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 4. 평강공주와 어머니

4. 평강공주와 어머니

by 김희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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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4. 평강공주와 어머니



4. 평강공주와 어머니


1) 어쩔 수 없던 선택들, 평강공주와 어머니


평강공주는 행복했을까. 평강공주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어쩌면 평강공주도 코디펜던트적인 성향(의존적 성격장애)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린 평강공주가 잘못할 때마다 평강공주의 아버지는 농담처럼 “온달에게 시집보낸다.”라고 말했고, 평강공주는 그 말에 불안해하다 정말로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간다. 많은 이들이 평강공주를 ‘현숙한 여인’으로 표현하지만, 만약 바보 온달이 정말로 바보였다면 그래도 그녀는 ‘현숙한 여인’으로 평가될 수 있었을까? 깊게 생각해 볼 일이다.


이렇게 평강공주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나를 어쩔 수 없이 떠맡아 키워주신 어머니다. 나는 친부가 재혼을 위해 자신의 동생에게 나를 맡기면서, 아름답고 평강공주님 같은 어머니 손에 자라게 되었다. 나를 키워준 어머니는 불과 3~4년 전쯤에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깊게 해 주셨다. 누군가의 소개로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는 말로 시작된 어머니의 이야기는 30대에서 20대를 거쳐, 10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첫 만남에서 어머니에게 “나랑 결혼해서 시아버지를 모셔야 한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고 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는 말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는 상대방이 뭐든지 다 받아줄 것 같은 푸근함과 착함이 있었고, 그걸 아버지가 단번에 알아봤던 건 아닐까 싶다. 원래 사기꾼은 사기당할 만한 사람을 가장 먼저 알아본다고 하지 않던가. 아버지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이 사람은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어머니가 자신을 받아주고 안아줄 사람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구원해 줄 존재를 찾는다. 특히, 정서적 결핍이 큰 사람일수록 그런 존재를 직감적으로 알아보는 데 매우 민감하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런 성향을 ‘구원자 콤플렉스’라 부르기도 한다. 한 사람은 누군가를 구원하고 싶은 욕구를, 다른 한 사람은 구원받고 싶은 욕망을 가진 채 끌어당긴다. 문제는 그 구원의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잃는 사람이 생긴다는 점이다. 첫 만남 이후 아버지를 만나지 않던 중 어머니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아버지가 큰 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경을 헤매던 아버지는 병상에서 어머니만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를 찾아갔다. 어쩔 수 없이 찾아갔다고 표현한 건, 성격상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나을 때까지만 보살피겠다는 마음이 결국 결혼으로 이어졌다. 아버지는 퇴원 후 어머니가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고,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딸을 착하게만 키워서는 안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머니는 너무 착한 나머지 죄책감과 죄의식에 갇혀 일생일대에 가장 중요한 선택을 했다. 자칫 잘못된 선택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욕구보다 타인의 고통을 먼저 책임지려는 사람은 자기 결정권보다 ‘타인의 삶을 위한 결정’을 우선시한다. 이건 단순히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의존성 성격의 특성이기도 하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타인의 말에 쉽게 매이게 되는 사람들. 이들은 결국, 자신을 지우면서 살아간다. 어머니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 소개팅을 주선한 사람을 만나면 뺨을 족히 열 대는 때려야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다. 마냥 웃을 수는 없는 그 성격을 너무 잘 알아서다.





2) 헌신이라는 이름의 착취


그 이후, 어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그녀의 삶에 깊이 공감했다. 어릴 적부터 어른 아이여야 했던 그녀는 사랑을 받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을 것이다. 타고난 학업 성취 능력을 가졌지만, 동생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하며 동생을 뒷바라지했던 그녀. 그리고 이제 할머니라 불려도 될 나이가 되어서야 그때 공부하지 못했던 걸 아쉬워했다. 그녀의 말속에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열여섯이나 열일곱의 그녀가 그려졌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녀는 그렇게 살아오다 운명처럼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남편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집요한 구애로 결국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선택했다. 그리고 남편이 떠넘긴 책임을 그대로 떠안아, 시아버지와 나를 키우게 된다. 평강공주는 그나마 바보 온달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겠지만 어머니의 선택은 거의 대부분 타의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강공주의 마음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그녀는 시댁 식구들이 떠넘긴 모든 책임을 받아들였다. 그 선택들은 결국 그녀의 삶 전체를 소모하게 만들었고 병든 몸과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그녀가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했던 길 위에서, 그녀는 자신의 시간과 열정, 재정을 모두 포기했다.


그러나 그 포기의 결과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포기하면 할수록, 주변 사람들은 더 많은 책임을 그녀에게 떠넘겼고, 그녀에게 의존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의 의존에 심리적으로 의존하면서 공의존에 깊게 중독됐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관계를 ‘공의존(co-dependency)’이라 부른다. 한 사람이 희생하고 돌보며 존재 가치를 느끼고, 다른 한 사람은 의존하며 책임을 넘긴다. 이 관계는 겉으로 보기엔 희생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가 서로에게 중독된 구조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돌보며 정체성을 유지하는 사람은, 돌볼 대상 없이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는다. 그렇게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일수록 더 빨리 고갈된다.


그녀의 희생이 깊어지고 넓어질수록 하이에나 같이 자신을 책임지라는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들에 의해 그녀의 인생과 삶은 갉아 먹히고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공생 관계를 오랫동안 이어갔다. 그 선택은 그녀의 건강했던 몸과 마음을 점차 병들게 만들었지만, 그녀는 그것이 선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한계가 있다. 주어진 마음의 에너지와 시간, 재정이 고갈되자, 그녀에게도 자신을 다시 채워줄 공급원이 필요해졌다. 그 안타까운 공급원 중 하나가 나였다고 생각한다.


공생 관계가 무너질 때, 의존하는 사람은 새로운 에너지원이 필요해진다. 정신분석에서는 이것을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의 결과로 본다. 불규칙하게 주어지는 보상은 오히려 중독을 강화시킨다. 그녀는 가족들에게서 아무리 착하게 대해도 돌아오는 건 거의 없었지만, 아주 가끔 돌아오는 ‘미안함’이나 ‘고마움’ 같은 조각들이 그녀를 그 관계에 붙들어 매고 있었다. 나도 그랬다. 나도 그렇게 배웠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착하고 귀한 사람이었던 그녀가,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무섭고, 화가 많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건 그녀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이해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 이해조차 때론 나를 다시 고통스럽게 한다.




3) 나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그녀는 상호의존 관계 안에서 살게 되면서 천천히 변해갔다. 그녀도 결국 한 사람의 인간이었기 때문에, 변해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그녀의 젊은 시절이 궁금해졌다. 어머니께 과거의 사진첩을 보고 싶다고 부탁드렸고,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들을 잔뜩 담은 사진첩을 보여줬다. 사진 안에 고정된 그녀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동화 속에서 보았던 평강공주를 떠올릴 만큼 아름다웠다. 이렇게 예뻤으니, 자신이 이미 할머니라고 불릴만한 나이가 됐다는 걸 실감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됐다.


그녀는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과거 속에서 오늘을 살아갈 힘을 끌어오고 있다는 느낌. 한시도 멈추지 않고, 멈추지 못하고 움직이며 뭔가를 하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때면, 뿌리 깊은 우울감과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그녀를 만나고 오면 이상하게도, 한참 동안 몸도 마음도 아팠다. 그 후로, 그녀는 마음이 아프거나 울고 싶을 때마다 내게 전화를 걸어 쏟아냈다.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 그녀는 언제쯤 자신만의 온전한 선택을 해본 적이 있었을까.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살기 위해서 그녀는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나를 자신의 삶에서 통째로 들어냈다. 그녀의 사랑을 간절히 바라던 나는 그때 모든 것에서 실패한 느낌, 그리고 버려진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녀는 그 이후로 더 이상 나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그리고 결국 모든 힘이 소진된 그녀는 시아버지를 끊어내고, 자신의 아들들까지 끊고는 깊은 시골로 들어가 몇 년을 혼자 살았다. 그게 어쩌면 그녀의 삶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유일한 ‘자의적 선택’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몇 년간 어머니와 나눈 이야기들, 그리고 그 속에서 마주한 진실은, 나와 어머니가 생각보다 많은 부분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어쩔 수 없이 닮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어머니는 어느 날 아버지께 내가 자신을 너무 닮았다고 이야기했다고 했다. 어머니가 나를 낳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와의 깊은 공명 관계 속에서 그녀와 무척 닮은 인간이 되어 있었다.


가족 체계 이론에서는 부모가 자신의 미해결 정서를 자녀에게 전가하는 과정을 ‘가족 투사 과정(family projection process)’이라고 부른다. 어머니가 짊어진 책임과 고통, 억울함과 상실감은 내가 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내 안에 스며들었고, 나는 어느새 그녀처럼 타인의 감정과 삶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자신의 감정을 위임했고,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믿으며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감정의 전가이자 대상전치(displacement)였다. 대상전치란 감당하기 힘든 감정 중 특히 두려움, 억울함, 분노, 좌절 같은 감정들을 그 감정을 향해야 할 대상이 아닌, 더 안전하고 약한 존재에게 옮겨 표현하는 방어기제다. 어머니가 내게 쏟아낸 감정들, 나만 보면 표정이 굳고 목소리가 높아졌던 그 순간들에서 어쩌면 그녀가 세상에 말하지 못한 억울함과 분노를 내가 대신 받아내야 했던 시간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입장에선 나만큼 마음 놓고 터뜨릴 수 있는 존재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부정적인 행동과 말을 ‘사랑받는 증거’라고 착각했다. 감정적으로 기대고, 털어놓고, 쏟아낸다는 게 곧 애정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고통의 이동이었고, 나는 그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들을 내가 감당해야 했고, 내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들은 다시 내 주변으로 흘러갔다.


나는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과거의 내가 그녀처럼 중요한 선택들을 타인의 감정과 표정을 살피며 선택하고, 타인의 인생을 책임지려 하면서 스스로를 소진시켰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니 내가 선택했다고 믿었던 것들 중, 진짜 내가 선택한 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 나도 선택하지 않은 것들로 나의 인생과 시간의 대부분을 채웠다는 걸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불안정한 애착 경험이 성인이 된 후에도 반복 강박으로 이어졌음을 깨달았고, 이는 가족 내 역할 고착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애착 관계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는 감정적으로 안전하지 않았던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된 후에도 반복적인 관계와 상황에서 재현된다고 말한다. 나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겪은 애착 외상(attachment trauma)을 이후 삶의 여러 장면에서 다시 겪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 내에서 어쩔 수 없이 이어지는 심리적, 정신적 유산이 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인정하게 됐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조차 타인의 감정을 먼저 고려해서 내린 결정들이었고, 결국 그것이 나를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4) 과거에 갇힌 어머니와 그녀를 닮아버린 나


평강공주는 착했고, 귀했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녀 역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만약 평강공주가 선택한 바보 온달이 정말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그녀도 어머니처럼 철저히 망가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의 범위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 범위를 넘어서면 누구든 무너질 수밖에 없다. 어머니와 나는 단지 그 범위가 남들보다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깊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 시간, 자기 삶을 소진해 가며 타인의 삶과 감정을 책임지며 살아냈다.


그런데 그 책임이 진짜 내가 지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아니었다. 그건 대부분 역할 고착(role fixation)이었다. 어릴 때 가족 안에서 ‘네가 도와야지.’, ‘네가 책임져야지.’라는 말들을 들으며 자란 나는 ‘책임지는 사람’의 역할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그 역할은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타인의 감정을 내 감정보다 먼저 살피고, 누군가의 슬픔을 내가 먼저 받아들이고, 기꺼이 보듬어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나라는 사람의 핵심처럼 박혀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까지가 내 몫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그렇게 만든 이면에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반복’이 있었다. 정신분석에서는 이것을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고 부른다. 과거에 충분히 마주하지 못한 상처, 감정,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하면서, 그 장면을 다시 살아내려는 것을 말한다. 나 역시도 어머니처럼 ‘희생당하는 사람’, ‘버려지는 사람’, ‘책임지는 사람’의 자리를 계속해서 되풀이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신이 겪은 상처와 억압, 미처 풀지 못한 감정을 나에게 물려주었다. 가족 투사 과정(family projection process)이란 이름의 이 심리적 전가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깊게 스며들었다. 너는 꼭 공부 잘해야 해. 너는 내가 하지 못한 걸 해내야 해. 너는 나처럼 되면 안 돼.라는 의식, 무의식 적인 심리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정작 나는 어머니를 너무 많이 닮았고 어머니처럼 내 인생을 파괴해 줄 만한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끼고 그들을 책임지려 했다. 그런 걸 보면 이용한 사람들이 이용당한 사람보다 더 똑똑한 거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사기를 당한 사람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처음엔 피해자를 위로하지만, 같은 사기를 반복해서 당한 사람에겐 결국 피해자 탓을 하지 않던가.


공의존에 갇혀 타인의 감정과 인생을 책임지며 그 감정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볼 때, 안타까워하면서도 결국 비슷한 사람만 반복적으로 선택하고, 비슷한 상황에만 갇히는 사람이 문제라는 말도 듣는다. 사실은 가해자든 피해자든, 결국 서로 필요했기 때문에 끌린 거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끌어당기고, 관계를 맺는다. 그러니 내 인생에서 반복적으로 억울하고 아픈 일을 경험한 데는 전적으로 상대만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스스로 건강하지 않으면 결국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끌어당기게 된다. 물리학 법칙 중에 ‘같은 진동수끼리 공명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우리는 은근히 서로를 알아본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끌리고, 마음을 내주고, 익숙해진다. 그래서 아주 달라 보이는 두 사람이 알고 보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상처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끼리끼리 사이언스’라는 말도 있지 않나. 웃기면서도 참 슬퍼지는 말이다.


예전의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놀라울 만큼 비슷한 사람들만 반복해서 만나왔다는 걸 알게 됐다. 겉모습은 달랐지만, 내면은 나처럼, 아니 어머니처럼, 불안과 책임감, 인정 욕구와 상처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끼고, 비슷한 사람들을 사랑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반복강박이라 말한다. 과거의 관계를 닮은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다시 찾아가고, 과거의 실패를 복제하는 방식으로 또다시 살아내는 것. 나 역시 그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끼리끼리’ 공명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 흔한 말이, 이제야 진짜로 이해된다. 내가 심리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건강하지 않은 의존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5) 상처는 상처를 알아본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온 어머니는 참 안타깝고, 아픈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게 아픔을 가장 많이 준 사람도 바로 그녀였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조각난 마음들 속에서 헤매고, 또 헤맸다. 모든 사람들이 “은혜는 잊으면 안 된다.”, “받은 건 반드시 갚아야 한다.”, “짐승도 은혜를 안다.”라고 말할 때, 나도 모르게 죄책감이 들었다. 그녀가 나를 키워줬으니 감사해야 하고, 무조건 은혜라고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억지로 감사를 끌어냈다. 내 안의 진짜 감정은 철저히 무시한 채 그래도 고마워해야 한다는 마음만 앞세우며 부정적인 감정을 깊은 곳에 묻고 덮어버렸다. 그랬더니 결핍과 파괴적인 감정들이 내 안에서 자라났다. 내 마음은 점점 메말라갔고, 그 회피는 결국 건강하지 못한 인간관계로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배운 ‘사랑하지만, 무섭다.’, ‘고마워야 하는데, 싫다.’라는 이중감정이 이 내 안에서 부딪치며 끊임없이 혼란을 만들어냈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런 상태를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부른다. 느끼는 감정과 믿고 싶은 감정이 충돌할 때 사람은 감정보다 믿음을 선택한다. ‘고마워야 한다.’는 믿음이 너무 강해서, ‘나는 고맙지 않다.’는 내 진짜 감정을 감히 인정하지 못했다.


나는 착한 딸이고 싶었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죄책감으로 나를 훈육했다. 이건 내 선택이라기보다 오랫동안 내 안에 새겨진 도덕적 강박이었다. 어릴 때부터 내게 주입된 말들 "참아야 돼.", "미워하면 안 돼.", "네가 이해해야지."라는 말들이 내 감정의 숨통을 막았다. 그러다 정말 바닥이라고 느껴지는 지점까지 가서야 깨달았다. 내가 그녀에게 느껴왔던 감정들은 껍데기였다. 나처럼 타인에게 보여줄 만한 성과가 없으면 하찮은 인생이라고 여겼던 사람의 경우 성과를 내지 못하면 완벽히 무너질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어떤 성과도 보여줄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마음이 무너져 아주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그 바닥에서 처음으로 어머니에 대한 진짜 감정을 마주했다. 그 감정은 너무 무겁고, 너무 파괴적이어서 처음엔 나 자신이 나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떠올리기도 두려웠다. 그런데 그 감정을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이 명확해지고, 조금씩 가벼워졌다.


고마운 감정도, 미운 감정도 전부 다 내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었지만, 서로에겐 떼어내고 싶은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했고, 너무 몰랐고, 너무 오래 쌓아온 감정을 다 풀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도.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혀 느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 죄책감과 함께 묘한 해방감이 찾아왔다. 그 순간 나는 아주 오랫동안 조용히 울고 있던 내면아이(inner child)를 마주한 것 같았다. 그 아이는 항상 혼자였고, 두려웠고, 모든 걸 잘 해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 아이는 고마워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화를 내도 괜찮았고, ‘미워.’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사랑받고 싶어 했다. 단 한 번도 온전히 자신의 감정을 허락받아 본 적이 없었던 그 아이를 드디어 만났다. 그리고 나는 결코 나를 어린 시절에 키워준 그 누구에게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드디어 받아들였다.


내게 ‘은혜를 갚으라.’고 말했던 사람들의 말은 이런 비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은행에서 한 번도 저금하지 않고, 마이너스 통장에서 몇 천씩 돈을 빌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은행에 찾아온다. 그리곤 “오랫동안 이용해 줬잖아. 이용해 준 것만도 감사해야지. 원금도 이자도 난 모르니까, 돈 좀 더 줘.”라고 말하는 것을 떠올려 보라.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그들은 내게 한 번도 저금하지 않아 놓고, 마음껏 돈을 꺼내 쓰더니,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내놓으라고 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들이 말하는 먹여주고, 재워주고는 고아원에서도 해 준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한 파괴적 행동과 말들은 그 어떤 곳에서도 허용되어서는 안 되고, 그 누구도 하지 않는다. 과거의 나는 내가 느끼지 않은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고 스스로를 가르치고 탓했다. 그런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내 안에 더 큰 내상을 남겼다. 나는 오랫동안 내 감정을 거스르며 살았고, 그 대가로 사랑을 받는 대신 죄책감과 자기 불신을 갖게 됐다.




6)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까지


평강공주와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세상에는 완벽한 악인도, 완벽한 선인도 없다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됐다. 흑백으로 나눌 수 없는 감정과 관계, 경계와 책임들. 그걸 굳이 포장지를 덧씌워서 보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알게 됐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보려면, 내 안에 잔뜩 낀 먼지와 굴곡들이 생긴 거울을 제대로 닦아내야 했다. 내 안의 거울을 맑게 비워내야 비로소 누군가를 진짜로 마주할 수 있으니까.


이제 나는 타인보다 내 감정을 먼저 살피는 일이 익숙해졌다. 나의 진짜 감정을 보듬고, 껴안고, 사랑하는 법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내 사람들을 진실하게 사랑하고 보살필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예전엔 희생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진짜 사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건 사랑이라는 포장지를 쓴 착취였다는 걸 안다. 타인의 필요에 맞춰 내 마음을 도려내는 건 사랑이 아니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많은 고통을 허락하셨던 건, 진짜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시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 불안과 결핍을 기본 값으로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를 덜 불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잠깐이라도 채워주는 사람들을 '운명'처럼 여겼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게 운명이 아니라 패턴이었다는 걸. 어릴 때 채워지지 못한 감정의 구멍이, 반복적으로 같은 상황을 부르고, 같은 사람을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 심리학에서는 이 반복된 상처의 재구성 과정을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고통 속에서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그 안에서 ‘왜 무너졌는지’를 배우며 일어선다. 나는 후자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전환점이 되어준 사람, 바로 남편이었다. 남편은 내게 안전기지(secure base)가 되어줬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주는 경험을 하며, 자기 대상관계의 치유의 힘을 실감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 주고, 내가 울거나 두려워도 등을 돌리지 않는 사람. 내가 어떤 감정을 꺼내도 당황하지 않고, 말없이 안아주는 사람. 그의 존재는 내가 감정을 ‘들키는 것’이 두렵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자기 심리학에서는 이런 관계를 자기 대상(selfobject)이라고 부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반영해 주는 사람, 나라는 존재가 존중받고, 받아들여진다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 남편은 나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누군가를 진짜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예전엔 자주 남편에게 “사는 게 지겨워. 인간이 참 지겨워.”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곤 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지겹다는 말, 안 좋은 말이야.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 배웠어?”라고 물었다. 그 말 듣고서야 생각했다. 나는 왜 그런 말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이내 알게 됐다.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들을 떠안고, 그것들을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지겹다.’는 말로 흘러나왔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그 말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 말이 나오려 하면, 나는 “행복해”, “고마워”라는 말을 먼저 꺼내보려고 노력한다.


매일 아침 출근 준비하는 남편을 포옥 안아주며 말한다. “내게 와줘서 고마워.” 이 말들을 이제는 진심을 담아 할 수 있는 내가 됐다. 예전에 아이를 낳았다면 나는 분명 과거의 나 같은 아이로 키워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아직까지 아이가 없는 삶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제 내게 아이가 와줄지 아닐지는 전적으로 신의 뜻에 달렸지만, 어떤 삶이 주어지든 감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았든, 하나님이 주신 것은 다 옳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을 온전히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초라해 보여도 괜찮고, 늦어도 괜찮고, 실망스러워도 괜찮다. 나는 이제 내가 아닌 껍데기를 뒤집어쓰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오늘을, 내 걸음으로 천천히 걷는다. 무엇이 되든, 되지 안 든, 채워졌든, 부족하든, 일단 살아 있고, 살고 있으니 그냥, 살면 된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내가 누구와 살아가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고통스러운 경험을 반복적으로 마주하면서도, 점차 내면의 신념이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외상 후 성장의 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완벽한 선인도, 완벽한 악인도 없다. 내게도 나쁜 점이 있듯, 타인도 예수님, 부처님이 아닌 이상 완벽할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과거의 관계에 매이지 않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들을 바라본다. 서로를 아름답게 하려는 사람들만, 내 삶에 들이기로 결심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회복이자 믿음이다.


몇 년 전 읽었던 지나영 교수님(유튜브 채널: 닥터지하고)의 책에서 발견한 주옥같은 글을 이곳에 놓아두며 글을 마친다.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대할지는 네가 가르치는 것이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곳과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를 허락하지 않는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는 무료 서비스가 아니다.”


나도 당신도 이제는 스스로를 가장 존중하는 사람이 되길 기도하며 글을 이곳에 놓아둔다.






7) 4. 평강공주와 어머니 참고자료


1. Bowlby, John, 『Attachment and Loss, Vol.1: Attachment』, Basic Books, 1969

→ 개념: 애착 외상(Attachment Trauma), 안전기지(Secure Base), 애착이론

2. Freud, Sigmund,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W. W. Norton, 1920

→ 개념: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 대상전치(Displacement)

3. Bowen, Murray, 『Family Therapy in Clinical Practice』, Jason Aronson, 1978

→ 개념: 가족 투사 과정(Family Projection Process), 역할 고착(Role Fixation)

4. Kohut, Heinz, 『The Analysis of the Self』,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71

→ 개념: 자기대상(Selfobject), 자기 심리학

5. Janoff-Bulman, Ronnie, 『Shattered Assumptions』, Free Press, 1992

→ 개념: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6. Festinger, Leon, 『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 Stanford University Press, 1957

→ 개념: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7. Norwood, Robin, 『Women Who Love Too Much』, Pocket Books, 1985

→ 개념: 공의존(Co‑dependency), 구원자 콤플렉스(Savior Complex)

8. 지나영, 『마음이 흐르는 대로』, 다산북스, 2020

→ 관련 문장 인용 및 심리적 관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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