. 그 마음이 올라올 때 아침마다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깨우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래서 비난의 말 대신 남편이 자고 있는 침대 위로 올라가 살포시 남편을 껴안는다.
“일 하느라 힘들지. 내가 무슨 복을 받아서 오빠를 만나 이렇게 행복한지 몰라. 내가 오빠가 힘든 거, 노력하는 거 다 알아. 정말 고마워.”
라고 남편 귀에 속삭인다. 처음에는 이런 말들과 행동에 남편이 말했다.
“뭘 알아. 모르잖아. 심리학에서 그렇게 말하래?”
라고 했던 남편도 지금은 내게 사랑의 말을 돌려준다.
“고마워. 나도 네가 있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야. 네가 있는 집이 내 집이야. 네가 있어서 너무 행복해. 고마워. 항상 건강하게 살자.”
서로 무엇이든 조금 더 해주려고 하고, 조금 더 손해 보려 하기 때문에 우리 집은 서로에게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집, 훌륭한 부모가 서로에게 되어주고 있다. 늦게 자든, 늦게 일어나든 상대편의 마음에 서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비난과 판단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면 왜 그런 마음이 생기는지를 먼저 들여다본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기원에 접근하고 반응을 재 선택하는 능력이다. 이는 정서 반응을 단순히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기원을 자각하고 그것을 재해석함으로써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과거의 트리거를 자각할 수 있을 때, 현재의 관계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어린 시절을 이해하고 직면한다는 것이 이런 힘을 갖게 해 준다는 걸 나는 매일 깨닫고 있다.
과거에는 시부모님 사이에서 제대로 중재자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남편이 미웠던 적도 있었다. “자기 부모님인데..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시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기도 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역할 사이에 남편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결했어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피해자기 때문에 남편에게 책임지라며 모든 것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남편 부모님이 내게 그러는 것이 남편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분리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생각해 보면 나의 원 가족은 어디다 내놔도 부끄러울 정도로 엉망인데, 남편은 내 원 가족이 어떤 행동을 했든 나를 비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남편의 원 가족이 내게 했던 말과 행동들을 남편 탓을 했다. 참 부끄럽다. 나도 바꿀 수 없는 원 가족을, 남편에게만 해결하라고 전가한 것이 너무 후회되고 미안하다. 남편 역시 얼마나 수치스럽고 아팠겠는가.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남편에게 시부모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는 가족 체계 내에서의 정서적 분화(differentiation of self)를 실천하는 과정이었으며 더 이상 남편의 가족과 나의 감정을 혼동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나와의 관계가 어떻든 남편에게 잘해주시는 부모님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남편은 나와 시부모님 사이에서 10년 넘게 고통스러운 상황을 함께 직면하고 돌파해 오다 보니 그 누구보다 가족 문제에 있어선 법률가로서 최상의 경험치를 갖게 됐다. 게다가 매일 같이 심리학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떠들어 대는 부인을 만나 심리학 지식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기 때문에 남편은 가정법 분야에선 최고의 변호사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러니 가정 속에서 학대받고 아프게 된 분들에게 가정 문제가 있으시다면 남편을 꼭 소개하고 싶다. 법률적 도움과 더불어 깊게 이해해 주는 진정한 법률 전문가를 만나게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법 제840조 제3호에 따르면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재판상 이혼 사유에 해당한다. 직계존속 안에는 시부모가 포함되기 때문에 남편은 의뢰인 분들이 아주 적은 이야기만 해도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듣는 경험치를 갖게 됐다. 그러니 언젠가 시부모와의 갈등, 원 가족과의 갈등 문제로 재판에 서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남편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남편은 대단한 전문가가 되었다. 이것이 고난과 불행이 주는 또 다른 유익이 아닐까 생각한다.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을 바꾸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스스로 대처하다 상처받기 전에, 시부모님에 대한 분노를 남편에게 전가해 복수하기 전에, 적절한 법률적 도움을 받기를 권해드리고 싶다.
- 사랑의 주도권을 내 안으로 돌려준 시간
과거의 나는 신이든, 다른 누군가든 나를 구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랑 역시 품을 수 없을 만큼의 사랑을 남편에게 달라 구걸하지 않는다. 남편 역시 사랑받아야 할 대상이고 사랑을 쏟아부어도 부족할 만큼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깨달은 점이 있다면 사랑이라는 건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저 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매일 같이 나를 가장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자기애는 이기심이 아니라 관계의 전제 조건이다.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타인을 돌보면서 자신을 잃게 된다. 나는 내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모든 관계를 끊고 집안에 틀어박혀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3년을 보냈다. 나도 혹시 타인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두려움에서 나는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 덕분에 나는 3년 동안 지난날들을 정리하고, 오늘의 내 감정과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나만의 힘을 갖게 됐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 노력했지만, 노력으로는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10년을 통으로 보내고 나서야 완벽히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가족 안에 들어가 가족 구성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이상 나는 누군가의 가족 구성원이 되고 싶지 않다. 가족이 필요하면 스스로 만들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관계의 주도권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소속되려 애쓰지 않고 스스로 만든 공간에서 내가 선택한 사람과 살아가면 된다.
원 가족은 신이 아무렇게나 주는 추첨제 같은 것이라 선택이 불가능하지만 성인이 되어 선택하는 모든 관계는 내가 선택해서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원 가족이든, 내 원 가족이든 그 구성원 안에 들어가 가족이 되겠다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자기 돌봄은 단지 기분 전환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감정적으로 독립하겠다는 매일의 선언이다. 그래서 내가 만든 가족인 남편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서 오늘 하루를 매일 같이 준비한다. 남편의 아침을 행복하게 밝히고, 남편의 출근이 순조롭도록 준비하고, 남편의 저녁이 행복할 수 있도록 음식을 준비한다. 그리고 오늘 내가 더 행복해서 내 행복이 전해질 수 있도록 하루를 산다. 그러니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나를 구원해 달라 떼쓰지 않는다. 남편에게도 나를 더 많이 사랑해 달라 요구하지 않는다. 다행히 나는 정말 좋은 남편을 만나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랑을 쏟아부어도 괜찮다는 것과 그 사랑이 사랑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매일 감사한다. 남편은 사랑할 대상이지, 사랑을 요구하고 내놓으라고 할 대상이 아니니까. 나는 오늘도 나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기 위해 아침을 연다. 이는 정신분석학과 인지치료, 관계 심리학에서 공통으로 강조하는 자기 돌봄(self-care)과 자기 자각(self-awareness)의 중요성을 실천으로 체득한 것이다. 그 아침을 오늘 글에 남기면서 당신의 매일이, 당신이 선택한 오늘들이 되길 기도한다.
그리고 나는 타인의 중재자가 아니라 내 안의 다양한 모습을 한 나 사이에서 중재자가 되어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구원자도, 희생자도 아닌, 나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고 조율할 수 있는 내 삶의 주체로 살아가기로 했다. 내가 나의 진짜 가족이 되어주는 것. 그 순간 진짜 나의 가족이 시작된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며느리로 존재해야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온전한 나로 존재하며 가족을 이뤄가는 것. 그것이 성숙이고, 회복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내 삶을 살아내기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그 삶 안에 나를 구원한 사랑이 있다고 믿는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 살아주지 않고, 오직 나의 삶을 나답게 살아갈 것이다.
1. Freud, Sigmund, The Ego and the Id, W. W. Norton, 1923
→ 사용된 개념: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 초자아(Superego), 죄책감 내면화
2. Bowlby, John, Attachment and Loss, Vol.1: Attachment, Basic Books, 1969
→ 사용된 개념: 애착결핍, 안전기지(Safe Haven), 정서적 대체 부모
3. Ainsworth, Mary, Patterns of Attachment, Psychology Press, 1978
→ 사용된 개념: 불안정 애착, 회피형 애착, 재애착
4. Seligman, Martin, Learned Helplessness: A Theory for the Age of Personal Control, Times Books, 1991
→ 사용된 개념: 무기력 학습(Learned Helplessness), 자아 탈진(Ego Depletion)
5. Beck, Aaron, Cognitive Therapy and the Emotional Disorders, Penguin Books, 1976
→ 사용된 개념: 핵심 신념(Core Belief), 인지 왜곡, 자아 통합
6. Patrick Carnes, The Betrayal Bond: Breaking Free of Exploitive Relationships, Health Communications, 1997
→ 사용된 개념: 트라우마 본딩(Trauma Bonding),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
7. Karpman, Stephen, “Fairy Tales and Script Drama Analysis”, Transactional Analysis Bulletin, 1968
→ 사용된 개념: 희생자-구원자-가해자 삼각형(Karpman Drama Triangle), 중재자 역할 고착
8. Bowen, Murray, Family Therapy in Clinical Practice, Jason Aronson, 1978
→ 사용된 개념: 정체성 분화(Differentiation of Self), 삼각관계(Triangulation), 가족 체계 내 역할 고착
9.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Viking, 2014
→ 사용된 개념: 감정의 신체화(Somatization), 외상 후 정서 반응, 감정 트리거 인식
10. Chapman, Gary, The 5 Love Languages, Northfield Publishing, 1995
→ 사용된 개념: 사랑의 언어, 비언어적 정서 교환, 관계 내 정서적 수용
11. Kohut, Heinz, The Analysis of the Self,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71
→ 사용된 개념: 자기애 결여(Narcissistic Injury), 자기대상 관계, 정서적 공백
12. Harriet Lerner, The Dance of Anger, Harper & Row, 1985
→ 사용된 개념: 분노의 전이 방지, 감정의 경계 설정, 자기 중재(Self-mediation)
13. 법령자료 – 「민법」 제840조 제3호
→ 사용된 개념: 이혼 사유로서의 시부모에 의한 심리적 부당 대우 (직계존속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