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5.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림받는다.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어른이 되었어도 일부 미성숙한 사람들
지금 다시 들어도 가슴이 먹먹하고 슬퍼지는 말이 있다. 누군가 말했다.
“나중에 아이한테 효도받을 라면 어릴 때부터 구박하고, 잘해주면 안 돼. 그런 애들이 자라면 사랑받을라고 기를 써서 효도하거든.”
그 말은 나를 아프게 했을 뿐 아니라, 인간 내면의 미성숙함과 뒤엉킨 감정 역학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기도 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어른이라 해도, 마음은 여전히 미성숙한 채로 머물 수 있다는 것을 이 짧은 말 한마디가 보여주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해달라는 것 다 해주고, 사랑을 가득 준 아이는 나이 들어 부모를 외면하지만, 사랑은커녕 따뜻한 밥 한 번 떠먹여 준 적 없는 자식은 씩씩대며 찾아온다는 말도 있다. 그 행동의 이면에는 부모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채워지지 못한 애착의 공백을 무의식적으로 메우고자 하는 강박이 숨어 있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를 ‘보상적 돌봄(compensatory caregiving)’이라고 부르며, 어린 시절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오히려 역전된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하려는 방어기제로 본다. 때로 이러한 선택은 죄책감과 수치심을 동반한다. ‘내가 부족해서 부모가 날 사랑하지 않았을 거야.’라는 왜곡된 자기 인식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의 인정을 갈구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그래도 나는 받은 것보다 더 주었어.’라는 자기 위안적 자존감 보존 기제가 작동한다. 어떤 경우엔 부모가 이미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오직 ‘이제라도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치다꺼리를 반복하기도 한다. 부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그 순간 아주 잠깐의 ‘무능했던 나’가 회복되는 것 같은 감정이 들기 때문이다.
그 짧고 강렬한 감정을 반복해서 느끼기 위해 우리는 또다시 ‘희생하는 자녀’의 자리를 선택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그것이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가슴이 저릿하다. 왜냐하면, 얼마 전 나 역시 이 이야기에 너무나도 정확히 들어맞는 현실 앞에 내던져질 뻔했기 때문이다. 어른아이로 자란 부모와 어른아이가 키워낸 또 다른 어른아이는 서로 가로막힌 벽을 사이에 두고 선다. 드디어 부모를 위해 무언가 해 줄 수 있는 나이가 된 어른아이는, “역시 나밖에 없지요?”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책임을 떠안는다. 그것이 인정의 방식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는 이런 자녀를 두고 “참 대단하다.”, “넌 정말 착하다.”, “언젠가 복 받을 거야.”라고 치켜세운다. 하지만 그 말들은 결국 ‘부모의 결핍을 자녀가 채우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를 강화할 뿐이다. 그 선택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왜곡된 감정의 결과다. 그 감정은 미성숙한 어른들로부터 비롯되었고, 또 다른 미성숙한 어른을 만들어낸다. 애착의 손상은 세대를 건너 반복되며 죄책감과 수치심은 여전히 그 중심에서 조용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2) 내가 나라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내가 세 살이 되기도 전에, 어머니께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때 어머니 나이가 23도 채 되지 않았으니, 지금 돌아봐도 참 어린 나이다. 그렇게 나는 너무 이른 시기에 첫 번째 상실을 경험했다. 정신분석에서는 이처럼 유아기에 겪는 '주 양육자의 상실(early object loss)'을 깊은 심리적 공백과 자기 정체감의 왜곡으로 연결된다고 본다. 어머니는 나와 어린 동생 하나를 남겨두고 가셨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병행해야 했던 친부는, 친척들에게 우리를 맡겨보려 했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결국 나와 동생은 보육시설, 그러니까 고아원에 맡겨졌다.
내가 다섯 살 무렵이 되었을 때, 친부는 아들을 낳아줄 새어머니를 만났다. 그래서 나와 동생을 집으로 데려오셨다. 그러나 사고로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 넷을 키우고 있던 새어머니는 여기에 한 명의 아이만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 또는 동생, 아들 셋, 딸 하나에, 친부와의 사이에서 태어날 ‘아들 하나’까지 더해지면 여섯이었다. 결국 친부는 새어머니가 낳을지도 모를 태내에 있지도 않은 아들을 위해 나를 포기하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친부는 첫 결혼에서 12살 어린 엄마와의 관계가 실패하자, 이번에는 12살 많은 새어머니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 새어머니와의 사이에서 딸 하나가 태어났고, 이후 친부는 새어머니의 ‘네 번째 아들’처럼 행동하며, 어릴 때 하지 못한 온갖 사고를 다 치고 다니셨다. 부모가 아니라, 아이처럼 말이다.
당시 친부의 사업이 막 번창하던 시기였다. 새어머니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경제적 지원이 절실했고, 친부는 사주에도 없던 아들을 갖고 싶어 했다. 둘은 서로가 필요한 존재였다. 친부는 새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처음엔 동생을 시골에 보냈다. 당시 친부는 “둘 다 딸이니 아무라도 상관없다.”라고 생각했다고, 나중에 성인이 된 나에게 말씀하셨다. 말이 없고, 사람을 피해 숨어 다니던 동생이 버거웠던 시골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친부는 그 요청에도 “상관없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저 말 수가 없고 사람을 피해 숨어 다닌다는 이유로 동생과 바뀌어 시골에 보내졌다는 사실은 ‘나도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내 안에 각인시켰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런 경험을 ‘대상전치(object substitution)’라 부른다. 누군가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로 기능할 때 아이는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잃는다. 그때부터 나는 ‘특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사람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부터 친부와의 연결은 완전히 끊겼다. 너무 바빴고, 집에 아이들도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관심이 끊겼다는 말은 지금도 나를 아프게 한다.
그렇게 나는 거래처럼 700만 원과 함께 ‘보내진’ 아이가 되었다. 시골 아버지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 간판 보조 일을 하던 중 사고로 크게 다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그 일을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와 함께 받은 700만 원으로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사업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병원 생활 중 연이 닿았다 끊어졌던 어머니께 알음알음 소식을 전해 어머니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병원 생활 속에서 사경을 헤매면서도 어머니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간곡한 요청과 마음에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와 결혼을 선택했다. 그 덕분에 나는 어머니를 얻었고 어머니는 원하지 않았던 딸을 얻게 되었다.
이 관계는 사랑이나 선택이 아닌, 생존과 타협에서 비롯된 동거였다. 나는 원하지 않은 존재였고, 그런 나를 받아들여야 했던 어머니 역시 원하지 않았던 수용을 한 셈이었다. 시골 생활을 시작한 나는 보육시설에서 겪은 정서적·신체적 학대의 여파로 자가 면역 질환들을 앓았다. 만성 천식, 기관지염, 대장염 등으로 하루 건너 아플 정도로 매일 같이 아팠다. 심리학적으로 아이가 격렬한 갈등이나 학대가 있는 환경에서 자랄 때, 호흡기 계통이나 위장 쪽에 만성질환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이는 자신과 타인을 분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의 싸움이나 폭력조차 ‘내가 문제라서 생긴 일’이라 해석해 버린다. 그러니 아이를 키우는 집은 사랑을 주지 못하더라도 싸움만은 피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세 살도 되지 않은 아이조차 매일 부정적 정서가 쏟아지는 환경 안에서 그것을 체화하고, 그것을 몸으로 앓는다고 한다. 그리고 마음에 생긴 병이 몸의 병이 되어 아이를 이중의 고통에 빠뜨린다. 이런 사례들을 들을 때마다 부모는 결코 아무나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경우 어머니를 일찍 잃고, 보육시설에서 학대를 당하고, 친부에게조차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품게 되면서, 만성기관지염과 천식, 각종 알레르기를 앓았다. 음식을 거부해 거의 먹지 않거나, 먹자마자 토하고 설사해서 곧 죽을 아이처럼 보였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이미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루 걸러 앓는 나를 돌보는 일은 어머니에게도 고된 일이었을 것이다. 한 번 아이를 바꿨던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다시 바꿔달라고 말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나를 돌보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시골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건강을 회복해 갔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어머니께 감사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그 감사는 ‘감사한 기억’과 ‘감사하지 않은 기억’이 함께 있는 너무나도 복잡한 기억이다. 그래서 여전히 감사한 마음을 기억할 때마다 이중의 고통을 느낀다. 이중의 감정은 내 존재에 대한 감각마저 왜곡시켰다. 사랑을 받은 기억이 있음에도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렇게 사랑과 거절이 공존하는 환경은 아이로 하여금 자신을 ‘항상 문제 있는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그러니 감사한 기억조차 나를 온전히 지탱해주지 못했다. 사랑과 상처가 함께 깃든 관계는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도 혼란을 남긴다. 애착과 외면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중적 기억은 그 자체로 혼란형 애착의 기반이 된다.
(3) 네가 너라서, 딸이라서 버려진 거야
시골에 온 이후, 나는 할아버지와 같은 방을 사용했다. 집에는 방이 일렬로 세 개 있었고, 첫 번째 방은 부모님과 동생들이, 두 번째 방은 나와 할아버지, 마지막 방은 친척 분이 사용했다. 부모님 방에서 지내고 싶었던 나는 저녁이면 웃음소리가 가득한 그 방 옆 마루에 앉아 그리움을 쌓고 또 쌓았다. 그리고 그들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가 ‘나라서’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나 자신이 수치스러웠고, 내가 나인 것이 화가 났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이 죄스럽다.’는 감정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아이가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초기 단계인데, 이때 ‘존재 그 자체가 문제’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받으면 자기 존재를 지속적으로 해체하고 억압하게 된다. 나는 점점 나 자신을 부정하고, 나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는 생존 전략을 터득해 갔다.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4시면 향을 피워놓고 절을 올렸다. 간절한 기도는 1~2시간 동안 이어졌고, 향냄새에 기관지가 취약했던 나는 더욱 심한 천식과 기관지염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할아버지가 매일 새벽 기도를 드렸던 이유는 어릴 적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이 죽기를 바란 기도가 실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스스로 죽음이 올까 봐 두려워 매일 기도를 올렸던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할아버지와 함께 보냈다. 새벽 기도가 끝나면 산에 염소 먹이를 주러 가고, 잡일을 도왔다.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기시던 할아버지를 따라 나도 머리를 빗고, 마주 앉아 붓글씨를 쓰고, 한자를 외웠다. 할아버지는 어릴 적 배우지 못한 한을 나를 통해 풀어내고 계셨다. 그리고 나는 그런 할아버지의 존재에 매달리며 살아남았다. 그분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나를 지우는 일쯤은, 생존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들로만 태어났어봐라. 그러면 네 아빠가 널 안 버렸지.”
그리고 또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점쟁이라는 놈이 너 태어나면 네 엄마 죽을 거라고 했었지. 암. 그래. 그러니까. 네가 태어나서 엄마가 죽은 거야. 네가 문젠 거다.”
그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는 그분 앞에서, 나는 ‘내가 태어난 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죄책감이 아닌 ‘죄의식 자체’를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삼게 됐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런 과정을 투사된 죄책감(projective guilt)이라 부른다. 타인의 두려움이나 분노가 아이에게 전가되고, 아이는 그것을 ‘내 탓’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나는 태어난 것 자체가 문제였던 나를 그래도 받아준 할아버지를 신처럼 여겼다. 그분이 없었더라면 나는 내 존재를 단 한순간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생존을 위해 진짜 나를 감추고, 나 아닌 모습으로 오래도록 살아왔다. 그 결과 성인이 되어서도 ‘원래의 나’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성격이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항상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으로 기능하며 살아왔고, 그 속에서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결코 사랑받을 수 없다.’라고.
(4) 이랬다가 저랬다가
성인이 된 후, 친부는 시골 아버지 앞으로 올린 내 호적을 다시 자기 앞으로 가져와야 한다며 매일 술에 취한 채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시골 어머니에게도 전화를 걸어 “내 딸”이라며 소리를 지르셨다. 덕분에 나는 어머니를 만나면 어머니대로 서운함을 토로하시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화를 내셨다.
“키우지도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딸을 내놓으라니. 어이가 없지. 가져가라고 해.”
어머니의 말에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린 시절 내내 존재감 없이 지내던 친부가 이제 와서 ‘호적’ 이야기를 하며 나를 원한다고 말하는 그 감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두 분 모두, 예전엔 내게 이렇게 말하셨던 분들이다.
“네가 딸이라서 싫다.” “네가 너라서 싫다.” “네가 태어나서 엄마가 죽은 거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나를 원한다고 말할 때마다, 내 안에서는 복잡한 감정들이 솟아올랐다. 드디어 나를 인정해 주는 건가 싶다가도, 그들이 정말 원한 건 ‘나’라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해줄 수 있는 어떤 역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졌다. 그런데도 나는 내 감정을 솔직히 말하지 못했다. 아니,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떤 존재로 그들에게 보이고 싶은지도, 그때는 나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진짜 감정을 드러냈다가 공격적이고 차가운 내 모습이 보이면 그들이 나를 다시 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계속 좋은 딸로 기능했고, 종교적 믿음 속에서 죄책감을 부여잡고 버텼다. ‘효를 다해야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믿음은 내 마음을 억누르고, 나 자신을 억제하게 만들었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그 누구의 딸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믿음 하나 때문에 나는 내 감정을 꾹꾹 눌러 삼키고,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딸로 남으려 했다. 그것이 불안형 애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애정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진짜 감정을 억제하고, 존재를 위장하는 방식으로 나를 숨기고 타인을 위해 기능했다. 이제 나는 안다. 내 능력으로는 두 분의 마음과 욕구를 다 채울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무능한 인간으로 남기로 마음먹었다. 부족한 내가 사랑받는 데 실패한 게 아니라, 내가 채우려 했던 욕망이 애초에 끝이 없다는 점을 받아들였다. 어린 시절, 두 분이 진심으로 나를 원해주었다면 오늘의 나는 조금 더 부드럽고 따뜻한 관계 안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런 아쉬움은 있지만 지금 나는 내 감정이 허락하는 만큼만 사랑하고, 내 힘이 닿는 만큼만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더 이상 미련도, 아쉬움도 없다. 왜냐하면 이제 무언가 더 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을 품지 않기 때문이다.
(5) 나라는 사람 그대로 수용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더 이상 돌아갈 집이 사라졌다는 것에 대해 밀려드는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머니는 정말 고등학생이 된 나를 자신의 곁에서 완전히 지워내셨다. 딸이라서, 내가 나라서 미움받는다고 생각했던 나는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스스로를 학대하는 방식으로 감정과 상황을 회피했다. 지나치게 굶거나, 지나치게 먹으면서 감정을 마비시켰다. 이때 나는 급식으로 나오는 음식을 몽땅 먹고 토하거나, 몽땅 먹고 바로 잠을 자면서 마음을 달랬다. 많이 먹고 침대에 누우면 시린 마음이 따뜻하고 묵직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이때 나는 건강을 많이 잃었지만, 감당하기 어려웠던 감정을 건강하게 마주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내게는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섭식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가 몸을 통해 정서를 해소하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감정이 먹는 것으로 전치되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먹고, 토하고, 눕는 행위로 슬픔과 분노를 잠재웠다. 사춘기 시절에 어머니의 부재는 내 삶의 다양한 부분에서 결핍을 만들어냈다. 한 달에 한 번 여성에게만 찾아오는 마법의 날이 찾아오면 나는 시골 아버지가 가끔 들러 주신 용돈을 꺼내 생필품을 구입했다. 그럼에도 생필품 중 생리대가 부족해서 1천 원에 열 개 들어 있는 가장 싼 오버나이트 하나를 사서 하루에 하나 또는 두 개만 사용하면서 일주일을 버텼다. 이때 경험 덕분에 나는 생리대와 같은 합성 제품들에 심각한 알레르기가 있다. 사춘기 시절, 나를 살뜰하게 챙겨줄 어머니가 부재했기 때문에 다 해지고 맞지도 않는 속옷을 착용하고 다녔다. 그리고 두세 장 있는 팬티로 고등학교 생활을 버텼다. 이때 나는 ‘좋은 것을 내가 누려서는 안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됐고, 이후 그것이 핵심 신념이 되었다.
‘나는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믿음은 자존감 손상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학대 자리에 가장 먼저 놓아두고 있다는 사실을 심리 공부를 하면서 깨달았다. 사랑받기 어려운 존재라는 믿음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조차 사랑을 허락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춘기 시절 나는 생리대가 부족해서 일부러 일주일씩 굶어 생리가 끊기게 만들었다. 덕분에 고등학교 3학년 무렵에는 10개월 가까이 생리가 없었다. 이것이 건강에 치명적인 적신호인 줄 몰랐던 데다, 배도 아프지 않고, 생리대를 사지 않을 수 있어 오히려 편하고 좋았다. 이때 여성인 나를 스스로 매우 혐오했기 때문에 생리를 하지 않는 내가 오히려 좋았다. 특히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싫어했기 때문인지, 생리를 할 때면 바닥에 구를 만큼 아팠다. 생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여성이 아닌 것 같아서, 아프지 않을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존재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의 몸마저 거부하게 된다. 그리고 여성 정체성에 대한 자기혐오는 가장 원초적인 존재 기반을 흔들어 놓았다. 나라는 사람 그대로 수용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은 내면과 외면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시절 나는 천천히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후에 이때를 완전히 지워버린 것처럼 기억에서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천천히 이때의 기억들을 되살려 내는 중이다. 이제야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더 이상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인이 된 후 나는 내가 사랑받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학점을 받고, 책을 많이 읽고, 끊임없이 글을 썼다. 그리고 선택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돈과 명예를 반드시 획득해야 한다고 믿었다. 어린 시절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림받는다.’는 왜곡된 핵심 신념은 다양한 방식으로 삶 속에 드러났다. 과거의 나는 무엇에든지 과하게 몰입하는 내가 오히려 멋있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때 만났던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사람이 되기 위해, 내 눈에 멋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닮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은 ‘내가 나로는 부족하다.’는 불안의 다른 얼굴이었다. 성인이 된 후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사람들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심리 공부를 하면서 나는 과거의 미해결 과제를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치료하려고 했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를 만났을 때도, 연인을 만났을 때도, 심지어 연인의 부모님을 만났을 때조차 나는 아주 편안하고 익숙하게 느껴지는 관계들을 선택해 어린 시절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이것이 반복강박이다. 익숙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관계로 끌리는 힘. 그리고 그것을 고치려는 무의식의 몸부림이 반복강박이다. 그리고 13년 전 남편의 부모님을 만나, 어린 시절에 했던 행동과 생각 패턴대로 10년을 보내고 나서야 내 안에 있던 모든 힘과 열정이 소진됐다. 그리고 오늘의 내가 되어 글을 쓰게 됐으니, 내 마지막 반복강박을 장식해 준 시부모님께 일정 부분 감사한다.
(6)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고,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일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부모님께 사과를 요구했던 때가 있다. 불과 4년 전이다. 그때를 마지막으로 나는 그분들이 내게 잘해주실 거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들이 바뀔 거라고 더 이상 기대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은 결국 자신만의 핵심 신념에 따라 사람을 선택하고,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서사를 만들어간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을 바꿀 수 없다. 심지어 신조차 그 사람을 바꾸려면 그 사람이 먼저 원해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기도라고 부른다. 간절히 원하는 이의 기도는 열쇠가 되어 마음의 문을 연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사람이 간절히 원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신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그 모든 것을 미리 알고 계신 분이기에, 때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을 허락하신다.
그리고 어떤 때는 그 선물이 기쁨이 아니라 고통의 얼굴로 찾아온다. 하지만 고통이 왔다고 해서, 삶 전체가 고통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고통을 통과하고 나면, 반드시 신이 주시려 던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삶에 찾아왔던 모든 고통들이 결국 오늘의 기쁨과 자유를 가져왔다고 믿는다.
시어머니와는 정말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과거를 정리하며 치유해 나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시어머니가 내게 잘해주셨던 점들과 잘못하셨다고 생각하는 점들을 글로 하나하나 정리했다. 지금도 시어머니가 잘해주셨던 장면들이 떠오르면 마음 한편이 흔들린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지난 3년간 써온 글을 다시 꺼내 읽으며 내 감정을 바로 잡는다. 내가 4년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글을 쓰면서 배운 것이 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과, 사람은 바뀔 수 있다는 말은 동시에 모두 맞는 말이다. 사람은 사람이 바꿀 수 없고, 오직 그 사람이 스스로를 바꾸고자 할 때에만 변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 변화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바뀌는 과정에는 죄책감, 수치심, 절망 같은 감정들이 온몸에 덮쳐오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과하지 않고는 진짜 변화는 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마비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반복한다.
나처럼 먹고, 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넷플릭스를 몰아보고, 쇼츠를 끝도 없이 넘기거나
술과 약물에 의지하거나 아예 자신을 지워버리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러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 그제야 우리는 처음으로 스스로를 살려보겠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반드시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나만의 가시밭길을 걷는 법은, 나 혼자선 배울 수 없는 길이니까. 그러니 사람은 바뀔 수 있지만,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바뀔 수 없는 부분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시어머니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건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았던 상태에서 시작한 관계였기 때문에 사실 나는 누구를 만났든, 어떤 관계든, 그 안에서 먹잇감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시절 나는, 친부를 피해 시어머니 댁 거실에서 생활하면서 아직 며느리는 아니었지만 이미 며느리처럼 행동했다. 시아버지보다도 훨씬 아래 단계에서 기능하며, 마치 시녀처럼 존재했다. 그 가정에 내가 무언가를 기여하고 있다는 착각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곧 나의 존재 이유라 여겼다. 시부모님의 집 구조는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다. 거실을 중심으로, 왼쪽 뒤편에는 남편 방이 있었고, 오른쪽 뒤편에는 현관이, 현관을 지나 오른쪽엔 시누이 방, 왼쪽엔 시부모님 방이 있었다. 현관 바로 옆에는 부엌이 있었다. 그리고 거실은 집에서 가장 큰 공간이었고, 나는 그 거실을 방 삼아 살았다. 소파에 기대어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드라마에서만 보던 가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누군가의 일부가 된 것 같아서 참 행복했다. 그런데도 집에 가고 싶어 시부모님 댁을 나서려고 하면 어머니는 늘 간절하게 붙잡으셨다. 처음엔 그게 사랑인 줄 알았다. 누군가가 나를 강하게 붙잡아주는 경험을, 그땐 사랑이라 착각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를 거실에 두고, 외출과 귀가를 반복하셨다. 나는 그곳에서 마치 반려동물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7) 처음으로 나를 위해 경계를 세우다
어느 날 밤이었다. 시어머니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나를 뒤로 한 채, 친구 분과 통화를 위해 남편 방에 들어가셨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자신의 방(안방)에서 통화를 하면 스피커폰을 켜도 거실에는 잘 들리지 않는다. 방음이 잘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남편 방으로 가 스피커폰을 켜고 친구와의 통화를 시작하셨다. 나는 타고나기를 예민한 편인데, 마치 라디오로 치면 모든 주파수가 동시에 열려 있는 상태처럼,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그 통화 내용은 단어 하나까지도 정확히 들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래부터 예민한 아이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라온 환경을 떠올리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 초예민자) 테스트를 해보면 34개 항목 중 32개에 해당한다.
사실, 내 어린 시절처럼 상처받기 쉬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예민성을 타고나지 않았어도 결국 초예민자가 되어간다. 생존을 위해 예민해지는 것이다. 예민한 사람은 감각 수용이 일반인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예민해 외부 자극에 쉽게 피로를 느낀다. 그래서 정서적 환경이 불안정하거나 위협적인 경우, 과잉각성과 감정 피로가 동시에 찾아온다. 내가 매 관계에서 쉽게 소진되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예민성은 기질이지만, 방치되면 자기 학대와 연결되기 쉽다. 나처럼 스스로가 예민한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자라면, 왜 이렇게 힘든지, 왜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쉽게 다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HSP는 단지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내부에서 처리해 버리는 사람이다. 그러니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소진된다. 그러면서도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내면화되어 있다면, 이는 번 아웃을 향해 달려가는 지름길이다. 그때의 내가 그랬다. 내 안의 피로를 눈치채지 못한 채, 끊임없이 관계에 몰입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곁에 붙어 있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 중 하나가 시부모님과의 관계였다. 남편 방에서 시작된 스피커폰 통화는 내 귀에 고스란히 박혔다.
“그 애네 집에 뭐라도 좀 있대?”
“아니, 쥐뿔도 없어.”
“아이고, 그렇게 없어서. 뭐라도 좀 있어야 할 건데. 좀 알아봐 봐. 그래야 결혼시킬지 말지 하지.”
나는 남편과의 만남이 7년을 넘기고 있었기에, 이미 스스로를 그 가족의 일부라 여겼다. 그래서 그 대화는 마치 등 뒤에서 칼을 맞은 것처럼 느껴졌다. ‘쥐뿔도 없다.’는 그 말이, 나라는 존재 자체를 무가치하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오랫동안 노력하면 나라는 사람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열심히 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언젠가는 진심이 전해질 거라고. 하지만 그날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그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조건’이었다.
며칠 뒤, 어머니는 다시 나를 집에 붙잡아 두고 외출하셨다. “잠깐 친구들만 만나고 올 거니까 오후에 꼭 있어야 해.”라며 반복해서 당부하셨다. 그리고 외출한 지 몇 시간 뒤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들이랑 염소 먹으러 가고 있거든. 그 염소 먹는 데가 네가 말했던 니 본가랑 가까운 거 같더라. 그래서 친구들이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봐준다면서 가보자고 하 대. 거기가 어디였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린 바 있다. 내 본가는 과거에 부유했지만, 사업 실패 후 가족은 흩어졌고, 집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간 지 오래라고.
“왜 말을 안 해. 지금 가고 있다고. 친구들이 같이 가보자고 하던데. 뭐, 차 한 잔 마시고 너 네 엄마랑 이야기만 좀 하고 오면 되잖아.”
“갑자기요? 집에 혼자 계세요. 가서 볼 것도 없어요. 그리고 미리 말을 안 해서 가시면 어머니가 안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나랑 친구들이랑 가서 보고, 친구들이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봐준다고 했으니까. 커피라도 마시고 오지 뭐.”
나는 한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끝말을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으셨다. 그리고 오후에 돌아오신 어머니는 아무 일도 아닌 일로 화를 내고 꾸중을 하셨다. 나는 그 꾸중 앞에서 울음을 참지 못하고 펑펑 울며 내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내 안에는 깊고도 묵직한 감정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나는 그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갔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무기력과 상실감이 내 안에 자리를 잡았다. 문제는 그 상태가 ‘익숙함’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사랑받지 못해도 괜찮은 척, 존재하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감정적으로 안전하다고 착각하게 되는 순간,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구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건 아주 위험한 징후다.
시부모님의 집에 방문한 마지막 날,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아버지께 사과를 요구했다. 그전까지는 펑펑 울고, 시간이 지나 어머니께서 잘 대해주시면 또 잊어버리고, 다시 찾아가 또 상처를 입고 울고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내 안으로 완전히 스며들어왔다. 그날 아침, 시누이 언니와 남편은 아르바이트를 나갔고, 나는 어머니의 그릇과 잡동사니를 정리하기 위해 새벽 여섯 시부터 깨어 있었다. 어머니께서 며칠 전부터 반복해서 이야기하셨던 주방 정리를 마치기로 마음먹고 정리를 시작했다. 일곱 시가 넘어가자 쌀을 씻기 위해 시아버지가 방에서 나오셨고, 40분 뒤쯤 어머니도 방에서 나왔다.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내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만족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으셨다. 그러나 곧바로 먹을 게 없다며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김치를 안 썰어놨다며, 시키는 걸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도무지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는 말로 시아버지를 자극했다. 아버지가 그만하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난을 이어갔다. 나는 냉장고 옆 비닐봉지와 쓰레기를 정리하며 두 사람의 싸움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결국 시어머니의 비난이 거세지자, 참지 못한 아버지가 화를 내셨고, 그 화살은 갑자기 내게로 돌려졌다.
“당신이 얘 앞에서 이렇게 나를 몰아세우면, 며느리가 하나뿐인데 나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당신 때문에 무시받아야 되겠어?”
“얘가 오면 정리해 주고 주니까 좋지. 야, 네가 오니까 집에 맨날 분란만 일어나는 거야. 너 집에 오지 마라. 너 때문에 분란이 나니까.”
두 사람은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나를 세워두고 화살을 쏘아댔다. 수치심과 분노가 몰려왔고, 나는 시누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싸움이 끝나자 어머니는 방에 들어와 한 시간 넘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시아버지는 무협 드라마를 큰 소리로 틀어놓고 무심하게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이야기가 끝나자 친구만 만나고 오겠다며 집에 꼭 있으라는 당부를 여러 번 하고 외출하셨다. 시누이의 침대에 덩그러니 앉아 울고 있으려니 그 모든 것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나는 방 안에서 한참 동안 혼자 울었고, 결국 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를 신경도 쓰지 않는 시아버지께 인사드릴 필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옷을 챙겨 입고 조용히 나왔다. 그 후 며칠을 앓아누웠고, 갑상선에 문제가 생겨 혀가 부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팠다. 저녁에 깨어보니 시아버지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너 어른한테 인사도 안 하고 가냐?”
그 메시지를 받고 처음으로 시아버지께 정중히 사과를 요구하는 문자를 보냈다. 내 잘못이 아닌 일을 나에게 돌리고, 분란의 원인이라 말한 점에 대해 사과해 달라고 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나는 네가 내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 아들이 널 만나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아들이 만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보는 거다. 그러니 나는 너한테 사과할 생각 없다.”
그 말은 나를 무시한 것뿐 아니라, 아들을 존중하지 않는 말이기도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아무리 노력해도 내 진심과 헌신은 ‘쥐뿔도 없는’ 내가 그들의 마음에 들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시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매달 주시던 20만 원 월세를 끊었고, 1년 가까이 어떤 연락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의 도리’라는 이름으로 명절과 생일, 가족 행사들을 잊지 않고 챙겼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존중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진짜 경계를 세우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는 정서적 착취와 자기 소진, 그리고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강박이 어떻게 한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관계에서의 무기력과 자기 소외는 반복적으로 자신을 착취하도록 만드는 ‘트라우마 본딩’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존중받기 위해 애쓰는 대신,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도록 준 이 사건이 나에겐 회복의 시작이었다.
<두려움 없이, 당신 자신이 되세요 / 아니타 무르자니 지음 / 황근하 옮김 / 샨티 출판사>
43쪽 – 50쪽
테스트 : 당신은 엠패스인가요?
당신의 엠패스 성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은가? 아래 질문들에 ‘예, 아니오’로 대답하고 점수를 계산해 보자.
1. 상대방의 아픔이 느껴지기 때문에(심지어 그런 감정을 당사자보다 훨씬 더 크게 느낄 수도 있다)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실망시키면 어떡하나 걱정한다.
2. 때로는 자기 잘못이 아닌 것에 대한 비난까지 감수할 정도로 자신의 행동에 전적인 책임을 지고자 한다.
3. 다른 이들에게 잘 속아 넘어가고, 때로는 이용당했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4.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이나 선물, 도움, 혹은 친절한 대접을 받는 게 힘들다. 즉시 갚아줘야만 할 것 같다.
5. 다른 이들에게 깊이 연민을 느끼며, 다른 이들의 약점과 불안함, 실수에 관대하다. 상대가 그만한 자격이 있든 없든 모두를 친절하게 대한다.
6. 다른 이들이 자기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보다 그들을 더 잘 이해해 줘서, 사람들이 자주 문제나 고민거리를 갖고 당신을 찾아온다. 이것 때문에 지치는데도 당신은 상대방의 아픔이 느껴져서 상대를 절대 내치지 못한다.
7. 매우 직관적이며, 어디서 들은 바가 없는데도 어떤 것을 그냥 안다. 단순한 감을 넘어서는 깊은 앎이 있다.
8. 누가 입으로는 뭐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뜻을 품고 있을 때 쉽게 알아챈다.
9. 사람들에게, 그리고 지구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
10. 전인 치료 holistic therapy를 비롯해 모든 형태의 치유 기법들에 끌린다.
11. 약자를 도와주는 성향이 있으며, 어떤 집단이나 공간에서 그런 사람을 아주 금방 알아본다.
12. 다른 사람이 입던 옷은 예전 주인의 에너지가 느껴져서 입기 힘들다. 스스로가 그 옷을 입고 있는 게 싫다.
13. 백일몽 즐기기를 아주 좋아하며, 내면세계가 깊고 풍부하다 대단히 창의적이며, 선견지명이 있고,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공간을 가져야 한다.
14. 판에 박힌 방식, 역할, 통제를 극도로 답답해하며, 자기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고 싶어 한다.
15. 형이상학적이고 영적인 것이라면 무엇에든 끌린다.
16. 남을 위해 봉사하려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사람들을 도울 때 굉장히 기쁘다.
17. 자기 성장, 자기 발전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배우고 싶어 하고, 성장하고 싶어 한다. 자기 자신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성장과 그것을 돕는 일 에도 깊은 관심이 있다.
18. 영적인 성지, 전쟁터(심지어 아무 표시도 안 되어 있는 경우에도), 역사적 인물의 생각 등 특정한 곳에 있을 때, 전에 거기 있던 사람들의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드는 일이 종종 있다.
19. 자연 속에 있을 때 커다란 평화와 평온함을 느낀다.
20. 식물들을 아주 친근하게 여긴다. 딱히 눈에 보이는 징후가 없을 때도 식물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어떤 영양소나 물, 특정위치로 옮겨주는 것 등등-그냥 안다.
21. 음식의 에너지가 느껴지고, 그것이 당신에게 에너지를 줄지 아니면 고갈시킬지를 안다.
22. 동물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동물들이 그냥 당신에게 자연스럽게 끌리듯 다가온다. 23. 사회나 세상에 순응하려고 노력하는 게 언제나 힘들다. 그래서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 대부분을 마치 TV 광고를 보듯이, 그런 일들이 당신과는 무관하거나 당신에게는 해당 사항 없다는 듯 이 바라본다.
24. 몸이 안 좋은 사람 근처에 있을 때 메스꺼움, 두통, 오한 등 해당 종상을 당신도 느낀다. 대개의 경우 그들이 멀어지면 그런 증상도 사라진다.
25.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때 편안하게 이완하기가 힘들다.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을 놔둘 수 없다. 다른 에너지들로부터 떨어져 혼자 있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며, 그런 공간을 가질 수 없을 때 안 좋은 상태가 된다.
26. 쇼핑몰 같은 붐비는 공간은 특히 더 힘들다.
27. 다른 이들은 음악을 제대로 들으려면 크게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에게 그것은 당신 신경에 융단 폭격을 퍼붓는 것과 같다.
28. 누군가의 옆에 서 있을 때 -그가 누구고 거기가 어디든- 가끔 그 사람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으로 착각한다.
29. 누군가와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그의 사고 과정에 폭 빠져서 자신의 생각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30. 가끔 자신의 것이 아닌 느낌들에 압도된다. 멀쩡하게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슬픔이 밀려온다든지, 걷잡을 수없이 짜증이 난다든지, 심지어 기쁨이 솟구칠 때도 있다.
31. 다른 이들의 에너지, 심지어는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까지 흡수하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을 쉽게 느낀다. 아주 사소 한 것에도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거나 당황하거나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다.
32. 무섭거나 슬프거나 우울한. 영화 또는 그런 책을 보거나 읽기가 힘들다. 실제로 몸이 아플 수도 있다.
33. 무엇에든 쉽게 주의가 분산되기 때문에(당신은 모든 것을 감지하므로), 수업 시간이나 회의, 파티 중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보고서를 쓰거나 프로젝트를 최종 검토하거나 블로그에 올릴 글을 후다닥 여러 편 써서 올려야 할 때 커피숍에 가는 일은 절대 없다.
34.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고갈되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여덟 시간 잠을 잤고, 물을 충분히 마셨으며, 현재 당신을 괴롭히는 감정적 문제들이 전혀 없음에도 그저 누워서 쉬고 싶다.
- '그렇다'는 대답이 28개 이상이라면, 당신은 완전한 엠패스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나는 신비가 mystic라고 부른다. 매우 직관적이며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때 거의 매번 알아챈다. 타고 난 치유자이기도 하다. 자연을 깊이 사랑하고 음미하며, 자연이 주는 치유 효과를 자기도 모르게 잘 이해하고 있다. 모든 존재들이 신성의 표현임을 알고 있다. 진정으로 지혜롭고, 주변 사람들의 기분과 에너지, 분위기, 환경을 뒤바꿔놓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에너지와 자신의 에너지를 알아차리고 구별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 절반 이상 해당하시는 분들과 28개 이상인 분들은 <두려움 없이, 당신 자신이 되세요> 책을 찾아보시길 바란다. 당신 자신의 예민성을 알아차리고, 예민함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이다. 스스로 예민하다고 생각하고 느꼈던 분들이라면 HSP(Highly Sensitive Person, 초민감자)와 엠패스(Empath)에 대한 공부를 권한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나 자신과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부가 될 것이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 초민감자)와 엠패스(Empath) 둘은 일부 겹치기 때문에 두개의 성향을 중첩적으로 가지신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HSP는 감각적, 환경적 자극과 관련있고, 엠패스는 타인 감정 자체에서 비롯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완벽히 분리된 개념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스스로의 예민함이 장애물처럼 느껴졌던 분들이라면 두 개념을 공부하길 추천한다.
(8)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리는 사람들이라면 나도 필요 없다.
비슷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비슷한 이야기들을 경험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비슷한 사람과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며, 무의식 깊은 곳에서 어린 시절의 서사를 다시 쓰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반복강박’이라 부른다. 고통은 인식되지 않으면 반복된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인간은 그 누구에게도 존중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시부모님이 처음 내게 선을 넘는 언행을 했을 때, 단호히 거절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면 마지막의 그 고통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관계는 처음의 경계에서 결정되는데, 그때 나는 '경계'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다.
나는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애쓰고, 맞추고, 눈치를 보면 결국엔 그들이 나를 알아주고 사랑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생존 방식대로 종종걸음으로 기능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그 모든 관계는 파국으로 끝났다. 지금은 안다. 모든 관계의 붕괴가 한 사람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걸. 사람은 '상대'를 보고 반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실 시부모님 두 분 모두 사회적 평판이 좋고, 타인들과 좋은 관계를 잘 맺는 분들이다. 그분들이 내게 지속적으로 경계를 넘은 것도 내가 그 경계를 허용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무엇보다 나는 그때 시부모님과의 관계가 남편과의 관계 유지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시부모님과 인연이 끊어져도 남편이 나를 사랑할 거라는 믿음이 없었기에 그분들의 요구에 무조건 응했고, 나를 내려놓았다. 그것이 불안형 애착이다.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남편의 안정적인 애정 속에서 나는 혼란형 애착에서 안정형 애착으로 옮겨왔다. 불안형이었던 나는 '버림받을까 봐.' 오랫동안 고통을 참았다. 그런데 그 고통을 감내했던 이면엔 남편의 사랑을 신뢰하지 못했던 불신이 있었다. 그래서 남편의 가족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 통제하고 조종하려고 했던 마음이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불안형 애착은 사랑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통제 욕구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지키기 위한 조종은 결국 사랑을 잃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시부모님의 정서적 착취가 오직 그분들만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늘의 나는 그 관계의 완전한 붕괴를 통해 남편의 애정을 완전히 신뢰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내 모습을 보여줬을 때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건 끝내야 할 관계라는 것도 배웠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나를 두지 않기로 한 그날 이후, 나는 나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이제 혼자가 가장 평안한 시간이 되었다. 과거엔 혼자 있는 것이 외롭고 두려웠지만, 지금은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초예민자(HSP)로 살아가는 나에게 고요함과 안정은 생존을 위한 조건과도 같다. 심리학자들은 애착 외상과 반복된 무시, 정서적 학대를 겪은 이들은 예민성을 타고나지 않았더라도, 후천적으로 예민성을 '획득'하게 된다고 말한다. 나는 반복된 관계 안에서 결국 무의식 깊이 새겨졌던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림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잘못된 신념을 깨트릴 수 있었다. 남편은 내가 공격적인 감정을 표현했을 때조차 그것을 건강하게 받아들여주었고, 그 경험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나는 더 이상 버림받을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살지 않는다. 오늘 내가 사랑하고 행복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이제는 '혹시 남편이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 내가 그를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중요하다. 내 삶이 언제까지 허락될지 모르는 이 시점에, 쓸데없는 걱정에 낭비할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 나는 오늘 내 모습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기로 했다. 누군가 내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면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사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인연이 아닌 사람은 놓아준다. 나도, 그 사람도, 다른 누군가에겐 충분히 받아들여지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일 테니까. 라며 자연스럽게 놓아둔다.
나는 이제 누구보다도 나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좋은 사람은 타인에게 나쁜 사람이 될 수 없다. 자기 존중이 기반되지 않은 타인 사랑은 결국 상대를 통제하고 억압하게 되기에 나는 먼저 나를 억압하지 않고 존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그리고 더 이상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 나를 놓아두지 않는다.
(9) 2부 5.「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림받는다」 참고 자료
1. Bartholomew, Kim, & Horowitz, Leonard, Attachment styles among young adults: A test of a four-category model,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1(2), 1991
→ 사용된 개념: 불안형 애착(Anxious Attachment), 애착 유형 4분류 모델
2. Aron, Elaine N., The Highly Sensitive Person, Broadway Books, 1996
→ 사용된 개념: 초예민자(HSP), 감각 과민성과 정서 반응 민감성
3. Freud, Sigmund,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W. W. Norton, 1920
→ 사용된 개념: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 무의식적 관계 반복
4.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Brain, Mind, and Body in the Healing of Trauma, Viking, 2014
→ 사용된 개념: 트라우마 본딩(Trauma Bonding), 정서적 학대의 신체화 반응
5. Rosenberg, Marshall B., Nonviolent Communication: A Language of Life, PuddleDancer Press, 2003
→ 사용된 개념: 자기 공감(Self-empathy), 자기 존중, 비폭력적 경계 설정
6. Cloud, Henry & Townsend, John, Boundaries, Zondervan, 1992
→ 사용된 개념: 관계 내 경계 설정(Boundary), 책임의 분리
7. Johnson, Sue, Hold Me Tight: Seven Conversations for a Lifetime of Love, Little, Brown Spark, 2008
→ 사용된 개념: 애착 기반 부부치료, 안정 애착 관계 형성
8. 아니타 무르자니, 『두려움 없이, 당신 자신이 되세요』, 황근하 옮김, 샨티
→ 사용된 개념: 엠패스 테스트(Empath Test), 감정 감응 능력 평가
→ 참조 범위: 43~50쪽
1. HSP 테스트
HSP(Highly Sensitive Person) 테스트는 엘레인 아론(Elaine N. Aron) 박사가 개발한 자기보고식 검사로, 자신이 ‘매우 민감한 사람’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27~34개 정도의 문항으로 구성됩니다. 아래는 아론 박사의 원문 항목(번역본) 예시 34문항 버전입니다. 각 항목에 대해
“매우 그렇다/그렇다” → 1점
“아니다/전혀 아니다” → 0점
으로 채점하고, 14점 이상이면 HSP 성향이 강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2. HSP 테스트 34문항
1.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쉽게 압도된다.
2. 나는 강한 냄새, 강한 빛, 거친 천 등의 자극에 민감하다.
3. 나는 주변에서 동시에 많은 일을 요구하면 불편하다.
4. 나는 예술이나 음악, 자연의 아름다움에 깊이 감동한다.
5. 나는 배가 고프면 집중이 어렵거나 기분이 나빠진다.
6. 나는 폭력적인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피한다.
7. 나는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야 할 때 불안하거나 압박감을 느낀다.
8. 나는 카페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9. 나는 소음이 심한 곳에 오래 있으면 지친다.
10. 나는 생활이나 일에서 실수나 잊음이 있을까 봐 지나치게 신경 쓴다.
11. 나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쉽게 눈치챈다.
12. 나는 날카로운 비판이나 부정적인 피드백에 쉽게 상처받는다.
13.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14. 나는 과로하거나 피곤하면 신체적으로 무척 예민해진다.
15. 나는 깊이 생각하고, 의미를 찾는 경향이 강하다.
16. 나는 큰 변화(이사, 이직 등)가 있으면 스트레스가 크다.
17. 나는 세부 사항에 잘 주목한다.
18. 나는 다른 사람들의 불편함이나 고통에 쉽게 감정이 이입된다.
19.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20. 나는 배경 소음이 많은 상황에서 집중이 어렵다.
21. 나는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오래 준비하고 신중하게 계획한다.
22. 나는 갑작스러운 일이나 놀람에 크게 반응한다.
23. 나는 창의적인 활동에 몰입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24. 나는 주변 환경(조명, 소리, 온도 등)에 따라 기분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25. 나는 갈등 상황을 피하려 한다.
26. 나는 통증에 민감하다.
27. 나는 의복이나 소재의 촉감이 불편하면 신경이 거슬린다.
28. 나는 타인의 말투나 표정의 미묘한 변화를 잘 알아챈다.
29. 나는 하루 동안 받은 감각·감정 자극을 소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30. 나는 서두르거나 압박감을 느끼면 실수를 잘 한다.
31. 나는 낯선 사람이나 상황에서 긴장한다.
32. 나는 기분 좋은 음악이나 장면에 눈물이 나기도 한다.
33. 나는 몸 상태나 환경이 조금만 변해도 예민하게 느낀다.
34. 나는 감각이 과하게 자극될 때 휴식이나 조용한 공간을 찾아간다.
3. 채점 방법
각 문항에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 → 1점
합산 점수가 14점 이상이면 HSP 성향 가능성이 높음단, 이 테스트는 자가 진단 도구이며, 임상 진단이 아닙니다.
4. 출처
Elaine N. Aron, The Highly Sensitive Person: How to Thrive When the World Overwhelms You, Broadway Books, 1996
→ 사용된 개념: HSP(Highly Sensitive Person) 개념, 27~34문항 자기보고식 테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