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 하는 주말
[사진 서체 : 네이버 나눔 명조체]
1. 집 안에서 보낸 한 달, 평온한 반복 속의 발견
엊그제 6월 1일이라며 “이번 달엔 꼭 공부 열심히 할 거야.”라고 다짐했던 것 같은데, 어느덧 6월의 마지막 날이다. 한 달 동안 외출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아차렸다. 먹고, 자고, 글을 쓰고, 혼자 놀고, 다시 자고. 그렇게 보내는 날들이 지루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 아침저녁으로 남편과 보내는 시간이 늘 재미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베스트 프렌드와 함께 산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맛있는 걸 같이 먹고, 함께 누워 자고, 별것 아닌 일에도 함께 웃는다. 성향과 취미가 비슷한 우리는 자연스레 하루의 대부분을 나란히 보낸다. 외출이 너무 그리운 날이면 옥상에 모기장 텐트를 펴고 한참 누워 있거나, 열 걸음 남짓한 옥상을 빙글빙글 돌며 걷는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바깥세상이 덜 그립다.
이렇게 집 안에서의 생활이 익숙하고 편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건강이 꺾이면서 바깥생활이 어렵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집순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버겁기도 했지만, 지금은 집 안에서의 삶이 주는 안정감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글을 쓰고, 음식을 만들고, 식물을 돌보고, 남편과 게임을 하고, 대화를 나누며 웃는 삶. 내 몸이 회복될 수 있었던 건 그런 작은 일상들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이 ‘함께’여서 가능했다.
2. 서로를 돕되, 묶지 않기 위한 연습
남편을 위해 하는 일들이 예전과는 다르다. 한때는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 내가 먼저 지치곤 했지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감사함으로 하고, 남편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가볍게 돕는 편이다. 남편 앞에 놓인 돌들을 치워주는 대신, 그가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멈춰서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나는 코디펜던트 성향을 가졌던 사람이라 과거의 나는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 짊어지고, 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주려는 강박에 시달리며 자랐다. 사랑과 희생을 착각했고, 나를 잃으면서까지 남을 돕는 걸 미덕이라 믿었다. 그런 성향 속에 ‘인에이블러’의 그림자가 있었다. 내가 돕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사실은 상대방의 자율성을 조용히 빼앗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나는 그 성향을 하나하나 내려놓기 시작했다. 남편을 도우면서도 동시에 그를 묶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하며 뒤로 한 발 물러나는 연습을 했다. 그 결과 우리는 훨씬 더 자유롭게 웃고, 편안하게 대화하며,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바뀌니 우리 사이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3. 함께 있는 지금이, 나의 안전기지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집에만 있는 날들이 갑갑하고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하루하루가 조용히 평안하고, 아무 일 없어도 충만한 기분이 든다. 애착이론에서 말하는 ‘안전기지(safe haven)’라는 단어를 요즘 자주 떠올리게 된다. 불안하고 흔들리는 마음이 다시 돌아와 쉴 수 있는 자리, 그것이 곧 ‘집’이고, ‘남편과의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을 알아가는 데 평생이 걸린다더니, 정말 그렇다. 매일 얼굴을 보는데도 남편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것들이 있다. 대화 속에서, 눈빛 하나에서, 사소한 일상 속에서 나는 매일 새로운 감정을 배운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나를 안전하게 지지해준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나의 ‘안전기지’에서 가장 편안한 나로 살아간다.
인생은 언제나 행복할 수만도, 언제나 힘들 수만도 없다. 행복과 불행은 늘 짝을 지어 나타난다. 그래서 불행한 시간을 견디는 것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지나가면 그 자리에 ‘내 인생에만 존재하는 고유한 행복’이 피어난다. 나에게는 지금이 그 시간이다. 작은 웃음과 따뜻한 눈빛, 함께 있는 이 평범한 하루가, 나를 회복시키는 가장 큰 힘이 된다.
고마워. 남편. 고마워요.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