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음식 속에 담긴 사랑
1. 휴가의 시작
본가에서 돌아온 남편이 수박과 장어를 들고 왔다. 장어는 내가 전혀 먹지 않으니 남편 몸보신용으로 손질해 냉장 보관했다. 수박은 바로 먹을 거라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수박을 예쁘게 자르고 싶어 유튜브에서 여러 영상을 찾아봤다. 몇 개를 보고 나니 감이 잡혔다. 처음 해보는 방식이었지만 의외로 쉽고, 재미있었다. 통에 담아 놓으니 보기 좋고, 기분까지 좋아졌다.
별것 아닌 일인데도 뭔가 해낸 듯 마음이 뿌듯했다. 나를 알아갈수록 참 재미있다. 요리를 하고, 아주 소소한 것이라도 배우고, 글을 쓰고, 기록하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알아간다.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진짜 가족을 찾은 듯, 혹은 오래 기다린 친구를 만난 듯,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이 소중하다. 3년 넘게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지만, 이제는 혼자가 전혀 힘들거나 외롭지 않다. 오히려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기쁘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남편의 휴가가 시작됐다. 우리는 둥그렇게 앉아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매 끼니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간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휴가 덕분에 드디어 같은 침대에서 자게 됐다. 평소 우리는 둘 다 아주 높은 수준의 HSP(Highly Sensitive Person)라 같은 침대에서 자면 서로의 기척과 미세한 움직임에도 쉽게 깨어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HSP는 감각에 민감해 소리, 빛, 온도, 움직임 등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충분한 수면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에는 휴가라는 여유 덕분에 먹고, 자고, 놀고, 하루 종일 함께할 수 있다. 친구가 없다고 푸념할 필요 없이 내 옆에 가장 좋은 친구가 있으니 매일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무엇보다 남편이 잘 먹고 웃는 모습을 보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즐겁다. 단순히 밥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그 순간의 표정과 온기가 나를 깊이 충만하게 한다.
오늘 오전에는 남편이 지난주 내내 먹고 싶어 했던 김치찌개를 끓여줬다. 너무 맛있다며 '200% 만족'이라는 말을 듣고 쌍따봉까지 받았다. 다음에도 꼭 똑같이 끓여달라며 레시피를 저장해 달라고 했지만, 사실 김치찌개에는 정해진 레시피가 없다. 어제 손질해 둔 국산 오징어, 돼지고기 대신 넣은 우삼겹살, 무농약 버섯, 대파 한 줌, 기버터 두 스푼, 잘 익은 김치, 간장, 구운 소금, 멸치 액젓, 생강가루, 천연 식초 등을 넣어 어릴 적 먹었던 그 맛을 냈다. 어린 시절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는 소문난 장금이셨기에, 먹어본 맛을 기억해 요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난주 내내 배달 김치찌개를 먹고 싶어 하던 남편이 드디어 오늘 집에서 만든 김치찌개를 맛봤다. 내가 배달 김치찌개를 만류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퇴근 후에는 입맛이 없다고 해서. 둘째, 시중 김치찌개 대부분이 중국산 김치로 만들어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중국의 농가에서 채소 재배에 사용하는 화학약품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는 국산 재료만 구입하게 됐다. 또, 고춧가루 수입 과정에서 고추 양념으로 수입하기 위해 섞이는 물과 방부제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외식 시 김치 메뉴를 피하게 됐다. 고추양념을 들여와 다시 말리면 우리가 시중에서 구입하는 중국산 고춧가루가 된다. 방부제와 화학 처리 과정을 거친 재료는 특히 대장 건강이 좋지 않은 남편에게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고춧가루가 들어간 제품들의 원산지를 꼭 확인한다.
드디어 휴가 첫날 아침, 바로 끓여주었다. 남편은 밥 한 그릇에 라면 사리까지 넣어 깨끗하게 비웠다. 행복해하는 남편을 보며 나도 행복했다. 사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다.’는 건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함께 식사하는 시간은 ‘애착’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안전기지(Secure Base) 역할을 하는 사람과의 식사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관계 만족도를 높여준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와 밥을 먹으며 유대감을 형성하듯 성인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에서 깊은 연결감을 느낀다.
이번 주는 하반기 겨울 휴가까지 버틸 힘을 채우는 시간이다. 냉장고에 간식과 재료를 가득 채워두었으니, 식사 시간에 맞춰 요리해 함께 먹으면 된다. 벌써 두 가지 요리를 해 먹고, 어제 손질한 수박도 실컷 먹었다. 이렇게 소소한 순간이 하루를 채우고, 그 소중한 하루들을 쌓아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굶주리지 않고, 의식주가 가득한 일상을 살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내게 와준 남편 오늘도 고마웠어.
남편이 오늘 아침 일어나 내게 한 말,
"나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하는 게 너라는 걸 알아."라고 했다.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른다.
"그걸 알아?"라고 묻자, "그럼, 네 사랑이 느껴지는 걸." 이라니. 나는 참 여러모로 복을 가득 받은 사람이다.
2. 참고자료
1. Aron, Elaine N., 『The Highly Sensitive Person』, Broadway Books, 1996
→ 사용된 개념: HSP(Highly Sensitive Person), 감각 민감성과 수면 환경
2. Bowlby, John, 『A Secure Base: Parent-Child Attachment and Healthy Human Development』, Basic Books, 1988
→ 사용된 개념: 안전기지(Secure Base), 애착이론
3. Dunbar, Robin I. M., 『Grooming, Gossip, and the Evolution of Langua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96
→ 사용된 개념: 사회적 유대와 식사, 관계 만족도