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버 번아웃 극복하기
기버 번아웃 극복하기
보통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새벽 기상 스타일은 아닌데, 요즘은 자꾸 새벽에 깬다. 새벽에 깨면 불끈 힘이 솟아나서 갑자기 이런저런 일들이 하고 싶어진다. 가령 글을 쓴다거나, 갑자기 밀린 청소를 한다거나, 정리 정돈을 하는 식이다. 남편도 나도 아주 많이 예민한 편에 속해서 소리, 조명, 냄새 등에 매우 민감하다. 싱크대 안에 접시를 쌓아둬도 그 냄새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해서, 싱크대를 항상 깔끔하게 유지하는 편이다.
게다가 강박도 있다.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정리하고 또 정리하게 된다. 평소엔 매우 귀찮아서 손 놓고 있다가도 오늘처럼 새벽에 갑자기 깨면, 재활용품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분리하고, 창고까지 뒤적인다. 창고를 정리하고 나오며 언니에게 보낼 과자들을 챙겼다. 선물을 보낼 때면 가능하면 먹을 것도 함께 보내는 편인데, 언니도 늘 먹을 것을 꼭 챙겨 보내준다. 언니와 마지막으로 본 지도 2년은 된 것 같은데, 편지를 읽으면 어제 만난 듯한 친근함이 가득하다. 참, 여러모로 따뜻한 사람이다.
이번 선물은 언니에게 주려고 오래전부터 사뒀다가, 드디어 ‘보낼 명분’이 생겨 다행스럽게 꺼낼 수 있게 된 선물이다. 지난 3~4년간 나는 선물을 주고 싶어도 주지 않는 연습을 해왔다. 기버 번아웃을 치료해 보기 위해서였다.
기버 번아웃(Giver Burnout) 이란, 늘 베풀고 돌보는 역할을 하던 사람이 심리적, 정서적, 신체적으로 탈진하는 상태를 말한다. 심리학적으로는 자기희생적 성향과 공감 과잉, 그리고 경계 상실이 반복될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정서적 소진 증후군이다.
“나는 괜찮아”가 입버릇인 사람, 거절이 어려운 사람, 상대의 감정 기복이나 불편함을 내 책임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으로 이들은 끊임없이 타인을 먼저 돌보며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쳐서 이유 없이 피곤하고, 아무리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다.
나는 공의존(Co-dependency)을 기반으로 한 삶을 오랫동안 살아왔다. 기버 유형 중에서도 더 깊이, 더 무겁게, 더 의무적으로 주는 방식이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훨씬 많았고, 받는 것이 오히려 불편해서 더 많이 주곤 했다. 관계를 끊을 때조차 선물을 가득 안겨주고 끝내야 마음이 편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나쁜 사람일까 봐’ 두려웠다.
그 안에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초자아의 과잉 통제’가 작용하고 있었다. 심리 공부를 하며 주는 기쁨도, 받는 기쁨도, 서로의 에너지가 순환될 때 가능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일방적으로 주고 또 주는 관계는 결국 병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도움의 이름으로 나를 갉아먹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명확히 알게 됐다.
기버 번아웃을 겪는 사람들은 흔히 만성 통증, 소화불량, 불면, 긴장성 두통, 생리 불순 같은 다양한 신체 증상으로 고통받는다. 이는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신체가 감정의 과잉 짐을 대신 짊어진 결과다. Gabor Maté는 이를 몸이 말하는 ‘아니오’라고 표현했다. 신체는 말한다. 이제 그만하라고. 더 이상 감정의 수납창고가 되지 말라고. 그러니 평소 타인의 표정, 기분, 감정에 과도하게 반응하고 ‘주는 사람’으로서 존재 가치를 입증하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스스로 멈춤 버튼을 눌러야 한다.
주는 것도, ‘건강한 감정의 경계’ 안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고 뭔가 특별한 명분이 생기는 게 아니라면, 선물을 하지 않는 삶을 3년 넘게 실천했다. 문제는 그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거였다. “주는 게 뭐가 문제야?”,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일 뿐인데.” 이런 말들이 매번 마음을 휘저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도 계속 주는 건 때로는 정서적 침입이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요즘은 정말 주고 싶어도, ‘오늘’이 상대에게 필요하거나 원해지는 때가 아니면 주지 않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하고 있다. 오늘 보내는 이 선물도 사실은 여러 번 선물을 거절했음에도 계속 선물을 보내왔던 그 사람의 마음에 ‘응답’하는 의미로 보내는 것이다.
그 마음이 언젠가 닿을 수 있기를. 그리고 이번 기회에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대로, 내 눈에 괜찮다고 생각하는 물건이지만 상대의 마음에 들길 바라며 조심스레 선물을 포장한다. 그리고 뭐.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건 내 영역이 아니다. 상대의 반응까지 통제하려 든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거래기 때문이다.
진짜 선물은 주는 순간부터 놓아주는 연습까지 포함된다. 그래서 나는 이 선물이 꼭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정말 아끼는 마음을 담아 포장을 마쳤다.
1. Pia Mellody, 『Facing Codependence』, HarperOne, 2003
→ 사용된 개념: 공의존(Co-dependency), 자기 희생, 경계 상실
2. John Bowlby, 『Attachment and Loss, Vol.1: Attachment』, Basic Books, 1969
→ 사용된 개념: 애착이론, 안정적 애착 결여가 반복 강박과 과도한 돌봄 욕구로 이어짐
3. Kristin Neff, 『Self-Compassion』, William Morrow, 2011
→ 사용된 개념: 자기 연민(Self-compassion), 자기 돌봄의 심리학
4. Harriet Lerner, 『The Dance of Intimacy』, Harper Perennial, 1989
→ 사용된 개념: 관계 내 거리 조절, 건강한 자기표현, 감정 경계
5. Patrick Carnes, 『The Betrayal Bond』, Health Communications, 1997
→ 사용된 개념: 트라우마 본딩(Trauma Bonding), 관계 중독
6. Gabor Maté, 『When the Body Says No』, Vintage Canada, 2003
→ 사용된 개념: 신체화된 스트레스, 도우미 성향과 만성 질병의 상관성
7. Melody Beattie, 『Codependent No More』, Hazelden Publishing, 1986
→ 사용된 개념: 구원자 콤플렉스, 경계 회복, 감정 독립
8. Alice Miller, 『The Drama of the Gifted Child』, Basic Books, 1979
→ 사용된 개념: 착한 아이 증후군, 초자아의 과잉 발달, 인정 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